소설리스트

검신재생-189화 (189/318)

<검신재생 189화>

189. 일망타진(一網打盡)

천무백은 곧장 작은 배를 몰아 강변에 댔다. 강변을 벗어나면 우거진 산림이 나오는데, 천무백은 망설임 없이 뛰어 들어갔다.

“능허야!”

“예예!”

“네가 아이를 맡아라.”

“아이고야…….”

능허가 앓는 소리를 냈다.

세상에. 이게 쉬운 일이겠는가. 이 아이를 노리는 게 누군가. 바로 독마다.

“새끼, 표정 풀어. 어차피 내가 독마는 처리할 테니, 그전까지 잘 숨겨.”

“그 말 진짜죠?”

“설마 내가 위험에 빠뜨리게 하겠냐? 응?”

“제가 주군과 같이 다닌 이후로 위험에 빠진 게 수배는 더 많습니다.”

“그래도 멀쩡히 살아 있잖아.”

능허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비죽였다.

“이거 봐. 어디 내가 한번 죽을 위기에 처해야 주군이 정말 후회하겠소?”

“걱정 마. 넌 몰라도 이 아이만큼은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

천무백의 말에 능허는 순간 상처받은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 봤다.

상황이 매우 급한 건지도 모르는지, 그저 순진한 눈망울로 방긋방긋 웃는 소용. 그 웃음에 능허는 저도 모르게 맥이 탁 풀렸다.

“허. 이 어린 애에게 질투할 수도 없고…….”

천하의 능허가 풀어지는 광경에 천무백의 눈빛이 묘해졌다.

‘종리홍 말이 맞아. 이건 선기야.’

평범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선기.

천무백은 애석한 마음이 불쑥 들었다.

‘이 아이에게는 저주와 같겠지.’

자신도 상단전의 경천혼공이 아니었다면, 아니 숱한 전생을 반복한 경험이 아니었다면…….

성물의 선기를 한낱 인간이 품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천무백도 선기를 다룰 때면 온 정신력을 집중하지 않는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나, 그만큼 몸에 큰 부담을 주는 미증유의 힘이다.

한데 이 작은 아이가 그만한 선기를 품고 태어났다.

‘오히려 지금껏 신체가 무너지지 않고 버틴 것이 이 아이가 특별한 거야.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가 있겠지.’

시간이 흐를수록 병색은 짙어졌겠지. 백방으로 의원과 약을 찾아도 효능은 없을 테고.

그러니 곧 저주다.

‘단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천무백은 소용을 넘겨줄 때의 종리홍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양반, 그래도 마음속에 탐욕만 품고 있던 건 아니었군.’

천무백의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저 종남이 강해지기를, 종남이 강호에서 우뚝 서기를,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탐욕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협과 의보단 문파의 안위를 중시하던 무인이라 여겼다.

그렇더라도 상관없다. 문제 될 건 없다.

자신이 검극에 닿기 위한 삶을 사는 것처럼, 그 역시 종남을 위해 사는 것일 뿐이니까.

한편으로는 내심 안타깝기도 했다.

정파는 정파로서 존재한다.

아무리 강력하고 위엄 있다고 한들, 결국 정파를 지탱하는 건 협과 의다.

소림이 정파의 지붕이요, 무당이 정파를 지탱하는 기둥인 이유다.

종남에겐 부족했다.

하나 소용을 보니 알겠다.

소용의 손을 넘겨줄 때, 종리홍이 얼굴에 떠오른 건 분명한 측은지심이었다.

“종리홍도 나이를 먹은 게지. 사람이 측은지심을 가진 거니까.”

“측은지심이요? 무슨 소립니까. 제 목적 이루겠다고 어린 애도 납치한 납치범인데요.”

능허가 차갑게 대꾸했지만 천무백은 고개를 저었다.

“그 눈을 못 봤냐? 처음엔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닐 거다. 설령 성물이 아니어도 아이가 정말 병색에서 치료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

그랬나? 자신이 보기엔 그게 그거였는데.

능허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천무백이 그리 말하니 대충 수긍했다.

“문파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는 탐욕과 의지는 갖췄으되,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는 잊지 않았으니 종남이 정파로서는 남겠지.”

추후 장문인이 될 종리홍의 변화를 뚜렷하게 목격한 천무백은 한결 마음이 풀렸다.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긴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 마도와의 전쟁.

종남파는 천무백이 의도하는 공동전선에서도 놓쳐서는 안 될 강력한 칼이니까.

“그 양반이 바라는 게 한낱 성물이 아니다. 이 아이가 건강해지는 것이겠지.”

“흐으음. 그렇게 개과천선한 사람 같진 않은데.”

“그러니 노인의 소원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이 아이의 선기를 내가 흡수하면 아이도 건강해지는 것이니까.”

“……어째 그게 본론인 것 같은데요.”

능허는 혀를 내둘렀다. 어째 종리홍의 변화를 칭찬하더니. 다 이렇게 말하려고 했구나.

놀라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합리화다.

“뭐 내 생각이 틀렸느냐?”

“아니요, 맞습니다. 예. 맞아요.”

천무백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야.”

“소용이에요!”

“그래, 소용아. 이 못생긴 아저씨 따라가고 있거라. 곧 찾으러 가마.”

“못생긴 아저씨라뇨.”

능허가 볼멘소리를 했지만, 어느새 품에 소용을 안고 있었다.

“잘 모셔라. 귀하신 몸이니.”

“허. 사람 참 섭섭하게. 걱정하지 마십쇼. 내 애처럼 잘 모실 테니.”

“그래, 미리 연습해 놓는 것도 좋지.”

“……네?”

대수롭지 않은 말이었지만 능허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천무백이 피식 웃었다.

“애가 들어서면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의 흐름이 바뀌는 법이다. 이번 일 끝나면 설영이에게 곧장 연락해 보거라. 이제 사 개월이 지났으니, 산기가 뚜렷하겠구나.”

“……!”

능허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뻐끔뻐끔했지만, 아무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말도 못 하는 모습이 퍽 의외였는지라 천무백은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니 이번에도 살아서 돌아가야지.”

능허는 그제야 심호흡을 한 뒤에 간신히 말했다.

“……아니, 다 알면서 나를 데리고 온 거요?”

“난 데리고 온 적 없다. 네가 자처했지.”

“…….”

맞다. 그랬다.

독안사란 명성은 천룡검협이란 이름과 더불어 떨쳤다.

천룡검협은 혈귀곡의 적이다.

그러면 독안사도 혈귀곡의 적이다.

‘언제든 나 역시 표적이 되고, 내 주위가 표적이 될 거다.’

옛날에는 걱정 없었다. 그냥 흑도 인생, 살다가 죽는 게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내 것이 있다.

연화루 루주를 맡은 설영이 있다. 그리고, 아이도 생겼다.

능허는 결연한 얼굴로 소용을 꼭 안았다.

“내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 마도놈들 싸그리 절멸시키는 거 맞지요?”

“지금까지 행보 기억 안나냐?”

능허가 슬며시 웃었다.

“거, 까짓것 뭐. 시키는 대로 다 하지요. 내가 지금까지 못 한 게 있습니까. 막상 하면 별것도 없더만.”

“오냐. 오늘까지 활약하면 설영이에게 잘 말해 주마. 아주 협객이 됐다고 말이다.”

“주군.”

“응?”

“설영이가 한 열 살은 많은데, 형수님이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천무백은 잠깐 고민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 * *

유검제와 검후를 필두로 한 절강무인들과 독마를 중심이 된 마인들의 전투는 갑작스러웠지만, 지독하고 치열했다.

숫자는 마인들이 훨씬 많았다. 실력 역시 독마가 대동한 마인들답게 범상치 않았다. 절대적으로 절강무인이 불리한 형세였다.

하나 검후와 유검제가 끼어드니 절강무림이 무너지지 않고 분전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칠 뿐이었다. 절강무림은 비등한 싸움을 벌일지언정, 밀어붙이지 못했다.

독마는 유유히 전장 한가운데 서서 오연하게 싸움을 지켜봤다.

“독마. 이노옴! 반드시 네놈 목을 잘라 주마!”

검후의 서슬 퍼런 외침에도 독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이 싸움에 관심이 없었다.

‘흑도의 인물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의 신경은 오로지 아이를 데리고 간 천무백에게 닿았다.

처음엔 흑도의 인물인 줄 알았다. 애당초 흑회에서 나온 인물이었으니까. 수적들을 동원하는 걸 보고 일이 복잡해지긴 해도 확실하다고 여겼다.

한데 어디서부턴가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추적대가 금방 따라붙고, 종국에는 검후까지 도달했다.

검후가 오자 수적들은 수세에 몰렸고 끝내 도주했다.

그런 와중에 이대로라면 아이를 검후에게 뺏기겠다 싶었던 독마는 결국 직접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수십 년을 연구해 만든 비다라다. 그 비다라를 무적으로 만들려면 그 아이가 필요해!’

사용법을 모르는 성물 대신, 아이는 확실하다.

‘몸을 해부해서라도, 그 선기를 이용하는 방법만 알아낸다면!’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가야 했다.

한데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흑도가 아니야. 수적들이 도주한 방향이 아니라, 산으로 향했다.’

마지막 순간, 종리홍은 순순히 아이를 넘겼다. 뺏긴 게 아니다.

상대가 흑도라면 종리홍이 그럴 리는 없다.

독마의 눈이 서슬 퍼런 안광을 토했다.

‘설마. 어떤 잡놈이 이번 일에 끼어든 것이란 말인가?’

아이를 노리고?

독마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시선을 돌렸다. 천무백이 도주한 방향이었다.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설마 일부러 이렇게 유도한 것인가?”

자신이 지켜보고 있는 걸 눈치채고?

그래서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게끔 유도했다고?

‘검후와 싸우는 사이 아이를 데리고 도주하려고!’

그의 눈에서 순간 시퍼런 귀화가 타올랐다.

‘흥! 내가 고작 이깟 절강의 조무래기들에게 발목이 잡힐 줄 알았더냐!’

독마는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 동원한 혈귀곡의 마인들도 상당수. 놈의 의도대로 발목이 잡혔을지도 모른다. 자신뿐 아니라 여기 마인들까지.

하나 독마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저 정파 조무래기들과 싸워라.”

독마의 명은 추상같았다.

오히려 독마는 여기에 동원된 마인들을 검후와 추적대들의 발목을 잡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사이 도주한 천무백을 잡고 아이만 탈취하면 여기 마인들을 전부 잃어도 손해가 아니다.

“어딜 가느냐! 독마 이노오오옴!”

독마가 몸을 돌려 휙 떠나자 검후의 외침이 터졌다.

하나 독마는 신경도 쓰지 않고 훌쩍 떠났다. 그녀를 죽이는 것보다 아이를 취하는 게 더 이득이었으니까.

“흥. 이 애송이 놈. 아마 마인들이 여기 전부 동원됐으리라 생각하고,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했겠지?”

그렇다면 오산이다.

독마는 곧장 신호탄을 터뜨렸다.

그러자 단숨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인이 몰려들었다.

‘절강에 있는 혈귀곡의 마인들이 고작 그뿐인 줄 알았더냐.’

독마의 눈이 잔혹한 빛을 내뿜었다.

강변에서 추적대와 싸우는 마인들뿐 아니라, 나머지 마인이 남아있었다.

나머지 전부 동원한다면, 놈을 추적하는 건 일도 아니리라.

“감히 나를 농락하고 내 것을 빼앗아 갔겠다?”

독마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천라지망을 펼쳐라. 놈을 잡는다.”

눈에서 푸른 귀화가 타올랐다.

* * *

천무백은 퍽 능허가 든든했다.

‘어쨌건 같은 목적이니까.’

천무백의 진실한 목표는 검극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거처와 울타리를 지켜야 했다. 언제든 푹 쉴 수 있는 안식처는 존재해야 한다.

혈귀곡은 그걸 위협하는 방해물이다.

천무백은 혈귀곡을 없애야 하는 대적이자 방해물로 생각했다. 직전 전생에서 미처 다 해결하지 못한 일이니, 지금 처리할 생각이다.

능허도 같은 뜻을 품었다. 제 안위뿐 아니라, 이제는 곧 생길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에겐 강철같은 의지와 힘이 생기기 마련이다.

‘잘 챙기겠지.’

천무백은 산을 파고들며 생각했다.

수적들을 동원하고, 추적대를 마음대로 이끌고, 상황을 개판으로 만들어 종리홍에게서 평화적으로 넘겨받은 소중한 아이다.

그런 아이를 능허에게 맡길 정도로, 천무백은 능허를 신뢰했다.

“잘 도망치겠지.”

사실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천무백은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신만 쫓아오도록 유인할 생각이니까.

자신을 미끼로 능허가 무사히 빠져나가게 한다?

그런 건 아니었다.

“적어도 강변에 모인 마인들은 검후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독마는 아마 아이를 탈취하기 위해 자신을 쫓아올 것이니.

독마 없는 마인들이라면 검후가 모조리 목을 벨 수 있으리라.

그러니 천무백은 코도 풀지 않고 절강에 암약한 혈귀곡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깡그리 데리고 오거라, 독마여.”

천무백은 알았다. 강변에 모인 마인들뿐 아니라, 더 있을 거라고.

독마는 음흉하고 집요한 놈이라, 한 번에 모든 걸 쏟아붓지 않았다.

장마 대전 때도, 늘 예비대를 뒤에 놓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잘 써먹지 않았던가.

그러니 독마는 나머지 마인들을 이끌고 자신을 쫓아오리라.

아마 사냥감을 쫓는 사냥꾼이라고 생각하겠지.

우스운 얘기다.

천무백은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하남, 섬서, 중경, 호북…….”

그가 지나온 행보. 하나 같이 핏물로 점철됐다.

“그리고 여기 절강.”

모조리 없앤다.

혈귀곡의 마인들은 전부.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일망타진(一網打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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