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185화 (185/318)

<검신재생 185화>

185. 자, 이제 개판을 만들어 보자.

유검제의 분노에 찬 추적이 시작된 이래.

종리홍은 지금과 같은 위협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목전까지 도달했습니다!”

“우측은 막혔습니다!”

“빙 돌아가는 지름길 역시 막혔습니다!”

태을검객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연신 상황을 전달했다.

천하의 종리홍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급보에 낯빛이 새하얘졌다.

“이쪽 길로 가면 금방 따라잡힌다. 다른 길을 찾아!”

이전까지도 추적은 매서웠다. 아무리 흔적을 지우고 은밀하게 움직여도, 끝까지 따라붙었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다.

거의 하루에서 이틀 간격의 거리가 유지됐으니까.

종리홍 같은 절대고수에게 그만한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종리홍은 상황을 지켜보며 낙관했다.

한데 어제부로 일이 급변했다.

“이쪽으로 가면 금방 덜미를 잡힐 겁니다. 산을 벗어나야 합니다.”

“다행히도 저들은 안휘로 가는 걸 추측 못 하는 듯합니다. 다만 계속 안휘성으로 향하다간 경로가 겹칠 우려가 있으니, 산에서 내려가야 합니다.”

태을검객이 연신 충언을 올렸다.

종리홍은 미비하게 찌푸려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급박했다.

추적대가 순식간에 턱 끝까지 도달했다.

“어마어마한 놈이 붙었다.”

종리홍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이전의 추적자도 꽤 훌륭했지만, 지금 붙은 추적자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종리홍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고 일부러 거짓 흔적을 남겨 혼동을 줘도, 기가 막히게 쫓아왔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잡힐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엄습하는 건 당연지사.

종리홍은 결국 태을검객들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산을 내려가 강을 타고 움직인다.”

“장강 말씀입니까?”

“그래.”

“하지만…… 강 위에서는 어떻게 피할 수도 없습니다.”

맞다.

장강을 통해 절강성을 빠져나가는 것만큼 빠른 길은 없다.

빠른 만큼 배를 타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번 발각되면 길을 바꿀 수도 없다는 점. 물길은 결국 하나로 합쳐지고 흐르지 않는가.

그러나 이제는 별 도리가 없다.

모든 길이 막혔다.

남은 경로가 장강을 이용하는 것밖에 없었다.

“실로 악독하고 치밀한 추적자로구나. 내 얼굴을 한번 보고, 우리 종남에 고용하고 싶을 정도야! 이런 놈이 있다면 성물을 추적하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오죽하면 종리홍이 답답함을 그리 표출하겠는가.

“가자.”

종리홍은 결단을 내렸고 곧장 움직였다.

하나 산에서 내려가면서도 종리홍의 마음에 슬그머니 불길함이 떠올랐다.

무언가 이상했다. 절대고수의 직감이 머릿속을 푹푹 찌르는 느낌이었다.

‘어째…… 마치 이쪽 길로 가게 유도하는 기분이다.’

마치 장강을 이용하길 원하는 것처럼.

이쪽 길을 강요하는 것처럼.

‘어째서 이쪽길은 열어놓는 거지?’

적들의 추적은 실로 교묘했다. 어느쪽으로 빠져도, 길이 통하고 겹쳤다. 어떤 길로 향해도 빠른 시간에 잡힐 수밖에 없는 길로 추적을 행했다.

한데 딱 하나.

장강으로 향하는 길만큼은 열려 있었다.

‘이만한 추적자가 장강을 생각 못 한다고?’

이상했다.

‘마치 잡을 수 있는데, 일부러 잡지 않고 놓아주는 것처럼.’

그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종리홍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입안이 씁쓸했다.

‘나도 많이 지쳤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상식적으로 딸아이를 납치한 납치범을 추적하는데, 일부러 놓아주고 길을 유인할 수가 있겠는가.

“할아부지, 우리 어디 가요?”

그때, 태을검객 품에서 깨어난 아이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자신이 납치당했다는 사실도 모르는지, 여전히 아이는 종리홍을 잘 따랐다.

어쩌면 종리홍 안에 있는 미약한 선기. 그것에 친밀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종리홍은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죄책감을 억지로 참아 내며 간신히 웃어 보였다.

“아해야. 배를 탈 것이다.”

“배요? 우아! 나 배 처음 타바여!”

“그래, 그래. 배를 타고, 할아버지 집에 가서 건강하게 치료하고, 아버지한테 돌아가자꾸자.”

그나마 종리홍이 할 수 있는 건, 여아의 선기를 빼내어 건강이 회복시키고 돌려보내는 것.

종리홍은 그리 자신을 다독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정말로 장강을 타고 절강을 빠져나가려는 건가.”

끝내 흔적이 산 밑으로, 장강의 지류로 향했음을 확인한 유검제가 뜻 모를 탄식을 터뜨렸다.

탄식에 담긴 건 묘한 감탄이었고, 감탄의 대상은 다름 아닌 천무백이었다.

사실 유검제는 여기까지 오면서도 긴가민가한 면이 있었다.

‘그 무사는 훌륭한 추적가였다. 실제로 여기까지 훌륭하게 이끌어 왔으니까.’

다만 잡힐 듯 안 잡힐 듯,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답답하긴 했다.

하나 그건 무사의 추적술이 잘못된 게 아니라, 악적들의 도주가 뛰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유검제는 무사 대신 천무백을 믿고 신뢰했어도, 혹여나 무사의 말이 맞다면? 안휘성 방향이 맞다면?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결과를 보라.

“과연 공자의 예상대로 장강으로 향했군.”

유검제의 말에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천무백에게 쏠렸다.

모두 하나같이 감탄한 기색이었다.

그들 역시 두 눈으로 확인했다. 악적들이 장강을 통해 배를 타고 빠져나갔다는 흔적을.

아무래도 반나절 거리. 급히 배를 구해 노를 열심히 저으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천무백은 담담함을 유지했다. 저들이 장강으로 갈 건 당연히 알았다.

‘내가 그리 유도했으니까.’

모든 길을 다 막고, 장강으로 가는 길만 열어놨는데 안 가고 배기겠는가.

그런 속내도 모르고 유검제는 고마운 얼굴로 천무백의 어깨를 꽉 잡았다.

“고맙네, 공자. 덕택에 여기까지 쫓아올 수 있었네.”

“아닙니다. 아직 완전히 잡은 것도 아니니, 축배를 들기에는 이릅니다. 놈들을 완전히 잡고, 따님을 구출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무려 유검제다. 절강성에서 검후 다음으로 가장 명성 높고 인망 깊은 사내다.

그런 인물에게 직접 치하를 받고, 감사를 받았다.

완숙한 장년의 무인도 감격할 따름인데, 고작 스무 살 안팎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은 담담했다.

오히려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모습에 좌중은 감탄했다.

유검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맞네. 악적을 잡고 딸아이를 찾을 때까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지. 배가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추격하세.”

“저는 다른 길을 더 찾아보겠습니다.”

“다른 길?”

“어차피 배 위에서 제 장기를 자랑하지 못합니다. 물 위에서 흔적을 발견하는 건, 오랫동안 강에서 살아온 수부들이나 가능한 일이지요. 더구나 배는 작고 구할 수 있는 척수도 적으니, 가장 정예한 실력의 무인들만 타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더구나 다소 저와 갈등을 빚었지만, 그 무사는 훌륭한 추적가였습니다. 그 사람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안휘로 갔을 경로를 잡았을지도 모르니, 저는 만약의 때를 대비해 그쪽을 면밀히 추적해 보겠습니다.”

천무백의 단호한 말에 유검제가 품은 호의는 더욱 커졌다.

분명 본인에게 악적들과 같은 편이라니, 온갖 누명을 씌우며 비난하던 작자가 아닌가.

한데 실력도 인정하며, 그자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면서 체면을 살려 주다니. 또 만약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는 치밀함까지.

유검제는 도대체 이 어린 무사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다.

“공자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딱히 별호도 없습니다. 그저 혁 씨 성을 쓰는 아무개입니다.”

“허어…….”

무언가 제 정체를 밝히기 꺼리는 모습에 유검제는 탄식을 흘렸다.

한번 좋게 보여서일까.

의심은커녕 오히려 감탄이 들었다. 이만한 성과를 올렸으면 제 이름을 뽐낼 뻔한데, 오히려 이름을 숨기다니.

“저 혼자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이 모든 건 도의를 따라 추적을 개시한 수많은 협객분 덕이지요. 제 이름이 하등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

“고맙소, 혁 공.”

“혁 공, 이번 일이 끝나고 유성문을 한번 방문해 주시오.”

“아니, 우리 한기검파에도 방문해 주시오. 섭섭지 않게 대우해 드리겠소.”

“혹여 적을 둔 사문이 없다면 우리 문파에…….”

선발대에 든 무공 실력, 젊은 나이, 웬만한 무인들보다 더 뛰어난 추적술과 노련함, 거기에 겸양과 진중한 모습.

좌중엔 절강성의 유력한 문파의 수장들이나 고위 인사들이 많았고, 그들은 하나같이 천무백을 탐냈다.

“고맙네. 혁 공자. 그러면 꼭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리 산장을 방문해 주게.”

“알겠습니다, 장주님.”

일단 이야기를 일단락한 유검제는 상기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될 수 있는 대로 배란 모든 배는 확보해라!”

무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때였다.

“검후께서 오셨습니다!”

“드디어!”

유검제가 주먹을 꽉 쥐었다.

보타문의 검후.

천하십대고수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전대의 고수.

그녀가 왔으니 이제 악적들을 사로잡아 죗값을 치르게 하는 건 시간문제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그래, 검후에게 혁공자를 소개해 줘야겠구나.’

보아하니 명예욕도, 재물욕도 없어 보이는 사내.

차라리 자신이 보답해 줄 수 있는 건, 검후에게 소개해 줘서 인연을 트는 것.

무려 천하십대고수와 안면을 트는 것이니 이만한 보상이 또 있을까.

그는 급히 천무백을 찾았다. 한데 보이지 않았다.

“혁 공자는 어딜 갔느냐?”

용성악이 다가와 대답했다.

“배를 찾으러 다니는 사이 떠났습니다. 아마 따로 추적을 더 하겠다는 의미 같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부지런하구나!”

유검제는 강호에 참으로 오랜만에 협객이 나왔다며 그저 감탄을 거듭했다.

물론, 곧 이어질 상황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해서 오는 감탄이었다.

* * *

홀연히 군중들 사이를 빠져나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들 배를 구하는 데 혈안이 된 상황이었으니까.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자, 천무백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강변 구석, 나무가 드리워진 부분에 숨어있던 조각배가 서서히 기어 나왔다.

놀랍게도 조각배에는 능허가 타 있었다.

“한가하게 뱃놀이나 즐기고 있었니? 주군은 뼈빠지게 일하고 있었는데?”

능허가 입을 쩍 벌리며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울컥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뱃놀이요? 제 속 뒤집어 죽일 작정이십니까? 안 그래도 뒈질 뻔했습니다. 몇 놈은 저한테 화살도 쏘고 칼도 날렸다니까요?”

“그래도 잘 도망치대? 종리홍인 척 도주하느라 고생 많았다.”

“이야. 내가 고생은 하긴 했나 보오. 주군께서 격려까지 해 주시다니.”

“잘 도망은 치더라. 흑회에서 녹림도랑 친하게 지내더니 그새 산 타는 법도 잘 배웠구나.”

“자, 시킨 대로 배도 준비해 놨습니다. 근데 왜 일을 이렇게 귀찮게 하십니까? 솔직히 마음먹으면 산에서 추적 끝내고 잡을 수 있었잖아요?”

능허의 반문에 천무백은 그저 웃었다.

“왜 굳이 강으로 유인한 건지…….”

능허는 천무백이 시키는 일이니 당연히 따랐지만, 의문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추적대가 발견한 악적은 다름 아닌 능허였고, 천무백이 발견했고 무사가 인위적인 흔적 같다고 한 흔적도 능허가 남긴 흔적이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조작이었다. 천무백은 능허의 말대로 일부러 장강으로 유도한 것이다.

“거기서 잡아봤자 골치 아프다. 유검제나 그 휘하의 무사들이나, 거기에 좀 있으면 검후가 온다는데. 내가 뭘 어찌하겠냐.”

“그럼 장강에서는요?”

“복잡한 판이다. 흑회에 혈귀곡에 종남에, 절강무림에, 그리고 검후까지.”

그야말로 면면을 들여다봐도 기가 막힐 정도로 복잡한 판이다.

여기서 천무백은 얻어야 할 것은 뚜렷했다. 문제는 모든 이가 똑같은 걸 얻으려고 한다. 모두가 경쟁자요, 적이다.

그러니 이 복잡한 판에서 천무백은 모든 방해물을 이겨 내고 승리해야 한다.

모든 이를 다 쓰러뜨려서? 무림공적이 되려는 미친놈이 아닌 한 불가능이다.

“복잡한 판이면 하나씩 풀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게 정론이긴 하다만…… 귀찮잖아?”

능허가 입을 꾹 다물었다.

참, 나이도 어린 게 별것이 다 귀찮구나.

“품에 신호탄 있지? 쏴.”

능허는 이해하기 어려운 얼굴로 시킨 대로 신호탄을 쐈다.

하늘 높이 폭죽이 터졌다.

“귀찮아도 복잡한 걸 풀어야 판에서 돈을 따죠.”

“아니.”

천무백은 능허의 말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장강 너머.

불쑥 새하얀 돛대가 솟구쳤다.

“복잡한 판은…….”

하나둘, 등장하는 돛대. 그리고 펄럭이는 깃발.

흑회 회주(會主).

장강수로총채주 하왕(河王) 왕전유.

“차라리 아무도 못 먹는 판으로 만들면 내가 먹을 확률이 높아지거든.”

그런 판을 뭐라고 하더라……?

천무백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자, 개판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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