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151화 (151/318)

<검신재생 151화>

151. 산장차사(山莊差使)

무당을 습격했던 마인들이 빠른 속도로 포천산장으로 향했다.

실컷 무당 무인들의 머리를 터뜨리고 있던 도중에 떨어진 복귀 명령.

평범한 무인으로 분해 살아 온 게 몇 년이던가.

물론 와중에 피를 안 묻힐 리는 없겠다만, 본질은 마인이다.

부수고, 짓밟고 피를 머금어야 만족하는 타고난 성정.

그 성정을 무당에서 아낌없이 풀어놓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복귀 명령이 달가울 리가 없다.

“어떤 개자식인지는 몰라도, 뼈를 발라 주마.”

“산장을 공격했다고 하는 거 보니, 그간 세력 구축하면서 멸문시킨 놈들 아니겠소? 가령 탈혼방이라던지.”

“지금 산장에 머무르고 있는 어르신이 누군데, 탈혼방 애들은 거의 다 죽었잖아? 어마어마한 숫자가 왔거나, 아니면 진짜 강한 몇 놈이 온 게 분명해.”

적이 범상치 않다는 건 공통된 생각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얼굴엔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단 조금도 없었다. 도리어 흉포함과 흥분, 기대감이 겹쳐 떠올랐다.

열기가 식지 않는다. 방금까지 무당에서 맛 본 뜨거운 선혈이 코끝을 찌른다.

“우리 숫자가 부족하진 않겠죠?”

본래 4개 조의 무사대면 15인씩 60인이다.

무당에서의 싸움이 제법 치열했는지라 인원이 절반으로 쭉 줄어들었다.

여기서 가장 최고참인 1조장이 코웃음을 터뜨렸다.

“좋지 않으냐! 우리가 머릴 깨뜨릴 몫이 더 늘어났으니까.”

그리 호쾌하게 웃은 1조장은 이내 포천산장에 가까워지면서 코끝을 찌르는 혈향에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싸움이 있으니 혈향은 당연히 날 터.

문제는 소리였다.

‘아무 소리도 없다.’

소리뿐 아니라 기척 역시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도 산장에선 이십여 명은 되는 인원이 남아 있을 터.

한데 기척 하나 없고,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싸움이 이미 끝났다는 얘기다.

1조장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이내 정문 앞에 도착한 그들은, 정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헛숨을 들이켰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숱한 시신들이 망막에 가득 맺힌다.

“……다 죽었다고?”

“우리가 무당에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반나절 만에 다 죽었다고?”

“오성, 오성님은 어디에 계시나!”

당황스러운 음성이 산장에 가득 차는 가운데.

차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이 노인네 찾나?”

쿵!

그들의 발치 앞에 떨어진 시신 한 구.

부릅떠진 얼굴을 확인한 일조장이 표정을 굳히며 본능적으로 검을 뽑았다.

시신을 던진 뒤 천천히 걸어 나오는 천무백의 모습에 일조장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오성.

혈귀곡의 다섯 절대자이자, 수뇌부.

물론 그중 가장 말단인 비량이지만, 여기 모든 이의 힘을 합쳐도 터럭 하나 건드리기 힘든 절대고수다.

그런 비량이 싸늘한 시신이 됐다.

격렬한 위기감이 머릿속에서 경종을 울렸다.

‘저놈이 오성을 죽였다고?’

‘비단 오성뿐인가? 여기 산장에 남은 모든 무인을……?’

몇몇은 의혹을 품었다.

저 어린 녀석이, 그저 새하얗게 생긴 귀공자놈이, 비량을 죽였다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저 나이에 입신지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고?

“이건…… 독 같습니다!”

시신들을 살피던 수하가 소리쳤다.

“독!”

“과연, 독을 썼구나!”

독이란 말에 마인들은 반색했다.

“여기 쓰러진 시신들은 모두 똑같은 사인입니다! 다 독으로 당했습니다!”

마인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검을 겨눴다.

천무백의 미간이 순간 미미하게 구겨졌다.

무려 서른 명의 마인.

최소 일류 이상만 모인 고수들이며, 흉포한 마성을 거침없이 터뜨리고 있으니, 웬만한 무인도 간담이 서늘하리라.

천무백의 얼굴이 굳자 마인들은 핏물로 빨갛게 변한 이를 드러냈다. 마치 웃음이 번지는 듯했다.

하나 그 순간에도, 일조장만큼은 긴장감으로 목울대가 출렁였다.

‘다른 시신들은 독에 당했지만, 여기 오성님만큼은 검에 당했다.’

여지없이 검에 당한 상처.

그 상처를 본 순간, 일조장은 직감했다.

‘오성님보단 강하다. 부정하지 못한다.’

다른 무인이 독에 당한 것도 더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이만한 무인들이 부지불식간에 당했다는 건, 그만큼 독을 다루는 솜씨도 섬세하다는 얘기. 그만큼 무위도 상당할 터.

‘검이나 독, 어느 것 하나도 상대할 수 없는 존재.’

일조장은 파르르 떨리는 눈꼬리를 애써 감추며 천무백을 노려봤다.

그러다 문득 제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도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천무백은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듯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으니까.

얼핏 보면 당황한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마인들의 기세에 위축된 모습처럼.

하나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천무백의 입이 열리는 순간, 목이 빳빳하게 굳었다.

“뭐야, 이게 다야? 너무 적은데?”

“……!”

천무백의 날카로운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시선이 닿을 때마다 칼로 살을 저미는 듯한 고통이 드는 착각이 들어 몸이 절로 흠칫했다.

“무당에 간 놈들 다 온 줄 알았건만. 그 우스꽝스럽게 도사인 척하던 말코 놈은 안 왔네.”

흐음. 그놈은 적어도 비량만큼은 하는 놈이던데.

“뭐, 그래도 잘 잡겠지. 무당인데. 정 늦지 않게 가면 되겠지.”

그리 중얼거린 천무백은 검을 서서히 마인들을 향해 겨눴다.

검 끝에 햇빛이 반사되는 순간, 마인들이 동시에 움찔했다.

“자. 빨리 끝내자. 너희 말고도 올 손님들이 아주 많다.”

마치 산책하러 가자는 듯, 나른한 목소리였다.

* * *

포천산장에서 가까운 청린(靑隣)표국에 전서구가 도착한 뒤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계획됐던 표행이 모두 중지되고, 경호 업무를 맡은 표사들도 표국에 복귀했다.

하나같이 제각기 병장기를 정비하는 모습에선, 일개 표사로 보기엔 어려운 흉흉한 기운이 가득했다.

표국주 임척도는 서찰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천룡검협이 포천산장을 기습했으니, 급하게 지원을 요청한다고?”

부국주와 총관, 총표두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름 아닌 천룡검협이 습격했다면 이미 포천산장의 정체가 드러난 건 분명하다.

어떻게 알았느냐도 의문이지만, 그건 그렇다 치자.

“천룡검협이 무서워서 우리한테 지원을 요청한다고? 왜?”

포천산장은 호북성 내 혈귀곡의 암중조직 중 가장 강력한 조직.

“산장엔 오성 어르신도 계시고, 육성 어르신도 가까운 무당에 계시지 않은가?”

“…….”

“두 분 다 자리를 동시에 비웠을 리는 없고. 비우더라도 곧장 연락해 부를 텐데…….”

임척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곳에서 대대적으로 움직인 정파 무인들이 있나?”

“제갈세가는 조용합니다.”

“얼마 전 소림의 나한각주가 팔십명의 나한승을 이끌고 무당으로 향했습니다.”

“나한승? 그런가. 하긴 나한승들이라면…… 그래도 오성 어르신이 계시니, 큰 위험은 아닐 것 같은데.”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본래 포천산장의 장 총관은 세심하고도 집요한 성격이다. 이런 서찰을 보낼 때는 얼마나 위급한지, 적이 얼만지,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했으리라.

‘필체는 맞는데.’

필체는 장 총관의 것이다. 하나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자세히 쓸 시간도 없을 정도로 위급하다는 것인가?”

오성이나 육성이란 입신지경의 절대자가 두 명이나 있는 곳이다.

천룡검협이 대단한 명성을 떨치며 혈귀곡에서도 그가 입신지경에 가까운 고수라는 걸 파악했다.

그래도 입신지경과 입신지경에 가까운 경지는 완전히 다른 수준이 아닌가.

그러니 임척도로서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제가 삼 할의 병력을 이끌고 곧장 가 보겠습니다. 경공으로 한 시진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총표두가 직접 가겠다면 적잖이 안심되겠군.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연락을 주게.”

“알겠습니다.”

이미 오래전 절정의 경지에 올랐고, 암종 출신 중에서도 검 하나는 잘 쓰는 축에 속하는 마인이니 믿고 맡길 만했다.

임척도가 승낙하자, 총표두는 곧장 3할의 표사들을 데리고 움직였다.

반나절이 지났다.

“…….”

“이쯤 되면 연락이 와야 하지 않는가?”

임척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예들만 추려서 움직였고, 가벼운 무장이기에 경공을 사용하며 갔을 것이다.

한 시진이면 도착했을 테니, 적어도 전서구를 통해 연락을 알렸어야 했다.

전령을 보냈어도 두세 번은 오갔을 시간이 아닌가.

“이리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오 할을 이끌고 가겠습니다.”

“음!”

부국주가 그리 말하며 일어났다.

서로 다른 종단인 혈종 출신의 부국주지만, 그 실력만큼은 진짜배기다.

임척도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고수에, 혈종 출신답게 기민한 상황판단과 계략에 능한 이.

임척도는 5할이나 데리고 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2할이라도 남겨두는 게 다행이다. 혹시나 이 틈에 여기 표국도 습격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녀와 주시오, 부국주.”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전서구를 보내겠습니다. 전서구가 중간에 떨어진 것일수도 있으니, 전령도 보내겠습니다.”

“부탁드리오.”

표국의 8할에 이르는 병력. 부국주와 총표두와 같은 두 명의 절정무인.

이쯤이면 제갈세가나 무당이 아닌 이상, 호북성에서 웬만한 문파 하나를 가볍게 찍어 누를 수 있는 무력이다.

충분히 안심해도 된다.

임척도는 가슴 한쪽에서 살랑거리는 불안함을 애써 억눌렀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아침이 밝았을 때.

아무런 연락이 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 일이 뭔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였다.

“임국주! 임국주!”

임척도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장년 사내를 보고 표정을 굳혔다.

여기서는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는, 호북성에서도 남쪽에 치우친 요성의방의 방주였다.

물론 겉만 의방이지, 거기도 혈귀곡의 위장세력이다.

“적방주, 여기까지 어쩐 일이오? 그것도 의원들을 대동하곤…….”

겉은 의원이나 속은 정예무인들.

적방주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임척도는 마음에서 살랑거리던 불안함이 점점 커지는 걸 느꼈다.

“혹시 포천산장에서 지원요청이 왔소이까?”

“그걸 어찌…… 설마 요성의방에도?”

“그렇소, 한데 너무 이상한 게 있어 들렸소이다.”

“이상한 것?”

“절반의 병력을 보냈소. 한데 중간에 연락이 뚝 끊겼소. 일이 잘못 돌아가는 것 같아 내 직접 확인하러 왔소이다.”

“그쪽도…….”

“그쪽도라니? 하면…….”

적방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텅 빈 표국의 모습을 보고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깨달았다.

임척도가 굳은 얼굴로 일어났다.

“천룡검협 하나에 다 당했다니. 믿을 수 없소. 가야겠소. 어쩌면 우리가 모두 덤벼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만일 그의 불길한 예상 중 하나였던, 천무백이 비량을 죽일 정도의 무력을 소유했다면.

이렇게 일부 병력만 보내면 가는 족족 죽을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단 한 통의 연락도 없다는 것이 그 방증이 아니겠는가.

“같이 움직이시지요. 아니, 가는 길에 혹시 모르니 다른 곳도 들려서, 같이 갑시다.”

적방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건의하자, 임척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척도는 적방주와 함께, 근방의 혈귀곡 위장조직을 찾아 세력을 규합했다.

이미 많은 조직이 산장으로 병력을 보낸 건 똑같았고, 연락이 한 통도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천산장에서 심각한 모종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 깨달은 임척도는 조직을 규합해 곧장 움직였다.

그 수효가 무려 백 명이나 됐고, 각 조직에서 만약을 위해 조직에 남겨 놓은 병력인 만큼, 최정예 중의 최정예들이었다.

그만한 숫자가 모이자, 임척도는 마음속에 맴돌던 불안함이 한층 가라앉는 걸 느꼈다.

아마 천무백은 지금까지의 싸움으로 지쳐있을 터.

하면 이 병력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포천산장으로 내달린 임척도는, 정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기세등등하게 움직이던 백 명이 똑같이 압도당하는 게.

“말, 말도 안 돼…….”

정문에서부터 수많은 전각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

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언덕처럼 쌓인 수많은 시신.

그리고 그 뒤에서 피곤한 기색으로 나무 등치에 기대듯 앉아 있는 피 칠갑한 사내, 천무백.

인기척을 느낀 천무백이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입기가 비틀려 말아 올라갔다.

지독한 미소였다.

“하. 이 새끼들. 한 번에 좀 오지. 간 보냐? 왜 조금씩 와?”

핏물로 점철된 천무백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임척도는 이해했다.

산장차사(山莊差使).

산장에 가면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다. 산장에 저승차사가 있다.

눈앞의 존재가, 저승차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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