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145화 (145/318)

<검신재생 145화>

145. 이제 내 일을 해야지.

무당의 일대 제자인 유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무당의 분위기가 묘했다.

얼마 전 있었던 일대제자 유수의 장례가 끝난지 얼마 안 된 것도 있다.

하나 그걸 떠나 분위기가 이상했다.

적건회와 장로님들이 서로 견제한다는 건 눈치챘지만, 최근 그 분위기가 더 심각해진 것 같았다.

천룡검협이 무당에 들어온 직후 그랬다.

‘심지어 소림에서도 사람들이 왔단 말이야.’

한쪽 전각에 머무르고 있는 나한승들을 바라보던 유상은 다시 고개를 길게 뺐다.

‘나 같은 일대제자들이야 알 길이 없다만······. 심각한 일이 무당에서 벌어진 건 확실해.’

장로들 사이에서만 무언가 얘기가 돌고 있었다.

평소 인자한 얼굴로 가르침을 베풀던 장로들이 요즈음 심각한 얼굴인 걸 보면, 윗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부디 큰일이 아니길. 우리 무당이 언제든 도도하고, 고고하며,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를.’

그리 생각하며 수련하러 움직이려는 찰나.

쿠르르르!

별안간 귓가를 울리는 천둥소리에 우뚝 멈춰 섰다.

흡사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유상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긴······ 아까 천룡검협하고 장문인, 적건회주님이 가신 방향인데?”

이 무슨 굉음이지?

쿠쿠쿠쿠!

“응?”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데?

섬뜩한 느낌이 목덜미를 엄습했다.

쿠쿠쿠쿠쿵!

유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멀리 작은 폭포가 있다.

폭포 방향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뭐, 뭐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던 나무들이 하나, 둘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어 지반이 크게 흔들려 진동이 여기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지진인가?”

저곳엔 장문인과 진청진인이 있다. 뿐이랴. 적건회주와 부회주도 있고, 소림에서 온 손님인 무소선사도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유상이 급히 내달렸다.

비단 유상뿐 아니었다. 소리를 듣고 장로들도 빛의 속도로 튀어나갔다.

“……!”

현장에 도착한 유상은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기존에 세차게 쏟아지던 아름다운 폭포의 정경은 사라졌다.

지반이 무너져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모했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다행히도 사람들은 모두 무사해 보였다.

“다들 돌아가시오! 일대 제자들은 당장 각자 위치로 돌아가거라!”

대청진인이 엄중한 목소리로 돌아보며 소리쳤다.

무당에서 장문인의 명은 추상과도 같아서, 유상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일단은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모여든 이들의 시선이 순간 무너져 버린 지반으로 향했다.

완전히 무너진 지반. 그 위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하나의 신형.

유상뿐 아니라 경험이 훨씬 많은 장로도 입을 쩍 벌렸다.

아니, 비단 그뿐이겠는가.

무천악과 대청진인, 그리고 무소선사마저 동공이 흔들렸다.

“저 무슨······.”

그것뿐 아니었다.

고오오오오오!

거센 기운이 휘몰아쳤다.

천무백의 정수리를 중심으로 각각 색이 다른 빛이 떠올랐다.

아니, 그건 흡사······.

꽃.

“삼화취정(三花聚頂)?”

뭔가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다.

* * *

전대 장문인에게 얽힌 일은 장로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던 얘기다. 일대 제자 중에 알던 이는 소식을 전령으로 갔던 유수뿐.

“장로들은 지금 제자들을 데리고 본산으로 내려가시게. 여긴 내가 처리할 터이니.”

“알겠습니다.”

장로들이 몰려온 무당 제자들을 이끌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다 시선을 돌렸다.

찬란한 세 개의 광채가 정수리에서 번쩍이던 천무백은 어느새 태연한 얼굴로 무너진 지반 위에서 걸어 올라왔다.

그리고 그 뒤로 다행히도 현엽진인이 업혀 있었다.

갑작스레 일어나는 괴현상에서 혹여 문제가 생길까 노심초사했는데, 무사하니 다행이었다.

천무백은 한쪽에 현엽진인을 내려놓곤 혀를 쯧쯧 찼다.

“쯧쯧. 뭔 놈의 땅이 이렇게 물러? 지반이 엉망인가 봅니다. 여기에 전각이든 도관이든 건물은 올리지 마십시오.”

“······.”

세상 어느 지반이 약하다고, 땅이 무너지고 나무가 쓰러지냐.

천무백의 퉁명스러운 말에 좌중은 조용해졌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

추혼삭이 조심스레 곁에 있던 무천악에게 물었다.

“회주, 회주의 무공이 나보다 높으니 묻겠소. 방금 보였던 거, 삼화취정 아니오?”

“······삼화취정이라니.”

무천악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무(武)에 대한 갈망은 적건회 무인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이다.

그중에서도 무천악은 유난했다.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건 알았다만······ 저 나이에 입신지경이라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그랬기 때문일까.

무천악은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언뜻 드러나는 건 질투와 시기였고, 이어지는 건 호승심이었다. 동시에 의심까지 같이 싹텄다.

대답을 내놓은 건 대청진인이었다.

“삼화취정은 아닐 것이오, 부회주. 삼화취정은 정수리에 세 개의 꽃봉오리가 피어오르는 것이오. 음과 양, 그리고 상단전이 열리며 조화된 기운이 맺히는 것인데······. 광채가 번쩍였을 뿐, 꽃봉오리는 아니었소. 그리고 그 세 개의 광채 중 하나는 새하얀 선기. 오로지 여기 도력 깊은 도인들만 다룰 수 있는 선기였소.”

“······도인들이 선도를 닦아 우화등선하실 때, 선기가 삼화취정처럼 나타나기도 합니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오.”

사실 좌중에 있는 그 누구도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천무백에게 일어난 기현상은 흡사 우화등선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눈이오.”

무소선사의 묵직한 말에 중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맑다 못해 정광이 흐르는 눈.

‘저기서 더 깨달음을 얻었다고?’

무인에게 있어 깨달음은 새로운 벽을 넘는 것.

이미 지금까지의 경지만 봐도 천하백대고수는 충분하고, 미래를 생각해 보면 천하제일인이 될 확률이 높은 젊은 협객.

그자가 지금 깨달음을 얻었단 말인가?

‘그러면 얼마나 더 강해졌단 뜻인가.’

무천악의 눈이 질투가 섞인 불길로 타올랐다.

하나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걸 알면서도, 천무백은 제 몸을 관조하느라 바빴다.

“진짜, 우화등선하는 줄 알았네.”

천무백은 제 몸을 관조했다.

‘비단 이로운 것도 과하면 독이 된다더니.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니까.’

본래 악인봉행진은 대상이 내공을 사용하면, 그 내공을 강제로 증폭시켜 폭주하게 만드는 진법이다.

골조를 같이하는 지금의 진법도 마찬가지다. 진법 안의 기운이 내공이 아니라 선기로 바뀌었을 뿐.

하나 내공과 달리 ‘증폭’시킨다는 개념이 달랐다.

대상의 내공을 증폭시킨다는 건, 말이 그러할 뿐. 대상의 단전과 전신에 뻗어 숨어 있는 잠재된 모든 진기를 강제로 끌어내게 하여 증폭되는 것처럼 보이게 할 뿐이다.

반면 선기는 증폭시킬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하여 천무백은 생각을 달리했다.

증폭시키기보단, 흩어지지 않게 모이게 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흩어지는 선기를 진법안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하나 천무백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

‘내가 외우면서 발현되던 선근경의 선기는 극히 일부였어.’

본래 악인봉행진이 사람의 몸에 잠재된 진기까지 싹 다 충동질하여 폭주시키는 것처럼.

선근경에도 천무백이 미처 끌어내지 못했던 선기가 훨씬 많았다. 진법 밖에서 외웠을 땐, 천무백이 밀어 넣는 선기만이 들어가는 것에 그친다.

진법 안에 들어가 외우니, 선근경의 구절에 숨겨진, 천무백이 미처 끌어내지 못했던 모든 선기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괜히 성물이 아니구나.’

천무백은 혀를 내둘렀다.

일이 잘되어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선기가 해로운 건 아니어도, 선근경이 가진 선기는 사람의 육체가 버텨낼 수 없는 미증유(未曾有)의 것.

온몸이 먼지가 되어 버릴 듯한 강력한 압박에 천무백은 수를 썼다.

몰아치는 선기를 반석 위에 있던 현엽진인에게 떠넘겼다.

‘새옹지마라더니. 이게 이렇게 됐구나.’

천무백은 천천히 몸의 변화를 관조했다.

몰아치던 선기는 천무백의 전신에 파고들었다. 피부에 난 모공, 숨구멍,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땀구멍까지.

그렇게 파고들어 상단전에 가득 차 경천혼공과 어울렸고, 하단전에 들어가 극음지기와도 어울렀다. 그런데도 선기는 넘쳐났고, 끝내 지금까지 빈 곳이었던 중단전까지 파고들어 심장을 노렸다.

다행히도 그때 일이 틀어지는 걸 직감한 제갈설아가 진법을 빠르게 해체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중단전은 상단전만큼 위험한 곳이다. 심장을 외부의 기운이 자극하면,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한데 새옹지마라더니.

천무백은 제 몸에서 일어난 변화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상단전의 경천혼공,

하단전의 극음지기.

그리고 그 가운데.

중단전에서 이전보다 뚜렷하고 부드러운 기운. 선기가 ‘日’모양의 띠처럼 형성됐다. 선기의 띠는 상단전의 경천혼공과, 하단전의 극음지기를 이었다.

사람들이 삼화취정으로 생각했던 삼색의 빛은 바로 세 가지 기운이었다.

경천혼공, 극음지기, 그리고 선기.

그 세 개가 이어지는 순간 삼화취정처럼 외부로 발현됐다.

‘이런 걸 경지로 표현할 수 있는가?’

무공의 경지로 표현할 수 없는 지금의 상태.

그렇다고 경지가 상승한 건 아니다.

중단전에 생긴 선기의 띠로 인해, 상단전과 하단전이 하나로 이어졌다.

즉슨.

‘어렵지만 왼손엔 극음지기를, 오른손에 경천혼공을 동시에 다룰 수 있다는 거지.’

아직은 띠가 얇고 큰 힘은 동시에 쓰지 못한다.

하나 전혀 궤를 달리하는 두 내공을 동시에 쓴다는 건.

적어도 천무백이 알기론 강호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니 천무백은 경지를 또 한 번 넘은 셈이다.

천무백은 내심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대청진인이 다가왔다.

“일은 끝났습니다.”

“······끝났다?”

“난 할 만큼 했습니다.”

천무백의 말에 대청진인은 떨리는 눈동자로 바위에 기댄 현엽진인을 봤다.

머리가 새하얗다 못해 하나씩 우수수 빠지고, 단단했던 치아가 듬성듬성 빠졌다. 광택이 돌던 피부는 축 늘어지며 빛을 잃었다.

급격한 노화.

아니, 그건 죽어 가는 것.

“비다라에서 치유되는 건, 곧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니,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선기를 현엽진인에게 떠넘겼다.

그 기운은 비다라의 비술을 단번에 무로 되돌릴 정도로 위력적이다.

비다라는 치유됐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이기에, 결국 죽음으로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현엽진인의 눈이 힘겹게 떠졌다.

“······청아.”

“스승님!”

좌중이 모두 황급히 현엽진인에게 향하는 사이.

제갈설아만이 천무백에게 다가왔다.

근심 가득한 얼굴.

“괜찮아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눈망울을 본 천무백은 오히려 미소를 지어 줬다.

“때맞춰 진법을 멈춰 줘서 고맙소. 덕택에 목숨 부지했소.”

퍽!

“······?”

가슴팍에서 전해져 오는 조그마한 감촉에 천무백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갈설아가 작은 주먹으로, 탓이라도 하는 것처럼 때린 것이다.

“다음에 이상한 짓 하면, 얼굴 때릴 거예요.”

“알겠소. 사과드리리다. 소저가 여차하면 도와줄 거라 믿었기에 행한 일이었소.”

“······뭐, 하, 하여튼 끝난 건가요?”

제갈설아는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돌렸다. 막 깨어난 현청진인. 그에게 몰리는 사람들.

어쨌건 현청진인이 잠깐이라도 의식을 차렸으니, 흉수가 누군지는 곧 밝혀질 터.

애당초 천무백이 무당에 온 것도 현청진인의 치료였으니, 의뢰는 완수한 셈이다.

긴 일이 결국 잘 해결됐단 생각에 제갈설아의 얼굴에 후련함이 떠오르려는 찰나.

천무백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아니, 이제 내 일을 해야지.”

천무백이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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