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신재생 103화>
103. 비술(祕術) 비다라(毘陀羅)
“죽었다 살아나서 하는 짓이 고작 수적질인가?”
당준파는 침묵했다.
겉으로 보기엔 이전 같은 어색한 표정 변화도 없다. 냉막하다 못해 깊게 가라앉은 얼굴이다. 하나 천무백은 당준파의 속내가 거칠게 휘몰아치는 걸 느꼈다.
“내가 죽은 이로 보이는가?”
“살아 있기야 하지. 다시 살아난 거니까. 하지만 죽었던 것도 맞잖아?”
“많은 걸 알고 있군. 너, 이름이 뭐냐.”
“하나씩 문답을 나눠 볼까?”
“따라오게.”
수적들이 분분히 뒤로 물러섰다. 당준파의 손짓 하나에 길이 열리는 광경. 수룡채에서의 당준파의 권위가 확실한 모습이었다.
그러자 채가령은 알 듯 모를 듯 복잡한 얼굴이었다.
“스승님은 인자하신 분이셨어요. 권위적이지도 않으셨고. 저 모습은 대체…….”
“네가 알던 스승은 죽고 다시 살아나면서 사라졌을 거다.”
“그게 비유가 아니에요?”
“비유가 아니라 진짜다.”
확신에 찬 어조였다. 비유로 여겼던 채가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다니.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 강호에서 그런 게 없지 않아 있다. 가령 모산파의 강시라거나.
“강시는 아니다.”
천무백이 말했다.
“그럼 뭐죠?”
“비다라(毘陀羅)”
“비다라요?”
난생처음 듣는 단어다. 채가령은 고개를 들어 천무백을 쳐다봤다.
천무백이 답하기도 전에 당준파는 원하는 장소에 온 듯 걸음을 멈췄다.
“조용하군.”
“처음 억류당했을 때, 이곳이 그나마 내 심신을 편안케 해준 곳이지.”
당준파가 담담하게 말했다. 바위 절벽 아래 나무로 지어진 조잡한 집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 들어선 뒤 당준파는 말했다.
“문답하지. 자네는 누구인가?”
“천무백이다. 너는 활력의 당준파가 맞는가?”
“맞았었다.”
과거형이다.
“지금은?”
“아니, 물음은 내 차례다. 여긴 왜 왔는가?”
“가령이가 스승 얼굴 보고 싶다고 해서.”
표정 변화가 없다. 천무백은 확신했다. 아꼈던 오랜 제자와의 해우. 한데 당준파는 얼굴을 마주하고도 반가운 기색이나 그간 사정에 관해 묻지도 않고 있다.
오로지 천무백에 대한 관심만이 가득하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응당 이런 반응이 나올 수가 없다. 채가령도 그걸 느꼈는지 침묵했다.
“자. 묻겠어. 수룡채에게 납치당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떻게 된 거지?”
“납치당했었지. 지금은 보는 대로 채주가 되었고…….”
당준파는 그리 말하며 탁자에 손을 올렸다. 천무백의 눈이 반짝였다. 손을 올리는 동작이 어색했다. 그리 느끼자마자 천무백이 강하게 발을 굴렀다.
바닥에서 끼긱하는 소리와 함께 올라오던 날카로운 창살이 천무백의 발길질에 그대로 박살 났다.
살벌한 기관진식이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창살이라니.
천무백은 피식 웃으며 당준파를 바라봤다.
“사람 살리는 의원이 수적이랑 붙어먹더니 흑도가 다 됐군.”
당준파는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손을 휘저었다.
드득, 드드득.
벽이 쩍 갈라지며 수십 개의 암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단순한 암기가 아니다. 마치 뭐가 묻은 듯 반짝였다.
독이 묻어 있다.
천무백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이젠 한가락 남은 의심마저 털어냈다. 비다라는 문헌으로만 봤기에 완전히 확신하진 못했다. 하나 제자였던 채가령이 있는데도 기관진식을 작동시키는 걸 보니, 문헌 그대로였다. 비다라가 되기 전 인연은 기억하나 감정은 사라진다.
까가강, 까가가강!
어느새 천무백의 검이 춤을 췄다. 퉁겨낸 암기가 오히려 당준파에게 향했다. 당준파가 흠칫 놀라며 장포를 펼쳤다.
까가강!
“그거 꽤 좋은 거구나.”
천무백이 눈을 빛냈다. 퉁겨내면서 내공을 담은 암기다. 그것들로도 저 장포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꽤 대단한 신병이기다.
한차례 암기를 막아낸 당준파가 다시 한번 손짓했다.
이번에는 창살이 올라오지 않은 지점, 천무백이 채가령을 데리고 서 있던 곳이 푹 꺼졌다.
깊은 구덩이가 쩍 벌려졌다. 함정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당준파는 장포를 거둬들이며 동시에 온갖 암기를 쏟아 냈다. 한때 의원이었단 걸 증명하듯 수십 개의 장침이 번쩍였다.
천무백은 허공으로 붕 뜨며 검을 휘둘렀다. 한쪽엔 채가령을 끼느라 반격은 하지 못했다. 우선은 막기에 집중했다. 날아오던 장침들이 우수수 바닥에 쏟아졌다.
‘거, 귀찮게 하는구나.’
하여간, 이래서 암기나 독 쓰는 놈들 상대하기 껄끄럽단 말이지.
순순히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도 뻔했다. 기관진식을 작동하기 위해서다.
역시 강호에서 조심해야 할 건 늙은 생강이다.
천무백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온갖 기관진식이 작동하며 괴롭혔다.
하나 천무백은 하나씩 막아내면서도 상황을 타개할 방책을 모색했다.
흘깃 채가령을 바라봤다. 쏟아지는 암기와 날붙이에 질린 얼굴이었다. 제자인 자신을 알아본 상황에서도 이런 짓이라니.
천무백이 조금은 냉정하게 말했다.
“이젠 알겠느냐. 네가 알던 스승이 아니다.”
“대체 왜?”
“이제 알아봐야지. 누가 저리 만들었는지.”
천무백은 덤덤했다. 쏟아지는 기관진식 안이라고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침착함.
‘왼쪽이 열리고 암기가 날라 오고, 바닥에서 창살과 송곳이 올라오고, 여길 밟으면 이쪽이 열리고, 저쪽을 때리면 반대편에서 기관진식이 작동하고…….’
이리 말하며 노인네 같다만, 세상은 참으로 불규칙한 엉망진창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미묘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규칙들은 모든 만물에 적용된다. 지금도 그렇다. 천무백의 눈이 번쩍였다. 숱하게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공격 속에서 규칙을 찾았다.
‘생문(生門)은 여기다.’
어느 기관진식이나 생문은 존재한다. 그렇지 않다면 작동하는 이도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으니까. 설계도를 얻지 못하는 한 생문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천무백은 미묘한 규칙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생문을 찾았다.
간단했다. 당준파가 밟고 있는 곳을 자세히 살피니 그쪽에 답이 있었다. 쏟아진 암기를 쳐 낸 뒤 천무백은 벼락처럼 움직였다.
“이놈!”
당준파가 장포를 펄럭였다. 그 안에 숨겨 있던 날카로운 비도가 쭉 뻗어왔다. 천무백은 당황하지 않고 가볍게 쳐 냈다. 동시에 왼손을 뻗어 장포를 후려쳤다.
깡!
“무슨…….”
천무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내공이 주입된 장포는 마치 강철을 때리는 촉감이었다. 그래도 천무백의 공력에 큰 충격을 입었는지 당준파를 피를 왈칵 토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내상이다.
천무백은 고삐를 잡았다.
철컥!
검을 검집 속에 넣었다.
당준파가 다시 반격을 위해 장포를 거둬들이려는 찰나.
벼락같은 발검이 단숨에 공간을 꿰뚫었다. 그 속도와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검이 지나가는 경로가 일시적인 진공(眞空) 상태가 될 정도였다. 관(貫)의 개념이 담긴 검이 단숨에 당준파의 어깨를 꿰뚫었다. 머리를 노렸으나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준파는 순간이나마 무력화됐고, 그 사이 천무백이 득달처럼 달려들어 혈도를 짚었다.
목석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당준파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의 목 위로 천무백이 발을 턱 하니 올리며 살벌하게 말했다.
“좋아. 이제 문답을 다시 하지.”
“…….”
“대신 내가 묻고, 너는 답만 한다. 아니면 또 죽여 주마. 세상에서 두 번 죽는 것만큼 억울한 게 어디 있어?”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왜, 누가 다시 와서 살려줄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천무백이 다 안다는 듯이 웃었다.
그제야 당준파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손목, 발목 보니까 근맥이란 근맥은 다 잘렸군. 몸에는 고문의 흔적도 수두룩하고. 수룡채에 납치당해서 핍박받은 건 사실이네. 그치?”
“…….”
대답은 없다. 그러나 답은 알았다. 무언은 긍정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 살리는 의원으로서 자부심이 있었지. 그래서 수적들의 핍박 속에서도 근맥이 다 잘려가는 와중에서도 독을 건네주지 않았던 거고.”
“…….”
여전히 대답은 없었지만 당준파의 눈에도 격동의 빛이 어렸다.
천무백은 자신의 추론을 거침없이 풀어댔다.
“그러다 못 버티고 죽은 거야. 2년 동안 본인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끝끝내 생명을 유지했지만, 그래도 별수 있나. 근데, 그때 누가 널 살려 준 거지.”
“……하하.”
당준파는 지친 기색으로 웃었다. 후련한 기색이다.
별안간 눈을 부릅떴다.
“난 실제로 심장이 멈췄었다.”
당준파의 눈이 기이한 열기로 타올랐다.
냉막했던 얼굴이 꿈틀거리며 묘한 열기가 번들거렸다.
“하나 다시 살아났다. 그건 내가 봐 온 그 어떤 의술도 범접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신비(神祕)의 경지였다. 의술의 정점이었어! 멈춘 심장을 재생하고, 굳어져간 내 뇌를 일깨웠고, 끊어진 근맥을 다시 복구시켰다.”
기이한 열기는 더더 타오르더니 점점 광기로 변해갔다. 흡사 귀기(鬼氣)가 번뜩이는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자 채가령은 더는 못 보겠다는 듯 눈을 감았다. 천무백은 당준파의 광기에 찬 눈을 들여다보며 피식 웃었다.
“의술의 정점은 무슨. 그냥 그거 비술이야.”
“닥쳐라! 네놈이 의술에 대해 뭘 어찌 안다고……!”
“넌 다시 소생한 게 아니다. 그저 인형으로 다시 태어났을 뿐이지. 비다라(毘陀羅)다.”
비다라.
고대 천축에서부터 전해져 온 비술(祕術).
달마가 중원으로 건너올 적에 같이 건너온 불경에는 수많은 비술이 담겨있었다.
그것들은 과연 자비로운 부처의 가르침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잔혹하고 괴기한 것들이 가득했다. 하여 누구도 해석하기 어렵게 복잡한 내용으로 꼬아 놨다.
‘시간이 맞아 떨어진다.’
혈귀곡이 소림으로 향하던 표물을 탈취한 시점에서부터, 여기서 흉사가 벌어지기까지.
혈귀곡은 불경에 있던 비술을 해석한 게 틀림없다.
눈앞의 당준파가 비다라였으니까.
불가에서는 살인을 금한다.
금하는 수많은 살인 중 주살(呪殺)이 있다. 남을 사주하여 다른 이를 살인하게 만드는 수법.
비다라는 그런 수법을 위해 태어난 존재다.
이미 죽은 자를 되살려 오로지 다른 타인을 죽이게끔 만들어진 인형이다.
강시와는 다르다. 강시와는 다르게 스스로 사고할 수 있고, 인지할 수 있으며 무공까지 사용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엔 생전의 모습 그대로다. 아니, 실제로 살아 있다. 심장은 뛰고 호흡은 하니까.
다만 생전의 모든 것들은 의미 없어졌다. 비다라로 태어난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그들을 되살린 이들의 명령대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
“일종의 청부살인마지. 아주 말 잘 듣는, 청부살인마.”
천무백은 피식 웃었다.
그제야 안휘와 중경에서 일어난 모든 흉사의 과정이 이해가 됐다.
정파의 명숙인 호선자가 흉수인 것도, 여기 당준파가 흉수인 것도.
그랬다.
혈귀곡은 목표가 정파든, 정사지간이든, 사파든.
오로지 절대복종하는 청부살인마를 만들었다.
더 무서운 점은 작정하고 숨긴다면 그들이 비다라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애당초 비다라가 뭔지 모르면 전혀 모른다. 당장 당준파가 다시금 돌아와 평범한 의원이 척해도, 아무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리라.
설령 이상하다고 여겨도 그걸 청부살인마로 여길까.
그렇게 파고들었다가 어느 순간 돌변해 칼을 거꾸로 잡을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에 말이다.
어쩌면.
‘이미 곳곳에 파고들었을지도 모르지.’
이미 혈귀곡은 이들에게 몇 개의 문파를 멸문시켜 그 효능을 확인했다.
비다라의 효능을.
‘성화문이 멸문한 것도, 섭진문이 멸문한 것도, 이들에겐 그저 실험이었겠지.’
비다라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
단지 그뿐이다.
그래야 이해가 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는가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그냥 저런 간단한 이유였다.
천무백의 입가가 기괴하게 말아 올라갔다.
“하……. 이 새끼들. 볼수록 마음에 안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