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74화 (74/318)

<검신재생 74화>

74. 특훈이다

지금까지 전현이 무공을 익혀오며 경악했던 적이 두 번 있다.

첫째는 종남파 장문인의 실력을 견식 했을 때였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압도적으로 강했었다.’

자신이 쳐다볼 수도 없는 찬란한 무학의 경지.

압도당했다.

도저히 오를 수도, 오르지도 못할 것 같은 그 무학에 말 그대로 압도당해 숨도 쉬지 못했다.

둘째로는 강호기인으로 유명한 다비노괴(茶毘老怪)를 만났을 때였다.

‘강하다기보단 두려웠지.’

종남 장문인처럼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느끼진 못했다.

다만 느낀 건 두려움이었다.

어떤 수를 쓸지, 어떤 사람인지 이해 불가능한 행동과 무공.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상식과 행동.

숫제 미친놈을 보는 듯한 느낌.

그랬기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전현은 세 번째로 경악했다.

‘보았는가?’

보지 못했다. 단 하나도.

천무백의 움직임도, 사적유가 어떻게 나자빠졌는지, 그 모든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저 바람이 머리칼을 어지러이 날리고 둔중한 소리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뒤늦게 봤을 뿐이다.

‘느꼈는가?’

느끼지 못했다.

아무것도.

무인이라면, 무공을 익힌 이라면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 내공이 깃들기 마련이다. 내공이 깃든다는 건 흐름이 담긴다는 뜻.

내기가 흐른다.

하면 느껴져야 한다. 적어도, 종남파 장로이자 당장 여기 매화일검보다 스스로 강하다고 자부하는 전현이라면 느껴야 했다.

느꼈는가?

아니, 느끼지 못했다.

그 두 가지 명백한 진실이 전현을 경악케 했다. 서늘한 감각이 심장을 얼리는 듯했다.

이번에 경악한 감정은 무엇인가?

종남파 장문인처럼 압도적인 강함?

다비노괴처럼 미지의 것에서부터 오는 두려움?

아니다.

‘두 가지 모두다.’

압도적으로 강하고, 두렵다.

전현이 느낀 솔직한 감정이었다.

그랬기에 역설적으로 전현은 그 감정을 억지로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함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낀다는 건.

상대의 무공 수위를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남을 인정해야만 했으니까.

단순히 뛰어난 게 아니다.

도저히 바라보기 힘든 경지. 그 정도에 올랐음을 인정해야 했으니, 전현은 저도 모르게 그걸 부정했다.

“이 무슨 짓이오!”

“어른들 얘기하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끼어든 놈에게 매를 든 것뿐인데.”

“어른들? 허.”

전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적유는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으나, 천무백은 아직 약관도 안된 놈이 아닌가.

자신을 놀린다고 여긴 전현은 천무백에 대한 적개심이 한층 더 심해졌다.

“좋소. 이리된 거, 비무전에서 아주 결판을 내지.”

“흠. 그러든가.”

“이익!”

천무백이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전현은 입술을 깨물곤, 쓰러진 사적유를 수습하곤 곧장 돌아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국보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비무전 형식은 정해지지 않습니다만. 칠 일 후에는 시작할 것입니다. 하니 준비하시지요.”

“알겠소. 그쪽도 참가하오?”

국보가 쓰게 웃었다.

“장로 배분에서는 아마 청현진인께서 참가하시고, 일대제자급에서 제가 빠질 수는 없습니다.”

천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도 선근경을 쉬이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수호검 청현진인은 대장로 직급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오대장로에 포함될만한 실력자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하니 화산도 최선을 다할 셈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쪽도 최선을 다하지.”

천무백이 그리 말한 순간.

국보는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 * *

“능허야.”

“네.”

“너도 참가한다.”

“제가요? 그냥 혼자 쓱싹 하시죠?”

“내가 싸우는 동안 넌 놀고먹으려고?”

능허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선근경이 필요하다는 사람은 주군 아닙니까. 난 그딴 거 없어도 됩니다.”

“능허야, 내가 무슨 말 할 거 같니.”

천무백이 빤히 쳐다보자 능허는 이내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저도 꼭 비무전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예예.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화산 종남과 비무를 겨뤄 보겠습니까? 암요.”

천무백은 한쪽에 멀뚱히 서 있는 곽천후를 바라봤다.

“그쪽도 참여하지?”

“내가?”

“다섯 명은 안 돼도 숫자 맞추는 구색은 내야지.”

“나도 참여해 봤자 고작 셋인데.”

“나 혼자 화산파며 종남파며 다 쓰러뜨리면, 애들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

곽천후는 말문이 턱 막혔다.

이상한 말이지만, 천무백이 그리 말하니 정말 그럴 듯 했다.

“적절한 패배는 상대에게 승부욕과 동기부여가 되지만, 압도적인 패배는 고통을 주거든. 잘 알지 않나?”

곽천후는 미간을 좁혔다.

자신도 압도적으로 패배하지 않았나.

“난 승부욕을 느끼고 있는데. 내 목표는 네놈을 이기는 거다.”

“아직 멀었다.”

그 부분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곽천후는 아직 천무백을 이길 실력이 안 됨을 절실히 느꼈다.

“더구나 너는 싸우는 걸 좋아하잖아. 화산과 종남의 일대제자들 상대로 겨룰 수 있는 거. 중경성에서는 불가능하지.”

맞다.

중경성은 화산이나 종남같은 거대문파가 없다.

곽천후가 중경 제일 후기지수임은 분명하나, 중원은 넓다.

당장 곽천후는 바로 전에 마주친 국보와 전현의 기세에 놀랐다.

‘이길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해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싸운다면 모를까.

겉으로 느껴지는 내공의 중후함은 자신과는 궤를 달리했다.

‘과연 명문정파.’

내공의 깊음과 중후함은 비검문 같은 소규모 문파가 비견할 수 없는 정도였다.

“비무전에서 이긴 뒤에 네 정체를 밝히고 장문인에게 도움을 구하면, 충분히 되지 않겠어?”

더구나 실력을 보인 뒤 도움을 청한다면, 화산에서도 반응할 수밖에 없을 터.

하물며 여기엔 종남도 같이 있지 않은가.

곽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참가하겠다.”

천무백은 능허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능허야.”

“왜요.”

“특훈이다.”

“엉?”

“네놈이 가장 불안해.”

“아니, 내가 져도 그짝이랑 이짝이 이기면 되는 거 아니요?”

능허가 황당하다는 듯 반문했지만 천무백은 고개를 내저었다.

하나 천무백은 반론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했다.

“지면 나한테 제발 죽여 달라는 소리를 하게 될 거다.”

“특훈, 하겠습니다.”

능허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 * *

사실 능허는 특훈이라고 했지만,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비무전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일주일.

흑도인 그도 일주일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는 건 불가함을 잘 알고 있다.

엄청난 영약을 먹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여 천무백의 말을 예의 늘 하던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물론 능허는 얼마 안 가 그 사실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천무백의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을 보자 몸에 순간 소름이 올라왔다.

능허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천후랑 비무하겠습니다.”

“아니. 이건 비무가 아니야.”

스르릉.

천무백이 검을 뽑았다.

진검이었다.

“실전이다.”

“아니, 실전이라뇨. 저 오래 살고 싶습니다.”

“응. 지금의 노력이 훗날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게 되는 법이다.”

천무백은 그렇게 말하더니 오른손을 뒷짐을 졌다.

능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도 손 하나는 봉인하마.”

“으음!”

“그리고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다.”

“허어?”

“왜 슬슬 할 만하다고 느껴지냐?”

“내가 그런 거에 속아 넘어갈 것 같수? 그래도 뭐…….”

능허는 말끝을 흐렸다.

솔직히 저렇게 해도 자신이 이기리라고 여기진 않는다.

다만 그래도.

한 대쯤은 먹여 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이게 특훈이요?”

일전과 달리 그렇게까지 특이할 건 없다.

능허좌검을 처음 수련할 때만 해도 천무백이 비무를 빙자해 구타하지 않았나.

“특훈이란 게 별 거 있……”

“타앗!”

능허가 기습적으로 기합을 내지르며 쇄도했다.

희번덕거리는 눈에는 의지가 보였다.

‘진짜 한 대만 제대로 먹인다!’

천무백이 피식 웃으며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능허의 검을 피했다.

“흥!”

그러나 능허 역시 곽천후와 숱한 비무를 펼치며 제법 경지가 완숙해졌다.

찔러진 검이 회수하는 듯하면서 좌우로 크게 후려쳤다.

찌르기에 특화된 검법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검식을 쓰지 않는 게 아니었다.

찌르기에 숨겨진 변초가 바로 베기였다.

찌르고 회수하는 동작을 생략하고 그 즉시 손목을 비틀어 상대를 베어내는 검식.

‘나쁘진 않군.’

천무백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무공에 내공을 익혔으면 꽤 괜찮은 놈이 됐을 텐데.’

아예 재능이 없는 게 아니었다.

전생에 검존을 키워 낸 천무백의 시선으로 보건데, 이 정도 평가를 받는 것만으로도 능허는 단순한 흑도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하나 그 매서운 공격이 단 한 번도 천무백에게 직접적인 유효타를 가하진 못했다.

한쪽 발을 땅에 디딘 채, 나머지 발만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피해 냈다.

흡사 그건 비무라기 보단 잘 짜인 검무를 보는 듯했다.

‘모든 움직임을 다 파악하고 있군, 허.’

지켜보던 곽천후는 혀를 내둘렀다.

상대의 행동을 파악하는 건 무인의 기본이다. 그러나 모든 움직임을 파악할 수는 없다.

더구나 능허는 정파의 무인이 아니다. 정형화된 무인이 아니란 얘기다. 가늠할 수 없는 변칙적인 무인이다.

살벌한 흑도판에서 구르고 구른 무인이다. 검식 하나하나가 지독한 실전성과 살기를 띠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 주먹과 발을 휘둘러 상대를 교란케 한다.

한마디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변칙적인 움직임이 언제든 튀어나온다.

한데 천무백은 그 모든 걸 예상한 듯 가볍게 피해 낸다.

마치 서로 약속해 놓고 검무를 추는 것처럼.

‘어깨선을 보고 검로(劍路)를 읽어 내고, 발이 벌어지는 간격을 보고 움직임을 읽고…… 저게 약관도 안 된 놈이 하는 짓이라고?’

곽천후는 감탄이 들면서도 허탈함이 느껴졌다.

천무백과 자신 사이의 격(隔)을 절실히 느꼈다.

“크읍!”

능허는 오른편으로 쑥 들어오는 천무백의 반격에 몸을 크게 비틀었다.

아니, 비튼 것만으로 막을 수 없었다.

찔러 가던 왼손의 검을 급히 회수하며 억지로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까가강!

이어 천무백의 검이 뱀처럼 움직이며 다시금 능허를 몰아세웠다.

능허는 이를 악물고 공격을 막았다.

그 공격이 얼마나 교묘한지 피할 수는 없었다. 오로지 막아 내야만 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몸에 구멍이 뚫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한데 놀랍게도 천무백의 공격은 능허의 검을 도통 뚫지 못했다.

막기 급급한 능허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켜보던 곽천후는 묘한 변화를 눈치챘다.

‘무게중심?’

능허의 자세가 외려 공세를 펼칠 때보다 안정적으로 변했다.

곽천후도 능허와 여러 번 붙어 봐서 잘 안다.

외팔이고 지독히 공세적인 모습 때문에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안정성이다.

즉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한 동귀어진식의 공격을 자주 펼치는 게 바로 능허다.

그게 통하면 모를까.

곽천후만 되도 전혀 통하지 않지 않은가. 하여 순식간에 무너지는 게 바로 능허의 단점이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느낌.

한데 지금 변했다.

천무백의 공격을 막기 위해 능허는 억지로 몸을 비틀었다.

자신이 펼치던 공세적인 기존의 초식을 버렸다.

상대의 공격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데 초식을 유지할 수가 있겠는가.

자칫하면 몸이 절단 날 상황인데?

그 위기 상황에서 능허는 반사 신경으로, 임기응변으로 제 초식을 다 버린 채 싸웠다.

‘더구나 한쪽으로 수비를 유도하고 있어.’

곽천후는 감탄을 터뜨렸다.

그간 능허의 단점으로 지적된 모든 걸 잡아 주고 있었다.

그것도 간단한 공격과 방어만으로.

‘도대체…….’

천하제일고수가 최고의 스승은 아닌 법.

자신의 무공 수위를 떠나 남을 가르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구나.’

곽천후의 경탄이 담긴 시선이 천무백에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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