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72화 (72/318)

<검신재생 72화>

72. 소유권 분쟁

주위가 정적에 잠겼다.

하나 이내 종남 측에서 헛웃음을 짓는 소리가 하나 둘 늘어났다.

“저건 또 뭐야?”

“뭐? 선근경이 자기 거라고?”

“허 참. 어이가 없어서…….”

“화산도 모잘라 이젠 웬 어린 애까지…….”

그러나 이어지는 전현의 말에 그 수군거림은 뚝 끊겼다.

“천룡검협! 그대가 왜 선근경의 주인임을 자처한단 말이오!”

천룡검협.

그 네 글자를 듣자 종남 무인들은 모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어린놈이니 뭐니 좋지 않은 말을 수군거리던 이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현재 섬서성에 진동하는 그 이름을 누가 모르겠는가.

“천룡검협 천무백?”

“맙소사, 장로님. 하면 저번에 종남과 화산을 구했다는 신진기수가 저 사람이란 말입니까?”

그 말에 전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흥, 구함을 받다니. 그저 같이 싸웠을 뿐이다.”

전현은 애써 당시의 사건을 축소했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물론 천무백이 혈사문주를 때려잡고 결정적인 공헌을 한 건 인정한다.

그러나 호사가들이 떠드는 것처럼 무력하게 위기에 빠진 종남을 홀로 구해 냈다고 여기진 않았다.

그러면 자신은 뭐가 된단 말인가?

‘제자들을 이끌고 장보도 찾으러 갔다가 그런 헛소문이나 가지고 왔다니.’

안 그래도 장로들 사이에서 전현을 썩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원래라면 일대제자여야 했으나 전현은 실력과 좋은 스승을 둔 덕택에 장로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는가.

이번 귀총 사건은 그에게 치명적이었다.

‘대장로, 그리고 나아가 장문인.’

그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는 살짝 충혈된 눈으로 천무백을 노려봤다.

적혈검귀의 비급을 갖고 오겠다고 일대제자들을 데리고 갔다가 한 명을 잃었다.

그리고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소중한 제자도 잃고 얻은 건 없다. 거기에 명문정파 종남이 고작 어디서 나타나는지도 모르는 후기지수에게 목숨을 구명했단 헛소문이 퍼졌다.

전현의 야심을 통째로 흔드는 치명상이었다.

‘그러니 선근경이라도 반드시!’

선근경.

그건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선근경은 전진교를 여신 개파조사 왕중양이 직접 저술한 도경이다! 당연히 전진의 뒤를 이은 종남에게 돌아와야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온 것이 아니겠는가!”

내공을 잔뜩 실은 전현의 목소리가 화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비록 성격은 옹졸하단 평을 받으나 그의 실력은 진짜배기였다.

압도적인 기세에 정문 위 국보는 침음을 삼켰다.

하나…….

“지랄한다. 지랄.”

“……!”

나직하게 또렷이 들려오는 소리에 순간 좌중은 침묵에 빠졌다.

전현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

바로 천무백에게 돌아갔다.

“뭐라 했느냐?”

서슬 퍼런 목소리.

“어?”

한데 천무백은 오히려 무슨 말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천진난만하게 느껴졌는지 전현도 순간적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아, 능허 이 새끼야. 지랄하지 말고 똑바로 서 있으라고.”

“아니, 이제 서 있는 것도 욕먹습니까?”

“짝 다리 짚지 마, 이놈아.”

“와. 내가 이렇게 산다, 천후야.”

“…….”

천무백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 쪽에게 한 말인데, 오해했나 보오?”

전현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새끼가 누굴 바보로 아나?

하나 천무백이 그렇게 말하는 데 거기서 말꼬리를 잡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전현은 천무백을 애써 무시하며 정문을 똑바로 바라봤다.

“매화일검 국보! 문을 여시오! 선근경은 우리가 가져가겠소!”

“화산의 답은 같소이다! 불가(不可)!”

“그럼 나는 출입 가능한가?”

천무백의 목소리가 파고들자 국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이내 진중한 얼굴로 소리쳤다.

“소협께서도 선근경을 찾으러 온 것이오?”

천무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하외다. 선근경은 우리가 찾았고, 화산의 물건이오.”

화산으로서도 선근경은 포기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중원 도교의 정점이었던 전진교.

그 전진교를 열었던 왕중양이 저술한 도경.

이걸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중원 도맥을 정통으로 계승했다는 의미였다.

화산이 도문으로서 정체성이 흐려지고 검문으로서 정체성이 강해졌다고 해도, 근본은 도문이다.

당장 화산 곳곳에 있는 도사들이 어디 한둘인가.

더구나 왕중양이 직접 저술한 내용이니, 자세히 뜯어보며 연구해야 한다.

혹시 아는가?

속에 어마어마한 절세의 무공이 숨겨져 있을지?

물론 그럴 확률은 희박하지만 어쨌든 화산은 선근경을 내어 줄 생각은 꿈에도 없다.

그러자 천무백 옆에 있던 능허가 특유의 늘어지는 어조로 끼어들었다.

“글쎄. 귀총에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이 누구더라?”

“…….”

“가장 먼저 발견하고 들어갔고, 또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다 구해 주고, 혈사문을 무찌른 사람이 누구더라?”

국보는 침묵했다.

듣고 있던 전현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 선근경은 전진교의 물건! 전진교와 상관없는 그대는 끼어들 상황이 아니오!”

“뭐가 다른 이야기인데?”

천무백이 퉁명스레 말하자 전현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건 화산과 종남의 일! 아니, 전진칠자로부터 이어진 종남파만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오! 그러니 당신도, 그리고 매화일검! 당신도! 더 이상의 분쟁을 원치 않는다면 선근경을 넘기시오!”

전현은 더는 용납지 않겠다는 듯 기세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자 천무백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목을 길게 뺐다.

“강물에 빠진 사람 구해 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

“가장 먼저 장보도를 발견하고, 해결했으면 나 역시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지. 아닌가?”

“…….”

전현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거에 인연이 있다고 소유권 주장하는 거면, 응? 무당도 끼어들 수 있겠네?”

“무당이 어찌……!”

“무당뿐이랴. 곤륜도 있고. 어? 강호에 도문이 어디 화산과 종남만 있나? 크고 작은 도문들도 다 끼어들 수 있는 거 아닌가?”

“상황이 다르지 않소!”

“다르긴. 그냥 그쪽들이 강하니까 그리 주장하는 거 아닌가?”

천무백은 거기까지 말하고 좌중을 슥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전현에 이어 종남 무인들, 그리고 정문 위 화산 무인들에게 순서대로 닿았다.

“강자독식. 그럼 한판 할까?”

순간 중인들은 모두 똑같은 환상을 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난히 천무백의 미소가 새하얗게 빛나는 듯한 광경.

전현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올라왔다.

‘이 무슨!’

그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천무백을 쳐다만 봤다.

고작 말 몇 마디.

그것만으로 사람들의 호흡을 끊고 시선을 끌었다.

뿐이랴.

단순히 기세를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건 단순히 무공의 경지가 높아서가 아니다.

‘이 자, 기세를 다룰 줄 안다!’

무공의 경지가 낮아도 주위 기세를 다룬다는 건 다른 의미다.

사람이라면 각자의 기파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인이라면 그것이 더 뚜렷하다.

그것들을 일시적으로 휘어잡는다는 건,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하다는 점.

그리고 기세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란 얘기다.

‘과연…….’

전현은 불현듯 귀총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러지 않았나? 단숨에 주위 분위기를 장악하고 자기 뜻대로 이끌어가는 기세.

‘이러면…… 분위기가 넘어간다.’

전현은 표정을 굳혔다.

천무백이 그럴듯한 개소리를 펼쳐 대면서 끼어들면, 일은 진흙탕이 된다.

제대로 소유권을 규정하기도 전에 소문이 퍼져 무당이 뛰어들 것이고, 곤륜도 오리라. 뿐인가. 천무백 말대로 크고 작은 도문들도 기웃거릴 것이다.

그리되면 일은 복잡해진다.

여기서 마무리해야 한다.

“종남과 일전을 겨뤄 보겠다는 뜻인가!”

말 그대로 산천초목이 뒤집히는 기세.

쾅!

전현이 소리치며 진각을 밟자 천무백에게 홀리듯 쳐다보던 이들이 일제히 정신을 차렸다.

전현과 종남 무인들의 흉흉한 기운이 일제히 천무백에게 집중됐다.

한데도 천무백은 여전히 빙글빙글 웃었다.

“야.”

“야?”

“네가 종남 그 자체냐?”

“……뭐?”

“종남과 일전이 아니라, 나와 겨뤄보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니야?”

천무백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문파의 위세를 등에 업지 않으면, 넌 당당하게 칼을 꺼내들지도 못하는 놈이냐?”

채채채채챙!

전현이 검을 뽑았다. 종남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종남을 모욕하는 자! 그대가 천룡검협이라도 용서할 수 없소!”

“허 참. 내가 종남을 모욕했나. 지를 욕했지.”

천무백이 어처구니없다고 툴툴댔다.

하나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았다.

일촉즉발의 분위기.

천무백이 이어 칼을 뽑으면 싸움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굳게 닫혀 있던 화산파의 정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어 등장한 인물의 얼굴에 기세를 드높이던 전현은 황망한 얼굴로 검을 거둬들였다.

“장문인.”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수염.

머리엔 도관을 쓰고, 단정하고 수수한 도복차림까지.

누가 봐도 도인으로 보이는 자.

바로 그가 화산의 장문인이었다.

그는 반쯤 뜬 실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말했다.

“모두 들어오시오. 화산은 객을 거절치 않소. 하나…… 화산에서 무공을 쓴다는 건 법도를 어기는 것이고, 화산을 적대하는 뜻이니, 그만 기세들을 거둬들이시오.”

낮지만 묵직한 목소리.

소림이 봉문하고 정도무림의 구심점으로 우뚝 선 화산 장문인 다운 기세였다.

낮은 목소리 하나만으로 흉흉한 기세를 모두 지워버렸다.

하나 그의 시선은 천무백에게 향해 있었다.

천무백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포권을 취했다.

“종남과 천룡검협. 모두 들어오시오.”

천무백.

화산파 입문.

* * *

“선근경이 뭐길래 이토록 난립니까?”

“그냥 별거 없다. 도경일 뿐이다.”

“뭔 그거 가지고 거의 전쟁을 벌일 것처럼 군답니까. 허 참.”

흑도인 능허 입장에서 고작 도경 하나에 목숨 거는 꼬락서니가 영 우습게 보였으리라.

천무백은 곽천후를 바라봤다.

“지금 분위기를 보니 네 목적도 해결 안 될 것 같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하남으로가 소림을 찾을 걸.”

화산에 들어온 천무백은 흉흉한 분위기를 느꼈다.

칼 찬 종남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하면 주군은 왜 선근경을 필요로 합니까?”

능허는 그게 의문이었다.

굳이 이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도문인 종남, 화산과 달리 천무백은 상관없지 않나.

“웃기잖아?”

“네?”

“새끼들이. 내가 다 해결했는데 어디서 알맹이만 쏙 가져가려고 해?”

“…….”

와, 이 양반.

소유욕 은근 강하네.

물론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선근경이라…….’

왕중양은 천무백도 잘 아는 위인이다. 물론 면식은 없지만, 왕중양이 신선들에게 가르침을 받아 전진교를 세웠단 일화는 유명하지 않은가.

그런 이가 저술한 도경이다.

하물며 괜히 전진교의 ‘성물’이겠는가.

더구나 천무백은 하필 여동빈의 천둔검법을 얻은 그곳에서, 숨겨져 있는지를 주목했다.

‘상단전을 이용한 경천혼공. 그리고 상단전은 유난히 외기에 민감하면서도 천둔검법에 잘 어울린다.’

며칠간 천둔검법에 집중하며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체득한 천무백은 분명 느꼈다.

상단전의 경천혼공과 천둔검법은 서로 기묘하다 싶을 정도로 궁합이 잘 맞았다.

불가와 도가의 기운이 가득한 경천혼공과 통하는 게 있다는 의미다.

‘하면…… 여동빈이 만든 성단에서 발견된 성물이라면, 설령 그게 그저 도학을 담은 도경이더라도 뭔가 볼 수 있겠지.’

천무백은 사실 욕심이 많은 위인이 아니다.

제물이며 여자며, 명예며.

그 모든 것들은 숱한 전생에서 느낄 만큼 느꼈다.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나 딱 하나는 달랐다.

바로, 무학(武學).

천무백은 무학에 있어서만큼은 탐욕적이었다.

그러니 천무백은 결심했다.

“선근경은 내가 가져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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