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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생-71화 (71/318)

<검신재생 71화>

71. 그게 왜 너희들 건데?

화음현은 지리적 요건 상 마을이 들어설 만한 고을은 아니다.

농경을 일구기에 땅이 기름진 것도 아니었다. 큰 강이 흘러 수운이 편리하지도 않다. 넓은 중원을 생각하면, 굳이 구석까지 사람들이 모여 마을이 들어설 일은 없다.

그런 화음현이 그저 그런 고을도 아니고 거의 성읍에 이를 정도로 번성한 건, 바로 남쪽에 있는 화산 덕이다.

화산파.

구파일방 중 수위를 다투며 개파한 이래 단 한 번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은 유서 깊은 명문정파.

도문(道門)의 정체성을 지녔으나 지금에 있어서 천하제일검문으로 명성이 자자한 명문정파.

단지 그 화산에 오가는 사람들 덕택에 화음현에 사람이 모이고 물자가 돌고 결국 마을이 들어섰다.

화산파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소림하고는 확실히 다르네요.”

화산에 오르기 전.

객잔에 잠시 들린 천무백은 능허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역병이 이곳은 피해갔는지 분주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소림은 응? 숭산 밑에 있는 게 마을인지 촌구석인지. 어휴. 확실히 위상 차이가 딱 보이네.”

봉문 했던 소림과 달리 화산은 정마대전 이후에도 그 세를 잃지 않았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소림 얘기가 나오자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먹던 곽천후가 눈을 빛냈다.

“야.”

“주군, 주군 부르는데요.”

“아니 너.”

“새끼야, 내가 일찍 혼례를 치렀으면 너만 한 자식새끼가 있어.”

곽천후는 어디서 개가 짖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꼬우면 나보다 세던가.”

“하!”

능허는 허탈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천무백의 종용에 몇 번 붙어봤지만 처참하게 패배했다.

외려 하오문에서 처음 싸웠을 때가 가장 선방했다.

그때는 능허에 대해 잘 몰랐던 곽천후였지만, 몇 번 싸우고 거의 다 파악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갈수록 곽천후의 실력은 쑥쑥 크는 데 반해 능허는 그만한 재능이 없었다. 최근 비무에선 천무백이 곽천후 패듯이 곽천후가 능허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

새삼 늦은 나이에 절세 무공을 갖게 되고 익히는 데 흥미를 느낀 능허였으나 진짜 ‘재능’을 보고 속에 응어리가 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패도 주군만 팬다면서?”

“그래서 패주랴?”

“아니…….”

천무백이 무신경하게 말했다.

“싸울 때 억지로 초식에 칼을 맞추지 마라.”

“네?”

“아, 과연!”

감탄을 터뜨린 건 능허가 아니었다. 오히려 곽천후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치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능허가 곽천후를 노려봤다.

“네가 왜 깨닫고 지랄이냐.”

“네가 익힌 검은 내가 느끼기엔 원래 쌍수검법에 이용되는 거다. 즉 양팔을 쓰는 무인에 맞춘 초식이라는 거지.”

능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새끼, 이게 적혈검귀 무공인 줄 아는 거 아냐?’

천무백이 전수해 줄 때 분명 말해 줬다.

적혈검귀는 쌍수검을 썼었다고.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상대하다 보니 자세가 편향되어 있던데.”

“와 시벌…… 세상 참.”

불공평하구먼.

불쑥 능허 머리에 떠오른 상념이었다.

“여하튼, 저 양반…… 흠. 천룡검협이 말하고자 하는 건, 본래 양손 쓰던 무공의 초식을 네가 쓰려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야. 초식을 어거지로 따라 하려 하다 보니 무게 중심 안 맞고 어설프다 이거지. 그래도 그 정도로 매서운 걸 보면, 어디서 제대로 된 무공을 구하긴 했네.”

“무게중심이라.”

능허는 그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느낀 바였다.

그는 흘깃 천무백을 바라봤다.

‘내가 병신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몇 번 비무해 보고 무공의 개요를 파악해 버린 곽천후도 그에겐 괴물 같았다. 그것도 한참이나 어린놈이 그러니 질투보단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 놀라운 건, 그보다 어린 천무백은 저런 곽천후를 아주 개처럼 두들겨 팼다는 것이다.

자신을 상대할 때는 야차가 따로 없던 곽천후가 천무백의 손짓 하나 만에도 눈치를 보는 꼴이 그냥 강아지 꼴이었으니까.

‘아니지, 이 두 놈이 괴물이지. 천무백 저건 그냥 괴물도 아니고 응? 고금제일괴물이야. 아주.’

그는 다시 천무백을 쳐다봤다.

시선을 진즉 느낀 천무백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뭐.”

“아닙니다.”

능허는 무언가 말하려다 목구멍으로 삼켰다.

‘이 양반이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은 절대 어리지 않거든.’

능허좌검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도 굳이 지금까지 말해 주지 않았던 건 분명 이유가 있어서이리라.

‘대충 내가 직접 느끼고 개선해라 이거지.’

능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무공 익히는 데 꽁으로 익히나.’

그는 다시 곽천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새끼야.”

“내 이름은 곽천후다.”

“그래, 새끼야.”

“후우. 네가 만일 내 또래였으면 입이 찢어졌을 거다. 그래도 내가 어린 시절 삼강오륜을 배웠거든.”

“와. 여기도 미친놈 하나 있네.”

“어쨌든 왜.”

“밥 먹고 한판 붙자.”

“얼씨구?”

“넌 싸우면서 실력이 는다고 했잖냐. 나도 해 봐야지.”

능허는 선택했다. 천무백처럼 기재도 아니고, 타고난 재능도 없다. 딱 한 번 보면 다 이해하는 두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자신 있는 건 여기저기 구르면서 생긴 눈치요, 몸 쓰는 일이니.

능허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실전이었고, 당장 실전에 가까운 비무를 할 상대가 있지 않은가.

곽천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화산에서 볼일 끝나기 전에 오십 합 이상 버텨 내면 내가 형님으로 부르지.”

“하 새끼. 오냐.”

능허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은근히 동기 부여를 심어 주네.

썩 나쁜 놈은 아닌 거 같다.

하기야, 나쁜 놈이었으면 이미 천무백에게 뒤지게 처맞고 쫓겨났으리라.

능허가 본 천무백은 의외로 사람이 섬세했다. 아니다 싶었으면 진즉 곽천후가 따라온다는 걸 내쳤으리라.

능허가 그렇게 감상평을 혼자 생각하고 있을 때.

점소이가 소쿠리를 들고 다가왔다.

“이건 저희 주방장님이 솜씨 좀 부렸습니다. 멀리서 오신 거 같아 특별히 대접하는 것이니, 맛있게 드십쇼!”

“뭐?”

시키지도 않은 만두가 담긴 소쿠리에 능허와 곽천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천무백은 담담하게 소쿠리를 열었다.

능허가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주군, 독일지도 모릅니다.”

“응?”

곽천후가 가세했다.

“그쪽이 어려서 강호경험이 일천한 거 같은데, 낯선 이가 갑자기 음식을 건넨다? 가장 흔한 수법이지. 객잔에서 독살하는 거.”

천무백이 피식 웃고는 그대로 소쿠리를 열었다.

“엥?”

소쿠리엔 만두뿐만 아니라 종이도 있었다.

천무백은 놀란 표정도 없이 종이를 꺼냈다.

“하오문.”

“아!”

화산과 지척인 화음현.

당연히 이곳은 하오문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정보망이고, 섬서 분타와 가장 빠르게 연락이 통하는 곳이기도 했다.

종이에는 그간 하오문이 섭렵한 정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는 최대한 배제하고 현 섬서 무림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이었다.

아쉽게도 혈귀곡에 대한 정보는 없었으나 천무백의 시선을 끄는 정보는 있었다.

<화산, 종남파 사이 분쟁 발생>

<종남파 종남풍검을 필두로 화산파 방문 예정>

화산파와 종남파 사이의 분쟁.

이미 화음현에 들어선 이후에도 천무백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역병의 피해가 이 고을은 비켜나간 것처럼 제법 평화로웠지만, 종남파 도복을 입은 이들이 칼을 찬 채 돌아다니는 모습이 왕왕 보였다.

그리고 그 분쟁의 이유라는 것이…….

“하. 이 새끼들 봐라?”

천무백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 * *

“니미럴.”

“능허야.”

“왜요.”

“또 뭔데 심사가 꼬였냐.”

“아니. 화산이나 소림이나. 정파 새끼들은 산이 그리도 좋답니까? 숭산이나 화산이나 산세 보소. 왜 이딴 데에 문파를 연답니까?”

숭산과 달리 화산은 제법 길이 잘 정비되어 있는데도 산세가 험악했다.

하나 숭산처럼 힘겹게 오르진 않았다. 천무백이야 원래 힘들지도 않았고, 능허도 그간 실력이 늘고 내공이 늘었으니 사실 마음만 먹으면 경신공으로 순식간에 오를 수 있다.

다만 여기가 화산이라 문제다.

온갖 참배객들이 오가는 곳이다 보니, 함부로 무공을 쓰지 않는 게 바로 화산의 법도였다.

천무백은 그 의견을 충분히 존중했다.

화산은 존중받을 만한 곳이었으니까.

근데 그에 반해…….

“종남파 놈들, 아주 전쟁이라도 할 기세로 올라가네요.”

법도까지 무시하고 경신공으로 정상까지 전력 질주하는 종남파 무인들.

아무리 두 문파가 앙숙이라지만 법도까지 무시하진 않았다.

하나 그들은 마치 법도를 잊은 것 마냥 경공을 펼쳐대며 화산을 올랐다.

“종남이니까.”

한데 곽천후가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능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종남이면 그럴 만하지.”

“정마대전 때도 끝나갈 무렵에서야 참전한 얌생이 같은 놈들이니. 정파란 이름 붙이기도 아까운 놈들이지. 내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도 그 대단한 창천검신 곁에서 싸웠단 말이지.”

“오. 자식 놈과 비교하면 아버지는 아주 대단하시구나.”

능허가 칭찬 아닌 칭찬을 했음에도 곽천후는 어깨를 폈다.

“아버지는 창천검신의 곁에서 정마대전이 끝날 때까지 함께했었다. 언제고 내가 창천검신만큼 대단한 고수가 되리라고 말씀해 줬지.”

그 말에 능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애써 참았다.

천무백이 창천검신의 후인이란 사실은 천문경과 소림 방장, 무소선사 그리고 청현진인 밖에 모르는 사실이니.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을 뒤지게 팬 천무백이 창천검신의 후인이란 걸 알게 되면 곽천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 왔다.”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끝내 정상에 올랐고, 화산의 정문 앞에 섰으니까.

정확히는 도착한 것이 상념을 멈추게 한 게 아니었다.

“화산은 그대들의 입문을 거절하는 바요!”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굳게 닫힌 화산의 정문.

그 뒤로 화산파의 매화일검 국보가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반면 대치하고 있는 종남파 무인들의 선두에는 종남풍검, 전현이 있었다.

“우리는 정식으로 화산파에 방문했소!”

“본문 내에 중요한 일이 있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자 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국보! 어찌 이렇게 무도하단 말인가!”

전현이 버럭 소리쳤다.

“전진교의 성단에서 나온 성물이면, 능히 전진교의 후예인 종남에서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터!”

“어찌 그게 종남의 물건이란 말입니까?”

“허! 참으로 당당하구려! 그쪽도 선근경을 우연히 주운 것뿐이지 않소?”

“줍다니! 모두가 버린 전진성단을 정리하다 우리가 구한 것인데!”

“흥! 정리? 개방 거지들도 웃을 헛소리 하지 마시오! 우리가 혈사문 놈들과 싸웠던 곳이 전진성단인 걸 미리 알았다고 주장하는 것이오?”

“…….”

“듣는 귀가 있소! 성단이 갑자기 무너졌단 소식에 근처에 있던 화산 속가문파 무인이 찾아갔다가, 무너진 잔해 속에서 전진의 성물인 선근경(善根經)을 찾은 거 말이오!”

선근경.

전진교를 세운 왕중양이 신선에게 받은 가르침을 적은 도교 경전.

전진교의 성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랬다.

일전에 천무백이 천둔검법을 체득하면서 전진성단은 그 여파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잔해 속에서 선근경이 발견됐다.

여동빈이 뜻한 무학의 완성인 천둔검법뿐만 아니라 전진교의 성물까지 존재했단 얘기다.

그러하니.

저벅.

“……음?”

전현은 다시 한번 외침에 내공을 실으려는 순간.

갑자기 훅 들어오는 기척에 호흡을 빼앗겼다.

‘뭐지……?’

호흡 사이의 찰나.

그 틈을 거짓말처럼 비집고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

아무리 청각이 예민하다고 한들, 고작 발자국에 호흡을 빼앗긴다고?

전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천룡검협?”

일전에 본 인상적인 고수.

천무백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재밌는 얘기들 하고 계시네.”

단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목소리.

높고, 낮지도 않은 무신경한 목소리에 전현뿐 아니라 몰려든 종남파 무인들, 그리고 정문 너머 국보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들 사이로 천무백이 웃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없이 당당한 태도.

그리고 흘러나오는 나른한 듯 가벼운 목소리.

“그러니까. 그게 왜 너희들 건데?”

암 그렇지.

그건.

“내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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