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신재생 67화>
67. 미친놈이 둘!
하오문 섬서분타주 임홍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고 겨우 한마디를 했다.
“······안 춥소?”
“응? 그쪽은 춥소? 하하하! 무공 수련 좀 더 해야겠수다. 이거 갖고 뭐가 춥다고. 응?”
“추워 보이는데?”
“아니, 하나도 크흠. 안 춥다니까.”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며칠 전부터 엄청나게 추워졌다.
상의를 탈의하고 아침부터 칼질해대고 들어온 능허는 말과 달리 창백한 얼굴이었다.
눈썹과 수염에 새하얀 서리가 묻어났건만, 벌벌 떨면서 저런다.
‘미친놈.’
이 새끼나. 그 주군이라는 천무백이나.
‘그냥 다 미친 새끼들이야.’
그냥 미친놈이 아니다. 그냥 개새끼들이다.
‘암, 그렇고 말고.’
저 능허라는 새끼는 아침 댓바람부터 옷 벗어 던지고 칼질을 하지 않나.
‘천무백 그 새낀 더한 새끼야.’
귀총에서 한바탕 싸우고 돌아와서 쉬지도 않고 갑자기 연무장을 준비하라더라.
대경실색한 임홍이 부랴부랴 근방에 역병으로 떠난 작은 무가의 연무장을 준비했더니.
그걸 하루 만에 다 부숴 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반나절 만에.
‘아니, 안에서 무슨 지랄을 하길래 연무장이 부서져?’
그래놓고 하는 말이 뭐였나?
“좀 튼튼한 건물로 하나 사 오시오.”
아니.
하오문에 이 새끼가 돈 맡겨놨나?
그다음 천무백이 암진혜검의 일초식 구결을 전해주자 임홍은 부랴부랴 하오문 본단에 서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돈 좀 융퉁해 주십쇼!’
본단에서도 갑자기 돈 달라는 섬서 분타에 난색을 보였다.
하나 임홍이 그간 있었던 사정과 암진혜검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하자 곧장 서신과 함께 돈이 들어왔다.
‘그래. 문주만 와 봐라. 지가 그 대단한 천룡검협이라고 별 수 있겠어?’
하오문주가 직접 온다고 서신으로 전해왔다.
제 아무리 대단한 놈이어도, 응? 그래도 문주다 문주!
하오문이 아무리 하류인생이라지만!
지가 어? 강호의 배분을 알고? 어? 예의를 알면.
‘······그런 놈이 아닌데.’
분명 자신이 선밴데 선배 취급도 안 하는 새끼가 아닌가.
더구나 상대는 천룡검협이다.
-천룡검협! 화산과 종남을 구하다!
-소림에 이어 화산과 종남까지 구한 신진기재!
-매화일검 국보 역시 그의 무위에 경탄하며 고개를 숙였다!
-역병을 퍼뜨린 악독한 사교집단, 혈사문을 멸한 자!
-무성적마를 개패듯이 패놨다더라!
섬서성에 그 이름이 진동하고 있다.
-천룡검협 천무백!
엄청난 명성이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다. 섬서성을 쑥대밭으로 만든 역병.
그 역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사교집단 혈사문.
관아도, 화산도, 종남도 해결치 못한 악적이다.
그걸 깨부수고 선언하지 않았나.
‘혈사문은 없다.’
이 선언은 당시 귀총에 있던 무림인들로부터 순식간에 섬서에 소문이 쫙 퍼졌다.
물론 그 신위에 대한 진위를 두고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화산에서는 청현진인과 매화일검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종남에서는 물론 자기들 스스로 혈사문을 이겨내고 함정에서 빠져나 왔다고 주장하긴 한다만…….
‘종남이야 뭐 말만 뺀지르르 했던 놈들이니까.’
아무래도 정마대전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화산의 말을 더 높이 쳐주는 게 바로 섬서 사람들이다.
하니 섬서에서의 천무백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다 못해 인접한 다른 지방에도 퍼져나가고 있었다.
더구나.
‘확실히 존나게 강해.’
하오문의 정보력을 총동원했다.
귀총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서 살아 온 무인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들이 말하는 바를 보면 중구난방이었지만, 결론은 일치했다.
결국 천무백이 모두를 구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음. 문주님이 어떻게 판단하시려나.’
임홍은 살짝 불안해지는 감이 있었다.
하오문주는 하오문 내 최고로 강력한 무인이었다.
하오문 치고는 진지하게 무도의 길을 걷는 무인이다.
하여 가진바 무위도 대단하고, 또 그것에 대한 자부심도 투철한 양반이다.
‘뭐, 그래도 생각 없는 양반은 아니니까.’
문제는 상대편인 천무백과 그 쫄다구, 저 능허란 새끼가 문제다.
‘미친놈이 둘!’
겨우 준비한 연무장을 반나절 만에 부숴 버리는 쎈 미친놈하고.
“흐흐흐. 이거 능허좌검이라는 건데. 응? 귀총에서 다 우리 주군이 구했다고 하지만, 나도 이 좌수로 한몫했다. 아니요.”
나이 처먹고 하는 짓은 유치한 미친놈까지.
“아. 시발.”
임홍은 저도 모르게 욕지기가 솟구쳤다.
그래도 저들을 내칠 수는 없다. 갈 데 없다고 하오문에 의탁하는 걸 내쫓을 수가 없다.
천무백이 가진 암진혜검의 유혹을 차마 거절할 수 없다.
더구나 섬서에서 하오문이 다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혈사문을 없애 준 천무백의 공로다.
거기에 하남에서도 여기 눈앞의 능허와 함께 연화루, 그리고 흑심방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니······.
‘섬서 분타주에 사실상 하남성의 영향력까지.’
임홍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 정도면 본단에서도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저 둘을 미친놈이라 욕해도 차마 쳐 낼 수가 없었다.
‘쳐 낸다고 쳐 내질 양반들이 아니긴 하지.’
뭐 어쨌든 간에.
제일 큰 문제는 바로 여기 있었다.
“여기 하오문 맞소?”
바깥에서 들려오는 젊은 목소리.
임홍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즉 내공이 실렸다.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전달한다는 건 만만치 않은 내가고수란 얘기다.
“하. 설마 또.”
이윽고 등장한 건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허리춤에 찬 칼을 보건데 무인이 분명했다.
더구나 섬서성의 웬만한 무인의 얼굴은 꿰고 있는 임홍에게도 낯선 얼굴이었다.
한마디로 외부에서 찾아온 이.
이런 이라면 며칠 전부터 한가득이다.
“천룡검협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 싶어 왔소.”
임홍은 눈을 질끈 감았다.
천무백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이 무수히 많아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뒤에 그 새끼가 있는데 어떻게 대놓고 정보를 팔아?’
사실 천무백에 대한 정보를 가장 심도깊게 파악한 건 바로 임홍이다.
하남성에서의 정체까지. 그 행적을 고스란히 파악해 낸 임홍이 아닌가.
하지만 누가 자신의 정보를 파는 꼴을 좋아하겠는가.
아예 여기에 천무백이 없으면 모를까.
하오문은, 아니 적어도 임홍은 천무백과 협력관계다.
하니 천무백의 정보를 팔수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돌아가셔야겠소. 천룡검협에 대한 정보는 팔지 않소.”
그러자 사내가 씩 웃으며 탁자에 보따리를 올려놓았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시오. 다 금덩어리요.”
“······!”
“내 멀리서 왔소. 종남에 볼 일이 있어 섬서로 오던 중에 천룡검협에 대한 얘기를 들었지. 자고로 강호에 나간 사람으로서 그 명성에 대해 궁금한 사람 어디 없겠소?”
“그저 궁금해서란 말이오?”
임홍의 눈이 반짝였다.
그냥 궁금해서.
궁금한 이유 하나만으로 이 정도 거액을 내민다?
하면 엄청난 부자라거나, 또는 힘을 지녔다는 의미다.
‘적어도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고수는 아니군.’
겉으로 느껴지는 기운 역시 마찬가지.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군.’
사내는 진한 눈썹에 각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엔 약간의 붉은 빛이 감돌았다. 눈빛엔 힘이 있었고 입은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었다. 상대하기 힘든 유형이다.
“미안한 일이지만 현재 우리 분타에서는 천룡검협에 대한 모든 정보를 봉(封)했소.”
“흐음.”
사내는 팔짱을 꼈다.
“이상한 일이군. 하오문에서 정보를 안 판다?”
“그야 장사하다보면 여러 일이 있을 수도 있지요.”
“나는 천룡검협에 대해 듣고 싶소.”
“비단 여기가 아니라 섬서 어딜 가도 천룡검혐에 대해 알 수 있소. 귀총에서 살아남은 무인이 한둘이 아니거든.”
“그런 정보 말고, 가령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오.”
순간 사내의 눈이 번뜩였다.
“······!”
그 눈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임홍은 움찔했다.
‘이 새끼, 도대체 누구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저 나이대에 이 정도 기세라니.
당장 떠오르는 이가 없다.
일단 섬서성에서라면 매화일검 국보가 있을 것이고, 안휘성 남궁세가의 대공자가 있으리라.
그러나 국보의 얼굴은 임홍이 알고 있고, 남궁세가 대공자가 움직였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임홍의 귀에도 들어왔을 터.
‘하면 누구지?’
임홍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저 나이대의 사내. 피 끓듯이 강렬하게 끓어오르는 저 투쟁심.
순간 임홍의 머리가 번쩍 뜨였다.
“혹시······ 중경의 투귀(鬪鬼)시오?”
매화일검 국보, 남궁세가 대공자, 그리고 중경의 투귀.
강호가 말하는 후기지수 중 최선두에 있는 이들.
투귀 곽천후가 씩 웃었다.
“맞소.”
“이럴 수가. 중경의 투귀가 어찌.”
“종남일검 전현과 한판 붙고, 그다음에 매화일검 국보를 꺾으러 왔는데. 그들 명성을 단숨에 뛰어넘은 천룡검협이 있지 않소?”
“그와 싸워 보겠다는 것이오?”
“그렇소.”
“하아.”
임홍은 한숨을 내쉬었다.
투귀 곽천후는 별호 그대로였다. 괜히 싸움 귀신이란 별호가 붙은 게 아니었다. 저보다 강하다는 사람이라면 한번씩은 찾아가 비무를 청하는 미친놈이었다.
“아무튼 섬서분타는 정보를 팔지 않소. 돌아가시오.”
“팔지 않겠다는 건 알긴 안다는 거네?”
“……설마 하오문과 싸우겠다는 뜻이오?”
“하오문 섬서분타주는 어느 정도 잘 싸우나 궁금한 거지.”
“부디 일부러 적을 만들지 마시오. 곽 소협.”
“적이라니. 정당한 비무를 청하는 바요.”
임홍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때였다.
“썅, 별 개떡 같은 놈이 유세를 떠네. 이 새끼야. 네놈은 내가 상대해 주마.”
“누구요?”
“독안사 능허시다.”
“……?”
“하. 이보쇼. 그쪽이 상대할 만한 실력자가 아니요.”
상황을 지켜보던 능허가 호기롭게 나서자 임홍이 만류했다.
하나 능허는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라고 왜 투귀를 모르겠는가.
다만.
‘한번 붙어 보고 싶단 말이지.’
사실 그는 적잖이 자신감이 생겼다. 천무백으로부터 능허좌검을 전수받았다. 실력이 늘었다는 걸 본인이 느낄 수 있을 정도. 물론 수련 상대가 늘 천무백이어서 처맞는 결과는 똑같았다.
하나 다른 이들을 상대라면?
‘투귀, 투귀 알지. 하지만 강호 선배는 나다. 또 뭐, 비무라고 했으니까.’
생사결이었으면 당연히 싸움을 피했으리라.
능허가 그런 눈치가 없겠는가.
오히려 상대가 비무라고 했으니, 이건 기회였다.
목숨 걱정은 할 필요도 없고, 강호에서 명성 자자한 후기지수와 비무해 자신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으니까.
투귀가 떨떠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걸어오는 싸움은 피해선 안 되지.”
“어. 이거 비무다. 비무. 알겠지?”
“아아. 알겠소, 비무. 나 투귀 곽천후요.”
“독안사 능허다.”
“들어본 적 없는데.”
“곧 자주 듣게 될 거다.”
곽천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외팔이에 껄렁한 모습이 영락없는 흑도가 아닌가.
하나 곽천후는 태생적으로 싸움을 좋아했다. 굳이 걸어오는 비무를 피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흥미가 크지 않을 뿐이었다.
물론, 부딪치기 전까지는.
채채채챙!
“……!”
단 일합.
한 번의 공방에 곽천후의 눈동자가 커졌다.
예상치 못한 기습적인 찌르기.
빠르고, 매서웠다.
단 일점에 집중된 그 일격.
만일 막지 못했다면 구멍이 뚫렸으리라.
“이런…….”
곽천후의 얼굴에 살기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