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60화 (60/318)

<검신재생 60화>

60. 뭐? 이건 내공 아니냐?

“아니 그렇게 무책임한 게 어딨습니까!”

“나야 이게 맞을 줄 알았지.”

“천장이 무너지잖소, 천장이!”

“그러게.”

“그러게? 그러게에에에에? 이런 미친. 지는 천장이 무너져도 살 수 있다 이거지? 나는 못 사오! 천장 무너지면 뒈진다고!”

“능허야.”

미안한데…….

“뭐요!”

“바닥도 갈라진다, 야.”

“와, 시벌.”

능허는 허탈하게 히죽 웃었다.

“오늘 내가 여기서 죽나 보오.”

“아쉽게 됐네. 장례 치러 줄 가족은 있냐?”

“없소.”

“그렇구나.”

그것도 좀 미안한데…….

“아니, 썅. 어떻게 할 거요!”

쿠구구구구궁!

한가롭게 농담을 주고받을 시간은 없었다.

천장이 쩌저적 금이 가더니 가루와 잔해들이 마구 떨어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뿐이랴. 바닥에 금이 가더니 이내 쩍하고 벌어지기 시작했다.

천무백이 볼을 긁적였다.

야. 이건 못 막겠다. 나라고 천장 무너지고 바닥이 무너지는데 뭘 어떻게 하겠어.

“능허야”

미안한데.

“네! 무슨 방도가 있는 거죠?”

“어. 꽉 잡아라.”

살아남아라.

“네?”

“추락한다.”

잘 알아서.

“아니 뭘 꽉 잡으라……!”

쿠구구구구궁!

능허의 외침은 이내 엄청난 굉음에 묻혔다.

땅이 무너졌다.

* * *

국보는 당황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쩌저저적!

떨어지는 파편을 밟고 껑충껑충 뛰었다. 그러다가 벽에 검을 박아 멈추기를 반복하며 추락 속도를 적절하게 조절했다.

‘완전히 무너지는구나!’

곳곳에서 사람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국보!”

“장로님!”

그중에는 갈라졌던 청현진인과 화산 제자들도 있었다.

정신을 차린 무성적마는 온갖 괴성을 내지르며 껑충 뛰었다. 그간 보이지 않던 종남파 무인들도 반대편 벽에 검을 박아 넣으며 떨어졌다.

미로 전체가 무너졌다.

국보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능허를 바라봤다.

“시벌, 손목 나가겠네! 진짜.”

바닥으로 추락하는 하중을 오로지 벽에 검을 박아 버텨야 한다.

국보도 양손을 번갈아 쓰면서 내려왔는데, 외팔이인 능허는 한쪽 팔만으로 무사히 내려왔다.

천무백의 옆에서 깐족거리기만 하길래 얕잡아봤는데, 그도 무시하기 힘든 실력자임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천룡검협, 이자는……?’

그때였다.

쿠우우우우웅!

가공할 파공성이 저 위에서부터 들려왔다.

“피. 피해라!”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본 누군가 황급히 외치면서 바닥을 굴렀다.

콰아아앙!

바닥이 깊게 팼다.

단순히 패인 게 아니었다.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엄청난 충격파가 원형으로 넓게 퍼졌다. 좀 멀리 있던 국보도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컥 멈추는 기분이었다.

“이 미친…… 그냥 뛰어내렸다고?”

국보는 입을 쩍 벌렸다.

원형의 구덩이 정중앙에는 천무백이 굽힌 무릎을 피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본인도 심지어 청현진인도 벽에 검을 박으며 겨우 내려왔다.

한데 천무백은 그냥 위에서 뚝 떨어졌다.

속도를 조절하지도 않고, 하중이 실린 채 그냥 바닥에 안착했다.

국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천무백의 양쪽 발자국이 살짝 흔적만 보일 정도로만 남겨져 있었다.

‘어찌 저럴 수가!’

국보는 저도 모르게 청현진인을 바라봤다. 청현진인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놀란 눈빛이었다.

위에서 떨어졌건만, 발자국은 깊게 패지 않았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가?

‘충격을 분산시켰다는 것인데…….’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없이 그저 추락하는 도중에 충격을 다른 데로 분산했다고?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끄응. 허리 나갈 뻔했네.”

천무백은 아무렇지 않게 허리를 폈다.

사람들의 경악에 찬 시선을 그는 무시하고 주위를 슥 둘러봤다.

“와. 진짜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능허의 말에 좌중에 모인 이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허야, 살아 있었네.”

“내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을 순 없소.”

“죽었으면 장례는 치러 주려고 했지.”

“퍽이나 고맙수다.”

“어쨌든 미로는 나왔다.”

“……스벌.”

그제야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대략 떨어진 인원은 오십여 명 안팎이었다.

종남파 도복을 입은 무인이 여덟이었고, 화산파 무인이 아홉 명. 그리고 그 외에 각양각색의 무인들이 가득했다.

“이거 만든 놈들은 진짜 어지간히 대단한 놈인가 봅니다. 지하에 이런 광장을 만들었다니.”

능허가 천무백의 곁에 바싹 붙으며 중얼거렸다.

“왜 가까이 붙냐.”

“지금 살벌하잖소. 다들 한판 할 기센데?”

능허의 말대로였다.

공교롭게도 갑자기 지하 광장에 다 모이게 되자 무인들은 서로를 경계했다.

천무백도 느꼈다. 너무 인상적으로 등장한 탓일까, 이쪽을 경계하는 시선이 무척이나 진했다.

그런 날카로운 경계심 속에서 청현진인이 천무백에게 다가왔다.

“천 공자!”

“여기서 뵙게 됐군요, 청현진인.”

청현진인은 다소 쓴웃음을 지었다.

“소협께서도 적혈검귀의 비급을 노리고 온 것이오?”

청현진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졌다.

원래라면 이곳이 아니라 혈귀곡을 추적하고 있어야 할 터.

여기에 천무백이 있다는 건, 곧 적혈검귀의 비급을 노린다는 얘기다.

그것이 못내 묘한 감정이 들었다.

소림에서 보여 준 천무백의 모습은 그야말로 협과 의를 아는 협객 그 자체였었다.

‘물론 무림인이라면 응당…… 하기야 내가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소림을 습격하고 중생들을 참살하는 혈귀곡 추적이 당연히 협의를 안다면 행해야 하는 일이다.

하나 청현진인 본인도 이곳에 있다. 화산의 수뇌부들이 내린 결정이라고 해도, 청현진인이 거부할 수 있으면 능히 거부할 수 있는 일.

그런데도 이곳에 있는 건 결국 청현진인 본인도 욕심을 다 저버리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한데 천무백의 대답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적혈검귀의 비급보단 다른 걸 신경 쓸 상황입니다.”

천무백의 시선을 따라간 청현진인은 침음을 삼켰다.

“……!”

커다란 피풍의로 온몸을 감싼 괴이한 사내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현진인은 일순 당황했다.

저들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귀총으로 들어온 무인들과는 판이하였다.

“이런. 아직 준비가 완전히 안 끝났는데…….”

“우리가 몰랐던 함정이 있었나? 입구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위에서 떨어지다니.”

“상관없소. 어차피 준비는 거의 끝났고, 의식은 진행하면 그만이오.”

“흠. 잠깐만 시간을 끌어야 하겠군요.”

“제가 하지요.”

청현진인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사특한 피 냄새로구나.’

무인이라면 응당 몸에 혈향을 풍기기 마련이다.

당장 청현진인도, 이곳에 떨어진 무인들 모두가 그랬다.

한데 저들에게서 풍기는 피비린내는 말 그대로 사특했다.

청현진인은 안력을 돋궜다.

“으음!”

자세히 보니 단지 복색의 색이 붉은 게 아니었다.

전신을 피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제야 청현진인은 저 멀리 제단처럼 보이는 위에 시체처럼 놓여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허어!”

“저 미친……!”

“잠깐만, 저건 약수삼걸 중 한 명이 아닌가?”

“분명 귀총에 같이 들어오고 보이지 않던데…… 어찌 저리…… 죽은 것인가?”

다들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지금껏 미로에서 서로 뒤얽히고 싸우다가 지하 광장으로 떨어졌는데, 웬 이상한 놈들이 자기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냥 이상한 것도 아니다.

피를 다 뒤집어쓰고, 제단 위에 미로에서 사라졌던 무인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지 않은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관성검을 비롯해 무성적마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중인들 사이에서 혼란이 가중됐다.

그때 천무백의 나직한 목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대충 짐작하던 게 맞았군.”

“소협!”

“진인, 적혈검귀의 비급을 노리고 온 것이냐고 물으셨지요?”

천무백이 좌중을 둘러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적혈검귀의 비급 같은 건 없습니다. 이곳은 저놈들, 혈사문이 무인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함정일 뿐이니까요.”

“혈사문!”

청현진인이 곧바로 반응했다. 비단 청현진인뿐만이 아니었다. 혈사문이 거론되자 한쪽에서 상황을 관망하던 종남파의 얼굴들도 딱딱하게 굳었다.

“……혈사문?”

“혈사문이 뭐야?”

“그놈들이 뭔데?”

“아! 소림에서 발표한 놈들 아니오? 역병을 퍼뜨리는 놈들!”

다른 중인들은 혈사문이란 이름을 떠올리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하나 결과는 어찌 됐든 같았다. 화산과 종남은 잔뜩 경계 어린 시선으로 피풍의 사내들을 노려봤다.

피풍의 중 하나가 천무백을 쳐다보며 말했다.

“허어…… 당신이 천룡검협이오?”

“천룡검협!”

“천룡검협이라니! 소림에 나타난 그 기재 말이오?”

“그러고 보니 호성노괴를 단번에 날려 보낸 이가 저 청년 아니었나?”

좌중의 시선이 쏠리는데도 천무백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정면을 노려보는 그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한 무표정.

그제야 청현진인은 무언가 느껴졌다.

‘내가 단단히 오해했구나!’

사람들의 시선과 온갖 수군거림에서도 천무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굳건하게 서서 적들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표정에선 한치의 사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청현진인은 가슴이 크게 뛰었다.

‘애당초 천 공자는 비급 따위에 욕심을 낸 게 아니구나!’

그랬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과 달리 천무백은 적혈검귀의 비급 따위엔 애당초 욕심내지 않았다.

저 표정을 보라.

사심 하나 깃들지 않은 표정에선 무언가 대의(代議)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보아하니 이게 혈사문의 함정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고, 그런데도 천무백은 위협을 무릅쓰고 들어왔다.

무슨 이유겠는가?

본인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아무런 이득도 없다.

오로지 혈사문, 그들을 멸하고 나아가 혈귀곡을 치겠단 각오가 아니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청현진인은 다소 자신이 부끄러웠다.

물론 천무백의 머릿속을 들여봤다면 부끄러움은 전혀 느끼지 못했으리라.

‘썅. 저것들이 혹시 다 챙긴 건 아니겠지?’

천무백은 조급함을 꾹 눌렀다.

이곳이 전진성단임을 확인했고, 하물며 그걸 만든 이가 누군지 유추해 냈다.

만일 유추한 바가 정답이라면, 천무백은 여기서 검의 끝자락을 엿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동빈!’

강호의 팔선 중 한 명으로 숭상받으며, 검선이라 불렸던 도인.

전진을 세운 왕중양의 스승이기도 했고, 당대 제일의 검객이었다.

‘아니지. 굳이 따지면 나랑 비등했으니까 당대 제이의 검객이라 해야지.’

하여튼 기억 속의 여동빈은 모든 전생을 통틀어 가장 싸우기 껄끄러웠던 호적수였다.

어느 순간 여동빈은 도를 닦는다고 사라졌는데, 이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그가 신선이 되어 선계로 갔다는 얘기만 가득했다.

천무백의 얼굴에 살짝 씁쓸함이 지났다.

‘여씨 이놈. 제 혼자 검극을 보고 우화등선 한 거냐.’

아마 그러리라.

그러니 천무백은 여동빈이 이곳에 남긴 무언가를 원했다.

그렇다면 먼저 앞서간 친우이자 맞수에게서 무언가 더 배울 수 있을 테니까.

‘오랜만인데.’

이런 건 정말 오랜만이다.

무수히 많은 삶을 살아오며 세상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뒀다고 여겼지만.

아직 새로운 배움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저놈들을 모두 족친다.’

혈사문? 뭐 어차피 족칠 놈들이었고.

만일 쟤들이 뭘 가져갔으면, 당연히 뺏어야지. 암.

천무백이 그렇게 생각할 무렵. 청현진인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자책하며 앞으로 나섰다.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인가!”

“흐음. 화산이라…… 가장 기대한 제물인데, 그중 수호검이라니. 좋군.”

혈사문 중 하나가 키득댔다.

“우리가 무얼 원하겠는가.”

“그대들의 목숨과 평생 모아온 내공을 원할 뿐이지.”

“여기서 모두 말이야.”

다른 중인들은 몰라도 화산과 종남은 소림으로부터 자세한 연락을 받았다.

혈사문이 독을 퍼뜨려 흡정마공의 제물로 삼는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곳에 무인들을 끌어모은 건 다 제물로 삼기 위해서이리라.

채채채챙!

화산 뿐 아니라 종남까지 모두 검을 꺼내 들었다.

종남파의 종남풍검, 전현이 크게 웃으며 나섰다.

“흥! 종남과 화산이 우스워 보이더냐?”

“쯧쯧. 장로 자리에 있지만 어린 건 숨길 수가 없구려. 우리가 설마 화산과 종남, 그리고 저기 무성적마 같은 고수들도 끌어들이는데, 아무것도 준비 안 했겠소?”

그때였다.

쿠구구궁!

광장에 모인 중인들이 순간 당황했다. 주위의 기류가 크게 요동쳤다.

기감에 민감한 청현진인이 가장 먼저 눈치채고 반색했다.

“진법!”

“광륜멸겁진이란 거요. 아무리 강대한 내가고수라도 단전을 묶어둘 수가 있지.”

그 말대로였다.

중인들은 내공을 급히 운용하다가 턱턱 막히는 걸 체감하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물며 청현진인과 종남풍검, 그리고 국보까지 같은 상황이었다.

“흘흘. 강호 동도 여러분, 모두 우리 혈사문의 제물이 되어주셔서 고맙소!”

그때였다.

“뭐라는 거야. 저 새낀.”

말에는 힘이 있다.

사람들의 모든 이목을 빼앗는 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가장 앞서 있던 혈사문의 삼장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천룡검협.”

“그쪽 장로들이 내 손에 죽었는데, 아직도 감이 안 잡혀?”

“……아무리 그 대단한 천룡검협이라도, 진법에 갇혀 내공을 못 쓰면 그저 칼 잘 쓰는 낭인일 뿐이오.”

천무백은 삼장로를 빤히 응시했다.

싸늘한 웃음소리 흘러나왔다.

“뭐, 이건 내공 아니냐?”

스릉.

검집에서 뽑힌 천무백의 검에서 새하얀 검기가 서서히 타올랐다.

“자. 죽었다고 복창해라. 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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