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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생-51화 (51/318)

<검신재생 51화>

51. 난 그런 적 없는데?

“와, 진짜 여기만 보면 나라가 망하는 조짐이 보이네.”

능허가 혀를 쯧쯧 찼다.

“무량수불…… 모두 다 유랑민이지요.”

청현진은 그저 안타까운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천무백 일행은 굳이 관도를 통해 움직이지 않았다.

관도에는 유랑민으로 가득해 길이 막혀 도통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셋 다 경공을 아는 무림인이니 관도가 아니라 산과 숲을 통해 직선 경로로 움직이는 게 차라리 빨랐다.

한마디로 외진 지름길을 통해서 움직이는데도, 천무백의 눈앞엔 참상이 펼쳐졌다.

“섬서에서 하남으로 오는 길을 관아에서 완전히 막았으니, 어떻게든 다른 길을 통해 넘어오는 것이겠지요. 무량수불.”

청현진인의 말대로였다.

“소림에만 가면! 신의가 있고 치료약이 있다!”

숲과 산으로 움직이는 유랑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유를 알만했다.

섬서까지 뻗친 하남신의의 명성이 위험을 무릅쓰게 한 것이다.

“맹수뿐만 아니라 산적과 강도의 위험이 있을 텐데, 그걸 무릅쓰고 움직이는 것이지요.”

“거, 혈귀곡 놈들도 나쁜 놈들인데, 아무래도 혈사문 이 새끼들은 반드시 족쳐야겠습니다.”

“능허야,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혈사문 애들은 천하의 쓰레기가 맞구나.”

“어허. 내가 건달이긴 해도, 마귀는 아닙니다. 날 뭐로 보고.”

다행히도 역병은 차츰 세가 약해질 게 자명했다.

약선은 치료약의 조제 방법을 관아와 약방에 널리 퍼뜨렸다.

효능은 확실했다.

천무백이 치료하고 돌봐 줘야 겨우 완치가 될 정도였는데, 이젠 그저 약 한 알만 먹으면 다 털고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근원을 없애야지.”

혈사문이 존재하는 한 이 역병이 완전히 사라질 일은 없다.

하물며 치료약이 나왔으면, 놈들은 더 괴악하게 독을 퍼뜨릴 만한 놈들이다.

‘제법 좀 바쁘겠군.’

섬서에서 할 일이 좀 많지.

첫째는 혈귀곡 추적.

둘째는 섬서성의 하오문 지부와 접점을 만들어 두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혈사문의…….

‘완전한 절멸(絶滅).’

비단 혈귀곡 뿐만 아니라 섬서에 온 김에 천무백은 혈사문을 아예 지워버릴 각오를 했다.

만일 이번 삶에서 검극을 보지 못하고, 또다시 윤회를 이어나간다면.

더 무서워진 혈사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천무백이 무서워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귀찮은 적은 질색이다. 차라리 마교 놈들처럼 그냥 호쾌하게 한판 붙는 게 낫다.

“하아. 눈치 보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겠구만.”

능허의 말에 천무백이 피식 웃었다.

“네가 아니라 내가 하겠지.”

“왜 이러십니까. 나 능헙니다, 능허. 이제 좌수로도 제법 한가락 합니다.”

“실력 한번 볼까?”

“보여주고 싶은데 마땅히 덤벼드는 산적도 없네요. 칼 차고 있어서 그런가.”

“그럼 나랑 한판 붙을까?”

“갑자기 왜 난이도가 확 뜁니까?”

“아니. 한번 붙자고. 네놈 실력 좀 봐야겠다.”

능허는 일전처럼 농담인 줄 알고 받아치다가 천무백의 진지한 표정을 보곤 입을 닫았다.

순간 등골이 싸늘하다 못해 차갑게 굳어 버렸다.

“이런 씨…… 바.”

* * *

장안.

하오문은 중원 곳곳에 지부를 두고 있다.

그 중 섬서성의 지부는 장안에 있었다.

하오문의 섬서분타는 지부중 가장 정보망이 넓은 편에 속했다. 하여 섬서 분타주의 힘과 영향력도 제법 강했다.

하나 최근 섬서 분타주 임홍은 고민에 빠졌다.

“이 빌어먹을 것들. 대체 어느 족속들이야? 흑도야 뭐야?”

하오문에 소속된 기루와 객잔들이 어느 순간부터 정체불명의 흑도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크게 개의치 않았다.

흑도들이 새로 자릴 잡을 때 가장 먼저 시도하는 게 상권을 손에 넣는 거니까.

그래서 적당히 대응했다. 섬서의 모든 기루와 객잔이 하오문 소속인 것도 아니니까. 적당히 경고만 주려고 했다. 하오문 소속이 아닌 주루나 객잔에만 손을 대라고.

한데 그들은 경고를 무시했다.

섬서의 모든 객잔과 주루, 기루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임홍은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했지만 이내 경악했다.

“그저 그런 흑도가 아닙니다! 이 새끼들, 제대로 된 무림인들이 끼어 있어요!”

하오문도들이 속속 죽어 나갔다. 그제야 임홍은 단순한 거대 흑도가 아니라 무림의 어느 정체불명의 단체가 손을 쓰고 있음을 깨닫고 조사에 착수했다.

한데 공교롭게도 섬서에서 역병이 퍼졌다. 하오문의 정보망이 순간적으로 헐거워졌다.

“본단에 도움을 요청해야하나…….”

그럴 수야 없다. 고작 흑도 하나 상대 못했다고 하면, 그는 섬서 분타주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하남의 소림에서 소식이 전해져 왔으니 임홍으로선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뭐? 혈사문? 이게 역병이 아니라 독이라고?”

혈사문이 독을 퍼뜨리는 방식까지 자세히 알려졌다.

임홍은 이 정체불명의 괴집단이 혈사문임을 깨달았다.

임홍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보고서를 살폈다.

“하남. 그래. 어차피 이리된 거 하남에도 정보망을 확충한다!”

그간 하오문은 하남성에서 영향력을 크게 키우지 않았다.

유일한 거대문파인 소림은 봉문 중이었고, 흑도의 세가 유난히 강한 편이었으니까.

하여 임홍은 하남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루를 포섭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한편 다른 보고서들을 살폈다.

“봉문을 거두자마자 소림에 500여 이상의 무인들의 습격이 이뤄짐.”

보고서를 읽던 임홍은 순간 자세를 바로 했다.

‘500명?’

근래 저 정도의 무인이 동원된 적이 있던가?

임홍의 눈이 빠르게 보고서를 훑었다.

“혈사문? 혈귀곡? 젠장. 어떤 놈들이야? 혈사문이 혈귀곡의 일개 조직이란 얘긴가?”

임홍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청현진인과 혜량대사, 무소선사가 나섰지만 감당하기 힘든 적이 나타났고, 그 적을 천룡검협이란 기재가 해치웠다?”

솔직히 말해 이 보고서가 그가 평소 신뢰하던 수하에게 들어온 게 아니었다면, 임홍은 그걸 갈가리 찢었으리라.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혜량대사와 무소선사는 봉문한 소림의 실권자들이니, 실력이 확실치 않다.

그래도 소림방장과 나한각주라는 위치를 고려하면 적어도 절정에서도 최상급일 터.

하물며 청현진인은 화산의 수호검이라 부르는 검객이지 않은가.

그들 셋이 동시에 애를 먹는 상대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걸 이제 약관도 채 안 된 기재가 막아 냈다?

“으음!”

이거 심상치 않은데.

임홍은 아무래도 하남에 정보망을 확실히 더 늘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면 섬서에서 세가 줄어든 일을 본단에서 알아도, 임홍에게 책임을 물지는 않으리라.

‘아니지. 내가 먼저 가 보는 것도.’

소림에 직접 가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리라.

‘그리고 혈사문, 이딴 놈들이랑 엮이는 건 좋지 않다.’

이미 엮일 대로 엮였지만, 임홍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혈귀곡의 하위조직으로 예상되는 혈사문.

정보가 확실하다면 소림에 일어난 흉사는 혈귀곡이란 놈들 일터.

그런 무시무시한 놈들이랑 엮이면 좋은 꼴은 못 본다.

하오문은 정사지간의 문파다.

사회의 하류인생인 하오문이 살아남은 이유는 그저 위험 앞에선 몸을 바싹 숙여왔기 때문이다.

강대한 적? 그냥 도망치면 그만이다.

“좋아. 여길 뜬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혈사문이든 뭐든 화산문이나 종남에서 해결하겠지. 그때 다시 섬서에서 정보망을 구성하면 문제없어. 그리고 천룡검협. 이 친구에 대한 정보 좀 캐내야겠어.”

그간 정도 무림에서 이름을 날린 기재는 별로 없다.

더구나 등장하자마자 천룡검협이란 별호라니.

임홍의 직감이 말했다.

이거 거물이라고. 임홍은 천룡검협이란 네 글자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가장 비싼 정보가 되겠군.’

한시라도 빨리 하남으로 가기로 했을 때.

수하가 창백한 얼굴로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분타주님! 큰일 났습니다!”

“어엉?”

임홍이 순간 당황했다.

하오문이 아무리 하류인생이라고 해도, 엄연히 문파다.

분타주의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윗 서열의 놈들이다.

한데 지금 방에 들어온 녀석은 고작 점소이로 위장한 애가 아닌가?

뭐 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안하무인인 건 말도 안 되는데…….

“뭐냐. 네 위에 있는 애들 다 어디가고?”

“호문단주님은 지금 밖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뭐? 싸워?”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호문단은 섬서분타주의 유일한 무력집단인데, 단주가 싸우고 있다고?

그 말은 곧…….

“무성적마, 관성검, 호성노괴 등이 지금 찾아와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걸 막으려고 호문단주님이……!”

“왜 그 자식들이 여길 와서 싸워?”

임홍이 황당한 음색으로 소리쳤다.

튀어나온 셋의 이름은 섬서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고수들이었으니까.

‘그런 놈들 셋이 동시에 찾아와서 싸우고 있다고?’

뭐지? 무슨 정보를 캐내려고 온 거지?

임홍은 혼란스러웠다.

“그게…… 적혈검귀의 장보도가 발견됐답니다! 섬서에서!”

“뭐?”

임홍이 순간 멈칫했다.

“장보도?”

* * *

“심상치 않은데?”

섬서성의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천무백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심상치 않지요. 역병 돌고 난리가 났는데. 쯧. 어디 객잔이나 제대로 운영할련지…….”

그게 아니었다.

‘이건……묘한 열기인데.’

천무백은 묘한 기류를 느꼈다. 능허가 말한 것처럼 역병 같은 게 아니었다.

“최근 섬서에서 무인들끼리 싸움이 일어날만한 일이 있습니까?”

“글쎄요. 사실 역병 앞에선 정파고, 사파고, 다들 난세인지라…… 또 섬서엔 우리 화산가 종남이 있으니 사파나 흑도들이 득세하지 못합니다.”

“흐음.”

청현진인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론 사실 감탄했다.

지금 천무백이 말하는 심상치 않은 기류는 능허의 말대로 그저 역병으로 난리 난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청현진인도 아주 살짝이나마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뜨겁군.’

들뜬 분위기였다.

뜨겁게 서서히 달아오르는 분위기.

역병의 혼란 때문에 느껴지는 기류가 아니었다.

괜히 천무백이 무인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는지 물어본 게 아니다.

분명 이건 무인들이 모이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건 특별히 기감이 엄청나거나 해야 느껴지는 게 아니다.

‘도대체……강호 경험이 거의 없는 나이가 분명할텐데. 이 정도는 되어야 과연 창천검신의 후인이란 말인가?’

그저 오래 쌓인 관록과 강호의 경험이다.

청현진인이 가냘프게 느낀 걸, 천무백이 느낀 것이다.

“능허야.”

“네.”

“좀 돌아다니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와라.”

“거참……. 뭔 일이 있다고. 알겠수다.”

능허는 툴툴대면서도 곧장 움직였다.

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떠났는지 텅텅 비었지만, 그래도 운영하는 객잔도 있었고 남은 사람들도 몇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능허가 곧 돌아왔다.

“근래 무림인들이 많이 보인다고는 하네요. 여기가 섬서로 들어가는 쪽이라 그런지, 섬서성의 무림인이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 오는 무림인들이 많아졌답니다.”

“왜?”

“장보도가 발견됐답니다.”

“장보도?”

“네. 그러니까 무림인들이 모여들죠. 안 그러면 역병이 퍼진 섬서에 모여들겠습니까. 그것도 그냥 장보도가 아니랍니다. 바로 400년 전에 대단했던 적혈검귀의 장보도라네요.”

“…….”

한참 얘기를 늘어놓으려 했던 능허는 순간 멈칫했다.

능허는 천무백의 표정을 보고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뭐지?’

능허는 저토록 심각한 표정을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적혈검귀의 장보도가 왜?’

물론 엄청난 사건이긴 하지만, 그게 천무백이 무슨 상관인가?

하물며 저렇게 심각해 하다니. 하나 능허는 이전처럼 농담할 수 없었다. 천무백의 표정을 보고 건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 양반이 이러지?’

천무백은 심각했다.

그럴 수밖에.

‘나는 장보도를 남긴 적이 없는데?’

천무백은 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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