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49화 (49/318)

<검신재생 49화>

49. 우리가 지켜 준다니까?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소림은 비상사태에 준하는 수준으로 바쁘게 돌아갔다.

무너지고 파괴된 전각을 다시 보수했다.

적불암에는 후대를 위해 남겨놓은 재화가 제법 있었다.

아무리 무소유와 무욕을 자처하는 소림이라도, 엄연히 무파이기에 적당한 금전은 필수였다.

거기에 송진문과의 관계 개선도 큰 도움이 되었다.

“큰아버지의 불찰을 사과드립니다.”

송진문 내부의 권력다툼에서, 본래 백공양의 아들이 패배하고 조카가 승리하고 소림으로 달려와 납작 엎드렸다.

“정체불명의 사파와 접촉한 건 오로지 백공양뿐이며, 저희 송진문은 불심을 갈고 닦으며 소림의 속가로서 남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송진문주. 부처의 자비는 더 넓을 따름이지요.”

실제로 혈귀곡과 연관된 건 백공양 하나였다.

백공양과 뜻을 함께했던 무인들이 사건 당일 대부분 죽었다.

송진문은 기습에도 굳건함을 자랑한 소림의 보복이 두려우니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엎드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송진문은 속가중에서도 재정이 탄탄했다.

그렇게 들어온 금은으로 소림은 재건에 나섰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만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그간 소림에서 실전된 각종 무공을 되찾았지만 그걸 익히는 데 시간은 많이 필요했다.

하물며 명문정파로서 적에게 본단이 공격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현재 소림의 인원이 무척 쪼그라든 상태고, 나한승들의 피해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와중 혈귀곡과 혈사문에 대한 추적은 요원한 일.

더구나 소림의 무공 특성상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중요했다.

교대로 무공을 익히며 일을 본다고 해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으음. 우선은 나한승들 위주로 실전된 무공을 익히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또한, 약선 어른의 도움을 받아 대환단 제조에 힘을 써 봅시다. 비록 비급이 있지만, 제조가 그리 쉬운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무소선사의 조금 불안함이 담긴 물음에 혜량대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외부인에게 대환단의 제조법이 알려지는 건 분명 금할 일이지만, 약선 어른은 믿을 만한 분이시지요. 제가 직접 부탁하겠습니다.”

대환단 제조만 제대로 이뤄져도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본래 대환단은 무척 희귀해 큰 공을 세운 인물이나 소림의 간부급들만 복용할 수 있었다.

하나 혜량대사는 가능하면 나한승들에게 한 알씩 복용할 수 있도록 힘써 볼 생각이다.

송진문으로부터 들어온 금은이 있으니 어느 정도 무리하면 충분히 가능할 터.

“그리고 청현진인은 어떻소?”

“약선께서 내주신 약을 먹고 정양 중입니다.”

“다행이구려. 아무래도 이번 일은 비단 소림이 아니라 화산을 비롯해 정도무림이 나서야 할 일이니. 진인의 조력이 필요하오.”

이번 일에 대해서 혜량대사는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과거 정마대전 때 그랬듯, 소림 홀로 이겨 낼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청현진인은 그런 면에서 큰 조력이 될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날 있던 일을 밝히고 공조에 힘써 줄 인물이니까.

“천 공자는 아직도 참선동에 있소?”

참선동은 예부터 폐관수련을 하던 장소였다.

“그렇습니다. 아직까진 소식이 없습니다.”

“알겠소. 하면 무소선사께선 나한승들의 지도에 힘써 주시오.”

무소선사가 물러났다.

혜량대사는 방안에 남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수많은 고민이 이어졌고 그 고민은 끝내 천무백에게 도달했다.

‘천룡검협이라…….’

아직은 과한 별호라는게 세간의 중론이지만, 어차피 그것도 시간문제일 터.

혜량대사는 그 별호가 곧 천하를 진동케 할 것을,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 * *

천무백은 조용히 참선동을 나섰다.

일주일간 그는 폐관에 돌입했다.

사실 소림 전체가 바쁘고, 당장 혈귀곡과 혈사문에 대해 추적해야 했으나 천무백에겐 이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결과만 보면 매우 만족스러웠다.

“약선. 그 양반 약 만드는 건 녹슬기는커녕, 더 나아졌네.”

천무백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혜량으로부터 받은 대환단의 개수는 정확히 다섯 개였다.

한데 다섯 개를 약선에게 맡겼더니, 고작 한 알로 돌아왔다.

천무백은 처음에 사기를 당했나 했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다섯의 대환단을 하나로 만들었다. 단순한 수치만 따지면 다섯 배의 효능이어야 하지만, 놀랍게도 그 배였다.

“감 안 죽었네.”

심지어 약선은 천무백이 상단전을 활용하는 걸 깨달았다.

대환단은 천하에 둘도 없는 영약이 분명하다. 다만 그건 하단전에서만 증명된 효능이다.

약선은 그것을 상단전의 활용에 맞게 더 특별하게 재조합해서 내놓았다.

실제로 복용한 이후, 천무백은 꼬박 일주일 동안 대환단의 공력을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과는 최고였다.

“이 정도면, 하단전으로 따지면 적어도 절정에서도 상, 아니 최상 정도인가?”

순수한 내공의 총량만 그렇다.

만일 여기서 내공의 순도와 위력을 따지자면?

천무백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내공의 총량은 천무백의 유일한 약점으로 봐도 무방했다.

상단전이란 점, 그리고 기본적으로 축공이 느리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일전에 구성과 십팔성이 도주했을 때, 쫓지 못했던 이유가 내력의 소모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한데 이제 그 약점이 어느 정도 극복된 것이다.

“더구나 경천혼공 요놈도 예상치 못하게 이빨을 숨기고 있었다 말이지.”

사실 영약의 완전한 흡수는 나흘 만에 끝났다.

시간을 더 소모한 건 그간 깨우친 바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경천혼공.

도가와 불가의 내공이 기본 바탕이 되었기에 경천혼공은 비교적 잔잔하다.

단시간에 순간적인 폭발력을 내는 무공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일전의 싸움에서 그 이론은 틀렸다.

분노에 휘몰아쳐 천무백의 내력은 일전과 다르게 난폭했다.

거기서 터져나오는 폭발력은 마교의 내공심법보다 부족한 게 하나도 없었다.

하여 천무백은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몇 가지 무공을 꺼내들 수 있었다.

천무백은 천천히 경천혼공을 운용하면서 한 발짝 내딛었다.

느릿느릿한 움직임.

하나 내딛는 걸음마다 묵직하기 짝이 없는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힘이 일정 기준치에 달한 순간.

파앗!

그 누구도 천무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건곤창응보(乾坤不動步)가 유유히 흘러나왔다.

* * *

“정말로? 정말 잘 해결됐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여기 도련님의 서찰입니다.”

천유하는 서찰에 적힌 필체를 보고 단번에 표정이 밝아졌다.

서찰을 읽어 내려가는 천유하의 눈동자가 점점 붉어졌다.

얼마나 걱정했던가.

표국을 어떻게든 지탱하던 천유하에게 소림이 공격당했단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소림에는 아버지와 표사들, 그리고 동생 천무백이 있지 않은가.

다행히도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다친 사람은 있긴 해도 목숨을 잃은 자는 없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동생이 무사하단다. 심지어 사건의 범인을 찾았고, 소림으로부터 오해에 대한 사과를 받았다니 모든 일이 해결된 셈이다.

“다행이구나. 정말로.”

“부, 부국주님. 도련님이 무사하다는 게 사실입니까?”

천유하는 황급히 뛰어온 점박이에게 빙그레 웃어줬다.

천무백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게 바로 점박이였다.

“그래. 모두 무사하다구나.”

“아이고. 상제님. 감사합니다.”

표국의 분위기는 단번에 좋아졌다.

구금당했던 표사들도 모두 무사하다는 게 알려지니 그간 암울한 분위기가 모조리 사라졌다.

“한데…….”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문제는 아니고, 조금 의아한 게 있구나.”

천유하가 미간을 좁히며 서찰의 말미를 가리켰다.

“여기에 곧 표국이 바빠질 것이니 잘 대비하라고 적어놨구나, 무백이가.”

“바빠져요?”

“그래. 오해를 풀고 소림도 공식으로 사과했으니 표국 운영엔 도움이 되겠지만.”

천유하는 쉬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급속도로 나빠진 표국 상황이 좋아질 일은 당연하다. 그간 쌓아놓은 실적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서찰에서 천무백은 이왕이면 표사들을 더 모집해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까지 덧붙여 놨다.

하면 일전보다 더 바빠진다는 얘기인데, 천유하로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부국주님, 황가장에서 경비 업무 계약을 제의해 왔습니다.”

“황가장에서?”

황가장이라하면 얼마 전에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해 온 곳이 아니었던가?

천유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국주님! 이가장에서도 경비 계약을 의뢰해 왔습니다.”

“홍성파에서 표행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별령산장으로부터 표행 의뢰입니다.”

“관아에서도 표행이 4개가 들어왔습니다.”

“……!”

물밀 듯이 들려오는 의뢰.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파리만 날리던 걸 떠올리면 놀라운 변화였다.

심지어 일전에도 따내지 못했던 대형의뢰가 먼저 들어왔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천유하는 이어 전해진 소식에 경악했다.

“뭐라고? 아버지가 무슨 계약을 따냈다고?”

“그게…… 경비 업무입니다.”

“그러니까. 어딜 경비한다고? 내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천유하는 이어진 대답에 입을 쩍 벌렸다.

“소림입니다.”

* * *

“섬서로 향했다…….”

“란아가 추적한 것이니 확실할 거다.”

천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백이 너무 쉽게 수긍하자 오히려 약선의 얼굴이 묘하게 바뀌었다.

“왜 이리 쉽게 받아들이지?”

“창천검신으로부터 경신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보아하니 그걸 손녀딸에게 전수하신 것 같은데요.”

“이런 참. 진짜 창천검신의 후인이 맞구나.”

당연하지. 내가 창천검신인데.

천무백은 한때 약선에게 경신법을 하나 알려 준 적이 있었다.

세상에서 약선의 약을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잘 도망치라고 전수해 줬다.

그 경신법이 약선을 몇 번이고 살렸다. 하여 천무백이 소림으로 와달란 부탁에도 그가 망설이지 않고 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면 섬서로 가야겠군.”

천무백은 결정을 내렸다.

혈귀곡의 꼬리를 잡았다.

바로 약선의 진법을 뚫고 도망친 노인네.

약선이 급하게 만든 진법이라고 해도, 그걸 돌파했다는 것 자체가 범상치 않은 실력자란 얘기다.

“지금 놓치면 아예 꽁꽁 숨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흔적을 잡은 지금 쫓아야 한다.

“하면 동행하시지요, 소협.”

그때 청현진인이 나섰다.

청현진인은 약선의 약을 먹고 내상을 털어냈다.

“본도도 화산으로 돌아가 그간의 자세한 내막을 알려야 하니 말입니다.”

천무백은 고갤 끄덕였다.

어차피 섬서로 간다고 해도, 추적이 쉽지는 않다.

그 넓은 중원 땅에서 사람 하나 찾기가 어찌 쉽겠는가.

하면 큰 단체의 조력이 필요한데, 당장 떠오르는 건 화산이다. 더구나 청현진인은 소림에서 모든 일을 똑똑히 보고 겪었다. 하물며 천무백에 대한 신뢰도 확실했다.

그러니 천무백도 그와 같이 움직이는 게 훨씬 나으리란 사실을 잘 알았다.

“우리 소림에서도 사람을 보내야 할 터인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소선사가 다소 난처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 청현진인과 얘기를 나눠 혈귀곡에 대한 공조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화산으로 가서 장문인과도 얘기를 확실하게 해야할 터.

그러려면 소림에서도 제법 무게감 있는 인사가 가야 했으나, 오랜 봉문을 한 소림에서 인물이 없었다.

무소선사 정돈 움직여야 하지만, 문제는 지금 소림이 터무니없이 바빴다. 적불암에 있는 무공들을 익히는 데만 해도 한세월이고, 혹시 있을 혈귀곡에 대한 대비도 철저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부족했다.

모든 얘기를 듣고 있던 천무백이 갑자기 나선건 그때였다.

“그러니까, 혈귀곡의 공격이 있을지 모르니 대비하느라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그렇소. 내가 아니면 적어도 나한각의 부각주 정돈 직접 가야 하는데, 그가 빠지면 대비태세가 너무 헐거워진다오.”

천무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외주 맡기시죠.”

“……외주?”

“경비, 순찰을 외주로 두란 얘깁니다.”

“…….”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은 듯, 좌중은 침묵했다.

천무백이 조금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표국이 하는 일이 뭡니까? 표행하고, 또 어디 경비하고, 요인 경호 아닙니까. 우리한테 의뢰하시죠.”

“……!”

“아. 우리가 소림 지켜준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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