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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생-26화 (26/318)

<검신재생 26화>

26. 말했잖냐. 대가리 하라고

중원에는 온갖 기상천외한 무공이 존재한다.

당연히 금제법도 다양하고 가지각색이다.

혈도를 짚어 신체의 활동을 제한하는 금제법은 웬만한 문파라면 소유하고 있다. 특징은 다르지만 말이다.

혈도금제법은 파훼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신체와 혈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 충분히 준비된 내력. 혈도를 짚은 사람보다 깊은 공력이라면 웬만해선 풀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정신에 가하는 금제법이다.

파훼하는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하여 과거 소림의 유명한 고승이 금제법을 파훼하는 무공을 창안했다.

항마를 주체로 하는 소림이었기에 가능했다.

고승은 그 무공을 일컬어…….

“백색심안이란 거다.”

침을 질질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육성은 제정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긴, 어찌 제정신을 유지하겠는가.

새하얗게 변한 천무백의 동공에 혼백이 꽁꽁 찢기는 기분이거늘.

상단전에서 흘러나온 공력이 동공에 맺혔다.

백색에 푸른 기운이 어렸다. 괴이한 광경이었다.

“한데 말이야. 이런 좋은 무공이 소림에서 실전됐거든. 왜 인줄 알아?”

“끄으으으으.”

육성이 사지가 쫙 펴진 개구리처럼 경련했다.

천무백의 동공이 더 새하얀 빛을 발했다.

“상대의 혼백에 가해진 금제를 찾느라, 혼백을 갈가리 찢고 또 찢어서 그 안에 숨겨진 걸 찾거든. 그러니 혼백이 정상이겠어? 하고 나면 금제를 풀기는 푸는데, 얼마 안 가서 미쳐 버리더라고.”

그 순간까지도 육성은 아직 정신 줄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

입은 열리지 않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천무백의 새하얀 동공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우수수 올라왔다.

저 끔찍한 말을 정말 대수롭지 않게 담담하게 말하는 것을 보라.

그 지독한 공포심에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혀를 깨무는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신체는 자신의 의지를 벗어났다.

“그래서 이름이 바뀌었어. 소림에서 만들었지만, 백색마안(白色魔眼)이라 불리고 소림에서 폐기됐거든.”

소림에서도 극악하다하여 폐기된 무공.

한데 그것을 왜 천무백이 알고 있단 말인가.

정신을 잃어 가는 육성의 동공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애석하게도 천무백은 그 의문을 해결해 줄 만큼 자비롭지 못했다.

“자. 이제 술술 불어 보실까요.”

한층 더 동공이 새하얘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악!”

* * *

“…….”

“하. 진짜 우리 주군 너무하시네. 아주 막 그냥, 이제는 벽에 똥칠하는 노인네도 치우라 하시고. 어이, 허 표사.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능허의 물음에도 허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실실 웃으며 기어 다니는 완세검이 있었다.

“아니, 정정해야지. 완세검이었던 양반이지. 어휴.”

능허는 혀를 쯧쯧 찼다.

“도대체 뭔 지랄을 해야 사람이 이렇게 되냐?”

“그러게 말이오.”

“거참. 차라리 저번에 온 구진해 놈처럼 스걱 잘라 버리던가. 아, 근데 진짜 이놈이 혈사문이었소?”

“맞소. 혈사문의 삼장로라는군.”

“삼장로라……. 참. 완세검 육진량이 혈사문이라니.”

능허는 혀를 내두르며 육성을 들어 올렸다.

“어찌하려고?”

“처리해야지. 완세검이 연화루에 왔다가 미쳐서 나갔다는 소문 돌면, 난 뭐 먹고 장사하라고?”

“…….”

“이런 짓은 나에게 맡기쇼. 이런 일은 치가 떨리도록 많이 했으니까.”

“알겠소. 처리하고 주군께 가 보시오.”

“엥? 날 찾아?”

허성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능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천무백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주 만나기에는 무언가 부담스러웠다.

“형씨. 그쪽은 안 부담스럽소?”

“부담?”

“난 곁에만 있어도 중압감이 느껴지더라고. 마치 내가 흑심방 막내일 때, 방주를 처음 만났을 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음. 그런 게 좀 있는 거 같소.”

“후우. 뭐, 때리진 않겠지. 알겠소. 후딱 가 보지.”

능허가 완세검을 엎고 나간 사이, 허성은 묵묵히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특히 완세검의 기습을 천무백이 성공적으로 막아 내고, 단 한 번 반격하여 쓰러뜨린 장면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솔직히 말해 그 상황에서 육성이 보여 준 한수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상황파악 하자마자 출수한 좌수.

손에 시린 강맹한 공력, 단숨에 최적의 경로를 파고드는 손속.

자신이었다면 여지없이 목이 꿰뚫렸으리라.

한데 천무백은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내가 육진량이었다면?’

허성은 다시 한번 복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황에서 천무백의 역습을 막아 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몇 번이고 따라 해 봤지만, 불가능했다.

‘이거야 원. 당분간 미친 듯이 수련해야겠군.’

피가 끓었다.

그간 보지 못했던 높은 경지의 공방.

고작 두 수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허성의 눈이 개안하는 기분이었다.

‘반드시.’

맹세했다.

천무백의 검이 되고, 가장 앞에 서며, 천무백 대신 칼을 맞겠다고.

사실 천무백은 호위가 필요 없을 정도다.

천유하의 시선 때문에 허성이 호위를 맡고 있지만, 사실 누가 누굴 호위한단 말인가.

하나 허성은 천무백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본인이 스스로 맹세한 것처럼, 천무백에게 충성을 바치며 했던 말처럼.

앞에 서서 먼저 칼을 맞으려면, 적어도 그만한 실력은 되어야 했다.

허성은 눈을 번뜩였다.

‘내가 조금 전의 육진량이었고, 주군의 역습을 단 한 번이라도 막아 낼 수 있다면?’

그 아찔한 역습.

그걸 막아 낼 실력이라면, 충분히 대신 칼을 맞을 만한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허성은 육성이 있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본인이 육성이 된 것처럼, 손을 휘두르며 그 상황을 끊임없이 복기하고 따라 했다.

* * *

천무백은 연화루의 특실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더럽게 피곤하네.”

온몸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오랜만이다.

솔직히 쉽지 않았다.

육성은 분명 고수였다.

순간적으로 좌수를 출수해 기습하는 건 정말 빨랐다.

천무백이 아니었다면 당했을 거다.

육성을 처리하면서 주입한 공력도 상당한 양이다.

경천혼공의 효능이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고 해도, 아직 쌓인 내공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진 않았으니까.

다행히도 정순함의 순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라 소량만으로 여타 내공심법의 동일한 공력보다 수배에 달한 위력을 낼 수 있다.

문제는 백색심안, 아니 백색마안을 사용한 이후다.

“소모가 극심하구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운이 가득했던 상단전이 텅 빈 느낌이었다.

“웬만해선 안 써야겠군.”

백색마안은 아주 쓸모가 많은 무공이다.

상대에게 걸린 금제를 풀 수 있다니!

마교나 여러 사파들은 금제술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혈도금제뿐 아니라 조금 전 같은 정신적 금제까지 말이다.

그런 금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천혜의 무공 중 하나였다.

하나 사용하고 나면 상대가 무조건 미치게 되어 있다는 게 단점이다.

천무백도 굳이 백색마안을 사용한 건, 육성이 혈사문 소속으로 죽일 놈이란 사실 때문이다.

애당초 흡정마공의 제물이 되는 자가 누구던가.

저들이 역병을 퍼뜨리며 죄 없는 양민들을 유랑민으로 만들고, 납치하여 제물로 삼지 않나.

“강호에 발을 들였으면, 강호에서 해결해야지.”

강호와는 관련 없는 양민들을 건드는 건, 천무백이 숱한 전생을 살며 살아온 원칙에 어긋난다.

하여 천무백은 백색마안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후회는 없었다.

내력 소모는 크나, 얻은 바도 컸다.

그리고 당장 해야 할 일도 몇 가지 생겼다.

“저 왔습니다.”

“능허야.”

“네.”

“손 못 쓴다고 신법 못 쓰더냐?”

“누가 실내에서 신법 쓰면서 달려옵니까? 그러면 어른들한테 맞습니다.”

“불렀으면 좀 빨리빨리 와라.”

능허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염병…….”

“어른 앞에서 상스러운 소리하면 맞는다.”

“도련님, 아니 주군.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열여섯.”

“그럼 누가 어른입니까?”

“나.”

“썅.”

능허의 반응에 천무백은 실소했다.

“시킬 게 있다.”

“네네. 그러셔야지요. 다 부려먹으려고 살려 둔 거 아닙니까.”

“넌 주제 파악이 빨라서 좋아.”

“정말 칭찬을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여하튼, 정보를 구해 오거라.”

“정보요?”

“오늘 연화루에 방문한 고관대작들이 몇이더냐.”

“아…….”

능허가 눈을 크게 떴다.

“관과 무림이 서로 관여치 아니하지만, 서로 알건 다 알거든. 특히 관아 놈들은, 전국으로 뻗은 정보망으로 무림을 늘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보하면 개방이고, 하오문이겠지만……. 글쎄, 그거야 무림 생각만 한 거고.”

능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화루는 매일 성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돈 많은 부호가 많이 찾았다. 부호들의 특징이 있다. 엄청난 상인이거나, 아니면 고관대작이거나.

상인들은 각자 자기만의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다. 뿐이랴. 연화루에서 상인들끼리 모여 서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건 흔한 일이다.

거기에 고관대작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애당초 기녀들을 하나의 장식물로밖에 보지 않은 양반들이다. 그러니 자기네끼리 시시콜콜한 얘기를 늘어놓곤 하는데, 그중에 어쩌면 필요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거론하는 천무백에게 능허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아주 뽕을 뽑는구나, 아주.’

연화루에서 벌어들이는 재화에 하남성을 모두 통하는 정보력까지.

“어떤 정보를 구해야 합니까?”

“혈귀곡.”

“혈…… 귀곡이요? 음, 제가 강호 경험이 미천해서 그런지 모르는데 처음 들어보는 단체입니다.”

“나도 그렇다. 오늘 처음 들었지.”

“오늘……? 설마 혈사문……?”

“혈사문 뒤에 있는 놈들이다.”

“……!”

능허는 입을 쩍 벌렸다.

혈사문만 해도 능허 입장에선 무시무시한 놈들이다.

근데 그 뒤에 또 다른 놈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규모에 능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쉽진 않을 거다. 워낙 꽁꽁 싸맨 놈들이니.”

“솔직히 말해 당장 원하시는 정보를 구하긴 힘듭니다.”

“알아. 하지만 관련된 거면 닥치는 대로 구해와. 연화루에서 하남성 전체의 정보를 쥘 수 있게 만들어 보라고.”

“알겠습니다.”

“조만간 내가 자리를 비울 거다.”

“네?”

“일이 좀 복잡하게 꼬였다. 아버님에게 가 봐야 할 것 같다.”

“표국…… 국주님이요?”

천무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육성의 금제를 풀고 그에게 정보를 얻어낸 결과.

전혀 예상외의 것이 걸렸다.

바로 표행 실패 건을 조사하러 나갔던 천문경이다. 뭔가 께름칙한 구석이 있었다. 혈사문이 주도한 건 아닌데, 표행히 실패한 거에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숭산.”

“소림 말입니까? 거기 봉문을 아직 안 풀었는데…….”

“말 많네. 내가 일일이 보고라도 하랴?”

“아닙니다. 그냥 걱정돼서죠.”

“내가?”

“생각해 보니 딱히 걱정되진 않네요.”

“아직 정신은 온전하군. 능허야, 오늘 좀 피곤하니 여기서 자고 가겠다. 자기 전에 대금이나 불어 볼 생각이니, 좀 들여보내라.”

“대금이요? 네. 기루에 넘치는 게 대금인데요.”

“숭산으로 가기 전에 개봉으로 갈 거다. 너도.”

“저요? 왜요?”

“흑심방.”

순간 능허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천무백이 어떤 의도로 그 말을 꺼냈는지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능허가 떨리는 눈동자로 천무백을 바라봤다.

“이미 한번 연화루를 탐냈던 놈들이니, 또 욕심내겠지.”

“그 말은 설마……?”

“내가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뒤통수 간지러운 거 놓고 가긴 그렇잖아? 능허야. 혼자서 막을 수 있겠더냐?”

“아니요. 등초 같은 놈 한둘이면 막겠지만, 흑심방이 작심하고 오면 못 막습니다.”

“그래. 그럼 정리하고 가야지.”

“저도 같이 갑니까?”

흑심방은 작은 흑도가 아니다.

개봉을 꽉 휘어잡은 대형 흑도단체다. 그런 흑도를 정리하겠다고 말하다니. 더구나 흑심방에서 오래 지냈던 능허는 흑심방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천무백이 뭘 당연한 소리 하냐는 듯이 바라봤다.

“너도 가야지. 네가 핵심인데.”

“핵심이요?”

“말했잖냐. 대가리 하라고.”

능허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연화루의 대가리가 아니라…….

“흑심방의 대가리 말입니까?”

천무백이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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