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10화 (10/318)

<검신재생 10화>

10. 삼재검성!

천무백은 지금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하나 그것이 천무백의 무력이 약해졌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강호에서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검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온다.

격한 싸움 중에 부러지거나. 날이 망가지거나.

무수한 전생 중에 천무백이 검을 들면, 상대하는 적들은 하나같이 생각했다.

‘놈의 손에서 검을 놓게 해!’

검을 잡으면 천하에 무서울 게 없던 게 천무백의 전생들이 아니었던가.

검에 미친 귀신이니, 검을 잡은 신선이니, 검에 정신 나간 마귀니.

하여튼 검만 잡으면 세상 적수가 없다고 판단되던 게 천무백의 전생들이었다.

하나 그들이 생각지 못한 게 있었으니, 천무백은 검을 잡지 않더라도, 이미 대종사의 경지를 벗어난 아득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천무백은 한 손으로 약재상 주인의 머리칼을 움켜쥔 채, 왼손으로 놈의 몸을 두들겼다.

그 행동이 얼마나 빠른지 약재상 주인이 제압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손을 세워 손날로 약재상 주인을 두들겨 팼다.

꿈틀거리는 놈의 목, 어깨, 가슴, 무릎, 발목, 정강이를 찍었다.

뼈가 부러지거나 찢어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그 와중에 끔찍한 고통의 비명이 터져 나온 건 배꼽을 때릴 때였다.

이때만큼은 손날이 아니라 꽉 쥔 주먹을 정통으로 먹였다.

퍼엉!

“꺼어억!”

“이게 무슨 소린지 알아?”

“끄으…….”

게거품을 문 채 눈깔을 뒤집은 약재상 주인.

천무백은 뒤에서 달려오는 다른 잡놈들을 처리하는 허성을 흘깃 보곤, 약재상 주인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네놈의 단전이 터져 나가는 소리다. 에라이, 새끼야.”

일방적으로 당한 약재상 주인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사이 허성은 나머지 잡놈들을 모두 처리했다.

‘제법이군.’

흘깃 허성의 무위를 곁눈질한 천무백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장노도 한낱 표두 치곤 범상치 않았는데, 표국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는 허성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명문세가 가서도 나름 대접받을 실력이구만.’

절정은 내력이 부족해서 못할 거 같고.

그래도 임기응변이나 검 쓰는 걸 보면 최소 일류 막바지 정도는 된다.

“도,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천무백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다시 의자에 앉아 게거품을 무는 약재상 주인의 얼굴을 톡톡 쳤다.

“어이. 이름이 뭐지?”

“개…… 같은 새끼!”

“허, 참.”

단전이 깨졌건만 뒤집힌 눈동자에선 독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도련님, 일단 표국으로 피하시지요. 놈을 표국에 데리고 가서 조사해 보겠습니다.”

“아니, 그럴 것 없습니다.”

“네?”

“나온 김에 여의치 않은 건 다 확인하고 가야지.”

“도련님!”

“허 표사.”

“……예.”

“궁금한 게 많겠지만, 나름 내 몸을 지킬 방도 하나쯤은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가만히 지켜봐 주시지요.”

“…….”

허성의 얼굴에 복잡한 빛이 떠올랐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놈도 내공이 있을 터인데.’

허성의 시선이 널브러진 약재상 주인에게 향했다.

자신이 해치운 놈들도 미약하나 분명 내력이 있었다.

수준은 형편없어도 일단 강호 무림에 발을 걸친 건달은 된단 얘기다.

하면 여기 우두머리로 보이는 약재상 주인은 적어도 자신이 처리한 잡놈보단 강하지 않겠는가.

한데 천무백이 너무 쉽게 제압했다.

아니, 제압한 거 자체가 이상했다.

‘분명 유약하기 짝이 없으신 분이었는데.’

아무리 최근 신체를 단련했다고 한들, 가능하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탁자를 엎은 뒤 단숨에 상대를 제압해 버렸다.

허성은 곰곰이 그 과정을 떠올렸다.

‘나라면?’

가능하다.

물론, 내력을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하면 도련님이?’

허성이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든 말든, 천무백은 약재상 주인을 노려봤다.

천무백은 어조를 바꿨다.

“야. 너 혈사문이랑 무슨 관계냐.”

“……!”

혈사문이란 단어에 약재상 주인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하, 그럼 그렇지.

천무백은 그 반응에 피식 웃었다.

“그냥 독초도 아니더만. 약재에 주입한 독기 말이야. 혈사문에서 만들던 거였잖아? 옛날하고 달라져서 알아보긴 힘들긴 했어.”

“무, 무슨 개소리냐.”

“이 새끼야, 대충 보아하니 그냥 졸개 놈이라 캐낼 것도 별로 없겠네. 혈사문인 거 다 아는데. 이제 널 어떻게 해 줄까?”

천무백의 확연하게 바뀐 어조에 당황한 건 약재상 주인뿐 아니라 허 표사와 점박이도 마찬가지였다.

지극히 폭력적인 어조.

천무백의 어조는 날 것 같은 흉흉함이 물씬 풍겼다.

“널 죽여도 아무렇지 않단 얘기야, 새끼야. 그러면 독기 철철 흘릴 바엔 살려 달라고 빌어야 내가 마음이 동하지 않겠냐?”

“살려 줘.”

“말이 짧다. 내가 너보다 나이 몇을 더 먹었는데?”

“뭐?”

“어쭈?”

“살, 살려 주십시오.”

“그럼 대충 알고 있는 거 다 말해. 혈사문이 이번에 역병 일으켰냐?”

“……모릅니다. 전 그냥, 여기서 약만 팔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어디서?”

“…….”

순간 약재상 주인의 입술이 바느질로 꿰맨 것처럼 닫혔다.

천무백이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저 눈빛과 반응, 꿈틀거리는 녀석의 관자놀이.

더러운 수법이다.

‘하. 금제까지 걸어놔? 내가 알던 혈사문이 맞나 모르겠네. 위험하지만 멍청한 놈들이었는데, 이젠 머리도 써?’

천무백은 미간을 좁혔다.

‘어디 보자. 뭘 써먹어야 하나.’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무공.

그중엔 사특한 무공도 있었고, 이미 실전된 무공들이 숱했다.

당장 오줌을 지리며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술술 불어 내게 할 무공도 분명 있었다.

다만 내력을 적잖이 소모해야 하니, 이제 겨우 상단전을 통해 내공을 쌓는 천무백으로선 부담스러웠다.

잠시 고민하는 사이.

약재상 주인을 노려보던 허성이 문득 소리쳤다.

“뭐냐. 너 연화루에서도 일하냐?”

“연화루?”

연화루.

순간 천무백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제아무리 본래 천무백이 예악에만 관심 있어 주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몰라도, 이 현에서 가장 큰 기루인 연화루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아, 도련님. 이 명패 말입니다. 연화루에서 일하는 기둥서방 놈들이 차고 다니던 거라서요.”

“명패? 요 매화 무늬 말입니까?”

“네. 원래 있던 친구들 말고, 한 반년 전쯤부터 일하기 시작한 놈들이 차고 다니더라고요.”

“새로 일하는 놈들만 차고 다닌다?”

“새로 들어온 놈들의 인상이 워낙 살벌해야죠. 좀 약간 음습한 느낌도 있고. 딱 그런 놈들만 이런 명패를 차고 다닙니다.”

천무백은 눈을 가늘게 뜨고 허성을 바라봤다.

허성은 계속해서 자신이 아는 바를 털어놨다.

“원래 연화루가 유명하긴 했습니다만, 요 명패 들고 다니는 애들이 들어오면서 갑자기 더 물이 좋아지긴 했죠.”

“물이 더 좋아져요?”

“아하하, 도련님 그런 게 있습니다. 음 뭐라 해야지. 우리 표국에 연못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빛깔이 아름다운 비단잉어들이 잔뜩 생겨났다는, 뭐 그런 뜻이죠.”

“…….”

“뭐, 아무튼. 이 명패 차고 다니는 놈들이 기둥서방으로 오면서, 난장 부리던 진상 놈들도 싹 사라졌지요. 제법 용력 좀 쓰나 봅니다.”

“잘 아시네요.”

“네? 아, 아닙니다. 그냥 일 끝나고 밑에 표사 애들이랑 한두 번 가 본 게 전붑니다.”

천무백은 실소했다.

기루에 잘 알다 못해 아주 빠삭했다.

평소 능글맞고 서글서글한 인물이었는데, 호색함을 숨기고 있었군.

뭐, 덕분에 지금 도움이 되니까 상관은 없다만.

어디 보자, 저놈을 좀 부려먹어 볼까.

천무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면 지금 한번 가 보죠.”

“네? 어딜요, 연화루요?”

“나온 김에 확인 좀 다 하고 가야죠. 원래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놈이 밖에 나오면, 나온 김에 할 거 다 하고 들어가야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점박아.”

“네, 도련님.”

“우선 관에 가서 여기 약재상에서 독초가 나왔다고 신고하거라. 표국의 진 의원을 데리고 가면, 그가 여기서 독을 팔았다고 증언해 줄 거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래. 허 표사, 안내하시오.”

“도, 도련님.”

“이놈도 데리고.”

“네?”

천무백은 좀 굼뜨게 움직이는 허성을 뚱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사실 천무백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직전 전생만 해도,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경지에 올라 마음 내키는 대로 지껄이고 행동하며 살지 않았던가.

“…….”

역설적으로 침묵은 상대방에게 의도를 전달할 때 가장 효과적일 때가 있다.

천무백의 진중한 시선에 허성은 강렬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마로 식은땀이 송골 맺혔다. 조금 전까지 약재상 주인을 협박하던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허성은 숨이 멎는 듯했다.

그는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허성은 약재상 주인을 둘러업었다.

* * *

연화루는 고급 기루였다.

문지기들 역시 웬만한 진상들은 헛수작 부리지도 못할 정도로 건장했고, 인상 역시 험악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저 기둥서방에 불과하다.

덩치와 타고난 용력만 믿은 그런 흑도 건달들 말이다.

“손님 온다.”

“얼씨구. 한 놈은 벌써 곯아떨어졌는데?”

“쯔쯔. 초저녁부터 어지간히 마셨나 보구만. 그래놓고 기생 끼고 또 놀겠다고 기루 오는 것 보소.”

“자자. 대충 확인해 보자고. 이미 취한 놈들이면 진상 짓 부릴 거 뻔하니까. 여차하면 걍 내보내고.”

문지기 셋은 어렴풋이 보이는 인영을 쭉 쳐다봤다.

그러다 문득 그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곯아떨어져서 업혀 있는 남자의 얼굴이 무척 익숙했다.

“잠깐, 저거 조평 아니야?”

“약재상 조평?”

순간 문지기들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겉은 기둥서방.

그러나 속은 제법 견실한 내력을 숨긴 문지기는 널브러진 약재상 주인의 모습을 보곤, 벼락처럼 검을 뽑았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림과 몸이 반응했다.

그러나 허성이 반응하여 나서려는 순간에 이미 천무백이 한 발짝 먼저 움직였다.

약재상에서 주워온 단도를 휘둘렀다.

“……!”

좌에서 우로 긋는 깔끔한 베기.

“꺼억!”

바로 곁에서 덮쳐오는 두 번째 놈은 위에서 아래로 긋는 세로 베기.

“컥!”

왼쪽에서 덮쳐온 놈은 명치를 정확히 찌르는 찌르기에 게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허성이 검집에서 검을 꺼내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체.”

허성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솔직히 말해 그는 눈앞의 천무백이, 자신이 알던 그 유약한 천무백이 맞는지 의아했다.

최근 무공을 익히며 건강해졌다고 이렇게 됐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빠른 행동과 상대를 제압하는 반응속도,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무시무시한 압박감.

이건 무공을 하루 이틀 배워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설마 이전부터 몰래 무공을 배우고 있었나? 모두를 속이고 있던 거야? 대체 왜?’

그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하물며 지금 보여 준 단 세 번의 휘두름.

깔끔한 세 번의 획.

좌에서 우, 상에서 하, 후에서 전.

허성은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삼재검법!’

무공이라고 부르기에도 차마 민망할 검술.

동네 책방에서도 굴러다니는 거다.

아무 간단한 세 개의 초식으로 이뤄진 가장 기초가 아닌가.

한데 평범한 삼재검법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런 초식도 없는 밋밋한 베기, 찌르기였지만 허성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너무나 빨랐고, 깔끔했다. 흔들림 따위는 없었다.’

세상에 저런 삼재검이 있단 말인가?

문득 허성은 강호 역사를 되짚어봤다.

삼재검하면 생각나는 수많은 강호의 전설 중에,

무림이 태동하던 초창기.

삼재검 하나로 온갖 사특한 요괴와 마귀들을 베어 넘기던 전설적인 무림인.

“삼재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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