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신재생 8화>
8. 어떤 개뼉다구 같은 놈들이야!
청성표국의 진 의원은 실력 하나만큼은 근방에서 인정받는 의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당초 청성표국에 들어오지도 못했으리라.
다만 그의 체면은 최근 바닥으로 처박혔다.
바로 갑작스러운 천무백의 열병 때문이다.
열병을 미리 예지 못 한 건 둘째치고도, 속수무책으로 방도를 내놓지 못한 게 컸다.
이후로 진 의원은 표국에서 제법 눈칫밥을 먹었다.
중요한 순간에 병명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무기력했으니 오죽하랴.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의원인 자신을 내버려 두고 천무백이 직접 침을 놓겠다고?
“도련님. 침술은 사람을 살리는 활인술이나, 자칫 잘못된 자리에 침을 놓으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술(殺人術)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진 의원의 묵직한 말에 천무백의 이부자리에 누운 점박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도, 도련님!”
“야야. 걱정 마. 내가 이걸로 다 죽어가던 무림맹주도 살렸었다. 응?”
진 의원과 점박이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도대체 언제 침술로 누굴 살렸단 말인가?
어? 무림맹주가 어디 동네 노인네 별명이라도 되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진 의원은, 혹시 열병을 앓은 후유증이 나타나는가 싶었다.
‘열병의 화기가 머리에 침투한 것인가?’
응? 그래서 정신이 조금······?
천무백은 주위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침통에서 침을 쑥쑥 꺼냈다.
끝이 반짝이는 침을 보자 점박이는 곧 혼절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도련님, 저 이대로 아예 걷게 못 되면 어떡합니까요?”
“그럴 일은 없다.”
천무백의 단호한 대답에 점박이는 다급해졌다.
지금 이 상황을 막아 줄 사람은 같이 온 진 의원뿐이다. 점박이는 간절한 얼굴로 진 의원을 바라봤다.
“진 의원님. 혹시, 발목에도 사혈이 있습니까요?”
“그······.”
점박이의 애처로운 얼굴에 진 의원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발목에 침을 잘못 놓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을 거다.
‘자칫하면 발을 못 쓸 수 있을 뿐이지.’
그거면 다행이다. 하반신이 마비되면 끔찍하지.
진 의원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표국 사람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막내 도련님이라 해도, 이건 선을 넘었다.
진 의원은 진중한 얼굴로 침을 만지는 천무백의 손목을 막기 위해 손을 뻗었다.
“도련님, 그만하시지······.”
진 의원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헉!’
천무백의 눈동자.
늘 따뜻한 느낌이 가득 담긴 동공 너머, 거대한 무언가가 넘실거렸다.
도저히 쳐다볼 수도 없는 무언가.
중원오악을 눈앞에 둔 것보다 더한 압박감. 그 압박감이 진 의원의 육신을, 혼백을 꽁꽁 묶었다.
‘도, 도대체······!’
점점 숨이 가빠왔다. 분명 잠깐의 시간이건만,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다 못해 멈춰진 것 같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팔다리가 벌벌 떨렸다.
“······이런. 내가 설명을 좀 해야 하나?”
눈동자에서 다시 따뜻한 빛이 떠오를 때쯤에야 진 의원은 막혔던 숨을 겨우 몰아쉬었다.
그는 떨리는 눈동자로 천무백을 간신히 쳐다봤다.
변함없는 얼굴이다.
그저 평범한 잘생긴 소년의 얼굴.
‘뭐였지?’
착각이었나?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점박이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그냥 울상이었다.
진 의원은 방금 본 무언가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진 의원은 천무백을 쳐다보기 힘들었다.
“내 의술을 조금 아오, 진 의원.”
“예?”
“바깥쪽 복사뼈 아랫부분에 오목한 부분, 여기가 구허고, 그 위의 두 혈 자리가 곤륜과 해계요.”
“······맞습니다.”
“보통 발목이 삐었을 땐 여기 구허를 눌러 주면 완화되고.”
천무백은 쉼 없이 혈 자리에 대해 읊었다.
진 의원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떻게?’
진 의원은 입을 쩍 벌렸다. 눈 끝이 살짝 떨렸다.
심지어 자신이 모르는 혈 자리도 쏙쏙 짚어 대는 것이 아닌가.
‘최근 장 표두한테 무공을 배운다더니, 벌써 이 정도란 말인가?’
무공을 배운다면 신체의 혈도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쪽 엄지와 검지 사이의 합곡, 그리고 복사뼈의 구허, 목 뒤의 풍지를 자극하고 혈을 개통하면 기의 흐름이 원활해지지. 안 그렇소?”
“맞, 맞습니다.”
“하면 지금 내가 어디에 침을 놓을 것 같소?”
“합곡과 구허, 그리고 풍지 말입니까?”
“맞소.”
“그렇지만······.”
천무백의 설명은 정확했다.
진 의원은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공을 배우니 혈 자리를 안다는 건 이해가 된다. 한데 각 혈 자리에 맞는 치유방법과 효능은 또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물며 그것들을 응용해 치료하는 방법까지?
천무백의 치료방법은 정확했고, 정석이었다. 진 의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할 정도로 깔끔한 방법이다.
다만 문제는.
“송구스럽지만, 점박이 녀석의 발이 이렇게 되건 무려 10년이 지났습니다. 혈에 침을 놓아 기운을 흐르게 하더라도, 굳을 대로 굳었습니다.”
무려 10년 동안 굳어 버린 발목이다.
아무리 혈을 자극하고 침을 놓는다고 해도, 치료될 리가 없다.
진 의원이 조심스레 눈치를 봤다.
조금 전, 저 순진해 보인 얼굴 너머로 보였던 거대한 압박감이 다시 튀어나올까 싶었다.
하나 다행히도 천무백은 호통은커녕, 그 무서운 눈빛도 보이지 않았다. 피식 웃었다.
“그러니 내가 할 수밖에 없다는 거요.”
“네?”
“이제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직접 두 눈으로 보시오.”
“······.”
천무백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진 의원을 뒤로하고 침을 들었다.
순간 상단전이 서서히 열렸다.
경천혼공을 천천히 운용하며, 머릿속에 조금 전 연주했던 대금의 운율을 떠올렸다.
운율에 맞춰 상단전에 쌓인 맑은 정기가 움직였다.
공력이 손끝을 타고 침 끝에 미세하게 맺혔다.
* * *
고작 세 개의 혈 자리에 침을 놓는 것이지만, 시간은 꽤 걸렸다.
지켜보던 진 의원은 감히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도대체 얼마나 집중하고 있단 말인가.’
진 의원은 혀를 내둘렀다.
천무백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진중하다 못해 몰입한 표정.
진 의원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묵직해지는 기분이었다.
“후우!”
침을 다 회수한 천무백이 깊게 호흡을 내쉬자, 그제야 진 의원도 굳은 몸을 움직였다.
분위기 때문에 자신도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지켜봤던 터.
천무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점박이의 다리를 두들겼다.
“다 됐다.”
“된. 된 겁니까요?”
“그래.”
“어······.”
“한번 일어서서 걸어 보거라.”
점박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침을 놓은 건지도 모를 정도로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뭔가 따뜻한 느낌은 있긴 했는데······ 다 나았다고?
점박이는 반신반의한 얼굴로 일어났다.
그리고 걸었다.
“어?”
“······!”
진 의원은 입을 쩍 벌렸다.
점박이의 걸음걸이가······ 완벽했다.
비록 조금은 절뚝이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건 10년간 절뚝였던 습관 때문이다. 진 의원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발목이 치료됐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상식으론, 그의 의학지식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침 한 방에 저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 이럴 수가! 도, 도련님! 감사합니다요! 감사합니다요!”
점박이가 감격에 몸을 떨며 넙죽 엎드렸다.
천무백은 애써 뚱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툭툭 쳤다.
“다 끝난 건 아니다. 몇 번 더 해야 해. 그리고 약 도 먹어야 하고.”
“암요, 암요.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 줄 알았습니다. 도련님. 근데 이건 정말······ 평생 감사하며 모시겠습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감격하는 점박이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을 흔드는 천무백.
그 모습을 진 의원은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 진 의원. 이 약재로 약을 달여야 하는데, 지금 있는가?”
천무백은 쓱쓱 약재 목록을 적어줬다.
“음. 몇 개는 있습니다만, 이건 지금 없습니다.”
“하면 구해오게. 이거 하고 같이 섞으면 몸의 기운이 훨씬 여유로워지니, 분명 효능이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진 의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갔다.
그 모습에 천무백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하인을 시키지도 않고, 하긴. 약재는 의원이 확인해야지.’
꼬장꼬장하긴 해도, 나름 괜찮은 의원인 것 같다.
천무백은 울고 있는 점박이를 진정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 의원이 약재꾸러미를 한가득 들고 왔다.
“빠르군?”
“약재를 받는 약재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있긴 합니다만, 청성표국에서 왔다 하니 바로 구해올 수 있었죠.”
천무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재를 살폈다.
과연 진 의원이 직접 살펴서 가져온 것인 만큼, 겉보기에도 품질이 썩 훌륭해 보였다. 몇몇은 천무백은 감탄할 정도로 상급품이었다.
“이것들 좋은데? 당장 약을 달이면 음······?”
하나 그중 하나를 살피던 천무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거, 어디서 구해왔다고?”
“약재상에서······.”
“······내 직접 가 봐야겠는데.”
“네? 혹시 약재가 잘못 된 겁니까? 제가 볼땐······.”
진 의원이 화들짝 놀랐다.
“이거 가짜야.”
“네? 그, 그럴 리가.”
허둥지둥하는 진 의원을 뒤로 한 채, 천무백은 굳은 얼굴로 약재를 쳐다봤다.
가짜.
가품이다.
그래, 차라리 가짜면 낫다.
하지만 이건.
‘독기가 가득하단 말이야.’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팔면 사기꾼에 불과하다.
하나 이처럼 독기가 풀풀 나는 독약을 약재로 위장해 판다는 건?
“어디 개뼉다구 같은 새끼가 장난질이야?”
천무백의 눈동자가 타올랐다.
* * *
고아한 향기가 품기는 약재들이다.
빛깔도 깔끔하고 향기도 일품이다. 틀림없는 상품의 약재들이다.
한데 진 의원의 표정은 복잡했다.
“여기에, 독초가 있단 말입니까?”
“생긴 건 약초나, 속에 독을 숨긴 게 몇 있소.”
“대체 무슨…….”
“거, 지켜보시오.”
계속해서 진 의원이 딴죽을 걸자 천무백의 말투도 퉁명스러워졌다.
정확히는 바로 약재들 때문이었다.
차라리 쓰레기를 약재로 속이면, 그냥 사기꾼이라고 여기면 된다.
‘그런데 독초를 약재라고 속였단 말이지.’
모양은 완벽한 약재다.
하나 속은 독이다.
그것이 무얼 의미함인가?
‘인위적으로 만든 독초라는 것인데.’
어째서?
‘청성표국의 막내도련님을 독살하려고?’
진 의원이 청성표국 사람인 걸 아니까, 독살하려 했던 사람이 독을 건넸을 수도 있다.
하나 그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가설이다.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천무백이 누구에게 원한을 살 일도 없다.
더구나 오히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타고나서 호감을 느낀 사람들이 대부분 아니던가.
또 천무백에게 쓸 약일지, 아니면 표사들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쓸 약일지 어떻게 알고?
그때 진 의원이 다시 딴죽을 걸었다.
“도련님. 지금 저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하지 마, 그러면.”
“네?”
“에휴. 이거, 이거, 이거, 그리고 이거. 한번 확인해 보던가.”
진 의원의 계속된 딴죽에 천무백은 퉁명스럽게 약재 몇 개를 골라내며 툭 밀어줬다.
어느새 천무백의 말투가 반존대에서 완전히 반말로 퉁명하게 변했건만, 진 의원은 천무백이 고른 약재에 정신이 팔려 미쳐 신경 쓰지 못했다.
진 의원은 황망한 표정으로 약재를 바라봤다.
자신하고 친한 약재상이다.
거기서 일부러 독초를 내줬다니. 믿기지 않는 일, 아니 믿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의술에 조예가 깊어 보였다.’
아니, 깊어 보인 게 아니지.
실제로 보여 줬잖아? 점박이 발목을 완전히 치료한 거 말이다.
진 의원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가 제법 뛰어난 의술을 가지게 된 건, 그 마음가짐 덕분이었다.
괜한 고집과 아집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빠르게 천무백의 의술을 인정했다.
신체에 대한 혈도를 줄줄 읊을 수 있고, 침술마저 뛰어나다. 자신은 상상도 못 했던 점박이의 발목을 완벽하게 치료했다.
하면 약재에도 분명 남다를 터.
그는 천무백의 말을 헛소리라 치부할 수 없었다.
달그락.
침통에서 은침을 꺼내고 천무백이 밀어준 약재에 콕콕 찔렀다.
“……!”
이내 진 의원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시꺼멓게 변색하여 버리는 은침.
독이다!
진 의원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모든 약재에 은침을 꽂았다.
나타나는 결과에 황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진 의원은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놀랍게도 약재엔 독초가 가득했다.
더 놀라운 건, 은침이 변색하건 모두 천무백이 짚어 준 것들만이라는 사실.
그는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대체 언제? 언제 이렇게 의술에 조예가…….”
분명 예악에만 몰두했던 천무백이었건만.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걸 보게 되면, 그걸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잘못된 근거를 합당하다고 여기게 될 때가 있다.
그때 진 의원의 눈에 들어온 게, 방에 가득찬 책과 그림들이었다.
‘책!’
빽빽이 꽂혀 있는 책들.
논어니 맹자니 하는 책부터 시작해 여러 책이 가득했다. 그중에 진 의원의 시선을 끄는 책 제목이 있었다.
‘의원종횡?’
허어.
그랬었던 건가.
진 의원은 감탄과 함께 천무백에게 숫제 손뼉이라도 쳐주고 싶었다.
‘다 독학으로 이만큼 스스로 깨우쳤던 건가.’
자신은 스승에게 배우고, 수없이 의술을 펼쳤는데도 하지 못한 치료와 약재 중에 독초를 감별해 내는 눈까지.
이 모든 걸 그저 서책만 보고 독학으로 스스로 깨우쳤다니.
진 의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악에만 천재가 아니라, 의술에도 천재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