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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생-6화 (6/318)

<검신재생 6화>

6. 아직 검을 잡을 때가 되지 않았다

근래 청성표국은 꽤 시끄러웠다.

저 멀리 섬서성에서 시작된 역병이 하남성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중요한 표행이 아니면 전부 취소되거나 중지됐다. 거기에 일전에 있던 표행 실패로 정상적인 업무가 진행되지 않았던 터.

표사들은 결국 할 일 없이 수련에만 힘썼다.

본래 수련이란게 괴롭고 지루한 일이다. 그러니 자그마한 일이라도 큰 화제가 됐다.

표사들의 관심을 끌은 건 막내 도련님, 천무백의 수련이었다.

“난 하루 보네.”

“어허. 그래도 부국주님이 엄하게 혼냈다고 했는데. 적어도 사흘은 가겠지.”

“장 표두님이 수련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거 잘 알지 않는가? 난 반나절 보네.”

표사들은 천무백이 얼마나 버틸지를 두고 내기까지 할 정도였다.

결과를 보면 그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 천무백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무려 한 달 넘게 수련을 계속했다.

“세상에. 막내 도련님이 무슨 일이지?”

“난 여기 와서 막내 도련님 얼굴 몇 번 본 적도 없었어.”

“그런데 이젠 매일 아침 연무장에서 한 번씩 마주치는군.”

“도련님이 의외로 무공에 흥미가 있으시나?”

“허허!”

천무백의 나이라면 으레 그 또래의 사내가 그렇듯, 멋들어지게 검을 휘둘러보고 싶으리라.

문제는 장노의 수련 방식은 그렇지 않다.

“철저하게 기초를 만드는 거, 지독하지.”

“마보만 종일 한 적도 있어.”

“난 여기 표사로 들어와서, 두 달 동안 연무장서 검 휘두른 적 없는 거 알아?”

장 총표두의 수련이란.

“검을 잡으려면, 최소한 자세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 그 자세를 만들기 위함이 바로 기초 수련이었다.

표사들이 ‘가장 지루한 수련’이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그러자 그들은 의심했다. 아니, 표사들뿐만이 아니다.

누이인 천유하와 애비인 천문경도 고개를 갸웃했다.

“장 총표두님이 설렁설렁 봐주시나?”

“에이, 설마. 장 표두님이 수련만큼은 얼마나 엄한지 알고 있으면서 그래?”

“그래도, 도련님 상대로 장 표두님도 그냥 인자한 할아버지 같으시잖냐.”

표사들에겐 불가의 마귀 같은 존재가 장 표두였지만 천유하와 천무백에겐 친할아버지같이 인자한 분이었다.

그만큼 천무백을 손주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니, 쉬엄쉬엄 봐주는 게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혹도 곧 샅샅이 사라졌다.

“얼굴색이 확 변했는데.”

“키도 커지신 것 같고…….”

“좀 풍채가 당당해지신 거 같지 않나?”

“저번에 슬쩍 봤는데 팔에 근육 좀 붙으셨더라고.”

“한 달 전하고 비교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몸이 단단해졌어.”

“허어. 그 철부지 같던 우리 막내도련님이, 이제 사내가 되어 가는구만.”

표사들은 천무백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사실 가장 놀란 건 표사들을 비롯한 표국 사람들도 아니다.

천무백을 가르치는 장노와, 천무백 본인이었다.

“도련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장노는 천무백의 몸 이곳저곳을 만졌다.

“이럴 수가…….”

천무백의 몸을 만지던 장노는 저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다.

주름진 눈가에는 감탄의 빛이 어렸다.

‘근골이…… 근골이 바뀌었다?’

장노의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쉬이 믿기 어려운 일이다.

분명히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영락없이 형편없던 근골이었는데…….

지금 완전히 바뀌었다.

‘어찌 이럴 수가.’

천무백의 수련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자신이 요구했던 목표를 충족시켰다. 아니, 늘 더했다. 표사들의 의심대로 봐줬는가? 아니다. 장노는 맹세컨대, 표사들을 훈련시킬 때보다 더 격렬한 지침을 내렸다.

그걸 버텨 내는 인내심이나 투쟁심은 둘째치고도, 몸이 버텨 내는 게 신기했다.

근육도 척척 붙었다.

처음엔 그것이 그저 다 천무백의 효율적인 몸 관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으니까.

‘스스로 신체의 한계를 잘 알고 관리하는 느낌이었지. 어느 정도 움직이고, 얼마큼의 휴식이 필요한지. 마치 근육과 근맥, 근질의 모든 걸 다 이해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것도 쉬이 이해할 수는 없었다.

고작 열여섯.

육십 평생을 무를 익혀 온 자신도, 신체의 움직임과 반응, 근밀과 근질은 그저 감각으로만 때려 맞추는 수준에 불과하지 않은가.

한데 평생 악기만 연주하고 그림만 그리던 편향된 성격의 철부지 도련님이 그걸 완벽하게 이해한다?

그래.

거기까진 이해할 만했다.

강호에는, 중원에는 이해할 수 없는 천재들이 종종 나오니까.

다만 이건, 이건 정말로 이해가 안 됐다. 장노는 조심스레 천무백의 몸속으로 내기를 흘려보냈다.

‘허. 이것 봐라.’

천무백의 눈이 반짝였다.

순간 장노의 손길을 통해 신체로 들어오는 그의 내기.

조심스럽게 움직여 천무백의 하단전을 샅샅이 훑었다.

‘늙으면 능글맞아진다더니.’

천무백은 실소했다.

은근슬쩍 내기를 흘려보내 자신이 내공을 쌓았는지 확인하려는 속셈이었다.

하기야, 근골의 변화는 무림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림인이라면, 이런 현상에 가장 먼저 환골탈태를 떠올릴 것이고, 자연 내공을 쌓았느냐에 생각이 닿겠지.

‘하지만 상단전을 훑어볼 생각은 못 하지.’

천무백은 상단전에 아기 주먹만 하게 쌓인 단단한 내공을 느끼며 미소지었다.

하단전과 달리 상단전은 사람의 뇌에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상단전은 하단전과 달리 아직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뇌는 복잡한 것이며, 거기에 있는 상단전도 마찬가지.

아무리 장노라고 해도, 상단전을 의심하고 내기를 흘려보낸다고 해도 상단전에 쌓인 정순한 내공을 찾지 못하리라.

천무백은 자신 있었다. 그만큼 상단전의 기묘한 운용은 천무백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하물며 누군가 상단전을 확인하려고 내기를 흘려보낸다면, 천무백이 그전에 막겠지만 말이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이 노부의 예상보다도 훨씬 잘 따라와 주고 계십니다.”

장노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웠다.

결국, 내공도 아니다.

하면 이건 순수한 노력이 맺은 결과와 타고난 오성이 만들어 낸 기적이라는 결론이다.

‘어쩌면 고수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진정한 천재일지도 모르지.’

근골의 변화며, 이해할 수 없는 신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감각이며.

하물며 그걸 버텨 내는 의지와 인내.

그러면서도 지치지 않는 저 정광.

장노는 전율했다.

“하면, 혹시 검을 들어보시겠습니까?”

* * *

“허허…….”

장노는 허탈한 웃음을 내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총표두님?”

청월단주 허성이 물었다.

청성표국에는 두 개의 단체가 있다.

표사들이 40명씩 나뉘어 만들어진 단체인데, 그중 하나가 청월단과 비룡단이었다.

비룡단이 표행 업무를 맡지만, 청월단은 경비와 요인 보호를 맡았다.

그래서 표국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허성은 그런 청월단의 단주이자, 장노에 이어 두 번째로 강한 무력의 소유자기도 했다.

허성은 최근까지 인근 봉구현의 부호집의 경비 업무를 맡다가 복귀했던 터라 아직 천무백의 변화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내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살 만큼 살았고, 알 만큼 알았다고 생각했건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이요?”

“막내 도련님이 이제 완연한 어른이 되셨더구나.”

뜻 모를 말에 허성의 얼굴이 어안 벙벙했다.

하나 장노는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말재주가 뛰어난 편도 아니었거니와, 그때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기 어려웠다.

“아직 검을 잡을 때가 되지 않았다라…….”

장노는 한 시진 전에 있던 일을 떠올렸다.

예상외의 천무백의 성장에 그는 천무백에게 검을 쥐여 주려고 했다.

사실 건강만 챙기게 하려던 맨 처음 의도는 기억 저편에서 사라졌다.

그 재능.

보고도 이해할 수 없고, 감탄만 튀어나오는 재능에 장노는 욕심이 생겼던 터였다.

어떤 고수가 와도 탐을 낼 만한 오성이 아니던가.

비록 자신은 무에 있어 실패해 사도를 걸었지만, 천무백이라면 자신 대신 제대로 높은 곳을 향해 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표사들을 수련시킬 때보다도 더 먼저 검을 쥐여 주려고 했다.

하나 그건 욕심이었다.

천무백은 눈을 번뜩였지만, 오히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검을 잡을 때가 아니라고.

순간 장노는 그 말을 듣고 숨이 턱 막혔다.

말에 담긴 속뜻을 이해해서? 아니었다.

‘과연 내가 알던 철부지 도련님이 맞았단 말인가.’

눈빛.

진중하다 못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던 눈빛.

그건 결코 16세의 철부지 도련님이 아니었다.

장노는 신경이 곤두선 채 깊게 심호흡했다.

‘내가 봤던 고수 중에 최고수가 바로 무성적마(無聲赤魔)였지. 그때보다…… 더.’

마치 무저갱에 빠져들어 가는 아득한 기분이었다.

그런 장노에게 천무백은 조금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검이란 누군가를 지켜야 할 때나, 또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할 때 들어야 하지 않겠소.’

맞는 말이다.

하나 평소 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장노였기에 그는 쉬이 대답지 못했다.

그저 처음엔 먹고살려고 들었고, 그러다 욕심이 생겨서 더 높은 경지에 들기 위해 휘둘렀다가, 끝내 실패를 맛보고 지금은 평범한 표사로 만족하며 살지 않았던가.

장노에겐 검이란 단지 그런 의미였다.

하나 천무백은, 적어도 장노가 알기엔 검을 잡아본 적도 없는 천무백에게 검은 다른 의미였다.

‘그렇지만 무작정 검을 쥔다면, 그건 잘못된 거요. 검이란 단순히 살생을 위한 무기일 수도 있지. 아니, 원래는 그게 맞는 거겠지. 하지만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검을 잡는다면……’

이어지는 말에 장노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검에 잡아먹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소? 장 표두님.”

자신을 쳐다보던 그 눈동자에 장노는 숨이 턱 막혔다.

‘혹여…… 나에 대해서 알아냈단 말인가.’

마치 자신의 속을 샅샅이 헤아리는 눈빛.

‘아냐. 아무도 모른다. 오직 나만이, 나밖에 모르는 일이건만…….’

장노는 천무백의 거처에서 들려오는 대금 소리를 들으며, 회한에 찬 눈을 감았다.

* * *

“도련님. 왜 막상 검술은 나중에 배우겠다고 하신 겁니까요?”

점박이는 천무백의 몸종이다. 연무장 한쪽에서 늘 천무백의 수련을 지켜본다. 물도 떠다 주고 땀도 닦아 줘야 하니까.

천무백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말했잖아? 아직 배울 때 아니라고.”

“흐흐. 도련님, 도련님도 검술을 배우기엔 막상 무서우신 거였죠?”

천무백이 피식 웃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정말로, 지금 검을 잡을 때가 아니었다.

끊어질 듯 말 듯 가느다란 근맥은 이제야 서서히 힘이 붙기 시작한 상태.

체질과 근골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서서히’다. 적어도 천무백의 시선에는 아직 성에 차지 않았다.

‘무리해서 검을 벌써 잡을 필요는 없지.’

지금 당장 쳐 죽여야 할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무리해서 검을 잡을 필요가 없다.

천무백에게 있어 검이란 그런 것이었다.

잡는 순간, 휘두름뿐만 아니라 허리춤에 차는 순간부터 모든 행동에 온 신경을 기울여 집중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천무백이 검을 대하는 자세였고, 무수한 전생 동안 결국 그를 검신에 오르게 한 바탕이었다.

그러니, 급할 필요는 없다. 몸을 더 만들고, 내공을 더 쌓고, 그 이후에 서서히 검을 쓰면 될 일이다.

“그래. 나도 검이 무섭다.”

그리곤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도 잡았는데, 아직도 그 끝을 모르겠으니까. 아주 썅, 무섭다, 무서워.’

천무백은 시선을 돌렸다.

한쪽에 놓인 표사들이 쓰는 표준 검.

천무백은 피식 웃으며, 다시 시선을 돌려 대금을 잡았다.

아직은, 검을 잡을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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