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5화 (5/318)

<검신재생 5화>

5. 이거, 좀 재밌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천혼공의 효능은 압도적으로 좋아졌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천무백은 천천히 경천혼공을 운용했다.

아름다운 선율과 곡조에 맞춰 경천혼공의 요결을 순간적으로 수정해 가면서 말이다.

물론 내공심법의 요결을 중간 중간 조절해 나간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그거야 일반적인 이야기다.

‘내가 무공만 몇 백 년을 익혔는데.’

하물며 경천혼공은 응? 도대체 몇 번의 생을 거치면서 뜯어 고친 건데?

경천혼공의 모든 요체와 요결을 완벽히 이해하는 게 천무백이 아닌가.

또한 검신의 경지에 오를 만큼 천재적인 무재.

수백 년에 이르는 무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

아마 명문정파의 모든 비고가 천무백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천무백이기에 악기 연주에 맞춰 경천혼공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고,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거의 두 세배에 이르는 것인가?’

우선 축기의 속도와 양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경천혼공의 가장 큰 단점이 터무니없는 축기의 양과 속도였는데, 그것이 완벽하게 개선된 것이다.

물론 마공 같이 엄청난 속도로 쌓이는 건 아니다.

하나 내공의 정순함은 강호의 어떤 심법과 비교해도 따라올 것이 없다. 이젠 거기에 속도까지 웬만한 정파의 내공심법 이상이 됐다.

‘이제 끊어질 듯했던 근맥도 웬만해선 보호가 됐고.’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근맥을 보호하는 정순한 내공.

이젠 격한 단련을 해도 무너지지 않으리라.

‘이제 슬슬 몸 좀 써 볼까?’

내공을 쌓는 거야 이제 꾸준히 계속 하면 되는 일.

이젠 육신의 완성을 위해 기초를 닦아야 할 때다.

“오늘이구나.”

“도련님, 준비한 무복입니다.”

“고맙다.”

“한데, 왜 하필 장 총표두님입니까?”

“응?”

“다른 표사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 좋은 허표사님이면 웃으면서 잘 봐줄 터인데. 그도 아니면 좀 무섭긴 하지만 종표사님도 은근히 세심한 구석도 있고…….”

“그야 장표두가 여기서 가장 이거잖아?”

“이거요? 엑?”

엄지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점박이는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웠습니까?”

“뭐가?”

엄지를 계속 까딱거리자 점박이는 기분이 아연했다.

뭐, 장 총표두를 고른 건 특별한 이유는 아니다.

천무백의 본래 기억에 다른 표사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고, 와중에 장 총표두에 대한 기억은 뚜렷했으니까.

정말 표국 일에 관심 없던 놈이다.

비록 소규모 표국이지만, 표사들 이름을 모르다니.

장 총표두가 그나마 기억에 있는 이유는, 천무백이 장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잘 따랐던 기억이 있다.

더구나 ‘총표두’라는 직함도 나름 강렬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강한 사람에게 배운다고 하는 게 나중에 이해할만한 이유를 만들어 준다.

사실 당장 천무백 혼자 수련해도 몸을 만들 자신이 있다.

‘그래도 내가 몇 년을 살았고, 제자도 길러 봤는데 말이지.’

타고난 근골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신체로 만들 수는 있다.

다만 표국에 공인된 천무백의 몸은 ‘무공은 익히지 못하는 최악의 근골’이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이 갑자기 실력이 확 뛰면, 주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가장 실력 좋은 장 총표두가 가르쳐서 성장했다고 하면, 그럴 듯한 이유가 되겠지.’

나름 꼼수다. 몇 번 전생을 살다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에휴. 장 총표두님이 곧 오실 터이니, 어서 준비하시지요.”

“이미 왔구나.”

“네?”

점박이가 의아해하더니 이내 밖에서 ‘도련님. 장노입니다.’하는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요?”

“어떻게 알긴.”

천무백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백발이 듬성듬성 섞이고 주름이 한가득한 노인네 얼굴.

하나 몸은 듬직했고, 정정했다.

총표두 장노인.

기세가 날카롭거나, 강렬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걸 이미 진작 느끼고 있었다.

‘마기(魔氣)가 느껴지는데. 마공인가?’

이거, 좀 재밌는데?

* * *

장노는 난처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허허…….”

맨처음 천문경이 불러서 막내 도련님인 천무백의 스승 노릇을 해달라고 할 땐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막둥이 녀석 건강이라도 챙기게, 조금 도와주시오, 총표두.”

“알겠습니다, 국주님.”

작은 표국이라 소문이 빠르게 퍼진다.

막내 도련님이 깨어나자마자 누님에게 말하길, 표국을 지키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니 무공을 익히겠노라고 했다고 한다.

평소에 그 철없는, 속없이 악기만 연주하며 헤 웃던 천무백을 떠올리면, 믿기 힘든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무백이 그놈이 무림 고수가 되는 걸 원하지는 않소. 다만 건강해지는 건 바라고 있소. 한데…… 내 듣기론 장 총표두께선 표사를 수련시킬 때 아주 엄하시다고 들었는데.”

장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표국의 표사 숫자는 80명이다.

대형표국에 비하면 분명 적은 수다.

한데도 하남성에서 제법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그건 표사들의 실력 덕이었다.

평균적인 실력이 컸고, 심지어 스무 명 정도는 다른 표국에선 적어도 부표두의 자리를 차지할 만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리고 장노가 감히 자부하건데, 본인이 그만큼 표사들을 엄하게 잘 가르쳐서였다.

평소엔 사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 같지만, 수련에 들어가면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마귀처럼 표사들을 얼마나 몰아붙이는지, 원성이 자자할 정도다.

장노가 부정하지 않자 천문경이 다소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하지만 무백이가 아직 어린 아이라는 걸 감안해주면 고맙겠소. 그 아이가 표사처럼 단단해지는 걸 원하지 않소. 그냥, 건강하게만. 건강하게만…… 만들어 주시오. 너무 몰아붙이시지 마시고.”

역시 막내바보.

장노는 표국 사람들이 무엄하게도 국주 천문경을 부르는 별명을 떠올렸다.

하긴, 얼핏 이해가 간다.

장노 역시 20년 넘게 청성표국에 의탁해 왔다.

그래서 그도 천무백이 마치 손주처럼 느껴졌다.

‘이쁜 아이지.’

어머니를 닮아 잘생기다 못해 아름답게 생긴 외모는 둘째치고.

오랜 경험을 살아온 장노는 알았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타고난 매력.

아무 말 하지 않고, 미소 한번 짓는 거로도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그런 유형.

세상에서 보기 힘들지만, 누구나 가까워지고 친해지고 싶은 타고난 매력의 주인공이 바로 천무백이었다.

그러니 막내바보가 되지 않겠는가.

장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표사로 키울 것도 아닌데, 엄하게 몰아붙일 이유가 없겠지.

“알겠습니다, 국주님.”

“고맙소, 장표두!”

하나 국주의 집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부국주 천유하가 불렀다.

“장 할아버님.”

“네, 부국주님.”

“할아버님은 공적으로는 표국의 총표두이나, 사사로이는 저와 무백이의 친조부같으신 분입니다. 맞죠?”

“그렇게 여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손주를 이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때론 손주를 매섭게 혼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요.”

“……?”

“강하게 키워 주세요.”

“예?”

“회초리를 들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배움을 게을러하면 엄하게 혼내 주세요. 힘들어하더라도 확실하게 길을 잡아 주세요.”

“하지만…….”

“할아버님. 아버지가 분명 힘들지 않게 쉬엄쉬엄 봐달라고 했겠죠?”

장노는 입을 다물었다.

천유하는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백이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무공을 익히겠다고 했는지 잘 모르지만, 여기서 오히려 너무 풀어줬다간 금방 다시 원래대로 방에 틀어박힐지도 몰라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죠? 하니, 할아버님께서 엄하게 확실히 잡아 주세요. 무공까진 바라진 않습니다. 그래도 얘를 당당한 사내로는 만들어 주세요.”

상반된 국주와 부국주의 당부.

워낙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다보니, 장노도 난감했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어찌됐든 도련님의 건강을 위한 것 아니겠는가.’

장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부국주님 의견대로, 조금은 강하게 나가보자.’

만일 잘 따라오고 버텨준다면야 천무백의 의지를 확인한 것이고, 건강하다 못해 제 몸 하나는 건사하게 키워줄 수 있지 않겠나.

만일 따라오기 버거워한다면, 다소 수준을 낮춰 적당히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정도만 유지하면 되리라.

그렇게 편히 마음먹고 천무백을 찾아간 장노였다.

* * *

장노는 입을 쩍 벌렸다.

평소 인자한 눈웃음을 달고 다녀서 눈이 반달처럼 휘어져 보이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눈이 커졌다.

그가 놀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천무백의 의지가 강렬했단 것이다.

“장 표두님. 저는 단순히 건강만 챙기려고 단련하는 게 아닙니다. 표사를 강하게 키우시는 걸로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저 역시 그와 같은 수준으로 가르쳐 주십시오.”

굳은 얼굴로 말하는 천무백을 보며, 장노는 약간 감동했다.

드디어 이 아이가 철이 들고, 어른이 돼가고 있구나!

그래서 그는 본래의 생각보다 더 강하게 수련을 시작했다.

그 이후에 그가 놀란 두 번째 이유가 등장했다.

“허어억, 아이고, 니런 쌰앙!”

“…….”

시작부터 삐걱대는 수준이 아니라 시작조차 못하는 수준.

예상보다 처참한 천무백의 운동신경과 몸 상태였다.

‘근골이 형편없는 건 알았지만…….’

언제였던가.

천무백이 다섯 살쯤이었나.

그때 한번 천문경이 무에 재능이 있어 보이냐고 물어봐서 살핀 적이 있다.

장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근골이 아닙니다.’

‘절맥이라는거요?’

‘아니, 그냥 근골이…… 범인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허어!’

‘아, 물론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지 못한 신체일 뿐, 건강에는 이상 없습니다.’

무공에 적합하지 않은 근골임은 알았다.

한데…….

‘16년 동안 운동이라곤 전혀 안했구나!’

안 그래도 형편없는 근골인데 16년 동안 운동이라곤 전혀 안한 몸뚱이.

장노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아무리 그간 바쁘다고 해도, 또 천무백이 방에서 예악에 푹 빠져서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본인이 더 신경을 썼어야 했던 것인데.

후회스러웠다.

하나 사실 이것이 진짜 놀란 이유는 아니었다.

바로 이어지는 상황.

“으아아! 개같네! 아주 개같아!”

믿기 힘든 온갖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해낸다?’

장노는 거의 60년을 살아왔다.

강호 경험도 출중했고, 온갖 일을 다 경험해 봤다. 한데 지금 오랜만에 가슴이 설렜다.

표사들 수준에 맞춘 수련 내용.

달리기, 마보 같은 아주 보편적인 수련이었지만, 수준만큼은 상당했다.

당연히 현재 천무백의 몸 상태로는 어림도 없는 일.

한데도 천무백은 그걸 꿋꿋이 해냈다. 입으로는 온갖 욕을 해대도,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게 눈에 습기가 찰 정도로 안타까워 보여도.

당장 넘어질 듯 휘청이면서도 놀랍게도 해내고 있었다.

‘어떻게?’

의지만으로 가능한가?

전혀 아니다.

몸에 내공이 있다면 모를까.

내공 한 점 없는 나약한 몸.

의지가 있다고 한들, 몸이 버틸 요량이 없는 것인데.

장노는 이내 천무백의 행동에서 미묘한 점을 발견했다.

‘잠깐.’

그저 무식하게 하는 게 아니었다.

장노는 천무백의 행동에서 일정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약간의 움직임 이후 호흡을 고른 뒤 다시 행동.

누가 보면 답답할 정도로 느린 움직임이다.

숨을 고르고 휴식을 취하는 간격이 무척이나 짧았다.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장노의 몸이 휘청였다.

그는 두 손을 들어 눈꺼풀을 비볐다.

‘근육이 움직이면 일정한 휴식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한데 그걸 본능적으로 파악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휴식과 수련을 반복하고 있다고?’

단순히 우연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노는 확신했다.

지금 천무백은 모든 움직임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건 단지 이론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본인의 몸을 완벽하게 관조해야 가능한 것.

장노는 입으로는 연신 상스런 욕을 툴툴대면서도, 끊임없이 의지대로 수련하는 천무백을 보며 일순 숨을 멈췄다.

‘무공을 익히기엔 적합하지 않은 근골. 하지만…… 의지와 재능은?’

간혹 그런 말이 있다.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천무백의 대금 소리, 금을 뜯는 아름다운 악조.

표국 사람들이 감탄하며 수군대지 않았던가.

예악에 있어서 천재가 아니냐고.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건만 악기를 제 수족처럼 다뤘다.

단지 재능뿐이 아니다.

골골대면서도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 강렬한 의지!

한데 그 재능과 의지가 무공까지 이어졌다면?

예악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관심이 무공에 향하고, 근골은 형편없을지 몰라도 무의 요체를 깨닫는 재능이 있다면?

순간 장노는 전율이 흘렀다.

한때 자신은 가장 높은 곳을 목표로 삼았다가, 재능의 한계를 깨닿고 잘못된 길로 빠진 적이 있었다.

한데 눈앞의 천무백은…….

장노는 부릅뜬 눈으로 천무백의 수련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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