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신궁주(神宮主)의 정체(正體)
푹! 서걱!
이런 걸 추풍낙엽(秋風落葉)이니 파죽지세(破竹之勢)라 하는 걸까.
예상치 못한 불청객에 의해 백만금군에서도 최정예라 불리는 금위군(禁衛軍)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황제의 검이라고 불리는 금의위(錦衣衛), 황제의 눈과 귀라는 동창(東廠), 관리들을 감찰하는 도찰원(都察院) 등 실질적으로 황실고수라 불리는 이들이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허나 황실고수들이 고작 사인(四人)을 물리치긴커녕 죽어가고 있었다.
한 사내는 뒷짐을 지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황실고수들을 죽이는 자들은 삼인에 불과했다.
“이, 이익! 불충한 것… 컥!”
“결코 폐하께 가지 못하게… 으윽!”
일개 금의위 위사(衛士)나 동창은 번역(番役)만이 아니다.
지휘관급이라 할 수 있는 금의위의 천호(千戶), 동창의 당두(檔頭)들조차 불청객들의 일검(一劍)을 막아내지 못했다.
금의위에서도 단 열넷 밖에 없는 천호는 하나 같이 초절정 혹은 그에 접근한 고수들이다.
동창의 당두 역시 못지않다.
헌데 일검도 막아내지 못한다는 건, 불청객들이 그 이상의 고수들이란 말과 다르지 않았다.
“금의위는 물러나라! 본관이 맡겠다!”
“충심이 부족한 것들. 폐하를 위해 강해지지 못할꼬!”
강인한 기운을 풍기는 무관과 섬뜩한 느낌의 환관이었다.
그들을 본 황실고수들은 얼굴이 활짝 폈다.
황실고수들은 그들을 보며 군례를 취했다.
“속하들이, 도독의 명을 받습니다!”
“제독동창의 명을 받나이다.”
그들은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이었다.
황실이 자랑하는 오대고수라 할 수 있는 이들이다.
금의위와 동창 고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그들은 다르다.
허나 적의 수는 셋.
그에 반해 그들을 상대할 황실고수는 둘에 불과하다.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다.
“한 명은 본왕이 맡지.”
“헉! 무왕 전하를 뵙습니다!”
“전하를 뵙습니다!!”
흑룡이 그러진 무복을 입고 있는 초로의 사내였다.
그를 향해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을 제외한 황실고수들이 부복했다.
친왕(親王)의 왕작을 받은 황제의 친동생인 무왕이기 때문이다.
하남에 봉토를 받은 무왕이지만, 황제의 안위가 걱정되어 황실에 와 있었다.
황실고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니, 그가 이리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금의위 도독, 제독동창에 이어 또 한 명의 황실 오대고수가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청객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짐은 거짓된 자를 끌어내리러 갈 테니, 삼공은 거짓된 자를 섬긴 자들의 죄를 물어라.”
“삼공이 어명을 받나이다!”
사내는 스스로 짐(朕)이라 칭했다.
그는 바로 신궁주였다.
소림을 홀로 벌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궁주의 수하가 어찌 무존이나 뇌공 무리만이겠는가.
십대신군을 무존에게 쉽게 내어준 건, 그의 곁에는 삼공(三公)이 있기 때문이다.
태공(太公), 검공(劍公), 창공(槍公).
신궁주를 가장 오랜 모신 자들로, 절대고수들이다.
힘을 점검하기 위해 소림을 홀로 정리한 것뿐이었다.
“미, 미친놈들!”
“감히 칭제(稱帝)를 하다니! 제정신이더냐!!”
황실고수들은 분개했다.
그들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꿈꾸긴 했지만, 그 중심에는 황제에 대한 충심(忠心)이 있다.
칭제하는 사내나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노인들을 보며 황실고수들이 분노를 터트리는 게 당연했다.
신궁주는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하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자 황실고수들은 기겁했다.
“이런! 황제 폐하께… 흡!”
“폐하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지 말거라.”
황제를 보호하러 떠나려던 금의위 도독은 검공의 검에 의해 발이 묶이고 말았다.
금의위 도독만이 아니다.
제독동창과 무왕 역시 창공과 태공에 의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삼공 역시 이곳에 발이 묶여, 신궁주의 곁에 갈 수 없다는 뜻이다.
―뭐 하느냐! 폐하를 모시러 가지 않고!
―충!
금의위 도독의 전음입밀에 진무사들이 움직였다.
제독동창 역시 다르지 않았는지, 첩형들 역시 건청궁(乾清宫)을 향했다.
그럼에도 삼공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 따윈 신궁주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왕은 창을 꽉 쥐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를 능멸한 죄, 죽음으로 갚아라.”
* * *
“컥!”
“으아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황궁.
그것도 황제의 침소라는 건청궁에서 누군가 살겁을 벌이고 있었다.
“폐하! 금황령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옵니다! 부디 옥체를 보전하시옵소서!”
“그러하옵니다, 폐하. 금황령주의 충언을 응해주시옵소서.”
아홉 용이 그려진 용포가 허락된 유일한 존재, 황제.
그런 그의 앞에 일남일녀(一男一女)가 간청했다.
금황령(禁皇令).
어찌 황제를 수호하는 집단이 금의위와 동창뿐이겠는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수많은 고수가 황제를 수호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금황령이다.
일백의 절정고수로 구성되었지만, 적의 무지막지함을 생각하면 일각도 장담할 수 없다.
“황후(皇后), 짐은 천자일세. 어찌 하늘의 아들인 짐이 야인을 피해 몸을 숨긴단 말인가.”
“하하! 옳다! 황제라면 응당 그래야지! 허나 짐이 돌아왔으니, 거짓된 자여. 그만 사라질지어다.”
일백의 금황령 고수가 일각을 버티지 못하고,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
신궁주는 오만하고, 오연한 태도로 황제를 능멸했다.
이를 충신인 금황령주가 보고만 있을 리 없다.
금황령에게만 전승되는 금황도법(禁皇刀法)을 펼쳤다.
퍽!
“…폐…하…….”
“실력은 부족하지만, 거짓된 자에게 과할 정도로 충실한 자군.”
비록 황실 오대고수에는 못 미치지만, 그에 근접한 고수가 바로 금황령주다.
그런 그가 금황도법을 펼치고도 고작 일수(一手)에 절명했다.
금황령주는 죽는 와중에도 황제의 안위를 걱정했다.
황후가 황제의 앞을 막았다.
“네 이놈!! 본후가 살아있는 한, 폐하의 옥체를 상하게 할 수 없다!”
“하하하! …거짓된 자여, 부끄럽지 않나? 계집의 보호 따위나 받고.”
신궁주의 비아냥에 황제는 분노했지만, 체통을 잃지 않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체통을 지켜야 하는 게 바로 황제의 미덕이었다.
신궁주는 손을 들었다.
“으흑!”
“무후(武后)의 맥이 이어진 건 놀랍지만, 짐 앞엔 무용하다.”
놀랍게도 황후는 신궁주의 일격을 막아냈다.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도 놀라운데, 그 무위가 금황령주 이상이었다.
무림에 검후가 있다면 황실에는 무후가 존재한다.
주로 보타암에서 검후를 배출했지만, 아미파나 항산파 등 익힌 무공과 상관없이 여중제일검을 검후라 칭했기에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무후의 맥은 오래전에 끊겼다.
그런 무후의 맥을 황후가 잇고 있던 것이다.
황후야말로 황제의 마지막 보루와 같다.
“황후!!”
“신첩…은 괜찮사옵니다, 폐하.”
황제는 입가에 피가 흐른 황후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망령(妄靈)된 자여! 하늘이 두렵지 않더냐!”
“짐이 곧 하늘이거늘, 무엇이 두렵단 말이더냐. 거짓된 자여.”
신궁주는 여전히 짐이라 칭했다.
무림만이 아니라 황실까지 손에 넣겠단 의미란 말인가.
“정말 망령(妄靈)되었구나. 짐은 하늘이 선택한 존재! 무림의 무부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거늘!”
“짐이 자릴 비운 사이, 잠시 차지했다고 진짜 황제가 되었다 생각하느냐. 거짓된 자여.”
칭제(稱帝)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자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 생각하면서도, 신궁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마음에 걸렸다.
힘으로 황제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진짜 황제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찌 자신이 진짜 황제라 생각하는 것이더냐.”
“짐은 회종(懷宗). 대 송(宋)의 마지막 황제이니라.”
“……!!”
신궁주의 말에 황제와 황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송은 원(元)에 의해 멸망했다.
공식적으로 송(宋)이 사라졌지만, 충신들은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며 송의 부활을 꿈꾸었다.
허나 삭초제근(削草除根)을 위해 원의 군사들이 끈질기게 쫓았고, 옹립된 어린 황제는 죽고 말았다.
충신들은 또 다른 황제를 옹립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옹립된 어린 황제가 바로 회종이라 칭해진 조병이다.
허나 회종은 백 년 전에 죽었다.
헌데 신궁주는 그런 회종이 바로 자신이라 한다.
그러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이제 왜 짐이 짐이라 칭한 지 알겠느냐, 거짓된 자여.”
“송이 무너진 지, 백 년이 넘었다. 송을 무너트린 원 역시 태조(太祖)께서 무너트렸고. 그댄 망령(亡靈)일 뿐이다. 어찌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신궁주는 황제의 말에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황제의 심장을 옥죄게 만들었다.
“큭!”
“폐, 폐하! 그만두지 못할까!”
황후는 내공을 끌어올려 황제를 보호했다.
하지만 그녀의 내공으로 상쇄시킬 수 있는 수준의 힘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크아앙!!”
짐승의 포효와 함께 황제를 옥죄었던 힘이 사라졌다.
그것을 느낀 신궁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에 닿은 곳에 거대한 백호 한 마리가 보였다.
“설군아, 잠시만. 내가 상대할게.”
거대한 백호, 설군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백의 뜻을 거절하지 않았다.
신궁주는 의외로 이백의 존재를 알아봤다.
“넌… 역천자(逆天子)구나.”
“또 그 얘긴가.”
의도치 않게 이백이 황제를 지키는 행태였다.
신궁주는 싸늘한 눈으로 이백을 노려왔다.
“저 거짓된 자를 구하기 위해 짐을 방해할 테냐, 역천자여!”
“황제를 구할 생각은 없지만…….”
무림감찰국에 간접적이나 얽힌 일을 생각하면, 황제를 구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황제가 죽어 천하가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다.
또한 신궁주가 황실을 집어삼키는 것 더더욱 원치 않았다.
“…더 이상 내 소중한 이들을 괴롭히는 걸 볼 수 없지.”
“짐을 방해한 죄, 죽음으로 갚아라!”
한 마리의 용(龍)이 나타났다.
신수 백호도 존재하는데, 용이 존재하면 안 될 건 없다.
하지만 진짜 용은 아니었다.
용의 형체를 띤 심검(心劍)이었다.
심검은 마음을 구현한 힘.
무림을 대변하는 게 도검(刀劍)이기에 심검이라 칭했을 뿐, 검의 형태만 가능한 게 아니다.
그리고 심검은 현경(玄境)의 상징.
신궁주의 심검을 봤음에도 이백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역시 현경이었나. 하지만 말이야.”
이백의 머리 위에 거대한 호랑이가 나타났다.
그 호랑이는 설군이 아니었다.
용과 마찬가지로 심검이었다.
그것도 이백이 구현한 심검 호랑이.
그것을 본 신궁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 이외에 또 다른 현경고수가 존재할 거라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은 지금을 위한 말이 아닐까.
심검의 용과 호랑이가 한 치의 밀림도 없이 격전을 벌였다.
그로 인해 하늘이 울고, 땅이 분노했다.
그야말로 인세(人世)의 대전(大戰)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때 이백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내가 만수조종(萬獸祖宗)이라 불리거든.”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