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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97화 (197/200)

197화. 파죽지세(破竹之勢) (3)

“후우… 다행히 늦지 않았구나.”

이백은 고풍스러운 사찰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그 위용이 여전한 걸 봐선 자신이 늦지 않았다 생각했다.

허나 닫힌 산문(山門)을 보자 느낌이 좋지 않았다.

향객들을 위한 사당이 아니라도 항상 산문을 열어둔 소림이기 때문이다.

“신궁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함이겠지.”

이백은 그렇게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사천삼천(四川三天)에 이어 섬서이강(陝西二强) 역시 봉문했다는 게 알려졌다.

지금까지 그 존재를 숨겨졌던 신궁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全) 무림은 신궁의 존재에 몸소름을 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들의 다음 행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바로 호북과 하남이다.

구파일방의 무당과 오대세가의 제갈세가가 있는 호북(湖北).

구파일방의 소림과 개방 그리고 정파무림의 연합체인 무림맹이 위치한 하남(河南).

이백이 선택한 곳은 하남의 소림이었다.

“실례하겠소.”

그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자신의 존재를 산문 너머로 알렸다.

마음만 먹으면 소림의 산문쯤은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지만, 이는 소림에 대한 예가 아니기에 청한 것이다.

다행히 자신의 존재를 알았는지, 가까워지는 기척이 있었다.

느껴지는 기세를 봐선 어린 제자는 아니듯 싶었다.

실제로 제법 연륜이 느껴지는 중년의 승려였다.

그는 굳은 얼굴로 반장(半掌)했다.

“아미타불… 본사는, 봉문 중이라 객(客)을 받지 않습니다.”

“봉…문(封門)이라 하셨소?”

중년승의 말에 이백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백의 그러한 반응에 경계심을 갖고 있던 중년승은 살짝 누그러졌다.

그는 이백을 향해 예를 갖춰 말을 마쳤다.

“그러니 시주께서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잠깐! 어찌 봉문한 것이오. 소림이 이리 건재한데…….”

“아미타불… 아미타불…….”

중년승은 이백의 말이 끝나기 전에 눈을 질끈 감고, 연신 불호를 중얼거렸다.

그런 반응에 이백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설마… 신궁이 벌써 들이닥쳤단 말이오!”

“아미타불… 태사조께서 열반에 드시면서 봉문한 것이니, 이해해주십시오.”

열반(涅槃)이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불가(佛家)에선 죽음을 의미한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년승이 사부도 아닌 태사조의 열반을 칭했다.

소림에 그 정도 배분의 거인은 단 한 명뿐이다.

“성승께서 돌아가셨단 말이오! 누가 그분을!”

“아미타불…. 그자는… 그자는……!!”

*  *  *

며칠 전.

불혹도 안 되어 보이는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숭산에 올랐다.

숭산은 명산이지만, 오악(五岳)에 꼽힐 정도로 높고 험한 산이다.

헌데 사내는 땀은커녕 호흡조차 흩트림 하나 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오르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젊음이 좋다’의 수준이 아니다.

허나 무림고수라 칭하기엔 뭔가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소림의 제자라고 다르지 않게 느낀 듯했다.

“아미타불… 향불은 이곳이 아니라 저곳에 있는 사당에서 하시면 됩니다, 시주님.”

“허허… 짐은 향불을 피우러 온 게 아니느니라.”

스스로를 짐(朕)이라 칭하는 사내의 말에 소림의 제자들은 흠칫 놀랐다.

짐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는 천하에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황해 반장(半掌)했다.

허나 이상함을 느꼈다.

황제라면 대규모 수행원이 따라야 정상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알기에 황제는 저리 젊지 않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소림의 제자들은 목곤(木棍)을 꽉 쥐곤 나직이 말했다.

“시주님, 농이 지나치십니다.”

“허허 짐이 무슨 농을 했다 그러는가.”

거듭 스스로를 짐이라 칭하는 사내를 보자 소림의 제자들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방장의 명으로 사대제자들이 직접 산문을 지키고 있었다.

당대 소림의 사대제자라 하면 타파의 일대제자와 비슷하다.

장문인의 다음 배분부터 일대(一代)로 칭하는 타파와 달리 소림은 제일 웃어른을 일대로 칭하기 때문이다.

그런 소림 사대제자들이니 화를 다스렸지, 어린 오대제자였다면 버럭 했을지 모른다.

“짐이라니, 시주께서 황제 폐하라도 된단 말입니까. 어찌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습니까.”

“불경하다? 짐이 짐이라 칭하는 게 어찌 불경하단 말인가.”

화를 다스리며 타일렀다 생각했지만, 사내는 여전히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쯤 되니 소림제자들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물러나시오, 시주. 더 이상 불경한 언사를 군다면 예를 갖출 수 없소.”

“소림도 많이 변했군. 홍원은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야.”

소림이 변했다는 말에 표정이 굳어졌던 소림의 사대제자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당장이라도 쥐고 있는 목곤으로 후려칠 기세였다.

사대제자 중 한 명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아미타불… 설마 본사의 조사이신 홍원선사 님은 아니겠지요.”

“설마는 무슨, 홍원이 또 있던가.”

선불(禪佛) 홍원선사.

성승(聖僧)의 사부이자 소림의 전전전대 장문인이다.

80년 전에 열반에 든 소림의 또 다른 전설이다.

헌데 무례한 자의 입에서 그런 홍원선사가 언급되니, 소림의 제자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내 스스로 참회동에 갇히는 한이 있어도 살계를 열겠다!”

“이런! 광양! 아니 되네!!”

소림의 사대제자이자 십팔나한의 한 명인 광양도 절정의 완숙에 오른 고수다.

그런 그가 휘두르는 목곤은 바위를 부술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 광양의 목곤이 사내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만큼 광양의 분노가 컸다.

곁에 있던 광운이 말리려 했지만, 이미 목곤은 사내의 머릴 향했다.

꽈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서진 건, 사내의 머리가 아니었다.

그때 광양과 광운의 귓가에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변했어. 소림은…….”

*  *  *

“허허, 역시 소림인가? 재미있는 걸 키우고 있었네.”

사내의 손에 노승이 붙들려 있었다.

노승의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렸고, 숨 역시 헐떡였다.

그걸 지켜보는 수백의 무승들은 이를 악물었다.

“쿨럭… 신궁(神宮)…의 마귀여… 아직… 컥!”

“항마승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지 몰랐군.”

성승이 은거했으나 삼신승의 존재만으로 소림의 건재를 알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팔대호원과 사대금강, 십계십승, 십팔나한 등 수많은 절정고수들이 그 뒤를 받치고 있으니 다음 대 소림도 앞이 창창했다.

허나 고령의 성승이 열반에 이르면 더 이상 소림에 화경고수가 없다.

삼신승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언제 화경에 이를지 알 수 없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소림에는 성승 이외에 또 한 명의 화경고수가 존재했다.

오직 마(魔)의 창궐을 대비해, 그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채 평생 항마신공을 익혀온 소림의 수호자.

그가 바로 항마승(降魔僧)이다.

신승(神僧)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항마승이 사내를 향해 신궁의 마귀라 칭했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신궁의 궁주였다.

“아미타불…….”

누군가의 읊은 불호와 함께 거대한 손이 신궁주를 짓눌렀다.

서장의 전설 포탈랍궁의 대수인(大手印)를 연상케 했다.

소림에도 이와 비슷하지만, 그 결이 다른 절학이 존재한다.

천수여래장(千手如來掌).

소림 칠십이절예 중에서 그 위력은 손에 꼽힐 정도다.

헌데 그런 천수여래장이 산산이 부서졌다.

“계명 사질을 놔주시겠소, 시주.”

“각윤대사의 엉덩이가 무거워, 짐이 번거롭지 않은가.”

항마승은 무려 계자 배분, 당대 소림 이대제자인 셈이다.

장문인이 삼대제자인 걸 생각하면 원로급이라 할 수 있다.

헌데 그런 항마승 계명대사를 사질(師姪)이라 칭했다.

소림 유일한 일대제자인 각윤대사.

무림에선 그를 성승(聖僧)이라 부른다.

“시주, 다시 한번 청하외다. 사질을 놔주시오.”

“달라고 하니, 보내주지.”

신궁주는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항마승을 성승에게 보냈다.

허공섭물만 해도 고도의 수법이지만, 신궁주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성승은 날아오는 항마승을 향해 두 팔을 휘둘러 나선(螺旋)을 그리며 휘저었다.

그 순간 항마승은 허공에 뜬 채, 기의 교류에 갇혔다.

성승은 신궁주의 기운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사질이 다치지 않게 해야 하기에 곱절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평안한 표정을 짓는 신궁주와 달리 성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후후… 과연 성승이군, 조금 재미있겠는데…….”

“……!!”

성승의 눈이 커졌다. 성승만이 아니라 소림의 제자들은 하나 같이 경악했다.

단순히 내공을 운용한 수준이 아닌 거의 진기대결에 가까운 상황이다.

진기대결 중에 소리를 내면 내공이 흩어질 수 있기에 입을 열지 않는 게 불문율이나 마찬가지다.

헌데 신궁주는 그러한 불문율을 무시했다.

그럼에도 신궁주는 멀쩡했다.

오히려 놀란 성승이, 찰나지만 내공운용에 틈을 보이고 말았다.

다른 자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으나 상대가 신궁주라는 게 문제였다.

주우욱~!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성승이 이장(二丈)이나 미끄러졌다.

그 와중에도 사질을 안전하게 보호했다.

“후우… 장문인, 계명 사질을 부탁하네.”

“사손 공심이, 사조님의 명을 받듭니다.”

항마승은 조심스럽게 허공을 날아 장문인의 품에 안겼다.

항마승의 존재는 비밀 중에 비밀이지만, 장문인이 그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장문인은 사대금강에게 사숙인 항마승을 호위해 약왕당으로 가라고 명을 내렸다.

“이제 짐을 즐겁게 해주게나, 각윤대사.”

“쿨럭…….”

무림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격전이 벌어졌다.

백보신권, 연대구품, 금강부동신법, 반야대능력 등 소림의 전설적인 절학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 여파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림의 많은 불당(佛堂)이 무너지고 말았다.

허나 무너진 건, 건물만이 아니다.

소림의 자존심 역시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

“태사조님!!”

“아미타불… 아미타불…….”

입에서 연신 피를 흘리는 성승.

그런 그를 보는 소림의 제자들은 절규했다.

무림의 살아 있는 전설, 성승(聖僧)이 어느 누가 이리 무너질 거라 생각했겠는가.

“아쉽군, 아쉬워. 짐과 온전히 같은 경지에 올랐다면 재밌었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자부심을 가져도 좋네. 짐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각윤대사, 자네를 이기지 못할 걸세.”

놀랍게도 성승은 현경(玄境), 정확히는 현경의 한 발 걸치고 있었다.

일말의 깨달음이 부족하여 혹은 일말의 번민을 떨치지 못해 온전한 현경에 오르지 못했다.

한발 걸친 것과 완벽한 현경은 천지 차이다.

그러한 탓에 성승은 전설에 어울리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신궁주의 진심 어린 말이었으나 조롱처럼 들렸는지, 누군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태사조님을 우롱하지 마라!!”

분노한 중년승이 신궁주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권격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문제자로, 무림에선 그를 백보신권(百步神拳) 광현이라 부른다.

허나 상대는 천하를 발아래로 두려는 신궁주였다.

광현의 권격이 닿기도 전에 눈빛에 제압되었다.

정확히는 의념기에 의해 제압된 것이다.

“짐이 너그럽게 보였나 보군.”

“시주… 멈추시오. 이… 늙은 중의 목숨이면 충분치 않소.”

성승의 말에 신궁주는 멈칫했다.

그의 말에 반응을 보인 건 신궁주만이 아니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태사조님!”

“당장 태사조님을 구하…….”

소림 제자들 사이에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신궁주에겐 가소롭게만 보였다.

그때 성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문인…. 소림의 일대제자로서… 청하네. 이 늙은 중이… 죽으면, 봉문…….”

성승은 말을 마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이를 본 장문인은 절규했다.

“사, 사조님!”

“아, 아미타불! 아미타불!!”

소림의 제자들은 무시무시한 신궁주가 눈앞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반장을 하며 연신 불호를 읊었다.

“…사손 공심. 사조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무슨 생각인지 신궁주는 그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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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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