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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94화 (194/200)

194화. 부궁주(副宮主)의 정체(正體)

“쿨럭… 말도… 안 돼…….”

피가 섞여 나오는 기침을 하는 당자명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부정했다.

시체가 되어 버린 수백의 가솔들.

고작 열한 명의 손에 벌어진 일이다.

아니, 백의노인은 나서지도 않았으니 열 명에 의해 사천당가가 무너진 것이다.

“독하긴 독하군. 방심했다가 골로 갈뻔했어.”

“아쉽군. 자네가 죽었으면 자네의 애첩을 데려가려고 했는데 말이야.”

“흥, 무명지(無名指)만 한 걸로 그 아일 만족시킬 수 있을 거 같아?”

“계지(季指)만 한 자네 것보단 만족하겠지?”

당가인 수백을 죽인 와중에 더러운 음담패설을 나누는 그들을 보며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았다.

이런 분노는 어찌 당자명만 느끼겠는가.

쾅!

“개만도 못한 것들!!”

“크윽!”

수백의 당가인을 죽였기 때문인지, 십대신군은 의기양양했다.

그러한 탓에 무의식 중에 자만심을 품은 게 문제였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노고수의 암격(暗擊)에 튕겨 나갔다.

뒤늦게 경계했으나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신군(神君)이 나가떨어졌다.

노고수는 당장이라고 자신에게 달려들 것 같은 십대신군 대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가인들에게 호통을 쳤다.

“뭐 하느냐! 독존암제(毒尊暗帝)의 후예들이, 형제자매를 죽인 자들을 두고만 볼 것이냐!”

“대, 대호법님!”

노고수의 정체는 사천당가의 대호법 천수(千手) 당문기였다.

당자원의 일로 가내(家內) 정비를 위해 잠시 은거를 깼던 그는 어느 정도 되었다 싶었는지, 다시 칩거했다.

그런 그가 지금 돌아왔다.

기다리던 독선(毒仙) 당문후는 아니나 그의 등장으로,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니,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생각하는 순간.

뒤에 물러나 있던 백의노인, 신궁의 부궁주가 나섰다.

“얘들 노는데, 늙은이들이 껴야겠소?”

“후레자식이! 감히 본가를 능멸하고 그딴 개…소리… 으음?”

걸쭉한 욕설을 내뱉으며 분노를 터트렸던 당문기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부궁주가 왠지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허나 알 리가 없다.

자신의 칩거가 오래되었으니, 암류의 고수를 만날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당문기가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알 리 없어야 하는데, 부궁주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다.

“귀, 귀하께서 어찌… 미친!!”

“대호법님, 저…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백부인 당문기가 저리 당황하는 걸 처음 본 탓에 당자명은 당혹스러웠다.

그의 물음에 당문기를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어찌 모르겠느냐! 저분 아니, 저자가 바로 무(武)… 큭!”

“허허… 말이 많구려.”

당문기는 당가인을 수백이나 죽인 적의 무리를 이끈 자를 무의식적으로나마 ‘분’이라 칭했다.

그가 대단히 명망(名望) 높은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허나 당문기는 부궁주의 정체를 완전히 밝히기도 전에 반으로 쪼개졌다.

도검으로 그를 벤 게 아니다.

가볍게 손짓한 것만으로 천수(千手) 당문기를 베었다.

이게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대, 대체 다, 당신 누구야…….”

“허허… 당 형은 언제 오는가? 본좌가 아해에게 손을 대긴 그런데 말이야.”

오만할 정도도 자존감이 높은 당자명이건만, 지금 이 순간은 너무도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제 물음이 무시당한 건 둘째고, 애 취급까지 받았음에도 감히 화가 나지 않을 정도로.

부궁주는 싸늘한 눈으로 당자명을 내려봤다.

“어쩔 수 없지, 자넬 죽여야 당 형이 나타난다면…….”

당자명을 향해 손짓했다.

조금 전, 당문기를 죽였듯.

그 순간 당자명은 죽음의 공포가 전신을 휘감는 게 느껴졌다.

막거나 피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 내가 아니었다면… 당자성, 그놈이었다면 달랐…….’

죽음이 엄습하는 순간 당자명은 후회만 들었다.

자신이 아닌 이복형제인 당자성이 살아 있었다면.

그가 살아 아직도 소가주였다면.

이렇게 수많은 당가인이 죽지 않았을까.

그러한 생각에 생각이 꼬리처럼 물고 물었다.

쾅!!

“설마… 그대가 궁주일 줄… 몰랐소.”

“허허… 늦었소이다, 당 형.”

죽음의 직전 당자명을 구해준 자는 평범한 외형의 노인이었다.

그의 얼굴을 본 당자명은 안도하며 이제 살았다 생각했다.

“아, 아버님…….”

“늦어서 미안하구나. 무존은 이 아비가 맡을 테니, 물러나거라.”

“예, 아버… 예? 무…존이라고요!!”

안도하며 물러나려던 당자명이 눈이 커졌다.

그리곤 무존을 바라봤다.

그제야 죽기 전, 백부의 그 반응이 이해 갔다.

무존(武尊).

독선과 함께 우내오존(宇內五尊)의 또 다른 절대자.

그가 신궁의 주인이라니.

그제야 신궁이 이리도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이율 알 수 있었다.

허나 무존은 피식거렸다.

그런 무존을 보며 독선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우습소, 무존.”

“우스울 수밖에 없소, 당 형. 궁주라니 당치 않소. 본좌는 부궁주일 뿐이오. 궁주께선 본좌 따위완 비교도 되지 않은 분이외다.”

“……!!”

무존의 말에 독선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믿을 수 없었다.

사존은 사도련의 련주고, 천마는 천마신교의 교주다.

성승은 소림의 전전대 방장이고, 자신은 사천당가의 가주이지 않은가.

헌데 우내오존이 고작 부궁주라니.

그걸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독선은 물론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당가인들 모두 부정하는 표정이었다.

허나 무존과 십대신군은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무존은 섬뜩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만 죽어줘야겠소, 당 형. 궁주께 그대의 목을 바쳐야 하니.”

*  *  *

“후…우…….”

허공에 떠 있던 여인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 위에 있던 꽃들이 연기가 되어 여인의 코로 빨려들었다.

그제야 여인은 점점 하강하더니 바닥에 안착했다.

잠시 후, 그녀의 눈꺼풀이 스르륵 열렸다.

번쩍!

강렬한 안광이 여인의 눈에서 번들거렸고, 만족스러운지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후후… 드디어 6성이네, 독혼결(毒魂訣)이…….”

독심결에 이어 독선에게 전이각인대법(轉移刻印大法)으로 전수 받은 무공구결이다.

무공의 대성(大成)을 10성이라고 하니, 6성의 성취는 높다고도 낮다고도 할 수 없다.

당령이 석벽을 향해 손을 뻗자 진한 녹빛이 어렸다.

그 직후 석벽에 장흔(掌痕)의 형태로 녹았다.

단단한 석벽이 이럴진대 상대가 사람이라면, 누가 막아낼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에 당령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았어!”

6성의 성취로 이 정도 위력이라니.

독혼결의 진짜 명칭은 알 수 없지만, 대단한 절학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당령은 몰랐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신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당령은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옷을 발견했다.

“세심도 하시네.”

그녀가 익힌 독혼결은 독공(毒功).

게다가 무아지경에 빠지기까지 했다.

연공을 마친 후 옷이 엉망이 되는 건 자명하다.

그녀의 조부 독선은 이를 예상하고 준비해둔 것이다.

그렇게 조부가 준비해둔 옷으로 갈아입은 당령은 철문을 열었다.

그런 그녈 기다리고 있던 자가 있었다.

“질녀 당령이 당숙께 인사…….”

“인사는 되었다. 그보다…….”

호천각주(護天閣主) 당자경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 순간 당령은 불길한 예감이 머릴 스쳤다.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죠? 당숙, 말씀해보세요.”

“…본가가… 습격을 당했다.”

그의 말에 당령의 눈이 커졌다.

대 사천당가가 습격을 당하다니.

어느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당자경의 표정을 봐선 가볍게 끝나지 않았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많이… 다쳤나요. 누, 누가 다쳤나요. 설마… 아빠가 다, 다친 건 아니죠!”

당령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봐야, 의부와 당외삼비, 육촌인 당천희. 눈앞의 당자경, 그리고 조부인 독선 당문후 정도다.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의부인 장철우였다.

제 핏줄이 아님에도 자신을 평생 돌봐주었다. 가정조차 꾸리지 않고.

게다가 공녀의 의부이지만, 무공이 뛰어난 고수는 아니다.

만약 누군가 다쳤다면 의부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알지 못한다. 나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자경의 의미 모를 말에 당령은 순간적으로 벙쪘다.

그의 표정과 말투를 봤을 때, 분명 자신과 가까운 이 중에 문제가 생겼다고 확신이 들었는데 정작 알지 못한다니.

당령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그녈 향해 당자경이 무겁게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말했듯 본가가 습격을 받았다. 그걸 가주께 보고드렸지. …가주께선 조사전을 지키라는 명을 내리셨다. …그게 사흘 전이다.”

“예? 사흘… 전이라고요? 그럼 습격은…….”

당령은 당혹스러웠다.

자신이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지난 사흘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말인가.

“본각은… 가주님의 명에 의해 조사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본가가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헌데 사흘이나 소식이 없구나. 아무런 소식이…….”

“자, 잠깐만요! 지, 지금 그 말씀은… 아, 아니죠? 아닌 거죠!!”

그 순간 당령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당황하는 그녈 보며 당자경에 이를 악물었다.

그 역시 애써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가… 보자꾸나. 직접 어찌 되었는지 확인해보자꾸나.”

당자경은 이를 악물고, 앞장을 섰다.

지하 곳곳에 고수들이 기척이 느껴졌다.

호천각원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하를 벗어났을 때, 그들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이, 이건!”

“젠장!!”

조사전의 위패들은 엉망이 되었고, 조사전 내부에서 지키고 있던 호천각 고수들이 죽어 있었다.

가주전과 함께 사천당가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중지(重地)로 정해진 조사전이 이 정도다.

밖은 얼마나 더 심각하겠는가!

뛰쳐나간 당자경의 뒤를 따라 당령 역시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은 커졌다.

“……!!”

곳곳이 무너지고 불에 탄 흔적이 역력했다.

폐관에 들기 이전까지만 해도 위용을 자랑하던 그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억장이 무너질 거 같았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무사할지 모른다. 아니, 무사해야 한다.

그러한 일념으로 달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 돌이나 나무를 옮기는 이들이 들어왔다.

그중에는 눈에 익은 초로 사내도 있었다.

“아, 아빠…. 아, 아빠!!”

“…령이. 려, 령아!”

목재를 나르던 초로 사내는 당령의 이름을 중얼거리더니, 그녀에게 달려갔다.

얼마나 기뻤는지 목재를 어깨에 짊어진 채 달려갔다.

그런 그의 품에 당령이 안겼다.

그리곤 그의 옷을 붙잡고 울먹였다.

“걱정했잖아요…. 아빠가 다쳤을까 봐, 걱정했다고요!”

“애비는 괜찮다. 나는…….”

당령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났다.

당령은 고갤 들어 장철우를 바라봤다.

“유모는 무사하죠? 아저씨들도요? 아, 천희 오빠는…….”

“…….”

당령의 입에서 그녀와 가까이 지내던 이들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그럴 때마다 장철우의 얼굴에 그늘졌다.

그런 그가 무겁에 입을 열었다.

“령아, 너무 슬퍼하지 마라. 아니, 슬프겠지만 이겨내야 한다.”

“왜, 왜 그러세요? 아빠.”

“가주님께서… 가주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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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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