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신궁(神宮)의 공세(攻勢) (4)
“허허… 역시 본가를 이끄는 건 너다.”
어디서나 볼 법한 촌노의 얼굴을 한 노인은 흐뭇하게 여인을 바라보았다.
방년(芳年)을 지난 지 몇 년 밖에 안 될 듯한 외모의 어린 여인이었다.
헌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가부좌를 튼 채 허공에 떠 있다.
놀랍게도 부공삼매(浮空三昧)의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허나 더 놀라운 건, 그녀의 머리에 핀 세 송이의 꽃이다.
정확히는 두 송이가 활짝 피었고, 한 송이는 봉우리만 맺혀 있었다.
세 송이는 무형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꽃으로, 이를 무림에선 삼화취정(三花聚頂)의 경지라 부른다.
“어느 녀석도 네가 여아라고 반대할 수 없겠지, 이립도 안 되어서 초절정의 문을 두들기니… 허허…….”
지천명(知天命) 전에 초절정지경에 오른 자는 우내오존과 무림십왕을 제외하면 두 손에 꼽힐 정도다.
이대로 벽을 넘긴 어렵겠지만, 이러한 속도라면 충분히 이립 전도 기대할 만하다.
즉, 여인의 ‘재능’이 무림 절대자의 아래가 아니란 뜻이다.
물론 이대로 평생 화경은커녕 초절정지경에도 오르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두각을 보였으나 그 재능을 완전히 꽃 피우지 못한 자가 수두룩한 곳이 바로 무림이다.
하지만 노인은 여인이 미래에 여중제일고수는 물론 최강의 고수 중 하나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감히 천하제일(天下第一)을 점지하지 못하는 건, 그녀의 엄청난 잠재력조차 넘어선 괴물을 알기 때문이다.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여인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두꺼운 철문 밖으로 나갔다.
“호천각주가 가주님께…….”
“본가가 위험할 정도가 아니면 찾지 말라 했거늘…….”
노인은 초로 사내의 인사를 끊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정체는 바로 우내오존의 일인이자 사천당가의 가주 독선(毒仙)이었다.
초로 사내, 호천각주는 다급히 말했다.
“본가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더냐!”
독선은 버럭 화를 냈다.
아무리 자신이 자리를 비웠다지만, 천하의 사천당가다.
그런 가문이 위험해 처했다니, 어이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호천각주가 농을 할 리 없다.
그것도 가주인 자신에게.
그 말은 말도 안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뜻이다.
“적…습입니다.”
“적습? 어느 미친… 설마, 마교더냐.”
난공불락이라고 불리는 가문이 바로 사천당가다.
내원은 물론 외원까지 기관장치로 보호받고 있다.
독과 암기의 가문답게 기관장치가 발동되면 불청객은 독에 녹아버리거나 암기에 벌집이 된다.
그런 사천당가이기에 함락된 적이 없다.
천마신교가 중원정벌을 나섰을 때 장원이 반파된 적이 있지만, 그들 역시 괴멸되었기에 함락된 건 아니다.
“신궁…입니다, 가주님.”
“신궁!!”
독선은 당령을 가르치기 위해 오랫동안 폐관에 든 탓에 천마신교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허나 신궁이라는 암류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무림맹 추암당으로 당자운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런 신궁이 사천당가를 공격하고 있다면 방심할 수 없다.
독선은 나직이 물었다.
“상황은 어떤가.”
“외원의 기관장치를 발동시켜 대응하고 있으나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호천각주가 이리 말할 정도라면 신궁의 공세가 생각 이상으로 거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본 가주가 적을 물리치겠노라. 호천각은 조사전(祖師殿)을 수호하라.”
“가, 가주님! 저희 호천각은…….”
사천당가의 조사전은 어디나 마찬가지였지만, 역대 가주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허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조사전의 지하에는 별실이 존재한다. 바로 가주만의 수련실이다.
곳곳에 역대 가주의 수련 흔적 및 깨달음이 남겨 있기에 가주의 허락 없인 누구도 출입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독선은 당령을 데리고, 조사전의 수련실로 온 것이다.
“반박을 불허한다, 각주! 설마 본 가주를 믿지 못하는가!”
“…호천…각주가 가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가주의 안위를 위한 호천각이건만, 조사전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조사전이 중지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 있는 당령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았다.
호천각주는 감히 가주의 명을 어길 수 없었다.
불복한다면 그를 믿지 못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는 탓이다.
“그리고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에…….”
* * *
“지, 지멸관(地滅關)이 파괴되었습니다!”
사천당가의 외원은 다섯 가지의 기관장치 오행기관(五行機關)으로 보호되었다.
허나 그런 외원은 무너진 지 오래다.
외원의 가솔들은 이미 내원에 들인 후 삼재멸관(三才滅關)을 발동시켰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행기관보다 삼재멸관이 더 강력한 기관장치다.
헌데 벌써 두 번째인 지멸관까지 파괴되었다고 한다.
“화경고수라도 이리 빨리 파괴하지 못할 터인데…….”
수하의 보고를 받은 소가주 당자명은 이를 악물었다.
과거 사천당가의 대장원을 반파시킨 천마신교는 장로 셋이 투입되었고, 그중 두 명이 죽었다.
나머지 한 명은 당대 당가주과 양패구상했다.
그렇게 한 가문이 천마신교의 장로 셋을 막아낸 것이다.
헌데 당시에도 이 정도로 빠르지 못했다.
게다가 죽은 신궁 고수의 수도 고작 수십에 불과하다.
역대급 전력을 보유한 지금, 이 정도라면 신궁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아무리 신궁이라도 천멸관(地滅關)까지 파괴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 가주께서 곧 오실 테니, 다들 희망을 버리지 마라!”
“존명!!”
당자명의 외침에 가솔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외원이 무너지고 내원의 삼재멸관까지 무너지고 있기에 다들 절망에 빠졌다.
허나 자신들에게는 가주가 있다.
위대한 우내오존의 독선(毒仙)이.
적이 아무리 악독하다고 해도 그라면 무찌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마음 덕분에 당가인들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그늘은 거둬지는 걸 보며 당자명은 내색하지 않을 뿐 씁쓸했다.
아무리 자신이 암천혈우(暗天血雨)이니, 암절(暗絶)이니 불려도 이 상황에서 가솔들에 희망을 주지 못했다.
헌데 아비는 언급되었을 뿐인데, 그들의 표정부터 바뀌었다.
‘난… 가주가 될 거야. 그리고 아버님마저 뛰어넘고 말겠어!’
소가주임에도 최근 몇 년 사이, 그의 입지가 많이 흔들렸다.
그나마 경쟁상대였던 외총관 당자원이 스스로 무너졌다.
그럼에도 입지가 확고해지지 못했다.
부친이 새로운 패를 꺼내고 말았다.
호천각주(護天閣主) 당자경.
당자명으로서는 대노했지만, 자신이야말로 누구보다 차기 가주로 손색이 없다는 증명할 생각이었다.
오늘 적을 완벽하게 막아냄으로써.
쾅! 콰쾅!!
“처, 천멸관이 바, 반파되었습니다!! 앞으로 이각! 아니, 일각(一刻)이면 완전히 파괴됩니다!”
수하의 보고에 당자명은 이를 악물었다.
오행지관과 삼재멸관이 완파된 건 오직 한 번뿐이다.
그 이후 개량과 개량을 거쳐 더 이상 그런 치욕은 없다 생각했는데, 또다시 치욕을 맛보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 천멸관까지 무너지기 직전이라니, 사천당가의 소가주로서 억장이 무너졌다.
“만독고(萬毒庫)와 천암고(千暗庫)를 개방하라!”
“소, 소가주님!”
만독고와 천암고를 개방한다는 건 사천당가의 모든 걸 사용하겠단 뜻이었다.
이는 오직 가주만이 가진 권한이다.
아무리 당자명이 소가주라도 이는 월권(越權)이었다.
기겁하는 수하들을 향해 당자명이 악귀와 같은 얼굴로 외쳤다.
“가주께서 오시기 전까지 본가를 수호해야 한다! 모든 책임은 소가주인 내가 질 테니! 너희는 명을 따라라!!”
“조, 존명!”
평소라면 절대 따라선 안 되는 명령이었다.
허나 가문이 무너지면 그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독선이 돌아올 때까지, 우선 가문을 지키고 있는 게 중요하다.
당자명은 홀로 악에 받쳐 외쳤다.
“가문을 지키는 건, 아버님이 아닌 저 당자명입니다!”
* * *
콰콰쾅!!
치밀한 계산과 정밀한 구조를 통해 적의 침입을 불허하던 사천당가의 기관장치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 기관장치를 부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통은 폭약의 가공한 위력으로 파괴하거나 기관토목술(機關土木術)의 대가가 골머리를 썩어 가며 해체한다.
이 두 가지가 사실상 유이(唯二)한 해결책이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 일반적인 상식에 한해서다.
무림에선 간혹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새하얀 무의(武衣)를 입은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이 허릴 숙였다.
“궁주님, 명을 완수했습니다.”
“광아, 수고 많았다.”
광이라고 불린 노인인 치하하는 자는 놀랍게도 불혹도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사내였다.
그럼에도 노인 불쾌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젊은 사내가 놀랍게도 신궁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괴물이라는 마동(魔童)이나 뇌공(雷公) 등이 경외하던 궁주가 이런 젊은 사내라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당가를 궁주께 바치겠나이다.”
“할 수 있겠느냐. 독선 그 아해는 제법이라 하던데.”
놀랍게도 궁주가 독선을 지칭하며 아해(兒孩)란 표현을 사용했다.
팔순을 넘긴 지 수 년이 지난 독선에겐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표현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젊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궁주의 실제 나이는 상당히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동이 익힌 마라동자공과 같은 괴공을 익힌 게 아니라면 결국 반로환동(返老還童)의 경지에 이르러 젊어졌다는 의미였다.
“맡겨주십시오. 사존(邪尊)을 열이에게 빼앗겨서 아쉬웠습니다.”
“허허… 좋다. 허나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뇌공은 철저히 준비한 영왕이라는 비장의 패 덕분에 사존을 무너트릴 수 있었다.
헌데 백의노인(白衣老人)은 홀로 우내오존을 상대하겠다 선언했다.
그럼에도 궁주는 말리지 않았다.
그라면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보여주었다.
“감사합니다!”
“십군(十君). 부궁주를 보좌하라.”
“존명!”
궁주의 명에 십인(十人)이 백의노인의 뒤에 섰다.
십대신군(十大神君).
궁주를 보좌하는 십인의 절세고수에게 백의노인을 보좌케 명했다.
백의노인이 바로 신궁의 부궁주였다.
고작 11인이 사천당가를 무너트리기 위해 천멸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궁주는 흐뭇하게 웃었다.
“스스로 증명하거나 짐의 후계라는 걸.”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