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신궁(神宮)의 공세(攻勢) (3)
쾅! 콰쾅! 콰쾅!!
핏빛의 수영(手影)과 뇌기가 충돌할 때마다 하늘이 요동쳤다.
“큭!”
“뇌천신… 칫!”
천사진경(天邪眞經)에 가려졌지만, 사파무림의 또 다른 전설이라고 불리는 혈마경(血魔經)이다.
혈영마수(血影魔手)는 그런 혈마경의 절학 중 하나이건만, 뇌천신장(雷天神掌)의 위력이 밀리고 말았다.
뇌공은 틈을 드러낸 혈제의 목을 취하려 했지만, 짜증스러운 얼굴로 물러났다.
쿠우욱!!
그의 목이 있던 자리를 거대한 칼이 갈랐다.
거도(巨刀)답지 않게 빠를 뿐만 아니라 허공이 부서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도산검림(刀山劍林)이라고 불릴 정도로 검객만큼이나 많은 도객이다.
허나 이런 거도를 다루는 도객은 흔치 않다.
칼이 크다는 건 무겁다는 말과 다르지 않고, 무거우면 칼을 휘두를 때 느릴 수밖에 없다.
찰나의 순간 목숨이 오가는 무림에서 아무리 위력이 좋다고 한들, 목숨을 내놓고 싸울 수는 없다.
“허… 그걸 피하더니…….”
“거슬려…….”
빠드득!
혈제에게 치명상을 입히려고만 하면 방해하는 노도객(老刀客)에게 뇌공은 짜증이 났다.
혈제를 죽이기 전에 그라도 먼저 처리하고 싶지만, 노도객도 단숨에 죽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자가 아니다.
양수거도(兩手巨刀)를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두르는 괴물은 무림에 단 둘뿐이다.
거리상 광서까지 오지 못한 패왕성의 패황(霸皇). 그리고 낭인들의 대부 낭왕(狼王)이다.
십절흑제에게 당한 후 칼을 간 낭왕은 오늘만을 기다려 왔다.
그런 낭왕이니 뇌공이라도 애먹는 게 당연했다.
“진천…….”
낭왕은 진천삼도(振天三刀)를 연이어 펼쳐, 뇌공이 뇌천신공을 운용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칼을 가볍게 휘두르지만, 그 속에 무거움을 담은 낭왕의 도격은 뇌공의 발을 묶었다.
벼락은 강하면서 빠르다.
뇌전보(雷電步)을 밟으며 낭왕의 도격을 피할 뿐만 아니라 반격의 기회까지 엿봤다.
“비켜!”
“성질하곤…….”
날카로운 목소리만 아니라 혈제가 이를 악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은 탓이다.
그게 아니라도 더 이상 뇌공을 발을 묶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낭왕이 옆으로 피했다.
뇌공은 그가 피하는 걸 놔둘 수밖에 없었다.
핏빛의 륜(輪)이 자신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뇌공은 머릴 숙여 혈마륜(血魔輪)을 피했다.
아니, 피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뇌공에게 쇄도했다.
“귀찮은…….”
뇌공은 손에 뇌천강기를 담아 혈마륜을 후려쳤다.
쾅!
“미친!”
뇌공은 기겁했다.
뇌천강기가 담긴 뇌공의 수도(手刀)는 바위도 벨 수 있건만, 혈마륜은 멀쩡했다.
그럴 만한 게 혈마륜은 강기를 압축시켜 위력을 비약적으로 높인 강환(罡環)의 일종이다.
혈마경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다섯 절학, 혈마오절(血魔五絶)의 하나인 이유였다.
뇌공은 뇌전보를 극한으로 펼쳐, 혈마륜을 피했다.
“어림없지!”
혈제는 이기어검의 무리(武理)로 혈마륜을 조종해 피하는 뇌공을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하지만 극한으로 펼친 뇌전보도 만만치 않았다.
혈제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혈마륜이 둘로 나뉘었고 다시 넷으로, 마지막으로 여덟 개가 되었다.
혈마팔륜(血魔八輪)은 뇌공의 팔방(八方)을 점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
씨익.
그때 뇌공의 입꼬리가 올랐다.
“뇌신창(雷神槍)!!”
쾅!
뇌공이 뇌천강기로 이루어진 창을 휘둘러 여덟 륜 중 하나는 파괴했다.
혈마륜이 여덟 개로 나뉜 덕분에 팔방을 포위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위력 역시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탓에 뇌공은 혈마팔륜의 하나를 파괴할 수 있던 것이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니다.
뇌공은 뇌전보를 펼쳐 파괴된 혈마륜의 방향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그대로 혈제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이런 젠장!!”
강환인 혈마륜을 발현하고, 거기다 이기어검의 무리로 조종까지 하면서 막대한 내공 소모를 한 혈제다.
뇌공의 뇌신창을 피할 여유가 없었다.
뇌신창이 혈제의 가슴에 꽂혔다.
쾅! 꽈직! 꽈지직!!
혈제의 가슴에 뇌신창이 꽂혔지만, 관통하지 못했다.
혈마갑(血魔甲)이 발동한 탓이다.
혈마륜과 함께 혈마오절의 하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건 아니다.
“큭!”
신음과 함께 튕겨 나가 버렸다.
이번에야말로 혈제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뇌공으로선 자존심이 상했다.
뇌신창 역시 내공 소모가 적지 않음에도 혈제를 뒤따라가 다시 한번 찔렀다.
콰쾅!!
“커억! 우웩!!”
“흐흐 죽어… 컥!!”
결국 혈마갑이 파괴되었다.
그 충격으로 혈제는 피를 토하고 말았다.
뜻을 이룬 뇌공은 환열을 느꼈다.
허나 그는 환열을 만끽할 수 없었다.
한 자루의 칼이 뇌공을 벤 탓이다.
“혈제, 괜찮소!”
“쿨럭… 주겨… 놈…을… 쿨럭…….”
혈제는 안부를 묻는 낭왕에게 제 안부 대신 그를 죽이라는 말만 했다.
낭왕도 더 묻지 않고 뇌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조금 전의 일격에 그가 죽었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어디 간 거야!”
당혹스럽게도 뇌공이 보이지 않았다.
절명은 시키지 못했다고 해도 치명상을 입혔다 생각했는데, 도망칠 여력이 남았나 보다.
“젠장, 내 실수요.”
“…살왕? 그게 무슨 말이오?”
뇌공 대신 모습을 드러낸 자는 살막주 살왕이었다.
낭왕의 물음에 그가 쓴 표정을 지었다.
살왕은 한숨을 내쉬곤 설명했다.
“영왕을 놓쳤소.”
“영왕이라면 막주가 맡은……?”
살왕이 놓쳤다는 말이 놀라워하던 낭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뇌공을…….”
낭왕의 되물음에 살왕은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절대살수인 살왕과 영왕은 일진일퇴(一進一退)를 반복했다.
그러한 탓이 어느 한명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했다.
최소한 그의 발을 묶은 것에 만족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영왕이 음영환위(陰影換位)를 사라졌다.
당연히 암습에 대비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영왕은 암습을 위해 사라진 게 아니라 도주한 거라고.
그렇게 도주한 영왕은 쓰러진 뇌공까지 빼돌리고 말았다.
“미안하오, 내 탓이오.”
“어찌 막주의 탓이오. 그만큼 만만치 않은 상대였소.”
영왕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살왕을 타박할 수 없었다.
그 역시 혈제와 함께 뇌공을 공격했음에도 확실하게 죽이지 못했다.
신궁의 주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이러하다니.
역시 무서운 세력이다, 신궁(神宮)은.
낭왕은 칼을 어깨에 얹혔다.
“잔당을 처리할 테니, 혈제를 부탁하오.”
“끄응… 내키지 않지만 그리하겠소.”
어쩔 수 없이 돕긴 했지만, 살막과 혈궁은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혈제의 요청도 몇몇이나 묵살했고.
하지만 영왕을 놓쳤으니 낭왕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낭왕의 가세로 신궁 장로원의 잔당은 빠르게 무너졌다.
그렇다고 해서 사파연합(?)의 승리라 할 수는 없다.
뇌공과 영왕을 놓친 만큼 무승부에 가깝다.
그렇게 신궁의 거친 행보를 막은 거에 만족할 따름이었다.
허나 그들은 몰랐다.
아직 신궁의 행보를 막은 게 아니라는 것을.
* * *
“하, 하하… 혈궁의 승보에 기뻐할 날이 올 줄 몰랐구려.”
혈궁의 일이 빠르게 무림맹에 전해졌다.
개방에도 몇 마리 보유하지 못한 전서응을 날린 덕분이다.
무림맹주 검제는 신궁의 행보를 막아냈다는 보고에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한 애매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신궁의 행보를 막아내는 건 분명 기뻐할 일이다.
헌데 그 일을 해낸 게 사파인 혈궁이라는 점이 마냥 기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로써 신궁의 기세가 꺾여 다행이오. 만약 혈궁까지 그들에게 굴복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구려.”
“혈궁이 막아냈긴 했지만, 혈제가 쓰러졌고 수뇌부를 놓쳤다고 하니 마냥 승보라 칭하기 어렵습니다. 흡수한 사도련의 세력도 건재하니 말입니다.”
총군사 제갈중경은 검제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혈궁을 습격한 신궁의 세력은 장로원뿐이다.
그것도 장로와 칠무단의 일부만이었다.
자신들의 행보를 들키지 않으면서 빠르게 혈궁을 급습하기 위함이었다.
그러한 탓에 실패한 것이지만, 혈궁 역시 큰 타격을 입었으니 승자 없이 모두 패했다 할 수 있다.
“끄응… 결과적으로는 본맹의 득이지만, 신궁의 본진을 생각하면… 하아…….”
신궁에 대적하고 있다고 한들, 혈궁 역시 무림맹의 입장에선 적이다.
외세로부터 중원무림을 지키기 위해 한시적인 적대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사도련이 무너지고, 혈궁이 큰 타격을 입은 건 무림맹 입장에서도 이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사파무림이 무너지면 ‘정파천하’다?
오히려 정파의 힘만으로 신궁을 상대해야 하기에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맹주님, 신궁이 사도련의 잔당을 완전히 소화하기 전에 저지해야 합니다.”
“장로, 호법들을 불러들여…….”
맹주의 권한이 낮지 않으나 무림맹은 기본적으로 정파무림의 연합체다.
맹주가 독단으로 병력을 움직이면 안 된다.
자칫 독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지금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선 이러한 체제가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탁상공론(卓上空論)으로 시간만 허비할 뿐입니다.”
“끄응… 어쩔 수 없구려. 그럼 본 맹주의 직권인 맹주령을 발동하겠소.”
“결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맹주님.”
제갈중경은 검제의 결단에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무림맹의 운영은 맹주를 대표로 세우되, 각파에서 파견된 장로급 인사들과 협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때문에 돌발상황에 대처가 늦어진다.
이를 위해 맹칙으로, 무림맹주는 직권인 맹주령을 발동시킬 수 있다고 명명했다.
다만 그 횟수는 고작 세 번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맹주령을 발동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만약 세 번을 다 사용하면 아무리 긴박해서 맹주령을 발동할 수 없다.
융통성 없는 정파다운 고지식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정파였다.
“음? 맹주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제갈중경은 누군가의 기척을 느낀 탓에 검제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가 느낀 걸 검제가 느끼지 못할 리 없다.
누구인지 눈치챘기에 양해를 받아들였다.
“…….”
비각주 비영(秘影)이었다.
얼마나 긴급했다면 맹주와 독대 중이라는 걸 알면서 찾아왔겠는가.
전음으로 보고를 받던 제갈중경이 눈을 부릅떴다.
보통 놀란 정도가 아니란 걸 알아차린 검제는 당혹스러웠다.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보고가 끝났다는 걸 눈치챈 검제가 설명을 요구했다.
“대체 무슨 일이오?”
“…무너졌다 합니다.”
뜬금없는 대답에 검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그를 보며 제갈중경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닷새 전…. 그러니까 혈궁에 혈사가 벌어졌을 때… 사천당가도…….”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