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예언(豫言) (1)
쾅!
“사존(邪尊)!!”
누군가 사존을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
사존이 누군가.
우내오존의 한 명이자, 사파제일세 사도련(邪道聯)의 련주다.
누가 감히 그를 면전에 두고 분노를 터트릴 수 있겠는가.
노인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봤지만, 정작 사존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태도가 노인의 속을 더 긁었다.
사존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느긋이 말했다.
“흥분한다고 달라질 건 없네, 뇌공(雷公).”
“잊으면 곤란해! 네가 사도련주가 될 수 있던 게 본궁(本宮)의…….”
고함을 치던 노인 뇌공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존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본 탓이다.
그는 입 밖에 꺼내선 안 되는 말을 꺼냈다.
아차한 뇌공은 자신이 흥분해서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천사진경(天邪眞經)의 하권(下卷)을 준 것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렀다 생각하는데?”
“대가가 충분했다니! 천사진경이다! 천사진경! 어찌 그 정도로 충분이란 말을 할 수 있나!!”
천사교(天邪敎).
한때 사파무림을 일통했던 세력이다.
허나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 했던가.
그들의 성세는 백 년도 채우지 못한 채 사라졌다.
고인물은 썩고, 힘을 가진다면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교내의 부패가 날로 심각해지고, 권력쟁투가 극에 달하니 당연한 결과다,
허나 천사교가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을 제어해야 할 교주의 권력이 약해진 탓이다.
그리고 교주의 권력이 약해진 건, 천사진경의 하권이 사라진 탓이다.
“어차피 상권(上卷)이 없는 이상 하권을 익힐 수 없어서 내준 걸 텐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본좌를 호구로 보면 곤란하네. 뇌공.”
“하권의 가치가 그 정도뿐…! 후우, 그걸 다 떠나서 대계가 코앞일세. 이제 와서 약조를 어기겠다니,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사도련주가 된 사존의 도움으로, 신궁은 본격적으로 중원에 은밀하게 스며들 수 있었다.
순찰령이 많은 중원고수를 포섭할 수 있던 것도, 군사전이 개방도들을 꾀어낸 것도 모두 그 덕분이다.
그런 순찰령이 무너지고, 이후 군사전까지 무너졌다.
결국 침묵하고 있던 본궁(本宮)에서 이원(二院)에 명령을 하달했다.
호법원의 수장 마동에게는 천마신교를.
장로원의 수장 뇌공에게는 천사련을 움직이라고.
뇌공(雷公), 그가 바로 신궁의 대장로였다.
“말이 안 될 건 뭐지. 본좌가 신궁의 수하도 아니고.”
“사존!!”
뇌공은 사존을 향해 대노했다.
파직! 파지직!!
그 순간 허공에서 작은 뇌전이 튀겼다.
뇌공의 또 다른 명칭은 바로 뇌신(雷神).
그가 분노한 것만으로도 뇌기(雷氣)가 반응하고 말았다.
허나 그의 앞에 있는 자는 사파의 절대자 사존이다.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순간, 뇌기가 언제 존재했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본좌가 봐줬더니 선을 넘는구나, 뇌공.”
“…윽!”
단순히 뇌기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항거할 수 없는 기운이 뇌공은 압박을 받았다.
칠무경(七武經)의 첫 번째라는 뇌공.
뇌천신공(雷天神功)을 익힌 뇌공은 일선일황(一仙一皇)도 두렵지 않았다.
화경고수만이 가능하다는 무형지기(無形之氣)라도 그를 항거할 수 없게 만들기 어렵다.
의념기(意念期).
무림십왕과 우내오존을 나누는 경계라 할 수 있는 의념기를 펼쳤기에 천하의 뇌공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제엔장! 이대로… 이대로…….’
파직! 파지직!
뇌공은 뇌천신공을 끌어올려 저항하려 했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의념기가 무림십왕과 우내오존의 경계가 되었겠는가.
뇌천신공을 극한으로 끌어오기 전에 의념기에 의해 압살당할 판이었다.
결국 뇌공은 뇌천신공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아찔한 순간, 그를 압박하던 의념기가 사라졌다.
뇌공의 귓가에 사존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상황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본좌가 사존이라는 걸 잊으면 곤란해.”
“헉… 헉… 헉…….”
사존은 그의 목숨을 거두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도 뇌공의 목숨을 거두는 게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의 뒤에 있는 신궁을 아예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아니었다.
“돌아가라. 그리고 전해라. 본좌는 신궁이 무림을 차지하던, 황실을 전복하든 관심 없고. 관여할 생각도 없다고.”
사존의 축객령에 호흡을 가다듬은 뇌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설득하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지금, 미련을 버렸다.
뇌공은 이를 악물었다.
“후회할 것이다. 궁주께서… 이 일을 좌시하지 않으실 테니!”
사존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를 악문 뇌공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게 아니다.
그의 뒤에 있을 신궁의 주인을 떠올린 탓이다.
사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본좌는 사존이다. …무존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무존(武尊).
사존의 입에서 언급된 자는 놀랍게도 무존이었다.
소림의 성승, 사천당가의 독선, 천마신교의 천마. 그리고 사도련의 사존.
그들과 함께 우내오존이라고 불리는 절대자.
동시에 유일하게 사문이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존재다.
헌데 사존의 입에서 신궁주가 무존이라 칭하고 있다.
중원을 노리고 있는 신궁의 주인이 바로 그였단 말인가!
“무존? 그렇게 생각하나? 그분은 신이시다! 그걸 깨닫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곧…….”
사존의 축객령에 쫓겨나면서도 뇌공은 독설을 퍼부었다.
단순히 억하심정에 하는 독설이라 생각했다. 정확히는 하려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사존은 조금 전까지 뇌공이 앉아 있던 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무존이 강하고 해도… 본좌는 사존이다. 밀릴 이유가 없다.”
사존은 스스로 우내오존이라는 걸 상기시키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자신도 모르게.
그땐 깨닫지 못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라는 걸.
* * *
[계약자의 육신을 재구성합니다. (99/100)]
부서지고 굳어지고, 찢겨지고 재생되기를 수십 번.
이백은 몇 날 며칠에 걸쳐 환골탈태의 과정을 겪었다.
이미 몇 번이나 환골탈태를 겪으며 전설의 천무지체(天武肢體)와 다름이 없는 최상의 육신을 갖게 된 그다.
세상에 익힐 수 없는 무학이 없다는, 하늘이 내려준 무골이 바로 천무지체.
만수통령지체는 그런 천무지체의 일종이니, 더 이상 나아질 부분이 없는 완벽한 신체다.
헌데 또다시 환골탈태가 진행되고 있다.
[계약자의 육신을 재구성합니다. (100/100)]
[계약자의 육신을 재구성을 완료했습니다.]
[‘반선지체: 선풍도골’을 이루었습니다.]
[‘만수통령신공’ 12성에 올랐습니다.]
[‘현경’에 올랐습니다.]
[‘금강불괴’를 이루었습니다.]
[‘만독불침’을 이루었습니다.]
[특수능력 ‘심검’을 깨우쳤습니다.]
놀랍게도 이백은 반선지경(半仙之境)이라는 현경(玄境)에 올랐다.
무림의 절대자라는 우내오존조차 닿지 못한 경지.
그러한 경지에 이백이 도달한 것이다.
이로써 이백의 이름 앞에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 네 글자가 붙게 되었다.
동시에 소림의 달마대사, 무당의 천무진인, 천마신교의 시조천마와 함께 고금제일(古今第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일을 이루고도 이백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심상 속 성화가 다시 이백에게 어리기 시작했다.
[‘성스러운 불’을 흡수했습니다. (35.2/100)]
[‘성스러운 불’을 흡수했습니다. (35.3/100)]
현경에 오른 지금, 멈추었던 ‘성스러운 불’의 흡수가 다시 이어졌다.
환골탈태(換骨奪胎)는 애초에 성스러운 불(聖火)을 온전히 흡수하기 위한 한 과정에 불과했다.
‘반선지체: 선풍도골’은 그것을 위한 토대였다는 이 사실을 알려진다면 수많은 무림인은 피를 토하며 좌절할 것이다.
화경만 해도 초인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허나 현경은 이미 반쯤은 선인의 경지에 달했다 해서 반선지경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러하니 ‘성스러운 불’을 흡수함에 있어 막힘이 없어졌다.
[‘성스러운 불’을 흡수했습니다. (39.7/100)]
어느덧 성화봉의 성화가 4할이나 흡수되었다.
이는 심상(心象) 속만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성화는 4할 정도 약해졌다.
그로 인해 심상 밖에선 난리가 났다.
* * *
“차, 착각이 아니었단 말인가!!”
성화를 보며 성화마제가 기겁했다.
신마와의 격돌로 인해 몸 상태가 좋지 못했기에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화의 기운을 흡수해 내상을 다스린 지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성화의 기운이 약해졌다는 것을. 그리고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체 왜… 본교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변함없이 불타고 있던 성화가 어찌…….”
성화마제는 제 머리를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
천년신교사(千年神敎史)를 뒤져봐도 성화의 기세가 약해졌다는 문헌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역시 알 수 없었다.
그때 성화마제의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자, 잠깐!”
―성화의 불이 꺼지는 날, 재앙이 내려와 멸망의 길로 인도하노니…….
성화의 수호자에게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예언이었다.
당대 역시 성화마제만이 알고 있는 구전(口傳)이다.
다만 그는 그저 비유라고만 생각했다.
폭우가 내려도 꺼지기는커녕 약해지지 않던 성화다.
빙백신공과 비견되는 소수마공조차 무용(無用)하게 만들었다.
어느 누가 성화가 진짜 꺼질 수 있다 생각하겠는가.
헌데 그러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기름… 당장 기름과 땔감을 가져와라!”
“조, 존명!”
성화마제의 고함에 성화수호대는 빠르게 흩어졌다.
그들 역시 이대로 성화가 약해지는 걸 지켜만 봐선 안 되다는 걸 깨달았다.
장로들의 변절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이던 성화마제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러하지 못했다.
성화를 수호하는 게 일생의 숙명이라 생각하던 그였으니 당연하다.
“교주… 교주님을 뵈어야겠어.”
자신의 선에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천마에게 향했다.
“죄송합니다.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원주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천마궁이 무너졌음에도 유일하게 건재한 장소.
그곳은 바로 조사동(祖師洞)이다.
그런 조사동의 앞을 팔대호법이 직접 지키고 서 있었다.
“비켜! 당장 교주님을 뵈어야 한다!!”
“마제 님이시라도 원주님의 명을… 큭!”
하나 같이 초절정지경에 오른 팔대호법이지만, 상대는 신교제이고수인 성화마제를 막아낼 수는 없다.
몸이 성치 않다고 해도 화경은 화경이니까.
그때 팔대호법을 압박하던 기운이 사라졌다.
“성마(聖魔), 이게 무슨 무례요! 조사동의 앞이요!”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