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권좌쟁탈(權座爭奪) (1)
“허허… 많이들 왔군.”
우려한 일이 벌어졌다.
천마신교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천마궁(天魔宮)에 허락 없이 들이닥친 자들이 있었다.
“저들이야 예상했지만… 마군자, 자네까지 변절했을 줄 몰랐군.”
천마의 말에 지목당한 마군자를 그의 눈을 피했다.
천마신교 호법원주 마군자(魔君子).
천마궁, 장로전과 마찬가지로 호법원이 독립된 집단으로 구성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활동 권한은 본교가 위급해졌거나 교주의 명이 하달되었을 때로 한정되었기에 권한이나 권력이 한정적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호법원의 힘이 약한 건 아니다.
호법원의 주축인 팔대호법은 전원인 초절정고수이며, 휘하 호법사자들조차 하나 타이 초일류지경의 고수들이다.
그렇기에 호법원을 천마신교의 방패라 부른다.
그런 방패가 현재 교주를 겨누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지 않겠는가.
“변절이라니! 올바른 주인께 본교를 돌려드리는 것… 흐윽!”
“독마(毒魔), 본좌는 주둥이를 열어도 된다 허락지 않았다.”
천마는 이미 장로들의 변절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변절은 새삼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마군자는 아니었기에 심히 유감스러웠다.
그런 상황에 분위기도 읽지 못하고 앙천독마(仰天毒魔)가 자신들의 행동에 대의명분을 만들려고 나섰다가 옥좨오는 거력으로 인해 신음을 흘렀다.
앙천독마를 이를 악물고 저항하려 했지만, 옥좨오는 거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옥죄였다.
또 다른 장로들이 당황해 도우려 했지만, 다를 바가 없었다.
“벌써부터 의념기(意念氣)라니, 마음이 급해?”
똘망똘망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앙천독마가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를 옥죄던 거력이 사라진 탓에 의도치 않게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민망한 앙천독마는 얼굴이 붉어졌다.
지옥도마를 위시한 장로들과 호법 등은 부복했다.
“새로운 하늘을 뵙습니다!”
“새로운 하늘을 뵙습니다!!”
부복한 그들 사이를 어린 소년이 가로질러 걸어갔다.
소년은 천마를 향해 히죽거렸다.
그럼에도 천마의 얼굴에는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끌려 내려올 준비가 됐나, 천마(天魔).”
“마동(魔童), 본좌는 천마다.”
마동은 제 손으로 천마를 교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겠다 천명했다.
그럼에도 천마는 담담히 그리고 단호히 말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우내오존(宇內五尊).
천마는 그런 우내오존의 한 명이다.
누가 끌어내리려 한다고 해서 끌어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물며 마동은 우내오존에 거론되지도 않았다.
“그래? 뭐가 달라지나.”
장난기 어렸던 마동의 표정이 사납게 바뀌었다.
바뀐 건 표정만이 아니다.
난폭하게 변한 기세가 그의 전신에서 휘몰아쳤다.
동정(童貞)을 유지함으로써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양강지기(陽剛之氣)를 쌓을 수 있는 심법, 동자공(童子功).
이를 기반으로 마왕의 힘을 담은 절대마공이 바로 마라동자공(魔羅童子功)이다.
색(色)을 탐할 수 없다는 제약과 육신이 어린 소년으로 고정된다는 극악한 부작용.
그러한 제약과 부작용을 어느 누가 감내할 수 있겠는가.
허나 대신 감내할 수 있다면 지고무상(至高無上)의 힘을 얻을 수 있다.
마교에 대한 원한은 이를 감내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괴물이 바로 마동이다.
그의 난폭한 기세에 장로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지,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니야.’
‘저 괴물이 섬기는 신궁주(神宮主)는 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거야?’
비록 교주의 지위를 얻지 못했지만,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존귀한 지위인 장로를 맡고 있음에도 천마를 배신한 이유였다.
단순히 천마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다.
시세를 아는 자가 준걸이라 하지 않던가.
그보다 더한 괴물이 마교를 노리고 있으니, 가라앉을 배에 남을 수 없던 것이다.
선장만 바뀌면 배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선장을 바꿔야 한다.
아예 선장을 밀어내는 일에 동참해, 새로운 선장의 신임을 받는 게 현명하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섬기던 주인 천마를 배신한 장로들의 변명이었다.
“본좌가 천마라 했다!”
선언하는 순간, 천마의 기세 역시 변했다.
거칠지도 흉폭하지도 않았다.
마(魔), 그 자체였다.
모든 마도(魔道)의 위로 우뚝 서 있는 마공이 바로 천마신공(天魔神功)이다.
역대 교주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는 절대고수가 광천마황(狂天魔皇)이라면.
천마는 세 손가락에 꼽힌다 평가받고 있다.
콰직! 콰지직!
대기가 요동치며 불똥이 튀겼다.
마동과 천마의 기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우찍! 우지직!!
일전에 마동의 방문으로 무너졌던 천마대전(天魔大殿) 대신 임시로 사용하는 전각 역시 견뎌내지 못하고 벽이며 기둥이며 천장까지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하!! 이래야 나도 할 맛이 나지, 때려죽일 맛이…….”
마동의 동공이 세로로 가늘어졌다.
그 모습은 흡사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보였다.
정작 먹잇감으로 전락한 천마는 단호한 눈빛으로 대응했다.
그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전각이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어느 한 명 호들갑 떨지 않았다.
고수 아닌 자가 없던 만큼 호신강기를 발산시켰다.
무너져 내린 잔해는 그들의 호신강기에 부딪힌 후 산산이 부서졌다.
그게 신호가 되었다.
“죽어라, 천마!!”
선수(先手)는 마동이었다.
기세만큼이나 난폭한 마기가 천마를 향해 쇄도했다.
허나 이 정도로 당황하면 어찌 마의 하늘(天魔)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에게 쇄도하는 난폭한 마기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헌데 난폭한 마기는 천마에게 닿지 못했다.
닿기도 전에 소멸하고 말았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보법(步法)이자 심공(心功)이다.
일정 범위를 자신으로 권역으로 삼아, 그 안에 들어선 모든 걸 짓누를 권능을 발휘한다.
마동의 마기가 천마군림보의 권역을 뚫지 못하고 소멸한 이유다.
“본좌가 마의 하늘(天魔)이다!!”
꽈직! 꽈지직!!
성화마제와 신마의 싸움도 경천동지(驚天動地)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허나 천마와 마동의 격돌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마(魔)의 정점에 오른 괴물들의 격돌은 천지개벽(天地開闢)을 연상케 했다.
직접적인 충돌이 아닌 발산된 기운만으로 땅이 쫙! 쫙! 금이 갈 정도였다.
“킥! 좋아! 좋아!!”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걱정될 상황이건만, 마동은 광기(狂氣) 어린 웃음을 내었다.
그의 광소(狂笑)는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하물며 그의 난폭한 신위는 천재지변(天災地變)과 다름이 없었다.
천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날뛰는 수위를 본다면 더 나을 정도다.
괴공(怪功)을 익힌 괴인으로만 부각되었지만, 오늘 이 순간 우내오존은 육존(六尊)으로 늘어난 것이다.
물론 오늘 이후 두 사람 모두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허나 그들의 싸움을 본다면 우내오존은 유지될 거 같았다.
천마가 살아남든, 그 자리를 마동이 차지하든.
“후우… 천마현신(天魔現身)!”
언제 쥐었는지 천마의 손에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허공이 갈라지는 듯한 환상을 보였다.
그들의 격돌로 인해 멀찌감치 물러났던 장로 및 호법 등은 눈이 커졌다.
“시, 심검(心劍)!!”
“그, 그럼 탈마경(脫魔境)에 올랐단 말인가!”
경악할 수밖에 없는 게 탈마의 경지에 오른 인물은 천마신교의 긴 역사에서도 오직 한 명.
시조천마(始祖天魔)뿐인 탓이다.
중원무림에서도 소림의 달마대사와 무당의 천무진인만이 현경이 올랐다고 알려졌다.
천마는 지금 새로운 역사를 쓴 셈이다.
‘젠장, 줄을 잘못 잡은 거 아니야!’
‘망할! 천마가 이기면 끝장인데!’
변절한 자들은 하나 같이 머리가 복잡했다.
천마가 살아남는다면 자신들을 살려둘 리가 없다는 걸 모를 리 없으니 말이다.
정작 심검을 마주한 마동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다.
“심검(心劍)의 흉내냐?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마동의 손에도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천마의 검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마동 역시 탈마지경에 오른 것일까?
아니다.
애초 두 사람이 구현한 검은 심검이 아니었다.
의념기를 검의 형태로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
그걸 장로와 호법들은 심검으로 착각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뀐 건 없다.
이미 화경의 끝자락에 오른 두 사람.
비록 현경에 닿지 못했다지만, 그 문턱에 오른 괴물들.
오늘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그만, 죽어라!”
“헛된 기댄 그만 버려라, 마동!”
검의 형태를 띤 의념기가 격돌했다.
콰아앙! 콰아앙!!
한 호흡에 수십, 수백의 검이 부딪쳤다.
그때마다 허공에 일그러졌다.
비록 착각에 불과하지만, 그 기세만큼은 진짜와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진정 무(武)의 신(神)이란 말인가.
수천이 상주할 수 있는 천마궁이건만, 반나절 간 이어진 전투의 여파만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으로 끝내자, 마동!”
천마는 일검(一劍)에 모든 걸 담았다.
천마삼검의 마지막 초식, 파천황(破天荒).
명칭처럼 극강(極强) 넘어 절대(絶對)적인 위력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천마는 마지막 삼검을 펼칠 적이 없다.
그만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천마삼검의 파천황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흥! 이갑자 동안 이 순간만 기다렸다!!”
천마신공이 마의 근원에 가깝다면, 마라동자공은 가장 순수한 마에 근접했다.
하나 같이 절대라는 명칭이 어울리는 최강 마공들의 격돌.
쿠~우~우~아~앙!!
거대한 빛이 두 사람은 시작으로 천마궁 전역을 집어삼켰다.
이를 보며 기겁한 변절자들은 줄행랑쳤다.
“썅! 뒈질 뻔했네!!”
“쉬파! 누가 이긴 거야!!”
저 무시무시한 폭발 속에서 누가 살아남았을 거라 생각하긴 어렵지만, 그들은 천마와 마동이다.
낙관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선 천마가 죽기를 바란다.
그래야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으니까.
그곳을 집어삼켰던 빛이 사라지자 거대했던 천마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인간의 힘에 의해 벌어진 게 맞나 싶을 정도다.
“도마 장로, 확인하러 갑시다. 혹시라도…….”
천마가 살아 있다면 목숨줄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지만, 모두 마군자의 속내를 알았다.
그만이 아니라 모두 같은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네 장로와 마군자가 이끈 팔대호법.
그리고 마동이 대동한 정체불명의 고수들.
너나 할 것 없이 천마궁이 존재했던 구덩이로 향했다.
가까워질수록 처참하고 그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미친, 이게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이야!’
‘무조건 잘 마무리 지어야 해! 어설프게 처리하면 엿 된다!!’
모든 게 소멸되어 천마궁의 잔해조차 남지 않았다.
마동은 물론 천마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양패구사(兩敗俱死).
마동과 천마. 두 사람 모두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게 잘하면 내가…….’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