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성화(聖火) (2)
쾅! 콰쾅!!
굉음(轟音)과 함께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우매한 자라면 하늘이 노했다면 벌벌 떨었을지 모른다.
아니, 우매한 자가 아니라도 그들의 격돌을 본다면 두려움이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마(金魔),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하하 본좌는 신마(神魔)라 하지 않았나. 그보다 기대만 못 하군. 설마 고작 놈들 좀 상대했다고 지친 건가.”
신마의 비아냥거림에 성화마제는 이를 악물었다.
평소 눈 아래로 보는 장로들이지만, 한둘도 아니고 무려 넷이었다.
성화마제라도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면서 이죽거리는 신마를 보니 울컥했다.
“이죽거리지 마라! 노부와 싸울 용기가 없어서 장로들의 뒤에 숨은 놈이!”
“궁지에 몰리니 정신이 나갔나. 성마!”
성화마제의 말에 신마는 발끈했다.
일부러 장로들에게 그의 힘을 빼게 만들라 명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론 그렇게 되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성화마제를 두려워해 수작을 부린 꼴이 되니 불쾌해졌다.
신마의 반응에 성화마제는 자신이 아는 금강마왕이 맞나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마는 자신의 성질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감정을 죽였다.
그러한 탓에 과묵한 인물로 비쳤다.
헌데 더 이상 힘들게 성질을 숨길 필요가 없어, 감정을 죽일 필요도 없어졌다.
“신마경천(神魔驚天)!”
하늘을 놀라게 한다는 초식명처럼 가공한 마기가 성화마제에게 쇄도했다.
그렇다고 물러난 그가 아니다.
성화마제 역시 화염의 폭풍을 일으켜 맞섰다.
“헉! 젠장!!”
“십 장(十丈)… 아니! 이십 장은 더 물러… 으악!!”
괴물들의 격돌에 이미 멀찌감치 물러나 있던 성화수호대는 허둥대며 물러나려 했다.
콰쾅! 콰쾅!!
허나 이미 수십 장 물러나 있는 그들을 후폭풍에 휘말릴 정도로 강력한 충돌이었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어, 단숨에 간다!’
성화마제는 속전속결로 끝낼 요량이었다.
신마의 말에는 조소를 지었지만, 장로들을 상대로 체력과 내공 소모가 적지 않았다.
헌데 그를 상대로 또다시 내공을 퍼부었기에 더 이상은 시간을 쓸 수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금강마왕이 배신했다면 그가 이끄는 천마지존대 내부에도 배신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사실을 천마가 모른다면 위험해질 수 있기에 이를 알려야 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성화(聖火)이지만, 천마신교의 일원으로서 교주인 천마의 안위 역시 중했다.
대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게 성화마제가 제대로 마음먹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승부수를 던지겠다?”
―두려우면 피하던지.
성화마제는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탓에 육성 대신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신마를 도발했다.
처음부터 피할 생각은 없었으나 그의 도발에 신마는 더욱더 물러날 수 없었다.
일부러 신위를 숨기고 있었지만, 항상 성화마제에게 비교당했던 그였다.
성화수호대와 함께 최강이라는 천마지존대를 이끌었으니 당연했다.
자신을 숨겨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분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쌓였던 분을 풀 기회를 어찌 피하겠는가.
“본좌를 도발해야 할 정도로 한계가 왔나 보지?”
신마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그가 시간을 끌면 불리해지는 상황이다.
우려와 달리 신마는 승부수를 받아들였다.
“받아주지. …널 짓밟고 본좌가 누구인지 만천하에 알려주마!”
마공(魔功)의 특성상 위력만 본다면 화경 이상으로 보는 마도(魔道)의 초마지경(超魔之境)이다.
하물며 성화마제는 무림십왕의 수좌인 일선일황(一仙一皇)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성화마제의 기세도 대단했지만, 신마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그를 상대로 짓밟겠다는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듯 신마의 주변 대기가 요동쳤다.
성화마제는 쉽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불가능하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멸천(滅天)!”
“…성화(聖火)!!”
미증유의 거력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쿠~우~웅~
수어 장(丈)에 불과했던 거력의 범위가 어느새 수십 장으로 넓어졌다.
너무도 거대한 힘의 충돌은 폭발이 아닌 소멸을 시켰다.
거력이 사라졌을 땐, 성화봉에 수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아무리 대단한 강자라도 그 거대한 힘의 중심에 있었다면 무사할 리 없었다.
“쿨럭… 우웩!!”
몸도 가누지 못한 채 피를 토하는 자가 있었다.
성화의 수호자라는 성화마제였다.
오히려 성화의 보호를 받았음에도 생명의 불꽃이 약해졌지만, 목숨은 부지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멀리 처박힌 신마는 미동이 없었다.
목숨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의식을 잃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불능의 상태였다.
“으윽…….”
성화마제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고통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간신히 일어난 성화마제는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어, 어찌해야 하나.”
“마,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괴물들의 격전에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그 후폭풍에 휘말려 죽거나 다친 자만 수십이었다.
무사한 자들조차 기가 빠질 정도였다.
부대주를 따라 변심한 이상, 어떡하든 성화마제가 무너져야 한다.
하지만 차마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괜히 앞장섰다가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대주께서 참작해주실 것이다.”
“구, 구위(九衛)…….”
그들의 마음을 흔든 자는 구금되었던 성화구위였다.
눈치만 보던 성화수호대는 더 이상 눈치만 볼 수 없었다.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마염군을 믿고 따를 수 없잖아!”
“그, 그래! 이제라도 잘못을 바로잡자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성화구위는 내심 안도했다.
이들이 여전히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당숙의 발목을 잡으려고 한다면 부상 입은 그가 곤란해질 수 있기에 성화구위가 선동을 한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교주님께서도 위험하신 건 아니겠지…….’
* * *
“하아… 하아… 하아…….”
살아 있는 게 용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억지로 몸을 이끌다 보니, 몸이 비명을 질렀다.
“성화… 성화에만… 도착하면…….”
성화마제는 이를 악물고 성화가 있는 제단으로 향했다.
모든 걸 불태우는 성화이지만, 그가 익힌 성화마공이라면 오히려 지친 몸에 활력을 불러일으켜 줄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끈거리는 열기와 밝은 불타는 불길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제단에 다가가는 성화마제는 갸웃거렸다.
“음? 착각…인가. 성화가 작아진 거 같은데……?”
성화마제는 왠지 모르게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제단 위에는 여전히 크고 후끈거리는 불길이 피어 있었다.
헌데 불길의 크기가 평소보다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열…기도…. 착, 각이겠지?”
평소라면 제단 근처만 와도 피부가 화끈거렸다.
성화마공을 운용하지 않는다면 다가가지 못할 정도다.
물론 지금도 피부가 화끈거리지만, 성화마공을 운용하고 있지 않았다.
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까지 가까이 왔으니 좋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게 당연했다.
“내…가 벽이라도 넘은 건가? 하하 그런 것이겠지! 나도 참 어찌 그런 경망스런 생각을…….”
성화가 작아졌느니, 약해졌느니 하는 생각은 한 자신을 책망하며 성화마제는 지정석에 앉았다.
오직 성화수호대주만이 앉아 운기행공을 할 수 있는 지정석이 존재했다.
그 외에는 성화의 기운을 감당치 못하기 때문이다.
성화마제는 고갤 절레절레 흔들며 운기행공을 하기 위해 가부좌를 틀었다.
‘회복하는 대로 교주께…….’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미 선객이 있었다는 것을.
성화마공을 운용하려고 할 때였다.
기척이 느껴졌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화수호대였다.
이제 기척을 느낄 정도로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선수필승(先手必勝). 시간을 끌 수 없는 성화마제는 선수를 치려고 했다.
“대주님, 우매한 속하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려와 달리 그들은 부복해 용서를 청했다.
선두에 자신이 잘 아는 얼굴이 있었다.
―당숙, 지금은 몸을 회복하시는 게 먼저입니다.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 성화마제이지만, 종질(從姪)인 성화구위의 전음입밀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저들을 벌하는 것보다 몸의 회복.
나아가 천마를 구하는 게 먼저였다.
“저희의 처벌은 교주께서 내리시겠지만, 목숨을 걸고 적을 막아낸다면 노부가 교주께 참작을 요청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대주님!”
“목숨으로 본교를 사수하겠습니다!”
비록 진심의 충심은 아닐지라도 저들의 마음을 돌린 게 다행이었다.
반파되었지만, 저들은 성화수호대.
적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운기행공을 하는 동안 누구도 접근을 허락지 마라.”
“존명!!”
성화수호대는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그제야 성화마제는 눈을 감고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 * *
[특별 퀘스트 ‘성스러운 불의 인정’이 시작됩니다.]
이백은 제단 안에 몸을 던졌다.
아무리 경천동지의 힘을 가진 절대고수라도 한들, 태우지 못하는 게 없는 성화에 몸을 던진다는 건 어리석은 행위다.
성화마공의 공능으로, 극히 일부나마 성화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는 성화마제조차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백은 몸을 던졌다.
이미 한 번이지만, 비슷한 경험을 겪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새하얀 공간에 의식을 잃은 이백이 둥둥 떠 있었다.
이곳은 제단, 정확히는 성화의 근원에 와 있었다.
그 누구도 허락지 않은 장소에 이백이 들어선 것이다.
[‘성스러운 불’이 침범했습니다.]
[화상이 발생했습니다.]
[화상이 발생했습니다.]
[화상이 발생했습니다.]
평범한 불이 아니다.
축융봉에 잠들어 있던 극양지기의 정수, 축융의 숨결보다 더 완전한 화정(火精).
그게 바로 성스러운 불(聖火)이었다.
화경에 오른 후 한서불침(寒暑不侵)에 오른 이백이다.
그런 그의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놀랍게도 화상을 입은 것이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성스러운 불’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화상이 발생했습니다.]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화상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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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성스러운 불’에 저항한다고 하지만 불가능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은 ‘성스러운 불’에 비하면 반쪽짜리에 불과하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화상이 누적되면서 급기야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백은 깨어나지 못했다.
그건 그가 있는 이곳이 심상이기 때문이다.
우웅~!
미약하지만 빛이 일었다.
이백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품에서 미약한 빛이 발산되었다.
[칭호 ‘신수 백호 설군의 계약자’의 권능이 발휘되었습니다.]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