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성화(聖火) (1)
화르륵!!
거대한 불의 파도가 일었다.
“젠장!”
이를 본 지옥도마(地獄刀魔)는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칼을 휘둘렀다.
칼이 휘둘러질 때마다 허공에 선이 그려지더니, 어느 순간 그물이 되어 그를 덮었다.
도망(刀網)이 완성된 순간 그 위로 불의 파도가 덮쳤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이를 보며 성화마제가 조소를 지었다.
“제법이군 그래.”
“…….”
불의 파도가 가시자 지옥도마의 모습을 드러났다.
크게 다친 모습은 아니나 그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괴물 같은 늙은이, 더 강해졌잖아!’
성화마제의 강함을 모르지 않았다.
허나 지옥도마 역시 자신의 무위에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벽과 같았던 지옥도법의 10성에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전이 있던 건 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권력이나 재물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성화만 지키던 성화마제다.
성화(聖火)의 주변만 맴도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으니, 진전이 없을 수가 없었다.
“혼자만 재미는 보시려는 게요, 도마(刀魔).”
“우릴 잊었소?”
이대로 가다간 지옥도마가 무너질 게 눈에 뻔히 보였다.
그럼 자신들의 신세 역시 우스워진다는 걸 알기에 수라창마 등이 끼어들었다.
그럼에도 지옥도마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성화마제는 그런 그들을 노려보며 조소를 지었다.
“쥐새끼처럼 숨어 벌벌 떨고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 떼거지로 나왔구나.”
“감히!”
성화마제의 조소에 장로들은 발끈했다.
하지만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가 도발하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성화마제는 다시 한번 도발을 했다.
“감히? 나설 용기도 없는 겁쟁이 놈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닌 거 같은데? 하긴 그게 파천가(破天家)의 특징이긴 하…….”
“개 같은 새끼가!!”
“이런, 권마!”
가문까지 거론하며 조롱하자 파천권마가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당황한 앙천독마가 그를 불렀으나 그땐 이미 늦고 말았다.
성화마제가 조롱했지만, 파천권마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특히 허공을 가르는 그의 권격은 하늘을 부순다는 별호가 왜 붙었는지 알려주었다.
성화마제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는 걸 상상하게 만들었다.
“하늘을 부순다? 머저리 같은 놈.”
“뭐라… 커억!!”
나직한 성화마제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파천권마는 의식이 날아갔다.
성화수호대는 그저 파천권마가 나가떨어진 것만 봤을 뿐 무슨 일이 벌어진 지 몰랐다.
“이보게, 권마! 정신 차리게!”
“후우… 후우…….”
의식은 돌아왔지만, 정신은 없는지 파천권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은 피로 물들어져 있는 게 처참해 보였다.
성화마제는 그를 즉살시키지 못한 게 마음에 들지 않은 지, 혀를 찼다.
수라창마는 성화마제의 혹시 모를 기습을 대비해 창을 겨누었다.
우려와 달리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성화마제는 그들을 내려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뭘 그리 긴장해? 노부가 너희 따위에게 기습이라고 할 줄 알았나.”
쾅! 콰쾅! 쾅!
성화마제를 상대로 장로들이 합공을 펼쳤다.
한명 한명이 천마신교를 대표하는 화경급 고수들이다.
그런 그들이 한 사람을 상대로 합공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치욕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성화마제는 치욕을 감내하며 합공하게 만들 만한 괴물이다.
“하하하! 본교의 장로라는 것들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이런 썅!”
손발을 맞춘 사이는 아니지만, 창칼이 서로의 빈틈을 메꿔주고 독날한 장법이 성화마제는 몰아붙이는 게 고수들다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것만 그럴 뿐, 서로의 힘을 10할 끌어내지 못했다.
진법이 아니라도 뛰어난 합공은 1+1=2가 아닌 3이나 4로 만들어준다.
헌데 그들의 합공은 3 혹은 4는커녕 2조차 되지 못했다.
너무도 강한 그들이기에 누군가를 보조하는 게 어색했던 것이다.
그 덕에 성화마제는 장로 셋을 상대로 밀리지 않은 위용을 보일 수 있었다.
기대와 다른 흐름에 성화수호대 사이에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젠장, 줄을 잘못 선 거 아니야!”
“그럼 그렇지, 대주님께서 어떤 분인데…….”
작은 불안감은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단결을 흔들어 버린다.
천마신교 최고의 무력집단이라는 성화수호대라도 다르지 않았다.
하물며 주도적으로 성화마제를 배신한 마염군의 불안감은 고조에 올랐다.
‘망할 장로란 것들이 한 놈을 못 처리해서!’
분통이 터졌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대로 성화마제가 승리한다면 자신은 끝이다.
그걸 알기에 마염군은 불안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도망치고 말았다.
“뒈져라!!”
세 장로를 상대로 시선을 빼앗긴 사이, 누군가 성화마제에게 달려들었다.
파천권마였다.
진즉에 정신을 차렸던 그는 기회를 엿보며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척하고 있었다.
완벽한 기회였다.
퍼억!!
비명과 함께 누군가 튕겨 나갔다.
“컥!”
“금마(金魔), 놔두지 그랬나. 이참에 놈의 대갈통을 불태워버리려고 했는데.”
파천권마는 득의했지만, 성화마제는 그의 움직임 따윈 눈치채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방심을 이용해 단숨에 제거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도움 때문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온통 적투성이인 이곳에서 성화마제를 도운 자는 바로 금강마왕이었다.
“젠장, 교주가 눈치챈 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로 넷이서 성화마제 하나를 제거하지 못했다.
헌데 이제 금강마왕까지 상대해야 할 판이다.
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천마신교의 진마(眞魔) 중 가장 저평가받은 금강마왕이지만, 그가 화경급 강자라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마의 방패라고 불리는 인물만큼 단숨에 제압하고, 다시 성화마제에게 집중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 놈만 상대하게, 나머진 노부가 처리할 테니.”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던 성화마제이지만, 마냥 여유로웠던 게 아니다.
오히려 여유로운 척했을 뿐이다.
아무리 그가 신교제이고수라지만, 장로들은 가볍게 보기 어렵다.
하물며 오대장로 중 넷이다.
방심하는 순간, 당하는 건 자신이다.
그렇기에 도발과 유인을 통해 한 명이라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비록 금강마왕 때문에 계획은 틀어졌지만, 반대로 그의 합류로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그럼 변절한 대가를… 크윽!!”
“역시, 성화마제인가. 방심했음에도 치명상을 피하다니 말이야.”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특히 성화마제는 이해하지 못했다.
천마의 심복 중에 심복인 그가 왜 자신을 기습했는지.
“교…주께서 노부의 목을 원하는가.”
“이 와중에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성마(聖魔).”
금강마왕은 눈빛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이성적인 판단이 선 성화마제는 소름이 돋았다.
“네놈… 누구냐.”
“누구냐니, 알고 있지 않은가. 금강마왕일세.”
성화마제는 그의 존재를 의심했다.
금강마왕으로 위장한 다른 존재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셨습니까, 신마(神魔)시여.”
“신…마?”
금강마왕을 향해 장로들이 고갤 숙였다.
게다가 그를 신마(神魔)라 칭하기까지 했다.
성화마제로서는 당혹스러웠다.
그런 그의 반응을 무시한 채 금강마왕… 아니, 신마는 장로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본좌가 나서기 전에 처리하길 기대했는데, 기대가 너무 컸나 보군.”
“죄, 죄송합니다!”
평소 금강마왕을 무시하던 장로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에게 쩔쩔맸다.
성화마제로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지, 성마는 본좌가 맡을 테니 자네들은 그분을 모실 준비하라.”
“존명!”
신마의 입에서 그분이란 말이 나왔다.
평소라면 그분의 정체가 천마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리 생각할 수 없다.
성화마제는 불같이 화를 냈다.
“네놈도 변절자였구나!”
“변절? 착각하지 마라. 본좌는 처음부터 그분의 명을 받고 천마를 감시했을 뿐이다. 그러니 변절이란 말은 맞지 않지.”
천마의 충실한 심복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신마는 처음부터 모시는 존재가 따로 있었다.
그러니 미안한 마음 따위 있을 리 없다.
성화마제는 그런 그의 반응이 역겹다는 듯 극양마기를 일으켰다.
천마신교를 넘어 무림최강의 극양지공답게 성화마공의 기운은 공기조차 후끈거리게 만들었다.
“폭염지옥(暴炎地獄)!”
신마는 물론 그 주변이 가공한 열기로 녹아버렸다.
후~욱~!
가공한 열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녹아버렸다 생각한 신마는 너무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풍기는 기세는 그간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결코 성화마제의 아래가 아니었다.
“천…마신공을 네놈이 어찌!!”
“후후… 천마신공이 아니다. 아니, 그리 느끼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겠지. 그분의 성은으로 익힌 신마공(神魔功)이니까.”
“……!!”
성화마제의 눈이 커졌다.
그제야 장로들이 금강마왕을 신마라 칭한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천마신교의 전전대 교주 광천마황(狂天魔皇).
역대 교주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는 절대고수다.
허나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한 그는, 시조천마를 능가하고 싶은 마음에 금단의 마공을 창안했다.
그게 바로 신마공이다.
천마신공을 능가하는 위력을 가졌으나 불안정한 탓에 광천마황은 주화입마에 빠져 수하들을 마구 죽였다.
천마신교는 수많은 희생을 치러 간신히 광천마황을 죽일 수 있었다.
신임 교주는 신마공을 금마공(禁魔功)으로 지정하며, 신마공을 익힌 자는 물론 숨긴 자 역시 죽이겠다고 천명했다.
그러한 탓에 광천마황의 핏줄인 마동은 죽임을 당할 뻔했다.
“그럼 이제… 죽어!”
* * *
“제, 젠장!”
도망친 마염군은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계획대로 장로들의 손에 성화마제가 죽었다면 이제 제 세상이다.
헌데 성화마제는 너무 강했다.
장로들이 합공하고도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천마신교에 남아 있다간 성화마제의 손에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도망쳤다.
그럼 성화봉(聖火峰)의 밖으로 도망쳐야 하는데, 되려 심처로 향했다.
“네놈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성화를 파괴해주마.”
그는 이대로 도망치는 게 억울하고 약 올랐다.
그렇기에 성화마제가 제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는 성화를 파괴하지 않고 이대로 도망칠 수 없었다.
천산에는 몇 개의 용혈(龍穴)이 존재했고, 그중 하나가 이곳 성화봉에 존재했다.
성화봉의 용혈에선 꺼지지 않는 불꽃이 피어났고, 이를 천마교에선 성화(聖火)라 불렀다.
“이걸로 놈을 죽이진 못해도 성화는 파괴할 수 있겠지.”
마염군은 히죽거리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먹만한 화탄(火彈)이었다.
관(官)에서 철저히 통제하며 민간에는 유통해선 안 되는 게 바로 화탄이다.
아무리 관에서 통제한다고 해도 무림까지는 어렵다.
그나마 정파는 관. 정확히는 황실의 눈치를 보지만, 천마신교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 무림에서도 쉬이 보기 어려운 화탄을 마염군이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원망하려면 네 자신을 원망하라고!”
마염군은 히죽이더니 성화를 향해 화탄을 던졌다.
화탄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성화에 의해 더 큰 폭발로 이어질 것이다.
그걸 염두한 마염군은 성화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있는 힘껏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헌데 기대한 폭발과 달리 잠잠했다.
의아한 마염군은 달리다 말고 뒤를 돌아 성화를 바라봤다.
“컥!!”
뒤를 돌아보기 무섭게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마염군이 둘로 쪼개졌다.
제이의 성화마제를 꿈꾸었던 마염군이건만, 그의 죽음은 너무도 어이가 없다.
“후~우 벽력탄(霹靂彈)인가. 큰일 난 뻔했네.”
마염군이 던진 화탄은 다행히 성화에 닿지 못했다.
정확히는 날아가던 화탄을 누군가 낚아챘다.
화탄은 사내의 손에 가루가 되어 바람과 함께 흩어졌다.
그는 나직이 말했다.
“설군아, 조금만 기다려. 곧 깨워줄게.”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