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위기(危機)의 천마신교(天魔神敎) (2)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부대주의 호출로 일백의 성화수호대가 모였다.
그들은 부대주의 폭탄선언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당황하는 자가 있었다.
“본대는 본교 최정예다. 언제까지 푸대접을 받으며, 처박혀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가. 성화구위(聖火九衛).”
“우리 성화수호대의 본분은 말 그대로 성화를 수호하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그의 말을 동조하는 몇몇이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수가 이미 현혹된 자들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부대주 마염군(魔炎君)의 말처럼 푸대접을 받고 있는 건 아니지만, 천마신교 최정예라는 위치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천마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이지만, 그 근간은 성화(聖火)였다.
그만큼은 성화의 수호는 중요하고, 이를 부여받은 성화수호대는 성스러운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야말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광만으로는 일생을 바치는 게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영광? 그래 분명 영광스러운 일이지. 헌데 그 영광스러운 일을 하는 우리가 어찌 천마지존대 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거지? 본대가 그들만 못한가! 말해 봐라, 성화구위!”
“그건! 그렇지 않지만…….”
마염군의 호통에 성화구위는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곤 입술을 깨물었다.
그 역시 성화수호대의 일원으로서 자부심 강하지만, 대우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천마지존대는 천마의 친위대로서 천마궁에서 호의호식한다.
성화수호대는 힘은 그들만 못한가? 아니다. 임무의 중요성 역시 결코 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본교에서도 떨어진 성화봉(聖火峰)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일생으로 보낸다.
오직 성화의 수호라는 명분 아래.
젊은 혈기에 대원들이 마염군의 외침에 동조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주님의 조카이시다, 이건가?”
“그,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마염군의 비아냥거림에 성화구위는 발끈했다.
그 순간 성화수호대의 눈빛이 바뀌었다.
성화구위가 누구인지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성화마제의 조카이자, 천마신교에서도 명문으로 통하는 염천마가(炎天魔家) 출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인정받아 성화수호대의 일원이 된 자신들과는 다른 종자다.
“염천가의 도련님께서 배고픔을 아시겠어?”
“조카를 성화십위로 넣기 위해 기존 십위를 날렸다는 소문이 설마 사실은 아니겠지?”
마염군의 말이 그들에게 불신감을 심어주고 말았다.
그로 인해 흡사 백부의 배경으로 성화구위에 오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백부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게, 누구보다 더 노력했음에도 부정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성화구위에게 동조하던 이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위기감을 느낀 성화구위는 당황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이, 이 일을 대주님께서 좌시하지 않으실 겁니다!”
“…….”
그 순간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그제야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수장, 성화마제.
천마신교 유일한 마제(魔帝) 급의 절대강자.
우내오존에 꼽힌 천마 다음으로 강한 인물이다.
성화수호대 전체가 덤벼도 감히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자신들이 누려야 할 대우를 돌려받아야 하니 마니 하는 말은 무의미하다.
성화마제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이상.
그때 마염군이 입을 열었다.
“우리의 대주님. 성화마제께서 대단하시다는 걸 몰라,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고 말했다 생각하는가? …그분들께서 우릴 지지해주셨다.”
“그분들…이라니. 누굴 말씀하시는 겝니까.”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성화구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염군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분들은…….”
천마신교의 최정예라는 성화수호대는 누군가 자신들의 말을 엿듣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반역인가? 재밌군.’
엿듣고 있던 인물은 성화수호대의 뒤를 따라온 이백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백 역시 성화마제에 대해 알고 있었다.
천마 때문에 존(尊)이나 황(皇)의 칭호 대신 제(帝)를 사용했을 뿐, 그 무위는 우내오존 바로 밑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헌데 그런 그의 뜻을 반(反)하겠다니.
그것도 성화마제의 직속 수하들이 말이다.
‘그것보다 신궁이라니… 대체, 신궁이 언제 마교에 손을 뻗친 거야?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놈들이구나.’
신궁의 군사전이 무너진 지 얼마나 되었나.
경계하던 것에 비해 신궁의 힘이 압도적인 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마교라니.
저들의 자신감처럼 마교를 전복(顚覆)… 아니, 장악한다면 중원무림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어떡하든 마교가 신궁에 넘어가는 걸 막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전에… 설군이를 깨우는 먼저지.’
* * *
“성화대(聖火隊)가? 성마(聖魔), 그 친구가 딴마음을 먹을 리 없고. 주범이 누구지.”
천마는 단호히 물었다.
성화마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는지, 그의 변절 따윈 염두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애초 성화의 수호 이외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그가 이제 와서 변절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천마의 물음에 탄탄한 느낌을 주는 거구의 노인이 대답했다.
“표면적으로는 마염군(魔炎君)입니다.”
“바람을 넣은 자가 따로 있겠지.”
천마는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성화대주와 부대주라지만, 그 격차는 감히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다.
이러한 판을 만든 자는 따로 있을 수밖에 없다.
“마염군이 파천마전(破天魔殿)에 은밀하게 불려 갔다고 합니다.”
“권마(拳魔) 혼자일 리 없으니, 오대장로 전원인가.”
“아직 거기까진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금마(金魔), 자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는가.”
천마의 물음에 대답하는 노인은 천마지존대의 수장 금강마왕(金剛魔王)이다.
천마의 방패라 불리는 인물로, 그의 금강마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림의 금강불괴신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천마신공의 상극이라는 소림이니, 그들을 연구한 게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마공 중 하나가 바로 금강마공이다.
그러한 탓에 금강마공의 계승자는 성골 취급답지 못했다.
그런 금강마왕을 중용한 인물이 당대 교주, 천마다.
“성마께 언질을 해두겠습니다.”
“그것으로 부족하네. 자네가 성마를 지원하게.”
천마의 명에 금강마왕의 눈이 커졌다.
쉬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주군! 노신은 주군의 방패이옵니다, 어찌 자릴 비우라 하십니까! 그것도 마동이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이러한 시기에 말입니다!”
“금마, 그렇기 때문일세. 장로 한둘이라면 몰라도 전원이라면 아무리 성마라도 위험하네. 게다가 그들이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마동… 아니, 신궁을 상대하기 위해선 성마가 꼭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을 걸세.”
성화마제의 강함 때문에 가려졌지만, 천마신교의 장로는 결코 만만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를 상대하는데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을 리 없다.
그렇기에 천마는 성화마제를 위한 숨겨진 한수로, 금강마왕을 움직이려 하는 것이다.
“허나! 후우… 금강마왕이, 주군의 명을 받드나이다.”
“이해해주어 고맙네.”
권위적인 천마이나 자신의 심복인 금강마왕에게만큼은 권위로 누르려 하지 않았다.
신교제이고수인 성화마제조차 누리지 못한 대우였다.
금강마왕이 명을 받아들인 덕분에 천마는 한시름 놓았다.
이로선 예상치 못한 변수도 대응할 수 있다.
‘마동, 어떤 수를 쓸지 모르나. 본교는 네놈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마도(魔道)의 정점에 선 천마지만, 계산치 못한 변수가 존재했다.
그걸 계산하지 못한 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리고 천마의 조치보다 적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 * *
“네놈이 미쳤구나. 감히 신성한 임무를 잊고, 허망에 눈을 돌리고 말이야.”
성화마제는 분노했다.
부대주가 수하들을 선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조카인 성화구위의 보고가 아니다.
그는 이미 부대주의 명에 의해 구금된 상황이었다.
수하들 관리를 부대주에게 맡겨두었다고 해서 성화마제가 눈과 귀가 먼 게 아니다.
움찔.
성화마제가 이리도 빨리 알아차릴 줄 몰랐던 부대주 마염군은 두려움이 일었다.
아무리 장로의 손을 잡았고 성화마공의 전부를 익혔다지만, 상대는 성화마제이기 때문이다.
허나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간신히 움켜쥔 걸 모두 내놓아야 한다.
“어, 언제까지 우리에게 희생만 강요할 생각이십니까! 우린 대우를 받아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하하! 대우라… 재미있는 소릴 하구나.”
입은 웃고 있지만, 성화마제의 눈에 노기(怒氣)가 엿보였다.
마염군은 이를 악물었다.
그라도 두렵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내색할 수 없는 만큼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권마는 대체 언제 움직이는 거야!’
파천권마… 아니, 장로들만 믿고 일을 저지른 마염군은 후회가 막심했다.
성화마제의 주변에 불길이 일어나는 순간, 모든 기대와 야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부대주만 다시 뽑아야 하나, 아님… 성화대 전체를 다시 뽑아야 하나.”
마염군만이 아니라 성화수호대 전체가 사색이 되었다.
태우지 못하는 게 없다는 성화마제의 극양마기(極陽魔氣).
자신들을 잿더미로 만드는 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가능하다.
자신들을 선동한 마염군이 원망스러웠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성화를 수호하는 영광을 잊었다면 그만 죽어야겠지.”
“제, 젠장!!”
그 순간 성화마제의 주변에 일었던 불길이 마염군을 덮쳤다.
그는 급히 성화마공을 운용했다.
전반부에 불과한 반쪽 짜리일 뿐만 아니라 익힌 지 고작 며칠에 불과하다.
그 정도 수준으로 성화마제의 불길을 막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걱!!
마염군을 덮친 불길이 베였다.
성화마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네놈이었나. 저 머저리에게 헛된 욕심을 심은 게. 도마(刀魔).”
“헛된 욕심이라니… 그런 식이니 배신을 당하는 게요, 성마(聖魔).”
성화마제가 일으킨 불길을 벤 자는 지옥도마(地獄刀魔)였다.
천마신교 오대장로의 수좌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지옥도마의 뒤에는 파천권마와 수라창마, 앙천독마가 서 있었다.
암흑검마가 없다는 사실이 다행이지만, 오대장로 중 무려 넷이나 이 자리에 나타났다.
한명이 빠졌다고 해서 안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흥, 혼자 올 자신도 없어 졸개들이나 데려온 주제에 여유 있는 척이라니.”
“조, 졸개!”
“감히!!”
성화마제의 도발에 파천권마와 수라창마가 발끈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달려들 정도로 이성을 잃은 건 아니었다.
그런 반응에 성화마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노림수를 눈치챈 지옥도마가 히죽거렸다.
“그딴 저급한 도발을 할 정도로 마음이 급한 보군.”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