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위기(危機)의 천마신교(天魔神敎) (1)
“대주님, 본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저희도 뭔가 조치를…….”
직언하던 노인은 대주의 차가운 눈빛이 입을 다물었다.
대(隊)는 단독지휘권을 가진 무력집단 중 최소 단위다.
그렇기에 대주라고 해서 엄청난 권한을 가진 건 아니다.
허나 천마신교에서 단 두 명의 대주만은 예외였다.
교주를 호위하는 천마지존대와 성화를 수호하는 성화수호대.
“부대주, 본교의 일에 관심을 갖지 마라. 본대(本隊)는 오직 성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대주님.”
성화의 수호자라고 불리는 성화마제(聖火魔帝).
천마신교에서도 유일하게 마제급에 해당하는 절대고수다.
천마를 신(神)으로 모시는 종교집단이지만, 그 근간은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敎)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만큼 성화의 수호는 중요하고, 다른 곳에 눈을 팔 수 없다.
“자네가 직접 십위(十衛)를 다독여 수하들을 단속하게. 이럴 때일수록 본대가 휩쓸려서는 아니 되네.”
“마염군(魔炎君)이 대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성화마제의 명령을 받고 물러나는 부대주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가 물러나자 관심 없는 척하던 성화마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쯧쯧 부대주를 맡은 지 십수 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권력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군.”
천마신교 휘하에는 수많은 무력집단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집단은 천마지존대와 성화수호대다.
적게는 삼백, 많게는 일천을 이끄는 단주들조차 초절정고수였다.
헌데 두 곳만은 초마경(화경)의 고수가 수장을 맡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중 성화수호대는 더욱 특별하다.
“미련만 버리면 훗날 내 뒤를 맡길 만한데… 다른 녀석을 키워야 하나.”
그는 부대주 마염군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화수호대는 마화공(魔火功)이라는 고유의 마공을 익힌 덕분에 빠른 성장하지만, 한번 일원이 되면 외부로 차출되지 않는다.
조장급인 성화십위에 결원이 생기면 대원 중 뛰어난 인물을 임명하고, 부대주가 공석이 되면 성화십위에서 선별한다.
물론 성화수호대주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실력만 있다면 승진이 보장되었지만, 동시에 오를 수 있는 자리가 한정적이다.
그러한 점이 오히려 부대주로 하여금 자꾸 외부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괴물 같은 성화마제를 밀어내고, 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으니까.
“교주께서 계시니, 별일이야 있겠냐마는…….”
그도 천마대전(天魔大殿)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다.
그 일로 동요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마동(魔童). 신궁의 핵심 인물인 동시에 천마신교의 사생아다.
무엇보다 천마신교는 강자존의 세계.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신교제이고수(神敎第二高手)라는 성화마제 이런 우려를 할 정도였으니, 동요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걸 간과한 게 얼마나 큰 실수인지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단순히 내부 단속을 지시한 자신의 생각이 짧았는지 역시.
* * *
“언제까지 성마(聖魔)의 뒤만 닦아주면 살 텐가? 십수 년 했으면 할 만큼 하지 않았나.”
비아냥거림에도 마염군은 반박하지 못했다.
비아냥거리는 자가 어찌할 수 없는 고수이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 야망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
“부대주만 할 텐가? 이제 자네가 맡을 때도 됐잖아, 성화대주.”
은근한 꼬드김에 알면서도 마염군은 흔들렸다.
그의 말대로 성화수호대의 부대주가 된 지 십수 년.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헌데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자리에 머물러야 할지 모른다.
“묵묵히 기다린다면 성화대주가 될 거 같아? 그 노물이 언제 물러날 줄 알고. 아니, 막말로 그 노물이 물러나면 그 자리가 자네 것이 될 거라고 누가 장담하나. 아, 성화구위(聖火九衛)가 성마의 종질(從姪)이라지? 지금은 몰라도 한 십 년 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
마염군은 이를 악물었다.
아닌 척했지만, 그 역시 우려하고 있는 바였기 때문이다.
성화의 수호에 평생을 바쳐 가족도 만들지 않은 성화마제이지만, 그의 아우는 여러 자식을 봤다.
그중 한 명이 성화수호대에 지원했다.
수년 전, 남악 축융봉에서 죽은 성화십위를 대신해 새로운 십인을 선별해 임명했다.
헌데 새로운 성화십위로 임명된 십인 중에 성화마제의 종질이 포함되었다.
일각에는 성화마제가 제 핏줄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감히 그에게 따져 묻는 자는 없었다.
“장담컨대 이번이 아니면 그 노물은 십 년… 아니, 이십 년 후에도 그 자리를 내놓지 않을 것이네.”
“…장로님의 명을 따른다고 해서 그 자리가 제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염군의 마음을 흔드는 자는 마교 오대장로의 한 명이었다.
오대장로 어느 한 명 성화마제와 사이가 좋은 자가 없다.
그러니 성화마제와 척을 지려고 한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마염군은 거부감이 들었다.
“이거라면 믿음이 생기려나?”
“……!!”
장로가 내민 한 권의 비급을 본 마염군의 눈이 커졌다.
그는 떨리는 손을 비급을 향해 내밀었다.
척!
허나 장로는 아직 내어준 게 아니라는 듯 비급 위로 제 손을 올렸다.
“어때? 이제 믿음이 생기는가.”
“조, 좋습니다. 성화마공을 주신다면 장로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마염군은 비급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로는 비급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자 마염군은 비급을 잽싸게 거두었다.
‘이, 이게 정말 성화마공이란 말이지! 그럼 나도… 나도…….’
마염군의 눈에 야망의 불길이 일렁거렸다.
그는 부대주로 임명되는 날, 마염공(魔炎功)을 전수받았다.
마염공은 마화공(魔火功)의 상위 마공으로, 기존에 쌓은 마화기(魔火氣)를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덕분에 그는 벽을 깨고 빠르게 초절정지경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염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성화마공에 비할 바는 아니다.
천마신공에 비견되는 몇 안 되는 절대마공 중 하나가 바로 성화마공이니 말이다.
게다가 성화의 주변에서 운기행공을 하면 성취가 빨라진다는 특성 때문에 성화마제는 신교제이고수가 될 수 있었다.
헌데 마염군에게 그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기뻐하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그 비급은 성화마공의 전반부일세.”
“예?! 지금, 저랑 장난치시는 겁니까!”
부푼 꿈을 꾸었었기 때문인지, 그는 장로의 말에 발끈했다.
그런 마염군의 반응에 장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감히 네놈이 누구에게 화를 내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제가 다, 당황한 나머지… 죄송합니다!”
그제야 아차 한 마염군은 머리를 바짝 조아렸다.
장로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제이의 성화마제가 된다는 꿈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걸 떠나 아직은 장로의 상대가 아니었다.
강자존의 세계인 천마신교에서 하극상은 죽음이다.
장로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기에 마염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장로 역시 원하는 바가 있기에 지금은 마염군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기로 결정했다.
“새 하늘이 열리는 날, 후반부와 성화대는 자네의 것이 될 것일세. 그러니 다른 생각 말고,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게.”
“맡겨 주십시오, 장로님!”
이제 정신을 차린 듯한 마염군을 보며 장로는 불편했던 심기가 조금은 나아지는 거 같았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그럼, 첫 번째 명을 내리지. 성화대를 장악하게. 성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내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예, 장로님.”
이미 마음이 돌아선 마염군이다.
그의 눈빛에 진심이 묻어났다.
마염군의 입장에서도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선 성화마제가 방해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알아서 성마를 처리해주겠다면, 나야 고맙지.’
성화마공의 전반부를 전했다고 해서 마염군이 성화마제를 상대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걸 장로가 모를 리 없다.
허나 이런 계획을 세웠다면 성화마제를 상대할 계책이 있을 것이다.
그럼 자신은 지시나 따르면서 자신의 몫만 챙기면 된다.
마염군의 그런 생각을 모를 장로가 아니었다.
‘성마도 불쌍하군. 저런 쥐새끼를 믿고 있으니…. 덕분에 일이 더 쉬워지겠어.’
성화마제가 그리고 천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천마신교는 곪아 있었고, 적의 준비는 더욱 철저했다.
천마에게 선전포고하고 움직일 정도로.
하지만 이런 혼란한 천마신교의 정세가 누군가에겐 절호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 * *
“어딘가 있을 터인데…….”
천산(天山). 십만대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넓은 산이다.
애초 산이라기보다는 산맥 전체를 일컫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런 천산은 바로 마도종주, 천마신교의 본산이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이 천마신교라 생각하는 곳은 천마가 거하는 천마궁(天魔宮)이다.
각 장로전과 호법원 등은 천마궁을 중심으로 각 봉우리에 터를 잡고 있었다.
전(殿)이나 원(院)급의 경우 휘하에 천(千) 단위의 인원을 이끌고 있기에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새들을 동원하고 싶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천마신교가 눈치를 채면 곤란하니… 하아…….”
천산은 결코 하루 이틀 사이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은밀히 살피고 있으나 원하는 곳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기에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젠장! 석 달 만에 집에 돌아간 건데 긴급 소집이라니, 이게 말이 돼!”
“어쩌겠냐, 본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데…….”
오랜만의 휴가조차 반납하고 돌아가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천마신교인 만큼 세(勢)를 구축한 가문도 있지만, 대부분은 신도들의 마을 출신이다.
넓고 넓은 천산이기에 천마신교 이외에도 크고 작은 마을이 무수히 존재했다.
모든 마을의 공통점은 바로 천마신교를 섬기는 신도들의 마을이라는 점이다.
각 마을의 사내는 천마신교의 전사가 되거나 신교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천산 곳곳에 위치한 신도들의 마을이야말로, 천마신교의 근간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간부급이 된다면 가족을 신교 내에 들일 수 있지만, 간부의 자리는 고작 일 푼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가족이 마을에 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저들의 기운은… 설마!’
마도종주라는 천마신교다.
보유한 마공만 수백 종 이상이고, 전리품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괜히 천마신교가 단일세력으로 최강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분명 남악에 나타났던 마졸들과 같은 기운이야!’
같은 사문이라면 기운이 비슷한 게 당연하다.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익힌 무공이 다르다면 기운이 비슷하다고 해도 분명 차이가 존재하다.
다르게 말하면 자신이 찾는 장소. 정확히는 그것에 속한 이들이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남악에 나타났던 성화십위와 같은 소속인 성화수호대(聖火守護隊)의 일원들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야말로 천운(天運)이구나. 저들의 뒤를 쫓는다면 성화가 나올지 몰라.’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