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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79화 (179/200)

179화. 동면(冬眠)

“널! 이대로 보낼 수 없어!”

뚝. 뚝. 뚝.

이백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설군을 적셨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의 일부가 ‘신수 백호 설군’에게 전이됩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의 일부가 ‘신수 백호 설군’에게 전이됩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의 일부가 ‘신수 백호 설군’에게 전이됩니다.]

이백은 ‘불완전한 신의 불꽃’을 설군에게 전하고, 또 전했다.

상단전에 자리 잡은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점점 사라지는 게 느껴졌지만, 이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모두 사라진다고 한들, 설군을 살릴 수 있다면 아까울 게 하나 없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의 일부가 ‘신수 백호 설군’에게 전이됩니다.]

[‘혜안’이 소멸합니다.]

급기하 눈에 깃들며 혜안을 이루었던 일부의 ‘불완전한 신의 불꽃’마저 소모하면서 혜안이 사라졌다.

제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주었음에도 설군의 숨결은 미약해져 갈 뿐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 이대로 죽지 말고 말라고! 설군아!!”

인간의 의지만큼 강한 건 없다.

하늘의 뜻조차 바꾸는 게 바로 인간의 의지이니 말이다.

[특수능력 ‘의념기(意念氣)’를 깨우쳤습니다.]

[‘만수통령신공’ 11성에 올랐습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고갈되었던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상단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혜안’을 이루었습니다.]

[‘신수 백호 설군’과 계약자 ‘이백’이 공명합니다.]

이백과 설군이 공명하기 시작하자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그들을 감싸 안았다.

모든 걸 불태우는 불꽃.

허나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것 역시 불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감싸 안았던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사그라졌다.

설군의 호흡이 미약하지만, 더 이상 거칠지 않고 안정을 되찾았다.

[‘신수 백호 설군’이 동면에 듭니다.]

[동면에서 깨어나기 위해선 ‘완전한 신의 불꽃’이 필요합니다.]

“아… 사, 살았구나. 살았어.”

비록 잠에 들긴 했지만, 설군을 이대로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백은 안도했고 기뻐했다.

하지만 이대로 만족할 수는 없다.

설군을 깨우기 위해서 ‘완전한 신의 불꽃’이 얻어야 한다.

“‘완전한 신의 불꽃’이 어디에 있으려나…….”

[영웅 : 무림전설]의 스토리를 모두 알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이백의 기억 속에는 없는 정보였다.

하지만 짐작이 가는 게 없지 않았다.

“성화(聖火)… 성화를 얻을 수 있다면… 설군이를… 깨울 수 있어.”

*  *  *

군사전이 무너지면서 그들이 수집했던 정보들이 상당 부분 유실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궁과 관련된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신궁의 간세나 협력자들이 밝혀지면서 내부 단속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개방의 방주로서 집안 단속을 못 해 중원에 폐를 끼쳤소. 면목이 없소, 맹주.”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방주.”

군사전의 공략이 참여했던 이파일가(二派一家)의 고수들은 서둘러 사문으로 복귀했다.

대승이었지만, 희생이 없다고 할 수 없던 만큼 그들의 장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 몇몇만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그 중 한명이 개방의 방주 걸왕이다.

그는 무림맹주 검제(劍帝)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개방의 수많은 분타에 간세가 활동 중임이 밝혀졌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저 집안 단속하지 못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헌데 개방이 어딘가. 무림맹의 눈과 귀라 할 수 있는 집단이다.

그런 개방에 간세가 득실 거렸으니, 신궁의 꼬리를 잡지 못할 만했다.

“설마 철협개(鐵俠丐), 그 녀석이… 하…….”

“…….”

검제는 차마 걸왕을 위로할 수 없었다.

개방 변절자들의 수장인 철협개로 밝혀진 탓이다.

후개 시험에서 항룡개에게 패배했지만, 차기 장로이자 현(現) 천강개의 수좌를 맡고 있다.

개방의 전투부대가 하마터면 적의 칼이 될 뻔했다.

아니, 그렇기에 철협개를 노렸는지 모른다.

포기했던 방주의 꿈을 꿀 수 있게 현혹해 변절시키는 건 신궁에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을 변질시켜왔으니.

허나 변절은 변절이다.

그런 철협개에 동조한 개방도들은 모두 색출되었다.

헌데 의외로 천강개 중에는 동조한 자가 많지 않았다.

걸왕은 무재만이 아니라 의협심을 보고 당대 천강개(千强丐)를 선별한 덕분이다.

만약 천강개 전체가 변절에 동조했다면, 개방은 뼈아픈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항룡개에게 단단히 일러, 차기 후개 후보를 선별할 때는 인성을 최우선으로 보라 해야겠어.’

철협개만 욕할 게 아니다.

그 윗대인 옥룡개(玉龍丐) 역시 개방을 배신하고, 큰 피해를 입히지 않았던가.

협의지문(俠義之門)이라고 불리는 개방으로서는 흑역사를 갱신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개방의 활약으로, 군사전의 눈과 귀를 가리고 이미 무너트리지 않았소. 그리고 각파의 간세들까지 색출하고 말이오. 하하, 역시 개방이외다!”

“…….”

검제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개방의 공적을 치하했지만, 걸왕으로서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개방 내 변절자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준 게 제갈중경이었고, 신궁의 군사 혈불을 쓰러트린 것 역시 이백이었다.

개방은 어디까지나 뒤처리를 했을 뿐이니, 어찌 개방의 치적이라 할 수 있겠는가.

걸왕은 남의 공적을 가로챈 거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건…….”

“맞습니다, 맹주님. 개방이 아니었다면 어찌 가능했겠습니까.”

걸왕의 말을 막은 자는 죽은 것으로 위장했던 제갈중경이었다.

더 이상 위장할 수 없던 그는 걸왕과 함께 무림맹에 복귀했다.

검제는 걸왕 이상으로 그를 반겼다.

“수고 많으셨소, 총군사. 그대의 희생에 맹을 대신해 빈도가 감사드리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맹주님. 제가 내린 결정이고, 맹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총군사의 부재로 군사부가 말이 아니외다. 빨리 업무에 복귀해 맹의 질서를 잡아주시오.”

“총군사 제갈중경이 맹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비영(秘影)이 그를 대리하고 있었지만, 버거워하는 감이 없지 않았다.

애초 제갈중경은 대체불가의 존재였다.

비영이 아닌 누구라도 비교되며 버거워했을 것이다.

이로써 무림맹도 한고비를 넘겼다.

제갈중경과 걸왕은 맹주전을 나와 군사부로 왔다.

“어찌 말을 막은 것이오. 치하받을 건 노부가 아니라 그인데…….”

비록 제갈중경의 눈짓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지만, 걸왕은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공명정대하기로 유명한 걸왕으로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 그를 보며 제갈중경이 미소 지었다.

“백이는 그런 걸 원치 않을 겁니다. 그런 녀석이지 않습니까, 방주.”

“…그렇지만…….”

걸왕 역시 이백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가 공치사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리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제갈중경은 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말했다.

“방주께선 녀석의 공을 차지했다 생각하시지만, 개방의 공이 맞습니다. 군사전의 눈과 귀를 가린 것도 색출한 것도 개방이지 않습니까.”

“그건…….”

“아니, 개방입니다. 저나 백이는 계기만 제공한 겁니다. 피와 땀을 흘린 개방의 제자들이 해낸 겁니다.”

“…….”

그리 말하니 걸왕으로서는 납득되지 않았지만 억지로 납득했다.

납득하지 않는다면 개방 제자들의 희생과 노력이 욕되기 때문이다.

제갈중경의 화술에 걸왕은 받아들이기도 했다.

걸왕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소, 총군사.”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방주.”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 하는 제갈중경이 고맙기만 했다.

그러다 문뜩 떠오르는 자가 있었다.

“그보다 그는… 백호…왕은 바삐 사라졌는데…….”

“그만큼 급한 일이 있나 봅니다.”

이백은 불사강시 야차왕(夜叉王)을 제거한 후 사라졌다.

어찌나 급히 사라졌는지 붙잡을 틈도 없었다.

그 이후 이백의 흔적이 끊겼다.

개방 내 변절자들을 잡아들이느냐 공백이 생기긴 했지만, 그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개방의 눈조차 피해 어디로 향했단 말인가.

하지만 걸왕은 그것보다 다른 이유로 그가 신경이 쓰였다.

‘…분명 의념기였어. 불사강시를 벤 건…….’

*  *  *

“하! 하! 하! 하!”

중년인의 파안대소(破顔大笑)에 대전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강하게 흔들렸다.

단순히 웃는다고 대전이 흔들릴 리가 없다.

웃음에 특별한 힘이 담겨 있던 탓이다.

“노부는 재밌으라고 한 말이 아닌데, 자넨 재밌나 보군.”

“본좌 역시 재미없소.”

8, 9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의 말에 파안대소하던 중년인은 웃음을 뚝 그쳤다.

어이없게도 소년은 스스로를 노부(老夫)라는 칭했는데, 중년인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겉보기와 달리 소년은 노부라고 칭할 만한 인물이었다.

“역시 그렇지? 웃음으로 때우지 말고 협력하게.”

“선배 대우를 해주니, 본좌가 우습소? 마동.”

이죽거리는 소년을 향해 중년인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긴장하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겉 보이는 것처럼 평범한 소년이 아니다.

마라동자공(魔羅童子功)이라는 희대의 괴공을 익혀 나이를 먹지 않는 괴물 중의 괴물.

마동(魔童).

신궁의 대호법인 그였다.

이갑자의 삶을 훌쩍 넘어 무림 최고령인 그를 존중하되, 전혀 꿀리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그를 향해 마동이 소년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은 무거운 분위기를 잡았다.

“오히려 노부가 할 말일세. 마교의 주인이 되었다고 노부가 누구인지 잊었는가?”

“본교는 천마신교다! 마동!!”

중년인에게서 가공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대전은 다시 한번 흔들거렸다.

그러자 마동에게서도 그 못지않은 기운이 흘러나와 대응했다.

어느 한 명 승기를 잡지 못했다. 아니, 잡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만약 진심으로 서로 상대를 어찌하겠다고 생각했다면 대전은 흔들리는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자존심을 세워 끝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듯 그들 모두 기운을 거두었다.

마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분의 뜻이라 기회를 주는 것이네. …자네도 알겠지만, 노부는 마교에 유감이 많다는 걸 기억해야 할 거야.”

“감히 본좌를 협박하는 것이더냐!!”

천마가 분노하는 순간, 결국 대전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리 철목(鐵木)으로 지은 천마대전이라지만, 우내오존의 상징인 의념기(意念氣)를 견뎌낼 리 만무했다.

천마대전(天魔大殿)이 무너져 내렸지만, 감히 천마를 해하지는 못했다.

이미 사라진 마동의 전음만이 들릴 뿐이었다.

―잊지 마라, 살부지수(殺父之讎)의 원한을 잊은 게 아니란 걸…….

마동의 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천마는 천마대전이 무너졌음에도 여전히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 언제 다가왔는지, 노인이 서 있었다.

“금마(金魔), 내부 단속을 해야겠네.”

“준비하겠습니다, 주군.”

천마는 알고 있었다.

이 소동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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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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