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혈불(血佛)의 최후(最後) (2)
콰쾅!!
폭음과 함께 괴한이 튕겨나갔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괴한은 벽을 부수고 군사전 밖으로 나가 버렸다.
사술의 보호를 받아 웬만하면 부서지지 않음에도 말이다.
군사전 밖까지 튕겨 나갔던 괴한은 멀쩡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허나 지금까지 무반응을 보이던 것과 달리 가공한 살기를 뿜어냈다.
“으윽!”
“이, 이런 살기는!”
살기(殺氣)는 죽이고자 하는 의지에 기가 반응한 형태다.
고수의 살기는 범부(凡夫)의 심장도 멈추게 할 정도다.
헌데 고수가 고통스러워할 정도의 살기라면, 그 가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한 살기에도 노화자는 그저 놀라워할 뿐이었다.
“이 늙은 거지의 겉가죽이 따끔따금하게 할 살기는 천살공(天殺公) 이후로 처음이군.”
살왕의 악명에 가려졌을 뿐 천살공은 무림 최고의 살수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살기를 드러내야 할 상황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 봐도 노화자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허나 그 정도로 이 늙은 거지를 어찌할 수 없단다, 아해야.”
“크아앙!!”
소년의 모습을 한 괴한은 성이 난 듯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 순간 괴한이 사라졌다.
육안이 따르지 못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노화자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누구라도 기겁할 상황이건만, 노화자는 그리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방금 말하지 않았는가, 그 정도로 이 늙은 거지를 어찌…….”
“커억!!”
언제 움직였는지, 노화자의 주먹이 괴한의 복부에 꽂혔다.
육안이 따르지 못할 괴한의 움직임이 오히려 독이 되어 그에게 더 큰 위력으로 되돌아갔다.
그런 탓에 괴한은 신음과 함께 다시 한번 나가떨어졌다.
다행히 이번만큼은 벽을 부수며 군사전 밖까지 튕겨 나가진 않았지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할 수 없다고.”
“…….”
분명 괴한은 빨랐다. 하지만 빠름만 본다면 노화자도 빠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 모른다.
개방에서 제일 빠르다는 추풍신개(追風神丐).
그런 추풍신개가 자신보다 더 빠르다고 말한 인물이 바로 개방의 용두방주인 걸왕(乞王)이다.
애초 괴한은 빠름으로 승부를 볼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역시 방주님! 구해주셔서 감…….”
“물러나게, 아직 끝나지 않았네.”
“예?”
공동파의 장로 자전도군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으나 걸왕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공동파 혹은 자전도군과 불편한 게 있는 것일까?
아니다. 감사의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걸왕은 되묻는 자전도군을 뒤로한 채, 쓰러진 괴한에게 달려갔다.
확인 사살이라도 하겠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쾅!!
걸왕의 주먹은 괴한에게 닿지 못했다.
닿기 직전 피한 탓에 걸왕의 주먹은 애꿎은 바닥만 내리쳤다.
그러한 탓에 바닥이 무너지고 말았다.
“어, 어어!!”
“모두! 조심해라!!”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고수 아닌 자가 없기에 당황했지만, 무사히 아래층에 안착할 수 있었다.
순간적인 혼란을 겪은 사이건만, 이 틈을 노린 자들이 있었다.
쾅! 콰쾅!!
아주 짧은 사이였건만, 걸왕과 괴한이 권각을 나누었다.
그 충격에 두 사람이 각자 뒤로 물러났다.
“큭! …설마 했는데 정말 강시였군, 그것도 불사강시(不死殭屍).”
“캬~! 캬아~!”
처음과 달리 걸왕은 압도적이지 못했다.
호각지세. 아니, 약간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았다.
그건 걸왕의 무위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못한 게 아니다.
반대로 그만큼 불사강시의 능력이 출중한 탓이다.
개방조차 불사강시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기에 약점을 알지 못했다.
애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으니 당연하다.
그런 불사강시이니, 이파일가의 고수들은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불사…강시? 그런 게 있었나?”
“뭔지 모르지만, 괴물이란 말이군.”
이파일가의 고수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자신들이 고전할 수밖에 없는 마물이라는 깨달았다.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걸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전멸했을 거란 걸, 깨달은 탓이다.
걸왕은 꽉 쥐었던 주먹을 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세가 약해진 게 아니다.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
걸왕의 손에 빛의 덩어리가 구현되었다.
빛의 덩어리는 어느새 용의 형상이 되었다.
“전설의 불사강시라지만, 이 늙은 거지도 나름 전설이라 불린다네!”
* * *
쾅! 콰쾅! 쾅!!
괴물들의 공방(攻防)에 군사전이 흔들렸다.
사술로 보호받지 않았다면 몇 번이나 무너졌을 만한 공방이었다.
“흐흐흐, 너무 서두르는 거 같군.”
“…….”
조금이라도 빨리 싸움을 끝내기 위해 이백이 서두른 탓에 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혈불이 오히려 싸움을 조절한 탓에 쉬이 결판이 나지 않았다.
실전경험이 풍부하지 못했으나 신궁의 군사직을 맡을 정도로 비상한 인물이다.
무리하지 않고 시간만 끌어도 결국 이기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패황이 저 애송이를 백호왕이라 칭했다더니, 그 정도가 아니잖아.’
패황이 누군가를 과대평가할 자가 아니란 걸 알기에 방심하지 않았다.
애초 좌법왕이 그의 힘을 겪어봤기에 화경급이라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전대 무림십왕인 청랑왕처럼 함께 다니는 백호(白虎) 때문이라 생각했다.
헌데 직접 겪어본 이백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당대 무림십왕 중 오왕일후를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허나 이백의 별호는 권왕(拳王)이나 장왕(掌王)이 아닌 백호왕(白虎王)이다.
‘백호는 데려오지 않은 게, 네가 오늘 죽는 이유다.’
만약 그가 데리고 다니는 백호가 청랑왕의 청랑급 영물이라면.
그리고 이 자리에 그 백호가 있었다면 오늘의 패배는 자신일지 모른다.
설사 백호가 이곳에 있다고 한들, 두렵지는 않았다.
이백에게만 백호가 있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그보다 더 대단한 비장의 무기가 있다.
‘청소가 끝나면… 네놈도 끝이다.’
이파일가의 정체까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군사전을 급습한 무리.
분명 만만치 않을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소용없다.
이미 비장의 무기가 움직였다.
야차왕(夜叉王)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콰쾅!!
그 순간 굉음과 함께 군사전이 강하게 흔들렸다.
‘야차왕이 이리 날뛸 필요는… 설마!’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지만, 야차왕쯤 된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군사전이 강하게 흔들릴 정도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때 입가에 미소가 어린 이백을 발견했다.
불길한 느낌이 혈불을 휘감았다.
“백호…가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이런 꼼수를 부렸군!”
“아쉽게도 설군이는 아니지만, 대단한 분께 부탁드렸지.”
백호가 아니란 말에 혈불은 미간을 찌푸렸다.
야차왕의 존재를 예상했단 말인가.
자신의 수가 읽혔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패황이군! 야차왕을 상대하는 자가!”
“야차왕? 신궁이라 별의별 고수가 다 있군.”
그제야 혈불은 그가 야차왕의 존재를 읽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안도했다.
야차왕의 존재까지 읽혔다면 정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패황 놈, 좌법왕이 패왕성에 간 것도 모르고 멍청한 짓을 했군.”
“역시 좌법왕이 그리 갔군. 헌데 어쩌나? 성주께선 성(城)에 계신데 말이야.”
혈불은 이백의 말에 깜짝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야차왕은 불사강시.
화경급의 힘을 가졌기에 초절정고수 정도로는 상대할 수 없다.
그럼 지금 야차왕을 상대하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뭐, 뭐! 그럼 야차왕을 상대하는 건!”
“정보가 막혔을 텐데, 눈치채지 못했나 보군.”
“……!!”
혈불이 눈을 부릅떴다.
정보가 원활하지 않다는 걸, 이백이 눈치챈 것도 불쾌한데 그 말뜻을 깨닫고 말았다.
혈불은 본능적으로 외쳤다.
“개방! 그럼!!”
“맞다. 방주께 부탁드렸지.”
신궁은 중원 곳곳에 정보망을 구축했다.
하지만 그렇게 구축된 정보망의 정보는 모두 군사전으로 전해지는 게 아니다.
순찰령이 무너진 탓도 있지만, 애초 그들 역시 정보를 온전히 넘겨준 것도 아니다.
하물며 호법원이나 장로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당연히 본궁의 정보망 역시 군사전이 이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군사전의 정보망은 막강했다.
그건 무림 최고의 정보집단인 개방의 정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 죽일 놈! 아무리 걸왕이라도 야차왕을 어찌할 수 없다!”
“야차왕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중원을… 그리고 무림십왕을 너무 쉽게 보는군.”
실력은 삼푼을 숨기라는 무림 격언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 무림십왕의 진짜 무위에는 차이가 있다.
이백 본인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이백의 말에 혈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네놈의 그 잘난 입부터 찢어주마!!”
“그게 가능… 음?”
[능력이 제한됩니다.]
[근력이 2할 약화되었습니다.]
[체력이 1할 약화되었습니다.]
[내공이 1할 약화…….]
[내공 수발능력이…….]
순간적으로 몸이 무거워졌다.
혈불이 수작을 부린 걸 깨달았다.
이백은 불완전한 신의 불꽃으로 대항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육신을 보호합니다.]
[약화된 근력이 회복…….]
순간적으로 제한된 능력을 회복했다.
허나 그 찰나의 순간도 무림고수. 그것도 화경고수에겐 충분한 시간이다.
“크윽!!”
“잘난 입을 찢어주겠다 하지 않았느냐!”
이백의 얼굴로 향한 혈불의 손을 피했지만, 대신 어깨가 시큰거렸다.
외금강신(外金剛身)을 이룬 덕분에 어깨가 부서지는 건 면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순간적인 움직였기에 온전한 힘이 발휘된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능력이 제한됩니다.]
[근력이 3할 약화되었습니다.]
[내공이 2할 약화되었습니다.]
[민첩성이 3할 약화…….]
고통에 움찔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혈불이 다시 이백의 능력을 제한했다.
‘혼세미궁의 술’은 ‘혼세마전의 술’과 달리 술사(術士)가 권역 내에서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한 탓에 다시 이백의 능력을 제한하는 게 가능했다.
‘젠장!’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능력이 제한되면 혈불을 상대하는 게 더 어렵다.
이백은 또다시 ‘불완전한 신의 불꽃’을 활성화시켰다.
하지만 이를 두고 볼 혈불이 아니었다.
“수작 부릴 수 있게 놔둘 줄 알고!”
“크윽!”
핏빛의 우레가 내리꽂혔다.
이백은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몸이 무거워 마음처럼 반응하지 못했다.
아직 사술에 의해 제한된 능력이 회복되지 못한 탓이다.
애초 그걸 노리고, 극쾌의 절초 법뢰혈인(法雷血印)을 펼쳤던 것이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소멸되었습니다.]
“짐승들을 부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설마 했는데 네놈도 술사였구나. 허나 본 법황을 능가할 수 없지!”
천축의 전설 뇌음사의 사술과 대법 등을 이은 혈뢰음사의 법황이 바로 혈불이다.
난다 긴다 하는 술사들이라도 그를 능가할 수 없다.
혈불은 이백이 사술에 저항하지 못하게 쉴새 없이 몰아붙였다.
퍽!
“크윽!”
“말했지, 네놈의 주둥이를 찢어주겠다고!”
혈불은 정말 이백의 입을 찢겠다는 듯 손을 뻗었다.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크아아아앙!!”
“컥!!”
[‘혼세미궁의 술’이 해소되었습니다.]
짐승의 포효에 군사전을 보호하는 사술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틈을 노려 이백이 반격했다.
“이제 2차전을 벌어보자고.”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