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74화 (174/200)

174화. 군사전(軍師殿) (1)

“젠장,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홧김에 신궁의 정보를 밝힌 후 뇌옥 대신 좋은 거처로 옮길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유를 얻은 건 아니다.

열두 시진 내내 보호라고 쓰고, 감시라고 읽는 상황 속이 열흘째 지속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울분이 풀리고 마음이 평온했으나 언제부터인지 찜찜함이 스멀스멀 생겨났다.

“아니겠지, 본 법왕이 속았을 리 없어.”

자신의 목숨을 노린 이장로 영왕(影王).

아니, 그 살수가 정말 영왕이 맞긴 한가? 라는 생각이 떠올라 자신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우법왕은 애써 부정해야 했다.

“영왕이 아니라면 어떤 살수가 패황을 상대할 수 있겠어. 아니고 말고!”

신궁을 받치고 있는 네 기둥의 하나 장로원(長老院).

궁주의 핏줄이거나 가신의 혈통으로 구성되어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집단이다.

이장로는 장로원의 칠무경(七武經) 중 하나를 익힌 절대살수다.

그가 아니라면 어찌 패황의 손에서 살아 도망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살수 나부랭이가.

우법왕은 그리 생각하며 애써 부정하려고 노력했다.

다르게 말하면 그렇게 자기 위안을 삼을 정도로 불안감이 들었다.

“아니면 본 법왕이 배신…을 한 것이니 절대 안…….”

“배신이라면 그게 무슨 말인가. 우법왕.”

수십의 고수가 이중삼중으로 감시하고 있는 별원(別院)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열흘 전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조금 다른 점은 자신이 나는 자라는 것이다.

그를 본 순간 우법왕은 심장이 철렁했다.

“본 법왕을… 죽이러 온 것이냐, 좌법왕.”

“이젠 들어보고 결정해야 할 거 같군. 널 구할지 죽일지…….”

불청객은 바로 그와 함께 혈뢰음사를 이끄는 좌법왕이었다.

실패한 영왕 대신 자신의 입을 막으러 온 것인가.

헌데 뭔가 이상했다.

“들어보고 결정한다니… 혈불이 본 법왕을 죽이라고 보낸 거 아닌가? 실패한 영왕 대신?”

“무례하다! 어찌 법황의 성호(聖號)를 함부로 입에 담는가!”

좌법왕은 진심으로 화를 냈다.

혈불은 사형이기 이전 혈뢰음사의 법황(法皇)이다.

아무리 자신들이 법왕(法王)의 위(位)를 받았다고 한들 감히, 직접적으로 입에 담는 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화가 덜 풀렸는지, 좌법왕은 여전히 화를 냈다.

“게다가 법황께서 왜 자넬 죽이라 명하시는가! 게다가 영왕이 실패했다는 것 또 뭐고!”

“그, 그 말은… 설마!!”

우법왕의 눈이 커졌다.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속았다는 걸 인정했다.

커진 눈이 급격히 흔들렸다.

이를 본 좌법왕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뭐지.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것인가!”

“그, 그럼 그 살수는… 그 살수는 영왕이 아니라고!!”

좌법왕의 호통에도 반쯤 정신이 나간 우법왕은 혼란스러워하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이를 보다 못한 좌법왕이 우법왕의 뺨을 후려쳤다.

짜~아~악!!

그제야 우법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화끈거리는 뺨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급하게 외쳤다.

“빨리 돌아가! 당장! 법황께서 위험하시네!!”

“그게, 무슨 뜻이지! 법황께서 어찌 위험하시단 말인가! 당장 설명해라!”

좌법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온갖 사술로 보호를 받는 군사전에 있는 혈불이 위험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걸 모를 우법왕이 아니다.

그럼에도 위험하다고 하니, 좌법왕은 느낌이 좋지 못했다.

“보, 본 법왕이 속았네. 소, 속아서…….”

“군사전이 무너질 때까지 나갈 수 없네. 아니, 그 후에도 보내줄 생각은 없지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우법왕의 말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찰나!

우법왕의 말을 끊고 끼어든 자.

그는 패왕성의 주인, 패황이었다.

“패황… 군사전의 위치를 너희가 어찌… 설마!”

“소, 속았… 컥!”

우법왕이 발설했다는 걸 깨달은 좌법왕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무승이 아니라고 해도 우법왕이 비리비리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 손에 붙들렸다.

당장이라고 우법왕의 목을 부러트릴 기세였다.

사술을 펼칠 수 없는 지금, 우법왕은 그저 늙은 노승일 뿐이었다.

“컥, 컥, 커억…….”

우두둑.

좌법왕은 결국 우법왕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홧김에 벌인 충동적인 행위지만, 애초 규율이 엄격한 혈뢰음사다.

배신자에게 죽음을 내리는 건 오히려 관대한 처벌이다.

보통은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독하게 처벌하니까.

“너무한 거 아닌가? 동료인 거 같은데?”

“무슨 짓을 벌였는지 모르지만, 법황께선 무사하실 것이다.”

속을 긁는 패황을 보며 좌법왕은 싸늘하게 말했다.

불안감이 없다 할 수 없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위치가 발각되었다고 한들, 군사전을 보호하고 있는 수많은 사술을 어찌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도 법황은 강하다.

자신과 죽은 우법왕이 합친 것만큼.

하물며 패황은 이곳에 있지 않은가?

누가 감히 법황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하지만 패황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과연 그럴까?”

*  *  *

감숙성의 성도 난주.

금이 발견되어서 금도(金都)라고도 불린다.

게다가 비단길의 요충지이기도 해서 제법 번화된 지역이다.

빈부격차가 심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 난주에서도 제일의 부호는 바로 죽림전장(竹林錢場)이다.

난주에서 죽림전장과 거래하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돌 정도이니 그들의 부(富)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런 죽림전장에 특별히 부유해 보이지 않은 청년이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해왔다.

“전장(錢場) 내부를 둘러보고 싶다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누구 없느냐! 이 미친놈을 끌어내라!!”

“그 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소?”

성을 내던 죽림전장의 총관은 청년의 말에 움찔했다.

평소라면 콧방귀를 뀌었겠지만, 청년의 태연자약한 태도가 마음에 걸린 탓이다.

허나 그도 믿는 구석이 있기에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뭐 하느냐! 끌어내지 않고!”

“이놈! 이리 오너… 끄응!”

건장한 사내 둘이 청년의 양팔을 붙잡았다.

헌데 청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총관은 당황하지 않고 설렁줄을 당겼다.

깔랑~! 깔랑~! 깔랑~!

“무공 좀 익혔는지 모르겠지만, 행패 부릴 곳을 잘못 골랐다, 이놈아!”

“무슨 일이십니까, 총관님.”

설렁 소리를 들었는지 도검을 쥔 사내들이 나타났다.

태양혈이 불룩한 게 최소 일류 이상의 고수란 걸 알 수 있었다.

전장을 하다 보면 돈을 노린 불한당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그렇기에 힘 있는 무사를 고용하는 게 당연하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일류고수들을 고용하고 있다니. 과연 죽림전장이었다.

그들의 등장에 총관도 자신감이 충만해 청년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저놈을 끌어내게! 무공을 익혔는지, 행패를 부리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려?”

무사들은 청년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곤 그를 위협하듯 솥뚜껑 같은 손으로 청년의 어깨를 밀쳤다.

정확히는 밀쳤으나 청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음?”

“먼저 친 건 그쪽이니, 이젠 정당방위요.”

청년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말이 나왔다.

의미 알 수 없는 말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크나큰 실수였다.

“정당방위? 그게 무슨… 헉!”

“이, 임 호위! 이놈!!”

임 호위란 자는 부웅 뜨더니 나가떨어졌다.

이를 본 또 다른 호위무사 검을 뽑았다.

하지만 검은 휘두르지 못했다.

청년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컥!”

“따, 딱 기다려라!”

또 다른 전장 호위무사가 나가떨어지자 총관은 당황해 설렁줄을 마구 휘둘렀다.

요란하게 울려 퍼진 설렁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 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못해도 스물은 되어 보였다.

그럼에도 청년은 위축되지 않았다.

“네놈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각오하는 게 좋…….”

“아직 멀었소, 이 대협.”

그때 검은 도복을 입은 도사들이 들이닥쳤다.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들을 본 전장의 호위무사들은 적잖게 당황했다.

“고, 공동파 도장(道長)들께서 어인 일이신지요.”

“죽림전장에 기생한 자들이 있다 들었소.”

구파일방의 하나이며, 감숙무림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공동파의 도사들이었다.

그것도 신궁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복마검수들이었다.

총관과 호위무사들은 당황했다.

“기, 기생한 자들이라니요. 그런 자들은 어, 없습니다!”

“장로님,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거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녹의를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상의 왼쪽 가슴에 수 놓인 당(唐)이라는 글자를 본 그들은 다시 한번 눈이 커졌다.

그들은 사천당가의 고수들이었다.

“무량수불… 무례한 줄 아나, 협조해주시겠습니다. 중원에 중요한 사안이 이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조, 종남까지…….”

구파일방의 이파(二派)와 오대세가의 일가(一家).

이 정도라면 거대사파인 패왕성이나 혈궁도 상대할 수 있을 법한 전력이다.

그런 이들이 어찌 일개 전장에 모였단 말인가.

그들의 시선이 청년에게 몰렸다.

허나 청년은 긴장감 하나 느끼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협조, 해주시겠습니까?”

*  *  *

난주제일의 부호인 죽림전장답게 넓은 대장원을 소유했다.

그런 죽림전장을 이파일가의 고수들이 샅샅이 살폈다.

허나 의심스러운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대협, 밀실은 발견되지 않았소.

사천당가의 고수를 이끌고 온 호천각주(護天閣主) 당자경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파일가가 움직였다.

만약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면 사문의 위상에 먹칠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인지 당자경만이 아니라 종남과 사천당가의 고수들 역시 당혹스러워했다.

그때 한 노인이 나직이 말했다.

“저 숲은 무엇인가.”

“보시다시피 죽림(竹林)입니다. 저희 전장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죽림전장이란 명칭도 장원 안에 있는 이 대나무 숲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누가 봐도 의심스럽다. 허나 이미 이파일가의 고수들이 살폈고, 의심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걸 알기에 총관은 당당했다.

허나 노인은 눈까지 속이지는 못했다.

“구궁팔문진(九宮八門陣)에 환영미로진(幻影迷路陣)을 섞었군.”

“헉! 그걸 어떡… 헙!”

두 가지의 기문진을 섞은 복합진을 알아볼 자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총관은 기겁했다.

그는 뒤늦게 제 입을 막았지만, 이미 들통난 후였다.

덕분에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그때 당자경이 물었다.

“총군사님, 해진(解陣) 가능하십니까?”

“가능은 하지만 제법 시간이 걸릴 걸세.”

당자경의 입에서 나온 총군사(總軍師)라는 말에 죽림전장의 총관은 또 한 번 기겁했다.

총군사라는 지위와 복합진을 알아보는 안목.

두 가지 모두를 해당하는 인물이 한 명 떠오른 탓이다.

“시, 신산(神算)!”

“허허, 맞네. 이 늙은이 그리 불리고 있지.”

공동파와 종남파 그리고 사천당가를 움직인 자는 바로 제갈중경의 청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헌데 그런 제갈중경까지 해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선언했다.

지체해서 좋을 게 없다.

그만큼 적에게도 대비할 시간을 줄 테니까.

“기문진이란 결국 세상에 이치를 비틀어 존재한 걸 존재하지 않게, 존재하지 않은 걸 존재한다고 인지하게 만드는 힘이네. 비틀어진 이치를 되돌릴 수 없다면…….”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