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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73화 (173/200)

173화. 패황(覇皇) 대 절대살수(絶代殺手)

우법왕의 암살을 실패한 순간, 복면인은 물러났다. 아니, 도주를 시도했다.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임무이지만, 눈앞의 노인을 상대로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법왕의 목숨을 구한 자는 다름 아닌 패왕성주. 즉, 패황이었다.

복면인은 이곳에 잠입했던 것처럼 그림자가 되어 사라지려 했지만, 이를 두고 볼 패황이 아니었다.

“감히 본좌의 눈앞에서 도주할 수 있을 거 같더냐!”

훅!

패황이란 별호답게 패도적인 권격이었다.

허나 놀랍게도 복면인은 패황의 권격을 피해냈다.

일개 살수다운 솜씨가 아니다.

자신의 권격이 실패했음에도 패황은 오히려 눈빛을 빛냈다.

“과연 신궁의 살수로군.”

얼마나 많은 고수를 보유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세력이 바로 신궁(神宮)이다.

중원무림을 노릴 정도라면 당연히 허세가 아닐 것이니, 이런 대단한 살수가 있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허나… 본좌가 왜 패황이라 불리는지 알려주마!”

패도(霸道)의 황제(皇帝).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힘만 강하다는 게 아니다.

일대종사(一代宗師)라 불릴 수 있는 절대자가 바로 패황이다.

패왕지학(霸王之學)을 한층 성장시켜 패왕진천공(覇王震天功)과 진천패왕권(震天覇王拳)을 창안한 존재 아니던가.

퍽! 퍼퍽!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격하는 것만으로도 타격음이 발생할 정도였다.

이런 권격이 사람에게 꽂힌다면?

금강불괴라고 한들, 버텨낼 수 있을까?

헌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능제강(柔能制剛)? 허어… 무당 말코도 아니거늘, 살수 나부랭이가 유능제강을 익혀?”

패황은 실소했다.

분명 복면인은 무당의 검수가 아니다.

유능제강이라도 태극을 기반으로 둔 무당파(武堂派)와 복면인의 방식은 전혀 달랐으니까.

사실 유능제강의 무리(武理)가 대단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걸 무학으로 승화시켜, 체득한다는 게 대단한 일이다.

무엇보다 유능제강은 살수의 살검(殺劍)에 어울리는 검예(劍藝)가 아니다.

그럼에도 복면인은 무려 패황의 권격을 유능제강의 묘를 담아 흘려 버렸다.

다르게 말하면 눈앞의 복면인은 살수인 동시에 검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종사(宗師) 급의 거물이란 뜻이다.

“하하! 재밌군, 재밌어! 오냐, 그래야 싸울 맛이 나지!”

패황은 더 이상 복면인을 그저 뛰어난 살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종사급 고수로 여기며 싸움이 임했다.

그래서인지 패황의 기세가 달라졌다.

파직! 파지직!

패황의 곁에 작은 뇌전의 불꽃들이 튀겼다.

패기(霸氣)에 이은 뇌기(雷氣).

오직 패황만 익혔다는 패왕진천공(霸王震天功)을 운용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복면인은 여전히 검을 쥔 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패황을 무시한 것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수식조차 버린 경지에 오른 것이다.

꽈직!

패왕진천기(霸王震天氣)가 담긴 권격이 복면인에게 쇄도했다.

그는 조금 전과 다름없이 유능제강의 묘를 담아 흘려 버렸다.

쾅!

“흐음…….”

“본좌가 누군지 잊었나 보군.”

처음으로 복면인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그는 패황의 권격을 흘려 버렸지만, 완벽하게 흘려 버리진 못했다.

검을 타고 흐르던 중 패왕진천기가 폭발한 것이다.

그 충격이 다시 검을 타고 복면인에게 전해졌으니, 그가 철로 만들어진 게 아닌 이상 멀쩡할 수는 없었다.

허나 신음과 달리 치명상을 입힌 게 아니었다.

게다가 광택을 죽였다고 하지만 뛰어난 검인지, 복면인의 검은 무사했다.

“이제 긴장해야 할 게야, 본좌가 패황이라고 불린 이유를 보여줄 테니까!”

*  *  *

쾅! 콰쾅!!

패왕성의 진천각(震天閣)이 무너졌다.

두 사람의 격돌로 인한 여파다.

천패를 대신해 패왕성의 중추가 된 진천각주가 머무는 전각이 무너졌건만, 누구도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살수이기에 성주님을 상대로 저리 버티는 거지!”

“살왕이라도 불가능하다고!”

무림십왕은 일선일황(一仙一皇), 이제(二帝) 그리고 오왕일후(五王一后)로 나뉜다.

패황은 가장 강한 일선일황이고, 살왕은 오왕일후다.

허니 저 복면인은 살왕 이상의 살수란 뜻이다.

중원무림 제일의 살수보다 뛰어난 살수라니.

신궁의 저력이 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주군께서 친히 적을 상대하시는데, 잡담을 하다니 본각주가 그간 너무 편하게 해줬나 보군.”

“헉! 저, 절대 아닙니다! 각주님!”

진천각주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목소리에 진천각의 고수들은 등골이 오싹했다.

자신들의 수장이 어떤 인물인지 뼈저리게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을 때, 두 절대고수의 격돌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하하!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칼을 또 꺼내게 하다니, 오냐! 넌 자격이 있다!”

패황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거도(巨刀)가 나타났다.

허나 패황은 거도를 쥐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도는 복면인을 향해 날아갔다.

이기어도(以氣御刀).

단순히 내공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허공섭물을 넘어선 도술(刀術)의 극치다.

지금껏 패황이 한반도 보인 적이 없는 기예다.

그걸 꺼냈다는 건, 복면인은 인정했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그때 한 마리의 용이 나타나 패황의 이기어도에 대항했다.

쾅!

놀랍게도 용의 정체는 검(劍)이었다.

복면인 역시 이기어검(以氣御劍)의 운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화경에 오른 살수란 건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쾅! 콰쾅!!

두 마리의 용. 아니, 두 자루의 도검(刀劍)이 허공을 노다니며 충돌할 때마다 하늘이 노한 듯 굉음(轟音)을 일으켰다.

수십 합을 나누었을 때, 거도는 패황에게 되돌아왔다.

“마지막 일도(一刀)로 끝을 내지.”

우~우~웅~!

칼이 그의 마음에 동화되었는지, 도명(刀鳴)을 일으켰다.

이기어도(以氣御刀)도 놀라운 기예지만, 패황의 진짜 칼은 바로.

“패왕무적(霸王無敵)!!”

패황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허공에 베이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되었다.

단순히 환상이라고 치부하기에 그 도격(刀擊)은 너무도 가공했다.

콰콰콰쾅!!

베인 건 허공만이 아니다.

패왕성 내의 전각 몇 개 역시 베였으며, 복면인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와! 성주님께서 이기셨다!!”

“당연한 소릴 하느냐! 하하하!!”

진천각의 고수들. 나아가 패왕성의 일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환호했다.

아무도 패황의 패배 따윈 염두하고 있지 않은 당연한 결과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허나 정작 패황의 표정을 좋지 못했다.

“…놓쳤나.”

패황의 나직한 중얼거림을 들은 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어마어마한 도격을 맞고도 살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허나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엄청난 도법을 보여준 패황의 말이다.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때 누군가 나직하게 말했다.

“…영왕(影王).”

“뭐라고 했나, 우법왕.”

입을 연 자는 우법왕이었다.

패황과 복면인의 격돌로 진천각이 무너지려 할 때, 그 안에서 심문을 받고 있던 우법왕은 진천각 고수들에 의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를 지킨다기보단 알아낼 정보가 있기 때문에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던 것이다.

“장로원(長老院)의 이장로…일 것이다. 그놈… 빠드득…….”

그는 혈뢰음사의 우법왕이지, 신궁 소속이 아니다.

허나 군사 혈불의 사제이다 보니 신궁 내부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복면인의 정체가 이장로 영왕이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애초 신궁이라도 화경급 살수는 그밖에 없으니, 그를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 유출된 신궁의 정보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회수한 삼장로와 마찬가지로 장로원에 속한 거물이다.

물론 실력은 삼장로보다 뛰어나다.

패황을 상대로 그만큼 버텨냈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신궁. 그놈들에 대해 알고 싶다 했지. 오냐, 알고 있는 모든 걸 알려주마.”

우법왕은 묻지도 않았는데, 신궁에 대한 정보를 불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눈빛은 적의(敵意)에 불타고 있었다.

강도 높은 심문에도 입을 다물고 있던 그이지만, 배신을 당한 사실에 눈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법황… 아니, 혈불! 날 버린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자신은 배신한 게 아니다. 오히려을 배신당한 거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우법왕은 눈치채지 못했다.

패황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간 사실을.

*  *  *

패황. 정확히는 하후세가의 혈족만 허락된 후원(後園).

진천각의 고수들까지 물린 패황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사색을 즐기던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벌써 돌아갔나 싶었는데, 아직 있었구려.”

그의 말에 무섭게 어둠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일렁거리던 어둠은 어느새 인간의 형태를 이루었다.

“날, 진짜 죽일 생각이었소? 성주.”

“하하, 그 정도로 죽을 막주가 아니지 않소?”

인간의 형태를 이룬 어둠… 아니, 복면인은 조금 전까지 패황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신궁의 살수였다.

당시의 살벌한 전투를 생각하면 당장 도검을 휘둘러도 이상할 게 없다.

헌데 그들의 대화에선 의외로 적의(敵意)가 느껴지지 않았다.

신궁의 살수는 복면을 벗었다.

드러난 얼굴. 그는 신궁의 살수가 아니다.

“마지막 그 도격은 아찔했소.”

“하하하! 천하의 살왕(殺王)답지 않은 엄살이구려.”

그는 신궁의 살수를 연기한 것이다.

복면인의 정체는 살수지왕(殺手之王)이라 불리는 살왕이었다.

이 모든 건, 우법왕을 속이기 위함이었다.

“하아… 그보다 계획대로 되었소?”

패황은 대답 대신 고갤 끄덕였다.

우법왕의 입을 여는 건 쉽지 않았다.

신궁. 정확히는 혈뢰음사의 혈불에 대한 강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패황이 한 가지 계책을 냈다.

우법왕이 신궁에 버림받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 배신감에 분명 다물고 있는 입을 열 것이라 생각한 모험이었다.

물론 우법왕을 속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말의 낌새라고 느끼면 그대로 끝이다.

이를 위해선 경계가 강화된 패왕성에 아무도 모르게 잠입할 수 있는 살수가 필요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법왕이 의심조차 못 할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그걸 위해 패황이 직접 나섰다.

허나 패황의 손에 살수가 죽으면 곤란하다. 즉, 그의 손에 살아남을 엄청난 살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모든 게 막주께서 나서준 덕분이오. 아니, 막주가 아니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던 계획이었소.”

만약 살왕이 협조해주지 않았다면. 애초 살왕이 나타나지 못했다면 시도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천하의 패황께서 노부를 그리 높게 평가해줄 줄 몰랐소.”

살왕의 말에 패황이 피식했다.

높게 평가한 게 아니다. 정당하게 평가한 것이다.

비록 연기였다고 하지만, 전투까지 연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패황은 진심으로 싸웠다.

숨겨둔 마지막 한 수를 꺼내지 않았기에 전력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절대 사정을 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살왕은 훌륭하게 싸워주었고, 이리 멀쩡히 살아 있다.

어쩌면 그는 오왕일후의 경지를 넘어섰을지 모른다.

허나 패황은 이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패황의 표정이 바뀌었다.

“알아냈소. 신궁 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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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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