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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70화 (170/200)

170화. 궁서설묘(窮鼠囓猫)

“무량수불(無量壽佛)… 본파에 한 손 거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주님.”

소매에 구름 문양(雲文)이 수 놓인 새하얀 도의(白道衣)를 입은 노진인이 반백의 노인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반백의 노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정사(正邪)를 떠나 청해에 사는 이웃사촌 아니겠소, 장문인. 귀파도 놈들에게 빚이 있다 들었으니 이참에 함께 빚을 청산합시다.”

“그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주님.”

그들은 곤륜파의 운현진인과 패왕성의 패황이었다.

곤륜파는 구파일방이고, 패왕성은 거대사파다.

양 세력의 수장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헌데 외부의 생각과 달리 사실 양측의 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애초 곤륜파는 세외침공만 신경 쓸 뿐, 청해무림의 이권에 큰 관심이 없다.

반대로 패왕성 역시 청해무림의 일통을 위해 곤륜파를 위시한 정파를 압박하지 않았다.

사자림(獅子林), 청해검문(靑海劍門), 광룡장(狂龍莊) 등 일대(一帶) 패주들과 군소사파들의 충성만으로 청해무림의 7할 이상 장악하고 있다.

더 많은 욕심을 부려 곤륜파를 핍박하고, 나아가 구파일방과 얼굴 붉힐 정도로 패황은 안목이 낮은 인물이 아니다.

곤륜파 역시 그러한 패황의 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이러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성주님, 솔직히 본파의 현 상황에서 작은 역할도 수월치 않습니다. 숨겨진 기관장치를 찾는 일을 본파에 맡겨 주시겠습니다.”

“장문인이 그리 말씀하니, 양보하겠소.”

곤륜파를 대표하던 곤륜오선(崑崙五仙) 중 멀쩡한 사람은 운현진인 뿐이다.

다른 넷은 흉수 혼돈과 신궁의 혈법당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늙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패왕성의 독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곤륜파가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다행히 곤륜오선의 운학진인이 기문진법과 함께 기관장치에도 조예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 역시 관련 공부를 쌓아 제몫을 할 거라 자부했다.

패황은 그러한 운현진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패왕성은 기문진법이나 기관장치의 공부가 깊지 못하다.

귀찮은 부분은 곤륜파가 맡겠다니, 패왕성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운학진인과 그의 제자들이 암벽을 살피며, 숨겨진 기관장치를 수색했다.

“사부님!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제자가 찾은 거 같습니다!”

“옥암아! 정말이더냐!”

운학진인은 제자 옥암도장의 외침에 달려갔다.

곤륜의 제자들만이 아니라 패왕성 고수들 역시 몰려갔다.

운학진인은 제자가 찾아낸 부근을 살폈다.

헌데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형,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게 장문 사제…. 후… 찾아낸 건 맞으나 작동하지 않네.”

“그 말씀은…….”

운학진인의 말뜻을 눈치챈 운현진인의 눈이 커졌다.

운학진인은 고갤 끄덕였다.

“맞네. 저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기관장치를 중단시킨 듯하네.”

“이런!”

기관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단 뜻이다.

기관장치를 이용할 정도면 인력으로 열 수 없게 설계되었다는 의미였기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패황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곳이 입구는 맞소? 장문인.”

“암벽 사이에 미세한 틈이 존재하는 걸 보면 확실합니다.”

크고 거대한 암벽으로 보이지만, 바위로 교묘하게 가려진 걸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크고 깊숙하게 박힌 바위기에 인력이 아닌 기관장치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긴 어려워 보였다.

운현진인의 설명에 패황은 고갤 끄덕였다.

“권패, 그간 성취가 있다 들었는데…. 보여주겠나.”

“맡겨 주십시오, 성주님.”

패황의 부름에 초로의 사내가 반응했다.

그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자만이 아닌 정말 그간 성취가 있었단 의미였다.

이백에 처참히 깨지고 이패(二覇)의 변절로 깨달음 바가 있는지, 광룡권패는 절치부심(切齒腐心)했다.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는지, 광룡권법의 경지가 높아질 수 있었다.

광룡권패는 바위의 앞에 선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광룡…….”

그의 소매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단 증거다.

“…파천!”

광룡권패의 권격에 따라 한 마리의 광룡(光龍)이 바위를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광룡파천(狂龍破天).

광룡권법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절초 중에 절초다.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았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했다.

놀랍게도 거대한 바위가 부서지며, 그 너머로 공간이 보였다.

“헉… 헉… 헉…….”

“마무리는 내가 하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광룡권패를 대신해 누군가 칼을 뽑았다.

사자도패였다.

시작한 이상 광룡권패가 마무리 짓는 게 모양새가 좋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인데 그가 벌써 지쳐 나가떨어지면 곤란하다.

이를 알기에 광룡권패도 아쉽지만, 마무리는 양보했다.

콰쾅!!

이제 패황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사자도패답게 덜 부서진 바위를 완전히 무너트렸다.

그렇게 충분히 들어갈 입구가 생겨났다.

그때 청해검패가 검을 뽑았다.

“그럼 선봉은 내게 양보들 하시오.”

*  *  *

“젠장, 쥐새끼가 더 있던 건가! 아니면 실수가 있던 건가!”

우법왕은 입술을 깨물었다.

개방의 협력자로부터 패왕성이 움직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고만고만한 세력이라면 어찌어찌 무마시키겠지만, 패왕성은 결코 무마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다.

결국 우법왕은 기관장치를 정지시켜 입구를 막아버렸다.

허나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이미 노출된 이상, 패왕성을 막아낸다고 한들 이곳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으니…….”

발각된 이상 무림맹 등, 여타 세력까지 움직일 게 뻔하다.

결국 이곳은 포기해야 한다.

수천여 명이 반년 이상 버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음에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너무 아깝지만, 별수 없었다.

그렇기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분명 발견된 곳이 입구이지만, 비상탈출구가 없을 리가 없다.

밀폐된 이곳에서 입구가 막히면 질식하거나 아사할 수밖에 없으니.

의외로 철수 준비가 빨랐다.

“우법왕님, 준비 끝났습니다. 승선(乘船)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암동(巖洞)에 어울리지 않게 승선이 언급되었다.

실언이 아니라는 듯 십여 명 정도 오를 수 있는 놀잇배가 수십 척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암동 안에는 외부에 연결된 지하강의 물줄기가 존재했다.

말이 수십 척이지만, 승선 가능한 인원은 최대 사오백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수천여 명이 상주할 수 있는 거대한 신궁을 생각하면 몇 배나 많은 인원은 모두 버리겠단 뜻인가.

“놈들이 들이닥치면 폭발장치를 가동시킨 후 탈출하도록.”

“명!”

기관장치를 중단시킨 만큼 적이 출입할 수 없다.

허나 상대는 패왕성. 불가능을 자신해선 안 된다.

오히려 이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곳을 버린 대가로 부족하지만, 패왕성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힐 테니 마냥 아깝지만은 않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암동이 흔들렸다.

누군가 입구를 강제로 파괴하고 있다는 증거다.

승선하려던 우법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무시하게 부술 줄이야!”

이곳을 벗어난 후에 폭발장치를 가동시켜야 하거늘, 적의 움직임이 예상을 한참 웃돌고 있었다.

“오냐, 이것들 모조리 죽여 주마! 모두 중원 놈들을 조질 준비해라!”

“명!”

패왕성(霸王城). 분명 사파무림을 영도하는 세력 중 하나다.

위협적인 세력이지만, 혈뢰음사의 우법왕인 자신에게까지 위협적이지 않다.

“얼마나 움직였는지 모르지만, 본 법왕을 몰랐다는 게 너희가 죽는 이유다.”

우법왕은 화경에 오른 좌법왕과 함께 혈뢰음사를 이끌고 있다.

하늘조차 우롱할 수 있는 그의 사술(邪術)은 화경고수도 경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덕분이다.

오히려 다수를 상대할 때, 더욱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는 게 바로 사술이다.

패황이 직접 움직이지 않는 한, 패왕성 무리의 전멸은 예정된 일이다.

“신궁 놈들! 본성을 건드린 대가를 받아라!!”

“옴 마니 밧메 훔! 본승들이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탄탄한 근육을 드러낸 붉은 가사의 승려들.

혈뢰음사의 혈승(血僧)들이었다.

그 수는 고작 서른에 불과했다.

허나 족히 열 배나 되는 인원이 함께였다.

그들은 혈갈단(血蠍團)이나 살인풍(殺人風)과 같은 대막의 공포라 불리는 마적단들이다.

대막에 있어야 할 그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챙! 챙!

서걱! 푹!!

“크윽!”

“컥!”

선봉에 선 청해검패의 검이 마적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마적들의 무서움은 사막에서 말을 탔을 때나 나온다.

말은커녕 암동에서 그들의 진짜 힘을 발휘될 리 없다.

두 가지 요건을 갖추지 못한 그들은 그냥 이류에 불과하다.

“도, 도와주십시오!”

“제, 젠장!”

청해검패만 못하지만, 청해검문의 검수들은 하나 같이 뛰어났다.

패왕성은 청해검문만 있는 게 아니다.

사자림과 광룡장 고수들까지 합세하니, 마적들은 순식간에 반파되었다.

전멸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오히려 패왕성 고수들은 얼떨떨했다.

익히 들은 것과 달리 신궁이 너무 약해빠진 탓이다.

“뭐야? 별거 아니… 큭!”

“옴 마니 밧메 훔!”

혈승들이 혈뢰음사의 성명절학인 혈수인(血手印)를 펼치며 반격하기 시작했다.

고작 서른 명에 불과하지만, 패왕성 고수들은 일순간 압도했다.

허나 어디까지나 패왕성의 일개 고수들에 한해서였다.

“세외의 땡중 놈들이 어디서 나대는 게냐!”

“싱거웠는데, 잘 됐군.”

초절정지경에 오른 광룡권패와 청해검패를 위협하는 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혈승들을 당장이라고 도륙할 기세였다.

헌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음? 뭐야!”

“젠장!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냐!”

누군가 제 몸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패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 틈을 노려 혈승들이 움직였다.

“옴 마니 밧메 훔!”

검붉은 핏빛의 기운이 이패에게 쇄도했다.

혈수인(血手印), 뇌음혈광장(雷音血光掌) 등 혈뢰음사의 마학들이었다.

평소의 그들이라면 얼마든지 피해거나 막아낼 수 있을 테지만, 하필 몸을 움직여 반응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쾅!!

“컥!!”

“추잡한 것들, 감히 본성을 상대로 하찮은 수작질이더냐!!”

혈뢰음사의 마학을 펼친 혈승들은 나가떨어졌다.

이패를 대신 혈승들의 마학을 무력화시킨 자는 바로 패황이었다.

“설마 패황? 엉덩이 무거운 중원 놈이 웬일이지!”

“네놈이 이들의 수괴더냐! 신궁의 주인이라 생각하기에 부족한데?”

패황을 알아본 자는 우법왕이었다.

헌데 그런 그를 본 패황의 평은 박했다.

정확히는 중원을 농락한 신궁의 주인이라 생각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이다

“흘흘흘, 어찌 엉덩이 무거운 놈이 움직였나 했더니, 이곳이 신궁인 줄 알았나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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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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