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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68화 (168/200)

168화. 쥐덫 (2)

후욱!

언제 휘둘렀는지, 복면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허나 검 끝에 무언가 베인 느낌이 없었다.

“흘흘흘… 정체를 숨기시겠다?”

복면인의 검을 피한 붉은 가사를 입은 노승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건 상대가 단순히 복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펼친 검격 때문이다.

누구나 버릇이 있듯, 검법마다 고유의 특성이 존재한다. 그러한 탓이 검흔(劍痕)만으로 어떤 검법에 의해 만들어진 흔적인지 유추하는 게 가능하다.

수련을 쌓을수록 그러한 흔적이 몸에 자연스럽게 베어버린다.

그 때문에 고수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독문검법이 아닌, 기본적인 검격만 펼쳐도 자신도 모르게 흔적을 남기게 된다.

물론 그건 쉬이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를 위해선 그만한 식견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헌데 복면인은 그걸 완벽하게 통제했는지, 특유의 흔적이 엿보이지 않았다.

이는 무공을 완숙하게 익힘을 떠나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난 검호(劍豪)라도 어려운 일이다.

“검왕(劍王)이나 검제(劍帝)도 어려운 일이지만…….”

무림십왕의 검왕과 검제조차 어렵다 말했다.

누가 감히 화경고수를 함부로 평할 수 있겠는가.

허나 화경고수도 인간이기에 의식만이 아니라 무의식까지 완벽하게 통제하긴 어렵다.

무의식의 영역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게 어려운 것에 비해 무위가 높아지는 건 아니기에 화경고수들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완벽에 대한 결벽(潔癖)을 가진 자라면 말이 다르지.”

무의식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것은 웬만큼 성격으로는 어렵다.

완벽에 대한 집착을 가진 자나 가능하다.

그런 부류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살수(殺手)고 또 다른 부류는 군사(軍師)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치밀한 계획을 통해 목표를 암살해야 하는 살수는 무의식조차 통제할 수 있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완벽한 계획을 통해 수많은 목숨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하는 군사 역시 그러하다.

“안 그런가, 무림맹 전(前) 총군사. 신산(神算).”

“……!!”

복면 너머로 눈이 커졌다.

노승은 복면인의 정체를 죽은 제갈중경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설마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역시, 속이는 건 어려웠나.”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어진 복면인은 스스로 복면을 벗었다.

벗겨진 복면 속에서 정말 제걸중경의 얼굴이 나왔다.

백면독주(百面毒蛛)의 손을 빌려서 죽은 것으로 위장했던 그가.

피붙이조차 속였는데, 정작 신궁의 눈은 속이지 못했다.

“아무리 똑똑한 척해도 법황(法皇)께선 이미 알고 계셨지.”

“신궁의 군사 혈불(血佛)을 말하는 겐가.”

베일에 싸인 신궁이지만, 일말의 정보는 알려졌다.

그중에는 신궁의 군사 혈불이 혈뢰음사 출신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렇기에 법황이 혈불이라는 건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동시에 눈앞의 붉은 가사를 입은 노승 역시 혈뢰음사에서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이곳에 네 죽을 자리라는 것 역시 알고 있겠구나.”

*  *  *

만수문에 한 무리가 들이닥쳤다.

낯선 이들의 등장에 만수문의 식솔들은 움찔했다.

불청객에 의해 분위기가 삭막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러한 경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낯선 이들 사이 낯익은 자들을 발견한 덕분이다.

“두 분 형님들이 떠나신 건 좀 아쉽네요.”

“그러게 말이야. 송안도 송안이지만, 엽사 그 친구가 떠날 줄은 몰랐어.”

그들의 정체는 바로 천문산장의 식구들이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나 고수들답게 먼 길이었음에도 체력적으로 멀쩡해 보였다.

그때 이젠 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불뚝이 사내, 숙수(熟手)가 말을 툭 뱉었다.

“주방은 어디냐.”

“앗! 숙수 형님, 저쪽…….”

그는 변함없이 제 말만 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참으로 한결같았다.

그러한 모습을 보인 건 숙수만이 아니었다.

여인의 잘록한 허리보다 두꺼운 팔뚝을 가진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다를 바가 없었다.

“망치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대장간은 저쪽에 있나 보군. 노부도 이만…….”

“하아… 교수(巧手) 어른도 여전하시네.”

외골수적인 그들의 모습에 만수문의 식솔들은 당황했다.

그런 반응에 함께 온 어옹과 산인 역시 머쓱한지 뺨을 긁적였다.

“물고기나 낚아옴세.”

“난 버섯이랑 약초를…….”

어옹은 계곡 쪽으로, 산인은 산으로 향했다.

사인방의 행동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흡사 원래부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만수문의 식솔들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했다.

“하, 하하… 자유로운 어른들이시네요.”

“그렇긴 하지요. 처음에는 좀 불편하실 수 있지만,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은 분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백의 말에 식솔들은 고갤 끄덕였다.

설사 까다로운 자들이라고 해도 그들로서는 감수해야만 했다.

문주와 아주 가까운 이들이니까.

다행히 괴짜들이지만, 나쁜 사람들은 또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들 나름의 신고식을 준비했다.

“우와~!!”

만수문의 제자들은 각종 요리를 보며 환호했다.

살행을 위해 요리를 배운 사 숙수(熟手)도 솜씨가 있지만, 오랜 시간 천문산장의 주방을 맡은 숙수는 그보다 뛰어났다.

게다가 중원식만이 아니라 의외로 소수민족의 요리로 할 줄 알았다.

요리에 사용된 어육과 산의 식자재는 어옹과 산인이 구해왔다.

“노부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어머! 이 귀한 걸, 정말 저희 주시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어르신!”

교수는 은비녀를 만들어 여인네들에게 나눠주었다.

별명처럼 솜씨 좋은 그답게 팔아도 큰돈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은비녀였다.

그러니 여인네들이 좋아하는 게 당연했다.

“자네들 것도 있네.”

“아니, 저희 것도 있습니까!”

사내들에게 단검 한 자루씩 만들어 주었다.

은비녀처럼 외형적 아름다움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균형이 잘 잡힌 게 촌부들이 갖기에는 과분했다.

“이건 제가 담근 술입니다! 한잔 받으시지요, 어르신!”

“저희 집 술이 더 맛 좋습니다!”

좋은 선물에 화답하듯 식솔들은 각자 담근 술을 꺼내기 시작했다.

약초를 놓은 약주, 곡식을 발효시킨 곡주 등 의외로 다양한 술들이 모였다.

식솔들과 사인방이 벽을 허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에 반해 살막의 살수들은 천문산장의 사인방과 벽을 허물지 못했다.

사인방의 정체를 눈치챈 탓이다.

‘파천도(破天刀) 왕인이라니…….’

정파무림을 대표하는 두 개의 칼(刀)이 있으니, 하나는 오대세가의 하북팽가고 다른 하나는 천도문(天刀門)이다. 정확히는 이었다.

정파도종(正派刀宗)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도법을 구사하던 천도문.

허나 문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불행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천도문은 북도문과 남도문으로 쪼개졌고, 서로 자신이 정통이라 주장하며 싸웠다.

둘로 나눠졌음에도 북도문과 남도문은 대문파로서 위용을 발휘했다.

허나 수십 년이 지난 후 무림에서 사라졌다.

천도(天刀)의 진정한 후계자에 의해.

그는 칼을 부수고(破天刀) 무림을 떠났다.

‘장강노옹(長江老翁)에 천위공(千僞工)까지…. 대체 이런 자들이 다 어디서 나타난 거야?’

숙수만이 아니다. 어옹과 교수 역시 전적이 매우 화려한 이들이다.

다만 무림 활동이 없던 산인만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게다가 이 자리에 없지만, 고검문(古劍門)의 절세검객 검치(劍痴) 역시 만수문의 식구 아닌가.

그야말로 호굴이었다.

‘천살공께선 이걸 알고 우릴 이리 보내신 건가…….’

*  *  *

“쿨럭!”

거친 기침과 함께 제갈중경의 입에서 피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화경에 가장 근접한 고수를 꼽으면 항상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그이지만, 우법왕을 상대로는 일방적으로 밀렸다. 아니, 압도적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우법왕의 사술은 화경고수와 견줄 정도이니 제갈중경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게 이상한 게 아니다.

허나 우법왕의 평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기대 이상이야, 이만큼 버텨낼 줄 몰랐는데 말이야.”

“오만…하구나.”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 제갈중경을 검을 들었다.

하지만 검끝이 흔들리는 게, 그의 체력이 바닥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걸 알기 때문인지 우법왕은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오만하다? 그건 오히려 본 법왕이 할 말이니라. 너희 중원의 화초 따위가 천하의 중심이니 하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으니. 헌데 똑똑한 척하는 네놈도 다를 바가 없구나.”

“…….”

우법왕은 제갈중경만이 아니라 중원 정체를 능멸하고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반박할 힘도 없는지 제갈중경은 그의 비난에도 입을 다물었다.

허나 그는 비난을 참는 수모를 겪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우법왕은 손을 들었다.

“깨닫게 해주마, 위대한 본사(本寺)의 가르…….”

“월로…….”

우법왕은 제갈중경이 지쳤기에 방심하고 있었다.

그 순간을 노린 제갈중경의 최후의 일격.

월로검법(越路劍法).

제갈세가의 여타 검법과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화려함이나 위력을 배제하고, 최단 거리로 검이 목표에 닿게 하기 위한 검법으로.

쾌검 아닌 쾌검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육(皮肉)을 상하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제갈중경의 검끝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만큼은 우법왕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챙! 꽈직!

후우욱~ 후우욱~ 푹!

검파(劍把)는 분명 제갈중경이 쥐고 있는데, 뾰족한 검신이 바닥에 꽂혔다.

“불괴(不壞)의 술(術)을 걸어두지 않았으면 위험할 뻔했어.”

“……!!”

제갈중경의 검은 우법왕을 베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검이 우법왕의 몸에 닿는 순간 부러지고 말았다.

평범한 외형과 달리 명검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음에도.

사술의 대가답게 우법왕은 자신의 육신에 ‘불괴의 술’을 걸어둔 탓이다.

과거 혈법사가 펼쳤던 ‘불사(不死)의 술(術)’만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위 사술이며 호신(護身)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훨씬 효율적이다.

내공 소모에서 차이가 크니 말이다.

마지막 기회마저 실패한 제갈중경은 더 이상 희망을 꿈꿀 수 없었는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우법왕은 주저앉은 그를 보며 조소 지었다.

“흘흘흘, 이제야 포기하다니. 똑똑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군.”

“…….”

조소에도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더욱 절망하긴 기대했던 우법왕으로서는 흥미가 떨어졌다.

제갈중경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면.

“재미없군, 이제 그만…….”

“…쯤 벗어났겠지.”

처음에는 그의 중얼거림이 뭘 의미하는지 몰라 미간을 찌푸렸던 우법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악귀와 같은 얼굴로 제갈중경에게 삿대질을 했다.

“네놈! 혼자가 아니었구나!!”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어.”

그라고 우법왕이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 건, 우법왕이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이곳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동료가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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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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