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쥐덫 (1)
검치를 만나기 위해 만수문에 왔던 산인과 어옹은 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급히 천문산장으로 돌아왔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성품으로 천문산장 제일이라는 산인(山人)이 버럭 화를 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탓하는 자는 없었다.
다들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태백진인 대신 총관의 업무를 임시나마 맡고 있던 송안(松安)은 능글맞은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상하지 않는가, 검교(劍敎) 그 자식 때문이겠지.”
“그렇다고 단교(斷交)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산인과 어옹이 헐레벌떡 복귀한 건, 단교한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단교의 주체는 바로 검모궁이었다.
금남(禁男)의 검모궁이 문호(門戶)를 살짝 열어 사내를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궁내(宮內)에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에 천문산장을 세웠다.
물론 구성원 역시 신중을 기해 검모궁과 직간접적으로 연이 있는 자들만 받아들였다.
헌데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천문산장과 인연을 끊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더 이상 산장을 신뢰할 수 없다니, 어떡하겠는가.”
“신뢰하지 못한다니! 검교 하나 때문에 우리까지 못 믿는단 말인가!”
산인은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송안은 냉정하게 이 상황을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이겠지. 배신자 한 명. 진짜 한 명뿐이었다고 보장할 수 없으니까.”
“송안! 자네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산인은 지금 송안은 몇 번이고 죽였을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이 송안의 잘못이 아님에도 말이다.
“십이 년 전, 그놈의 뒷조사를 한 게 날세. 이중삼중으로 조사했는데 아무 이상도 없었네. 헌데… 황실의 간세라니…. 우리라고 다를 거라 어찌 자신하는가! 궁(宮)을 설득한다고 해도 한번 금이간 신뢰는 회복할 수 없네!”
“그, 그렇다고… 단교라니…. 이를 어찌 받아들이란… 말인가…….”
송안의 발언에 설득되었으나 이를 인정하기 싫은 산인은 억지에 가까운 말을 꺼냈다.
좌중 모두 같은 입장이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선자(仙子)들 간의 의견이 갈렸다고 하네. 우리 때문에 궁이 분열될 수 있네. 그걸 원하는가.”
“…….”
검모궁을 위한 천문산장이다.
자신들이 분란의 원인이 되어선 아니 된다.
송안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단교는 사실상 결정된 것이니, 앞으로 우리가 어찌할 건지 결정해야 하네.”
“어찌…하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
산인만이 아니라 모두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느꼈다.
예상대로 송안은 폭탄을 던졌다.
“산장을 유지할 목적이 사라졌단 말일세.”
“그걸 말이라고!”
“냉정히 생각하게.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궁(宮)은 신경 쓰일 걸세.”
“…….”
단교하게 되면 더 이상 천문산장은 검모궁의 우군이 아니다.
적이라 할 수 없지만, 검모궁의 입장에선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송안은 산인에게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모두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산장의 해체를 건의합니다.”
“……!!”
우려하는 일이 벌어졌다.
신음을 흘리는 자, 조용히 눈을 감은 자, 얼굴이 시뻘게진 자.
반응은 달라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다들 감정을 추스르길 기다렸다 송안이 열었다.
“막내 녀석이 세운 문파에 고검께서 계시다 들었는데, 그리로 가는 게 어떻습니까.”
* * *
“엽사(獵師), 정말 안 간 건가.”
논의 끝에 천문산장의 일원들은 이백의 만수문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이백이 승낙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전원은 아니었다.
이백과 가장 친한 엽사가 의외로 만수문에 가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송안, 자네만 보낼 수 없네.”
“……!”
엽사의 말에 송안의 눈이 커졌다.
만수문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건 엽사만이 아니다. 오히려 먼저 그리 결정한 이가 있으니 바로 송안이었다.
그렇기에 엽사는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뒤를 파보려는 거 아닌가, 기찰국(譏察局).”
“…눈치챘는가. 위험하네.”
천문산장의 해체 후 만수문으로 가자고 제안을 한 송안이 정작 본인은 홀로 떠나기로 결정한 건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관무불가침(官武不可侵) 조약에 따라 황실은 무림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물론 무림인이 관리를 해하는 등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한데 황실에서 기찰국이라는 무림감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무림에 알려지면 발칵 뒤집힐 이야기다.
황실 입장에선 필요하지만, 그만큼 위험을 안고 진행하는 일이다.
당연히 발각되어도 황실은 부정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비공식 비밀기관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만큼 철저하게 움직이며, 증거를 찾아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하겠단 것 아닌가.”
“…….”
무림을 감시하기 위한 기찰국이다.
산하에 얼마나 많은 무림고수가 속해있고, 방파가 있을지 모른다.
명망 있는 정파문파였던 천의문조차 기찰국 소속이었으니 말이다.
그러한 사실까진 모르나 그들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결정을 내린 건, 단순히 충동적인 감정에 의한 결정이 아니다.
검교가 자결로 명령을 거부하게 만든 기찰국이다.
비록 검모궁이 단교를 선언했다지만, 기찰국의 위협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함께 하세. 자네 발목을 잡지는 않을 걸세.”
“…고맙네.”
선대의 연으로 천문산장의 일원이 된 산인과 같은 부류도 있지만, 검모궁에 큰 빚을 진 자들도 있다.
두 사람은 후자였다.
그렇기에 목숨을 걸어보기로 했다.
* * *
“단교라… 이러한 일이 벌어질 줄이야.”
이백은 천문산장에서 보내온 서신을 받았다.
전서구를 통한 서신이었기에 비록 짧은 내용이었으나 대략적인 건 알 수 있었다.
“검치 어른이 돌아오시면 실망이 크시겠군.”
부상이 심각한 검치는 아직 귀주로 넘어오지 못하고, 광서의 모처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런 검치의 손녀 교정정이 검모궁의 팔검향이다.
천문산장으로 돌아가지 못하지만, 그녀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었다.
헌데 천문산장 내에 간세가 있었고, 그로 인해 검모궁과 단교되었단 사실을 알게 되면 허탈감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더 죄송할 따름이었다.
“신궁으로 모자라서 이젠 황실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무란에 만수문을 세웠다 해서 이백이 신궁을 잊은 게 아니다.
철혈방과 흑림의 도움을 받아 귀주 내에 활동 중인 신궁의 간세를 수색하고 있다.
아직 신궁의 간세를 찾아내진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성과가 있었다.
귀양에서 세 손가락에 꼽혔던 취접루의 간판 기녀 취접이 혈궁의 간세라는 게 밝혀졌으니까.
덕분에 귀주이세(貴州二勢)는 간세 수색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헌데 이젠 황실의 비밀기관이라는 기찰국까지 신경 써야 할 판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신궁과 황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 음?”
그 순간 이백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세력이 얼마나 클지 모를 신궁을 상대하는 것으로 모자라, 황실까지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신궁과 황실이 싸우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불씨를 던지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 거 같았다.
다만, 자신의 계획을 시행하려면 문제가 있었다.
“자칫 검치 어른이 위험해질 수 있는데…….”
이백의 계획에는 검치가 연루되어 있다.
그게 걸렸다.
십 년 전, 검치는 혈궁과 함께 천의문을 멸문시켰다.
천의문은 황실의 비밀기관인 기찰국 산하의 무림방파다.
그 일의 기폭제가 된 건 바로 괴협의 장례식이고, 월야당은 신궁의 끄나풀이다.
이 모든 게 우연이다?
조금만 다듬는다면 신궁이 황실을 공격한 걸로 만들 수 있다.
이게 사실이든 거짓이든 의심하게 만든다면 그걸로 족한다.
다만 검치의 존재를 숨길 수 없다.
설사 혈궁만 부각한다고 한들 검치의 존재를 숨질 수 없다.
그럼 입박음을 위해 신궁이 움직이거나 원한을 갚기 위해 기찰국이 움직일 수 있다.
전자든 후자든 검치가 위험해진다.
“하… 다른 방법이 없으려나.”
결국 이 계획은 최후의 최후까지 묻어두어야 한다.
신궁의 소행이 맞다면 그래야만 했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만 찾아도 길이 보일지 모른다.
“형님들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겠네.”
만수문에서 한 마리의 새가 하늘을 훨훨 날아갔다.
* * *
“드디어…….”
가로막힌 암벽을 바라보며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자가 있었다.
검은 복면을 쓴 것이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암벽을 다듬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
그때였다.
철컥! 드르륵~!
금속음과 함께 암벽에 기묘한 틈이 생겨났다.
사람이 오갈 수 있는 충분한 크기였다.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사람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진 통로란 걸 알 수 있었다.
복면인은 주저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긴 하지만 더듬거려야 할 정도로 어둡지 않았다.
‘야명주(夜明珠)!’
스스로 은은한 빛을 내는 구술, 야명주가 천장에 간간이 박혀 있었다.
하나가 족히 만 냥을 할 정도로 엄청난 보주(寶珠).
그런 야명주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웬만한 거부도 할 수 없는 기행이다.
반대로 말하면 엄청난 재력을 뒷받침된다는 뜻이고, 동시에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통로의 끝이 보이는 듯싶었다.
“……!!”
통로의 끝에 도달한 복면인의 눈이 커졌다.
거대한 암동(巖洞)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궁궐(宮闕)이 존재했다.
그 규모가 상당히 족히 수천은 지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복면인은 주먹을 꽉 쥐었다.
‘찾았다! 드디어 신궁을…….’
신궁(神宮).
궁주가 누구이며, 산하에 어떤 괴물들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집단이다.
하나 확실한 건, 그들이 중원을 노리고 있으며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걸 증명하듯 수많은 무림세가와 무림방파들 속에 그들의 간세들이 활약하고 있었고, 그들을 하나둘씩 찾아낸 인물이 바로 복면인이다.
그런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낸 것이다.
복면인은 주체할 수 없는 환열에 몸을 잘게 떨었다.
‘이대로 돌아가긴…….’
복면인의 마음속에 아쉬움이 생겼다. 아니, 욕심일지 모른다.
오랜 노력 끝에 맺어진 결실이니, 신궁의 실체를 조금 더 파헤쳐야 한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할 수는 없지.’
신궁의 본거지만 찾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욕심을 부리다가 흔적이라도 남기는 날에는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럴 바에는 안전하게 무림맹 고수들을 이끌고 급습하는 게 낫다.
그리 결정한 복면인은 다시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려 했다.
“흘흘흘… 제법 큰 쥐새끼로구나.”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