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개파식(開派式) (2)
“어옹(漁翁) 어른, 산인(山人) 형님. 오랜만이군요. 여긴 어찌 아시고…….”
이백은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들은 천문산장의 어옹과 산인이었다.
“막내, 잘 있었는가. 그리 떠나 많이 섭섭했네.”
“죄송합니다, 그땐…….”
오 년이라는 시간은 정이 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가족이 없던 이백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 역시 이백을 나이 많이 어린 막내 혹은 손자라 생각해주었으니까.
헌데 그런 이백이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헤어지게 되었으니, 그들이 섭섭해하는 게 당연했다.
그걸 알기에 이백은 차마 고갤 들지 못했다.
그런 그의 순진한 반응에 산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뭘 그렇게 미안해하나. 막내야.”
“그보다… 고검 형님은 어디 계시는가?”
그들의 깜짝 방문은 사실 검치 덕분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산장을 떠난 지 십 년이 지났지만, 검치에게도 천문산장은 특별한 장소였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이곳 만수문에 대해 알렸고, 두 사람 역시 반가운 마음에 이 먼 무란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 검치 어른이 계신 건 또 어찌 아시고…….”
“형님께 연락받았으니 알지.”
그제야 그들이 이곳을 알고 찾아온 이율 알 수 있었다.
어옹은 두리번거리며 검치(고검)를 찾았다.
그에게 검치는 십 년 전까지 함께 낚시하고 술 마시던 형님이었다.
그런 그의 연락이 무척이나 반가워 한걸음에 찾아온 것이다.
“검치 어른께선…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어? 안 계셔? 이곳에 계실 거라 했는데?”
검치가 없다는 말에 어옹은 눈에 보일 정도로 실망했다.
“알아보실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 보신 후에 오신다 하시긴 하셨습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그럼 오랜만에 형님을 뵐 수 있겠구나.”
돌아온다는 말에 그제야 어옹은 얼굴이 펴졌다.
검치는 무란은커녕 귀주성에도 없었다.
월야당(月夜堂)으로 갔다.
개방이나 하오문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집단이다.
특히 전대 당주 괴협(怪俠)은 검치의 오랜 악우(惡友)였다.
헌데 이백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믿기 어려우셨겠지, 월야당에 그러한 이면이 있다는 것을…….’
무림에 암약하고 있는 신궁(神宮)이라는 세력이 존재하고, 월야당은 그들과 연관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백은 과거, 혈법당주의 입을 통해 신궁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혈법당주의 지위가 낮다 할 수 없지만, 신궁의 중요 정보까지 닿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입을 통해 알게 된 극히 일부의 정보 중에는 월야당이 있었다.
검치는 그러한 사실을 쉬이 믿을 수 없는지, 직접 찾아갔다.
그의 부상이 완벽하게 나은 상황은 아니나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보다 다른 분들은 잘 계시지요?”
“그게…….”
이백의 물음에 두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천문산장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겁니까?”
“너도 알지? 총관께서 종남 출신이신 거?”
산인의 말에 이백은 고갤 끄덕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곤륜에서 만난 벽하도장이 바로 종남파 출신이었고, 그와 있었던 일을 천문산장의 총관에게 전하지 않았던가.
“예, 알고 있습니다.”
“총관께서 종남으로 돌아가셨네. 남은 여생은 종남에 진 빚을 갚으며 사신다고 하시네.”
벽하도장의 반응을 생각했을 때, 그가 종남으로 돌아갈 걸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인지 이백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걸 어옹이 물었다.
“뭔가 알고 있구나.”
“예, 곤륜에서…….”
이백은 곤륜에서 만난 벽하도장의 일을 설명하고, 그걸 총관에게 연락했음을 알려주었다.
그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살짝 놀라더니, 고갤 끄덕였다.
“허…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았겠지만…….”
총관(태백진인)은 천문산장을 떠나며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다들 사연이 있던 만큼 깊게 묻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게 그들만의 불문율이었다.
그렇기에 섭섭하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숙수 형님이나 교수 어른은 잘 계시지요? 못 뵌 지 꽤 된 거 같네요.”
“두 분은 잘 계시지.”
“두 분‘은’이라시면…….”
산인의 대답에 이백은 느낌이 좋지 못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
“…죽었다.”
“예? 죽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죽었다는 산인의 말에 이백은 당황했다.
두 사람의 반응을 봐선 농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산인은 이백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검교(劍敎), 그 새끼가 죽었다.”
“검교 형님, 죽더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백은 크게 놀랐다.
천문산장의 식구 중 가장 친해지지 못한 검교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산장의 식구다.
그런 그가 죽었다고 하니 놀라는 게 당연하다.
헌데 두 사람의 반응은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 새끼가 왕부(王府) 출신인 거 알지?”
“얼핏 왕부의 무사부(武師父)이셨다 들었던 거 같습니다.”
천문산장의 식구들은 하나 같이 사연 덩어리들이다.
그 사연이 은연중에 밝혀진 자도 있지만, 밝히지 않은 자도 있다.
그럼에도 굳이 파헤치려 하지 않았다.
그게 그들만의 묵계였다.
그렇기에 이백도 검교의 출신은 대충 알긴 했지만, 어느 왕부에서 무사부를 한 것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넉살만 본다면 송안이 천문산장 제일이지만, 성격 좋기로는 산인이 제일이었다.
그런 그가 검교를 언급하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새끼란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으나 두 번이나 반복되니, 뭔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사부는 무슨 금의위 출신이라더라. 그리고 기찰국? 황실 비밀기관에 속해 있다나 뭐라나.”
어옹의 첨언에 이백은 깜짝 놀랐다.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두 사람은 고갤 끄덕였다.
“많이 놀랐나 보구나. 우리도 놈이 황실 비밀기관 소속이라는 사실에 놀랐단다.”
“그게… 하아…. 설마 기찰국 소속일 줄은…….”
이백의 중얼거림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러한 기관이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는데, 이백이 기찰국에 대해 알고 있으니 몰라는 게 당연했다.
“음? 네가 기찰국을 아느냐? 우리도 그놈 때문에 최근에 알게 되었거늘, 어찌 아느냐?”
“저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검치 어른과 관련된 일이라…….”
이백은 이를 말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형님과?”
“고검 어른이 기찰국과 관련이 있으시단 말이더냐!”
두 사람의 반응에 이백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검치의 사적인 영역을 제가 밝힐 수 없었던 탓이다.
“검치 어른께서 직접 들으셨으면 합니다. 그분의 사적인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제 입으로 밝히는 건 예가 아닌 거 같습니다.”
“으음… 그 말도 맞구나. 알겠다. 궁금하나, 형님께 들으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백의 반응을 봐선 최소한 검치가 기찰국 출신이란 건 아닌 듯싶었다.
그렇기에 궁금해도 참기로 했다.
하지만 느낌이 좋지 못했는지, 어옹이 중얼거렸다.
“형님께서 기찰국과 사연이 있으신 거 같은데… 검교 놈도 기찰국 출신이라니…. 과연 우연인가?”
“그러고 보니…….”
기찰국과 악연을 맺은 검치. 그리고 기찰국 출신인 검교.
그들이 천문산장이라는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게 왠지 무관한 거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이 없었다.
“검교 형님이 기찰국 출신인 건 알겠는데, 돌아가신 건 어찌 된 겁니까?”
“흐음…….”
이백의 물음에 산인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의 반응만 봐서도 산인의 불편한 심기를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심기가 불편한 건 이백 때문이 아니었다.
“자결했네.”
“예? 검교 형님께서 자결이라니… 대체 왜…….”
그가 기찰국 출신이라더니, 이젠 자결이라니.
이백으로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게…….”
“문주님,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산인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구 총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평범한 총관이 아니다.
살막의 구천살쯤 되는 이가 이리 다급하게 물으니, 가벼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구 총관 무슨 일이오?”
“손님이, 오셨습니다. 사천…….”
* * *
“허… 아니길 바랐는데, 정말이란 말인가…….”
폐허가 된 장원을 허탈하게 바라는 자가 있었다.
여파현을 떠나 어디론가 향했던 검치였다.
폐허가 되기 전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장원이었다. 아니, 그렇게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부호나 고관 등만 출입할 수 있는 비밀 기루였다.
헌데 그조차 위장이었고, 실제로 월야당(月夜堂)이었다.
정보집단답게 월야당은 기루(妓樓)나 객잔(客棧), 고서점(古書店) 아니면 다루(茶樓) 등 사람들의 출입이 잦으면서도 오히려 의심할 수 없는 장소를 거처로 삼았다.
이곳은 근래까지 월야당이 사용된 장소다.
“정말 그러한 자들이 존재한단 말인가.”
악연으로 시작된 악우지만, 괴협의 심지는 믿을 만했다.
그렇기에 검치는 그와 연을 맺은 것이다.
헌데 그조차 의심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한 사실이 검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결코, 용서치 않으니라!”
농락을 당한 거라면 그저 웃고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무너진 월야당을 보고 돌아가려 할 때, 검치의 기감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 미세해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누군가… 있구나.’
검치를 감시한다기보다는 무너진 월야당을 감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우는 두 가지였다.
월야당의 배후에 있는 자거나 반대로 월야당을 무너트린 자.
하지만 아쉽게도 두 경우 모두 아니었다.
“이게 누구십니까, 검치 어른 아니십니까.”
“혈뢰, 검군(血雷劍君)…….”
초로의 사내가 검치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다.
혈궁 사대혈군이자 혈제의 제자.
하필 월야당이 광서성에 있었다. 비록 광서의 끝자락이라도.
“검치 어른께서 귀주의 일을 잘 해결해주시길 기대했는데, 그 일로 제가 좀 곤란해졌습니다.”
“…….”
철혈방의 일을 방해한 자(이백)를 제거하러 보낸 게 바로 그라는 걸 깨달았다.
무위는 혼세혈군과 잔악혈군의 밑이라 알려졌지만, 무림의 일은 속단해서 안 되는 법.
게다가 상대는 무려 혈제의 제자 아니던가.
평소의 검치라면 몰라도 철혈방의 철백을 상대로 내상을 입은 지금, 자신할 수 없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자는 혈뢰검군 한 명이 아니다.
“혈뢰검군, 적이오?”
“아, 검귀(劍鬼) 님.”
보통 검집을 왼손으로 쥔다. 검을 오른손으로 뽑기 위함이다.
헌데 이순은 넘어 보이는 되어 보이는 노검객은 반대로 오른손으로 검집을 쥐고 있었다.
무언가를 깨달은 검치의 눈이 커졌다.
“좌검(左劍)에 검귀라면… 벽라검귀(碧螺劍鬼)!”
“그만 알아보면 섭섭하군.”
대륙에서 떨어져 있는 섬, 해남도.
상당히 큰 섬인 만큼 제법 많은 이들이 살고 있고, 해남도 역시 문파가 존재한다.
해남파(海南派).
중원의 무학과는 그 궤가 다르나 그 위력은 구파일방도 놀랄 정도라고 알려진 문파다.
사실 해남파는 단일문파가 아니다.
해남도 열세 문파의 연합이 바로 해남파다.
그런 해남파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문파가 바로 벽라도(碧螺島).
벽라도의 도주가 바로 벽라검귀다.
벽라검귀만 해도 당혹스러운데, 섭섭하다 칭한 자 역시 만만치 않았다.
“흐음… 지옥사신(地獄死神)까지…….”
지옥교(地獄橋)를 건너 청부를 한다면 지옥의 사자들이 목숨을 거둬간다는 살문이다.
살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유일한 살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지옥교가 사도련에 속한 탓이다.
“귀주에 가기 전에 몸부터 푸는 게 어떻겠습니까.”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