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개파식(開派式) (1)
“하하하! 다들 많이 먹게나!”
상에는 술과 고기 등 음식이 가득했다.
족히 백(百)은 훌쩍 넘은 이들이 즐겁게 먹고 마시고 있었다.
“죽상이 다 되어서 가더니, 아주 살판이… 흡흡…….”
“내, 내가 언제 죽상이었다고 그래!”
불혹도 안 되어 보이는 사내는 당황해하며, 비슷한 연배인 또 다른 사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입이 막힌 사내는 손을 강제로 떼며 화를 냈다.
“헉! 헉! 헉! 이 사람, 날 죽일 셈인가!”
“쓰,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어!”
“훗! 문주님! 이 친구가 글쎄… 자, 장난일세. 장난.”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쫓겨나면 친구고 뭐고 없어!”
잔치가 벌어졌다.
만수문이 정식으로 개파(開派)되며, 이를 축하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백여 명의 절반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여파현의 촌장들과 그 수행원들이고, 나머지 반은 만수문의 식솔들이었다.
만수문의 식솔들이라고 하면 새롭게 편입된 제자들의 가족들을 말한다.
처음에는 촌장들의 권유 때문에 마지못해 무란의 만수문에 오게 되었다.
나고 자란 여파현을 떠나 외딴곳에 새롭게 정착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만수문에 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잘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허참, 이곳이 그렇게 좋나?”
“좋고말고! 문주께서 신기(神技)를 부리셔서 농지를 만드시는데… 캬! 그걸 자네들이 봤어야 했네!”
만수통령술(萬獸統領術)로 수많은 짐승을 부리는 모습은 그들에게 신기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모습은 보니, 더욱더 이백에게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맞습니다. 뭔 새들이 하늘에서 씨앗을 뿌리는데… 어휴… 참말로 대단했지요.”
“게다가 훈련의 일환이라고 본문의 제자들이 알아서 나무도 해오고 물을 길어 오는데, 솔직히 죄송스럽다니까.”
여기저기서 자랑질을 해대니, 촌장들의 수행하기 위해 동행했던 기존 마을 사람들은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초들의 삶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였다.
돌아가면 또 빡빡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헌데 함께 고생하던 이들이 이곳에 와 얼굴이 핀 걸 보니, 그때 왜 자진하지 않았을까 후회만 되었다.
그때 밖이 시끌시끌해졌다.
“어? 무슨 일이지?”
“그러게 말이야.”
만수문은 인적이 드문 무란에 존재하기에 밖이 시끄러울 일이 없다.
그렇기에 의아했다.
“음? 구 총관님이 가시는데?”
“정말 뭔 일이 있는 거 아니야?”
그들이 입구 쪽으로 향하고 있는 초로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파현의 소수민족이 아닌 중원인이었다.
만수문에는 이백 이외에도 중원인이 몇몇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구 총관이라고 불리는 초로의 사내였다.
“만수문의 구 총관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아, 총관이셨구려. 우린 호남, 천문산장(天門山莊)에서 왔소.”
* * *
열흘 전이었다.
인적이 드문 무란을 지나는 자가 있었다.
평범한 복장과 평범한 인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러한 평범한 초로의 사내였다.
‘별나군, 이런 곳을 택하다니…….’
속세를 떠나 수양을 쌓으려는 자가 아니고서야 이러한 곳에 지낼 생각을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곳이 바로 무란(茂蘭)이었다.
흠칫!
초로의 사내는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두 개의 보석을 보고 놀랐다.
그건 보석이 아닌 짐승의 눈동자였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아니, 짐승이 나도 모르게 지척까지 다가왔다고?’
초로의 사내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당혹스러웠다.
그는 짐승이 영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본능적으로 탐심이 일었다.
허나 짐승은 곧 사라졌다.
초로의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짐승의 뒤를 쫓았다.
‘이게… 가능해?’
쫓아도 쫓아도 짐승과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가 더 벌어졌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제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평범한 범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평범해 보이는 것과 달리 그는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었다.
‘헛, 대체…….’
정신을 차렸을 땐, 영물은 더 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눈에 한 장원이 들어왔다.
이 외딴곳에 장원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애초 그의 목적지는 무란에 존재한 이 장원이었기 때문이다.
“실례하겠소.”
“누, 누구십니까.”
장원의 하인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낯선 자의 존재에 당황하고,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의 주인을 뵙기 위해 왔소. 안에 계시오?”
“아… 문주님을 찾아오신 손님이셨군요. 문주님께서…….”
문주(門主)의 손님(客)이라 생각했는지, 하인은 경계심을 거두었다.
순박한 사내였다.
그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맞이할 테니, 곽 형은 일 보셔서 됩니다.”
“문주님! 오셨습니까,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곽 형이라고 불린 사내는 젊은 사내를 보고 크게 안도했다.
그는 젊은 사내 문주에게 인사를 하곤 제 볼일을 보러 들어갔다.
그 순간 문주의 눈빛이 바뀌었다.
깊지만 차가운 눈빛에 초로의 사내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긴장되었다.
“이백 님이십니까, 저는…….”
“무림인… 살수(殺手)인가.”
그 한마디에 초로 사내의 눈동자가 찰나지만 흔들렸다.
그걸 이백은 놓치지 않았다.
초로의 사내는 포권을 취했다.
“살왕께서 보내셨습니다.”
“역시 살막이었군.”
살수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린 것으로 부족해, 살막(殺幕)에서 온 사실까지 간파당했다.
허나 초로 사내는 이백이 허세를 부린다 생각했다.
살수라는 사실까지는 몰라도, 살막까지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 이백은 미간을 찌푸렸다.
“거슬리는군.”
“…무슨…….”
초로 사내는 그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순간, 신음과 함께 은신하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큭!”
“윽!”
그걸 본 초로 사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자신만 못해도 살막의 정예들이다.
죽는 순간에도 소리를 내지 않을 정도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이들이 신음은 물론 은신까지 풀다니…….
초로 사내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막주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이 모의 목을 원하셨나 보군.”
“절대! 그러한 사실이 없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백의 싸늘한 목소리에 초로의 사내는 항거할 수 없는 절대자의 기운을 느꼈다.
백호왕(白虎王) 이백. 패황에게 왕의 칭호를 인정받은 자.
살막의 이인자 천살공(天殺公)이 직접 예를 갖추라 신신당부했던 게 떠올랐기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내 친구가 실수로 죽일 수 있으니까.”
“……!!”
언제 움직였는지, 이백의 어깨에 새하얀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을 농락한 영물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염라의 콧털을 건들 뻔했다는 걸 깨달았다.
새하얀 고양이… 아니, 이백을 백호왕이라고 불리게 만든 백호에게 탐심을 드러냈었으니 말이다.
그걸 알았는지 이백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
“막주께서 무슨 일로 보냈지.”
“정확히는 천살공께서 서신을 전하셨습니다.”
살왕이란 별호 앞에 퇴색되었지만, 살막쌍살의 악명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천살공이 자신에게 서신을 전한다는 건 의외였다.
“주게.”
“예…….”
초로의 사내는 품에서 서신을 건넸다.
이백은 서신을 펼쳤다.
그러한 행동에 초로 사내는 깜짝 놀랐다.
살막의 살수를 앞에 두고 시야를 스스로 차단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란 말인가.
다른 때라면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어이없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혈궁에서 청부를…….]
서신의 내용은 혈궁의 청부 사실과 이를 거절했으나 조심하라는 당부. 그리고 살수들의 생사여탈권을 잠시 빌려주겠단 내용이었다.
혈궁의 청부를 거절한 건 고마우나 살수들의 목숨을 빌려주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이백은 초로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내용을 알고 있소?”
“천살공께서 언질을 주셨습니다.”
적의를 거둔 이백은 더 이상 하대하지 않았다.
그러한 변화에 초로 사내는 안도했다.
“그런데 따르겠단 뜻이오?”
“복종할 따름입니다.”
초로 사내는 이백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물론 복면인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백은 어이가 없었다.
“내 어찌 그걸 믿소?”
“살(殺)!”
이백의 말에 초로 사내는 죽이란 명을 내렸다.
그건 이백이 아닌 자신들. 즉, 자결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결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미중유의 거력이 그들의 육신을 구속한 탓이다.
“지금 죽음으로 날 협박하는 것이오.”
“거절, 하시면 살아 돌아오지 말라… 하셨습니다.”
협박이 아니었다.
이백에게 증명하고 있었다.
명령에 대한 절대복종을 실천한다는 것을.
‘누가 살수 아니랄까 봐. 하…….’
살막에 배려를 받았는데, 살수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전적으로 믿을 수 없기에 당분간은 감시할 생각이었다.
이백은 그들을 구속했던 무형지기(無形之氣)를 거두었다.
“…배려, 받아들이겠소. 목숨으로 날 기만하려 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살막의 살수들은 이백이 허락했으나 신뢰하는 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게 당연했다.
누가 살수인 걸 알고 곁을 내주겠는가.
“내 그들을 뭐라 불러야 하오?”
“구천살(九天殺)이라 합니다. 호칭은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삼십이지살(三十二地殺)입니다.”
“삼십오지살(三十五地殺)입니다.”
살막의 일개 살수라도 그 실력이 뛰어난데, 한 자릿수의 삼십육천살(三十六天殺)과 중간급 칠십이지살(七十二地殺) 넷이었다.
천살공이 왜 이리 신경을 써주는지 알 수 없어 이백은 의아했다.
“천살공께서 그대들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거 같소만?”
“……!”
이백의 말에 구천살은 놀랐다.
실제로 천살공은 삼심육천살 중 아무나 한 명 보낸 게 아니었다.
“…행정적인 업무를 볼 줄 압니다.”
“저는 쇠를 만질 줄…….”
구천살은 상단의 행수(行首)나 서기(書記), 표국의 장궤(掌櫃) 등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만큼 기본적인 산수나 행정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외 지살들 역시 각자 특기가 있었다.
외딴곳에 위치한 만수문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었다.
천살공의 세밀한 배려를 알 수 있었다.
“그럼, 구 총관이라 부르겠소.”
“감사합니다, 문주님!”
그 외에 이 철공(鐵工), 오 대목(大木), 사 숙수(熟手), 육 의원(醫員)이란 호칭을 주었다.
이들과 함께 살막을 나온 여섯 지살들은 여파현 등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수문은 예상치 못한 식구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