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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57화 (157/200)

157화. 검치(劍痴) (3)

“누구냐! 어찌 산장(山莊)에 대해 아느냐!”

다 죽어가던 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 이백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상당히 위협적인 상황이지만, 이백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외금강신(外金剛身)을 이룬 육신을 믿기 때문이 아니다.

애초 피하지 못해서 노인의 검을 허용한 게 아니었다.

“이백이라 합니다. 산장에 있을 땐, 백수(百獸)라 불렸습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검치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천문산장의 존재를 알 뿐만 아니라 당시 자신의 별칭까지 알고 있다.

게다가 그 본인 역시 천문산장에 몸을 담았다고 하니, 검치로서는 당혹스러웠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인지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떠보려는 수작일지 모르니까.

섣부른 판단이 천문산장과 나아가 검모궁에게까지 폐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경계하는 이유를 알기에 이백은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십 년 전, 육선자 님과 팔검향께 목숨 빚을 지게 되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산장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때 고검 어른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여 년 전에 산장을 나왔습니다.”

“저, 정이는 잘 지내…….”

팔검향 교정정을 언급하는 검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이? 아, 교 소저라면 일여 년 전쯤 마지막에 뵈었을 때, 잘 지내셨습니다. 교 소저를 잘 아십니까?”

“다행이군… 다행이야…….”

검치는 교정정을 콕 집어 물었지만, 이백은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검치(劍痴)는 바로 고검(古劍)이고, 십 년 전까지 천문산장의 제일 어른이었다면 검모궁의 검향과 알고 지내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니 말이다.

헌데 검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렀다.

그것을 본 이백은 당황하고 말았다.

“괜, 찮으십니까!”

“허허… 늙어서 주책을 부렸군.”

어느새 이백을 향한 경계심이 무너져 있었다.

천문산장이라는 공통점. 정확히는 팔검향 교정정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물론 이백도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산장에 돌아가실 겁니까?”

“…그럴 수 있겠는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철혈방의 요인을 베었는데…….”

검치는 철백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만한 실력자가 철혈방에 여럿 있을 리 없다.

분명 방주 혹은 그에 버금가는 신분일 게 뻔하다.

자신이라도 그런 존재를 죽였다면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무사하길 바란다면 그만큼 이율배반적인 게 어디 있겠는가.

허나 인간이란 모순덩어리다.

그렇기에 남을 해하고 탐욕을 채우는 게 아니겠는가.

“아… 그라면 죽지 않았습니다. 늦기 전에 손을 썼습니다. 오랫동안 정양해야겠지만요.”

“그, 그게 정말인가!”

자신의 모든 걸 담은 일검(一劍)이라면 상대가 금강불괴라고 벨 자신이 있었다.

그런 일검으로도 철백을 베지 못했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그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바뀔 거 같지는 않았다.

죽이지 못했지만, 죽일 뻔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이백은 그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난처했다.

하지만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중재해 보겠습니다.”

“가능…하겠는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해보겠습니다.”

“…이 늙은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모든 협조하겠네.”

힘으로 위협한다면 검치를 빼내는 게 어렵지 않지만, 그런 방법은 내키지 않았다.

그가 철혈방은 반파 시켰던 건 그만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힘은 폭력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 이거 잘못하면 귀주에 남아야 할지도 모르겠군.’

*  *  *

“초 형, 이 문주님이시오.”

철혈방주는 철백(鐵伯) 초웅비에게 이백을 소개했다.

그는 이백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무리 태을보령환을 복용시켰다고 하지만 내상이 완전히 나으려면 족히 반년은 정양해야 한다. 내상은 물론 부러진 뼈 역시 아무는데 수개월은 필요하다.

그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헌데 초웅비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터프한 자이군.’

독이 발린 화살을 맞고 화타에게 치료받는 관운장이 이러할까,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사내였다.

초웅비는 몸을 일으켜 포권을 취했다.

“초웅비가 은공께 인사드립니다.”

“몸이 나은 게 아닌데 과례입니다.”

사양하는 이백에게 초웅비는 고갤 저었다.

“목숨 빚에 과례가 어디 있겠습니까.”

“…생각보다 좋아 보여 다행이오.”

이백은 자신보다 배 이상 나이가 많은 초웅비의 이러한 반응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잘하면 설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운을 띄었다.

“초 대협과 양패구상(兩敗俱傷)한 분이 깨어났소.”

“혈제… 빠드득… 이대로 넘어가선 안 되오! 이 대협!”

이백은 초웅비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양패구상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헌데 옆에 있던 철혈방주가 재를 뿌렸다.

검치에 대해 잘 설득하려던 이백으로서는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허… 다행입니다. 그와 같은 자가 그대로 죽었다면 안타까웠을 겁니다.”

“초 형! 그게 무슨 말이오!”

검치에게 죽을 뻔했던 초웅비가 예상외로 그를 옹호하는 듯한 말을 꺼냈다.

그러니 곁에 있던 철혈방주는 분통이 터졌다.

철혈방주 이상의 무위를 가지고도 초웅비가 철혈방의 그늘에 있는 건 사돈지간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순수한 무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자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설사 상대가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았던 자라고 해도 말이다.

“이 문주님, 방주. 내 부탁하겠소. 그를 무사히 돌려보내 주시오.”

“아, 아니 초 형!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게요!”

철혈방주는 팔짝 뛰었다.

죄를 물어도 부족한데 살려 보내라니.

그로서는 기가 막혔다.

기회라 여긴 이백이 슬쩍 끼어들었다.

“들어보니 혈궁 소속이 아니라 하더이다.”

“혈궁 고수가 아니란 말이오? 그럼 왜 초 형을 공격했단 말이오?”

분통 터져 하던 철혈방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혈궁 이외에 이런 일을 꾸밀 곳이 없으며, 혈궁이 아니라면 그러한 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다.

“혈궁 소속은 아니지만, 혈제에게 빚이 있다 하더이다. 그리고 목표는 초 대협이 아니라 나이고 말이오.”

“허! 결국 혈궁에서 온 건 맞단 뜻이군.”

앞뒤 다 자르면 철혈방주의 말이 맞다.

잘 풀어갔다 싶었는데, 자칫 다시 꼬여 버릴 판이었다.

그래도 초웅비가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허허… 방주, 혈궁의 고수가 아니라지 않소?”

“그렇다고 해도 초 형의 목숨을 노린 건 변치 않소.”

초웅비의 두둔에도 철혈방주는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

두 사람이 매우 돈독하고 사돈지간이라지만, 철혈방주의 이런 반응은 분명 이상했다.

그제야 이백은 깨달았다.

그가 이리 완강하게 나온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을.

철혈방주는 초웅비와 다르게 계산이 빠른 자다.

이 기회를 그냥 버릴 리가 없던 것이다.

이백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방주, 원하는 게 무엇이오?”

“커험… 문주께서 그를 두둔하시는 걸 보면, 연이 있는 자인 것 같소.”

정말 눈치가 빠른 자였다.

이백은 질질 끌려가선 한도 끝도 없을 거란 생각에 단칼에 끊었다.

“원하는 거.”

“그자가 본방(本幇)에 남게 설득해주십시오.”

철백과 양패구상할 정도로 고수다.

철혈방주로서는 탐이 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백은 단칼에 거절했다.

“다른 걸 요구하시오.”

“혈궁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본방에 필요한 건 고수라는 걸 문주께서도 아시지 않소. …문주께서 이곳에 남아 주신다면야…….”

철혈방주의 말이 틀리지 않으니 타박하기도 어려웠다.

이백은 승낙도 거절도 하지 않은 채 잠시 생각에 빠졌다.

생각보다 혈궁의 대처가 빨랐다.

언제든 달려와 막아주겠단 자신감이 무색하게 만들었다.

약조를 지키기 위해선 귀주는 떠나지 않는 게 최선이란 걸 이백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고검 어른을 모른척할 수 없어. 게다가 호남으로 갔다가 검모궁의 위치가 발각될 수 있고…….’

직접적인 연은 없지만, 천문산장의 어른인 고검(검치)을 모른 척할 수 없다.

비록 천문산장을 나왔다고 하지만, 그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말이다.

검치를 천문산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선 결국 대가가 필요했다.

그 대가는 이백, 자신이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좋소, 귀주에 남겠소.”

“하하! 잘 생각하셨소! 문주께서 지낼 장원은 바로 준비할…….”

철혈방주 입장에서도 검치 보다는 이백이 남아 주는 게 나았다.

그렇게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득의했다.

마음 같아선 방(幇) 내에 거처를 마련하고 싶지만, 이백이 원치 않을 거라 생각해 멀지 않은 곳에 장원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백의 생각은 달랐다.

“그럴 필요 없소. 생각해 둔 곳이 있으니…….”

“새, 생각해 둔 곳이라면…….”

순간적으로 철혈방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

“무란(茂蘭).”

“무, 무란! 설마 여파(荔波)의 그 무란을 말하는 게요!”

무란이라는 말에 철혈방주는 깜짝 놀랐다.

곁에서 듣고 있던 초웅비 역시 다르지 않았다.

평야가 없는 귀주의 특성상, 풍요롭기 어렵다.

그런 귀주라고 번영된 지역이 없는 게 아니다.

이곳 귀양만 해도 귀주의 성도(省都)답게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되어 있다.

허나 여파현은 그런 번영된 지역이 아니다.

하물며 여파현에서도 깊숙이 있는 무란은 발전 자체가 안 된 원시림이다.

그러한 지역을 이백이 원하니, 그들이 놀라는 게 당연하다.

“맞소, 그 무란.”

“참견할 일은 아니나, 더 좋은 지역도 많은데 문주께서 어찌 그곳을 원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초웅비는 은공인 이백이 보다 좋은 지역에 자리 잡길 원했다.

허나 이백의 생각은 달랐다.

“본문의 특성상, 산이나 숲이 좋소.”

“그렇다 해도 무란은…….”

이백은 현재 함께하고 있는 영수나 짐승들만이 아니라 더 많은 짐승을 조련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만수문의 제자들만 열이나 되고, 그들이 끝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즉, 충동적인 결정이 아닌 미래를 앞 본 결정인 셈이다.

그럼 결국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도 넓은 지역이 낫다.

게다가 무란이 개발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마을들이 존재한 여파현이 지척이다.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한 계산이 섰기에 이백은 개발되지 않은 무란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만봉림(萬峰林)과 범정산(梵淨山)을 두고 고민했소. 허나 혈궁을 생각하면 남쪽에 자리를 잡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어서 내린 결정이니 그리 알았으면 좋겠소.”

“하… 문주께서 그러한 생각이시다면 더 이상 설득은 어렵겠구려.”

만봉림은 흥의현에 있는 지역으로, 명칭처럼 수많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흥의현은 귀주 남부.

정확히는 서남부에 위치했기에 혈궁의 움직임에 대처하기에 최적은 아니다.

그런 만봉림은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은 동봉림과 작은 마을들이 존재한 서봉림이 존재했다.

서봉림 역시 귀양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고 열악하다.

무엇보다 서봉림의 마을 구성원들은 묘족.

즉, 흑림의 관할이란 뜻이었다.

반면 범정산은 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산(山)이다.

오대산, 보타산, 아미산, 구화산과 함께 불교 오대명산에 꼽히기도 했다.

범정산이 위치한 동인현은 철혈방의 입김이 닿는 지역이나 이백의 말처럼 혈궁을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무란은 철혈방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인 셈이다.

이런 저런 계산이 선 철혈방주가 입을 열었다.

“흑림과 협의해야겠지만, 여파에 지부를 세워 필요한 건 지원하겠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소.”

이백의 말에도 철혈방주는 고갤 저었다.

그와의 연을 유지하기 위함도 있으나 결국 이백. 그리고 만수문이 자리를 잡아주는 게 혈궁의 견제에 도움이 된다.

그러니 이 정도 편의는 당연하다.

“이 정도도 할 수 없다면, 본방이 너무 염치가 없지 않소.”

“그리고 여파 지부는 제가 맡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문주.”

협의도 안 된 초웅비의 말에 철혈방주는 당황했지만, 이내 고갤 끄덕였다.

아무래도 여파현은 이민족들의 땅이며 흑림의 입김이 닿는 곳인데, 어중간한 놈을 보내 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다 초웅비가 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이백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좋소, 호의를 받아들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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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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