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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56화 (156/200)

156화. 검치(劍痴) (2)

쾅! 콰쾅!!

모든 걸 벨 수 있는 창과 모든 걸 막을 수 있는 방패.

모순(矛盾).

이 단어는 두 노고수를 위해 태어난 말이 아닐까 싶다.

무림에선 오래전에 잊혀졌지만, 고대무림 최강이라고 불렸던 천고신검(千古神劍).

소림의 금강불괴신공이 부럽지 않다는 백련철신결(百鍊鐵身訣).

그런 고수들의 충돌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철백은 붉게 맺혀진 핏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백련(百鍊)을 이룬 후, 피를 보게 한 건 그대가 처음이다.”

“노부 역시 놀랍소. 내심 노부의 검이 무당이나 화산보다 못하다 생각하지 않았거늘…….”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노검객의 목표가 철혈방이라면.

철백이 마지막 임무 상대라면.

결국 끝을 봐야 한다.

그리고 모순이라도 결국 계속 부딪치다 보면 결말이 나온다.

창이 부러지든, 방패가 뚫리든.

‘더 이상 끌어서 좋을 게 없어.’

격렬한 싸움이었으나 크게 보면 노검객이 불리하다.

공격은 방어보다 체력소모가 큰 법이다.

노검객의 검강을 견뎌내는 철백의 육체.

한 번씩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권격.

이대로라면 자신이 먼저 지칠게 자명했다.

하물며 이곳은 철혈방의 앞마당.

모든 게 불리하니, 속단속결. 아니, 일검에 승부를 봐야 한다.

주변이 요동칠 정도로 노검객의 검에 기운을 모여들었다.

이를 본 철백은 그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일검에 승부를 보겠다?’

철백으로서는 노검객의 노림수에 응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일부러 요리조리 피하며 그를 궁지에 모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철백은 사내 중에 사내였다.

‘오냐, 응해주마!’

철백의 눈빛이 바뀌었다.

노검객은 그가 응해주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안타까워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사귀어 봐도 좋은 자였거늘…….’

더 이상 모이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기운이 검에 담기자 노검객이 움직였다.

철백 역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천고(千古)……!!”

“하아압!!”

노검객의 검과 철백의 권이 충돌하는 순간.

큰 폭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 폭사했다.

콰쾅! 콰쾅! 콰콰쾅!!

거대한 흙먼지가 주변을 덮쳤다.

잠시 후 흙먼지가 가라앉아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철백과 동행했던 철혈당 고수들은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어르신!!”

철백과 노검객이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 크기는 폭약을 몇 상자나 터트려야 생겨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컸다.

하지만 더 당혹스러운 건, 그 중심에 쓰러진 자.

철혈방주도 한 수 접어준다는 철백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충격을 받은 건 철백만이 아니다.

노검객 역시 성치 못했다.

산발된 두발과 넝마가 된 옷, 거친 숨과 내공 부족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까지.

철백 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떠날 수 없다!”

“감히 어르신을!!”

철혈당의 고수들은 노검객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몸 상태가 최악임에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물러나라. 쓸데없는 피를 보고 싶지 않다.”

“누가 할 소… 헉!”

챙!!

언제 휘둘렀는지 알 수 없는 검격을 간신히 막았으나 그 충격까지는 아니었는지, 철혈당원이 나가떨어졌다.

까딱하다간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젠장, 몸이 무겁네.’

평소였다면 검신이 베이거나 반응하지 못했을 텐데, 튕겨 나갔다는 것은 노검객의 몸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좋지 못하다는 의미다.

어쩌면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걸 노리고 자신을 보냈을지 모른다.

그의 상념을 깨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혈궁? 혈궁이라기엔 기운이 정심한데?”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립도 안 될 듯한 어린 청년이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알지 못한 건 둘째치고, 그에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몸 상태가 최악이라 알아차리지 못한 게 아니라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부(凡夫)라는 뜻이다.

헌데 노검객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둘 다가 아니라는 것을.

“귀, 귀하였군…….”

“날 아시오. 노인장.”

노검객의 말에 이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기억에 없는 얼굴인 탓이다.

노검객은 허탈한 듯 말을 이었다.

“혈제(血帝), 역시 나보고 죽으란 말이었군.”

노검객은 혈궁 장생전에 지내던 검치(劍痴)였다.

천하를 뒤져도 그와 견줄 수 있는 검객이 열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검치라도 화경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지 못했다.

게다가 철백을 쓰러트린 대가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이백을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정심한 기운 때문에 설마 했는데, 정말 혈궁에서 왔단 말이지.”

우웅~! 우웅~!!

이백이 기운을 끌어올리자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철혈방주와 혈궁을 막아준다 약조했다.

헌데 결과적으로 그 약조를 지키기 못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이백의 심기가 몹시 좋지 못했다.

“그대의 목을 갖고 혈제를 찾아가지.”

“기왕이면 늙은 머리 따위보단 이 검을 가져가서 혈제에게 분풀이 좀 해주게.”

“음? 혈궁 사람이 아니오?”

“혈제의 지시로 온 건 맞지만, 혈궁 사람은 아닐세.”

혈제의 지시를 받지만, 혈궁 소속은 아니다?

혈제에게 혈궁 이외에 세력이 더 있단 의미인가?

숨은 의미를 파악하기에 정보가 너무 한정적이었다.

“이제와 회피하려는 거라면…….”

“그럴 거 같나. …그럴지도 모르겠네.”

검치는 의미 모를 말을 읊조렸다.

이백은 미간을 찌푸렸다.

찜찜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혈제의 지시를 받고 철혈방을 노렸다.

“이제 그만…….”

이백은 손을 가볍게 들었다.

간단한 동작에 불과하지만, 검치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늦었지만, 이 애비도 이제 가마. 저승에서 많이 화내거라.’

퍽!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검치의 의식이 날아갔다.

철푸덕.

신형이 무너지며 검치는 쓰러졌다.

푹!

검치가 쥐고 있던 검이 그대로 땅에 꽂혔다.

그때 검신에 음각된 검명(劍名)이 눈에 들어왔다.

[千古]

“천고… 천고검이라…….”

낡은 검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상당한 명검이었다.

게다가 이상하게 거슬렸다.

“천고검? 천고검이라…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이백은 명검이니, 들어본 적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천고검… 고검? 설마 저 노인장이? 아, 아니겠지…. 혈제의 지시를 받았다 했으니…….”

죽은 검치를 내려보는 이백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급격히 흔들렸다.

그가 익숙한 이유는 고검이라는 명칭 때문이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자신이 천문산장의 일원이 되기 직전에 떠난 노검호.

그가 바로 고검(古劍)이란 별명을 사용했다는 걸 들었던 탓이다.

이백은 검치와 철백을 번갈아 봤다.

“하…아…….”

한숨을 깊게 내쉰 이백은 철백에게 다가갔다.

그의 정체를 아는 철혈당 고수들은 당황하면서도 감히 막지 않았다.

이백은 철백의 상태를 살폈다.

숨이 끊긴 최악은 면해 보였다.

이백은 그의 상체를 일으켰다.

“엇! 대협! 그러시면…….”

“응급 처리할 생각이니,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시오.”

“아… 넵!!”

이백의 지시에 철혈당 고수는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는 사이 이백은 품에서 자금홍호로를 꺼내 환약을 집었다.

“마지막인데… 어쩔 수 없지.”

환약의 정체는 태을보령환(太乙保寧丸).

곤륜파를 도와준 대가로 운룡진인이 준 태을보령환의 마지막 환단이다.

이백은 마지막 태을보령환을 철백에게 먹였다.

목숨이 위협될 정도로 극심한 내상이지만, 내상 치료에 영단보다 더 뛰어나다.

약효가 빨리 퍼지게 돕기 위해 이백이 검지와 중지를 내밀었다.

밝은 빛이 두 손가락에 어렸다.

푹!

“끄응… 상당히 단단한 분이었군.”

검지와 중지를 통해 느낀 반탄력에 이백은 뺨이 씰룩거렸다.

두 사람 모두 외금강신을 이루었지만, 단단함만 본다면 전문적으로 외문무공을 익힌 철백이 약간 위였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백은 기를 담지 않은 채 철백의 혈(穴)을 찔렀다.

푹! 푸푹! 푹! 푹! 푸푹!

기를 담지 않았으나 오히려 철백의 혈에 충격을 전달했다.

이백은 손가락에 기를 담지 않은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으로 혈맥만 자극한 것이다.

“후우…….”

간단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고도의 수법이다.

호흡을 가다듬은 이백은 철백의 맥문을 짚었다.

“…고비는 넘긴 건가.”

*  *  *

“으…으…윽!”

사라진 의식이 돌아오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노인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검을 찾았다.

헌데 손에 검집이 잡혔다.

안도하는 동시에 당황했다.

“살아…있는 건가. 게다가… 검까지…….”

노인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 있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정보를 캐내기 위해 아직 죽이지 않았을 수 있다.

허나 자신의 검까지 놔두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다.

하지만 곧 씁쓸해졌다.

“언제든 거둘 수 있단… 뜻인가.”

검을?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언제든 거둘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이 내어진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납득되었다.

자신의 몸 상태가 멀쩡했다고 한들, 어찌할 수 없을 괴물이라는 걸.

“깨어나셨군요.”

“…날, 어찌 살려둔 것인가.”

지척에 있음에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청년은 괴물이다.

검치는 이백의 말투가 바뀌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승자의 권리…겠지. 물어보게.”

검치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 대답해 줄 생각이었다.

승자의 권리라 말했지만, 그러한 이유가 아니었다.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오른 거인에 대한 예우였다.

“혈궁 소속이 아니면서 혈제의 지시를 받았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혈제에게 빚이 있어서 세 번의 임무를 맡기로 했네. 이번에 마지막이었지만… 순순히 놔줄 생각이 없었나 보네.”

이백은 정심한 기운을 가졌음에도 혈궁의 명을 따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더 이상 혈궁의 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마지막 임무는…….”

“철혈방이 혈궁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한 자의 징치. …내 착각해, 엉뚱한 자와 싸웠지만…….”

철혈방을 혈궁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든 자는 철백이 아닌 이백이라는 걸 깨달았다.

철백 역시 강했다.

하지만 혈궁, 정확히는 혈제에게 대적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실제로 자신의 검에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이라면?

혈제를 쓰러트릴 수 있다 장담할 수 없지만, 혈제를 견제하는 건 가능해 보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검에 천고(千古)라 적혀 있던데…….”

“본문의 신물일세. 이젠 기억하는 자가 없는 고검문(古劍門)의…….”

고검문(古劍門). 고검(古劍).

이백은 확신이 들었다.

“어르신께서 천문산장의 고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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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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