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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52화 (152/200)

152화. 최후(最後)의 통첩(通牒) (3)

“막아라! 방주님을 지켜라!!”

검혼(劍魂)의 외침에 철혈당의 고수들은 도검을 꽉 쥐었다.

철혈당(鐵血堂)은 철혈방의 규모가 커지기 전부터 방주를 수호하는 집단이었다.

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그들만큼은 남을 정도로 충성심이 남달랐다.

허나 그들도 알고 있었다

수십 자루의 도검으로 이기어검을 펼칠 수 있는 괴물이라면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결심을 알아차린 이백은 차갑게 말했다.

“어리석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십 자루의 도검이 일제히 철혈당을 헤집었다.

철혈당 고수들은 도검을 휘두르며 막으려 했지만, 고작 그들이 막을 수 있다면 어찌 이기어검이겠는가.

푹! 푸푹! 푹!

“큭!”

“컥!”

짧은 비명과 함께 너나 할 것 없이 쓰러졌다.

고작 서 있는 자는 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들의 죽음에 철혈방주는 격노했다.

“어찌! 이리 잔혹하단 말이오! 이 늙은이만, 이 늙은이만 죽이면 될 것을! 어찌 이리도 잔혹하단 말이오!!”

“너희가 그간 한 행동은 잔혹하지 않고, 나만 잔혹하단 말인가. 너희로 인해 그들이 흘린 피눈물은 하찮고, 너희가 흘린 피눈물은 귀하단 말이더냐!!”

이백의 호통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단순한 호통이 아니었는지, 서 있는 십여 명은 휘청거렸다.

철혈방주는 회한(悔恨)의 절규가 쏟아냈다.

“노부라고! 노부라고! 짐승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소! 혈궁의 위협만 아니었어도! 그들로부터 본방을 지킬 힘만 있었어도! 짐승이 되지 않았을 거란 말이오!!”

“그 말… 믿어도 되겠소? 그리고 지킬 수 있겠소?”

이미 다 죽은 마당에 뭘 어쩌란 말인가.

허나 이백의 눈은 너무도 진지했다.

철혈방주는 허탈한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이오.”

“그래도 말해보시오. 혈궁만 아니면 도리를 지킬 수 있겠소.”

“사파는 무슨 다 짐승인지 아시오? 우리라고 다 시궁창인 게 아니오!”

“좋소, 혈궁이 위협한다면 막아주겠소. 허나 그 말을 지키지 못하면, 그땐 그대들 모두… 죽이겠소.”

이제 고작 십여 명 살아남았을 뿐이다.

시궁창에 빠지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자들을 다 잃은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으… 으윽!”

“끄응…….”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신음을 흘린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고작 한둘이 아니다.

쓰러진 대부분이 의식이 있었다.

“어, 어떻게…….”

철혈방주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백(二百)에 가까운 인원이 쓰러졌는데, 피로 흥건하지 않았다.

흥분했기에 깨닫지 못했던 것뿐, 이백은 처음부터 손속에 사정을 두었던 것이다.

흥분이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오자 철혈방주는 이백을 바라보았다.

“이제 노부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철혈방을 바로 세우시오. 도리를 모르는 자를 쳐내고, 도리를 모르는 사업은 정리하시오.”

방주 역시 바라는 바였다.

허나 그렇게 되면 철혈방의 규모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럼 숨죽이고 있던 승냥이들이 고갤 들기 시작할 것이고, 급기야 약해진 철혈방을 물어뜯으려 할 것이 뻔하다.

그게 사파의 습성이니 말이다.

“승냥이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흑림은…….”

“왜 굳이 흑림과 싸울 생각하는 것이오? 그들이 원하는 건, 묘족의 보호. 어차피 도리를 지키기 위해선 묘족… 아니, 이민족들을 핍박하지 않을 것이니 흑림과 충돌할 일도 없을 것이오. 오히려 그들과 협력하는 방법도 있소.”

이백의 제안. 분명 지금 상황에서 이보다 좋을 게 없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흑림과 협력이 가능할 때 이야기다.

그간 흑림이 철혈방에게 쌓인 감정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인데, 그들이 협력하겠는가.

그걸 알기에 철혈방주는 쉬이 입술을 뗄 수 없었다.

“…….”

“중재는 내가 하겠소. 그러니 귀방에서 먼저 성의를 보이시오.”

“성의라시면…….”

“기루를 포함해 잡아간 묘족을 풀어주시오. 그 방법은 귀방에게 맡기겠소.”

철혈방이 직접 관리하는 기루도 있겠지만, 돈만 받고 넘긴 곳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빼내기 위해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게 돈이 될지 아니면 다른 물건이 될지.

그리고 그걸 해결하는 건 철혈방의 몫이다.

그들의 역량을 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하겠소.”

“…그보다 감시자가 있다 했던 거 같은데…….”

이백의 말에 철혈방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철혈방이 이 지경에 된 원인이 되는 자들.

“준의(遵義) 지부를 맡고 있는 혈행노조(血行老祖)요.”

“그자도 내 직접 처리해줘야 하오?”

혈궁의 감시자는 몇몇 더 있으나 그들의 수좌는 바로 혈행노조다.

준의는 부(府)급에 해당하는 큰 도시다.

게다가 서쪽에는 사천, 동쪽으로는 호남, 북쪽으로 호북으로 연결되니 매우 중요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명분을 삼아 혈행노조를 박아두었다.

그라고 철혈방주의 속내를 모르지 않았으나 준의가 중요한 도시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고, 모태주의 도시답게 제법 쏠쏠하니 거부하지 않았다.

“옹안(甕安) 지부장이라면 가능하오. 헌데 정말 혈궁 아니, 혈제를 감당하실 수 있겠소?”

옹안현은 지리적으로 봤을 때, 귀주의 중앙에 가까운 지역이며 열흘 안에 준의에 닿을 수 있는 지역이다.

혈행노조가 준의부에서 수작을 부렸을 때, 이를 견제할 중요한 지역이다.

물론 아무나 그러한 옹안 지부를 맡기지 않았다.

철백(鐵伯).

실질적으로 철혈십걸의 수좌이며 방주의 사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수고스럽지만, 혈행노조의 견제 역할을 맡겼다.

그런 철백이라면 혈행노조를 상대할 수 있다.

문제는 그를 쫓아낸 후, 혈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다.

그러니 철혈방주의 우려는 당연하다.

“…설군아.”

“크아앙!!!”

이심전심이라고 이백의 부름에 품에서 작은 고양이가 뛰쳐나왔다.

점점 커지더니 착지하는 순간에는 황소보다 더 큰 거대한 호랑이가 되었다.

그 위용은 무림고수라도 움찔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백의 뜻을 아는지 설군은 포효했다.

울부짖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건 물론 주변 전각이 휘청거렸다.

보통 영물이 아니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패왕성주께서 내게 백호왕(白虎王)이란 별호를 붙여주셨소. 이 친구와 함께 그분을 상대한 후에 말이오. 이 정도면 대답이 되겠소?”

“그 말, 농이 아니었단 말이오!”

이백이 독선과 패황을 언급했지만, 믿지 않았다.

헌데 지금은 거짓말 같지 않았다.

백호(설군)의 위용과 패황이 친히 왕(王)의 칭호를 붙였다면?

어찌 그의 말이 거짓이겠는가.

“궁금하면 성주님을 불러오시던지.”

“노, 농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시오.”

혈제만 해도 골치 아픈데 그보다 더 강하다는 패황에게 확인하겠는가.

철혈방주는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허나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제 혈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단 기분이 든 덕분이다.

‘어쩌면…….’

*  *  *

“림주님을 말이오?”

철혈방의 일을 마무리 지은 이백은 귀인과 약조한 장소로 갔다.

자리를 비운 동안 제자들을 그에게 부탁해뒀기 때문이다.

물론 마냥 그를 믿기만 한 게 아니다.

제자들의 곁에는 영수들이 있다. 특히 사흉수를 둘이나 있는 만큼 귀인이 수작을 부린다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어렵겠소?”

“아무래도 림주께선 외인을 만나시지 않으셔서…….”

이백은 귀인에게 흑림주와의 자리 주선을 청했다.

헌데 그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이백에게 호감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것과 흑림주와 자리를 주선하는 다른 문제다.

망량은 묘족을 수호하기 위한 집단이고, 흑림주의 안위는 최우선적인 일이다.

“외인이라…. 흑림의 구성원이 아니라는 점이오? 아니면 묘족이 아니라는 점이오?”

“둘 다지만, 후자가 더 크오.”

그의 대답에 이백은 두 소문주를 불렀다.

이백은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수왕을 아시오?”

“…야수족의 전대 대족장으로 알고 있소.”

“이 아이들이 야수왕의 손주들이오. 특히 우혁이는 대족장 제안도 받았소. 난 이 아이들의 사부이니, 마냥 외인이라 할 수 없지 않겠소?”

“그, 그게 정말이오!”

이백은 대답 대신 씨익 웃었다.

눈이 커진 귀인은 강씨 남매를 바라보았다.

야수족의 대족장은 흑림의 림주와 다름이 없는 위치다.

야수왕의 핏줄이자, 대족장의 제안을 받았을 정도면 림주와의 독대할 명분은 충분하다.

허나 흑림주와의 대면을 강씨 남매가 아닌 이백이 하는 만큼 확신할 수 없었다.

“결정은 림주께서 하지 않겠소? 제안만이라도 부탁하오.”

“…그리하겠소. 허나 기대하지는 마시오.”

귀인은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흑림 내부에서 중원인에 대한 불신이 높기 때문에 흑림주가 조금이라도 위험할 일은 사전에 차단될 수밖에 없다.

허나 철혈방과의 중재를 이끌기 위해선 결정자인 흑림주의 결단이 필요하다.

흑림주와 대면조차 못 하면, 철혈방주와의 약조를 지키지 못한다.

철혈방주와의 약조 때문만이 아니라도 흑림주와 대면은 필요하다.

‘귀주에서 신궁(神宮)의 그림자를 뽑아내려면 흑림의 협조가 필요해.’

이백이 이리 적극적으로 나선 건, 예상치 못한 신궁의 그림자 때문이다.

철혈방 철혼당주의 암수(暗手), 현월.

그가 철혼당주의 곁에 있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귀주제일세라는 철혈방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계책이었다.

귀주에서 암약하는 신궁의 그림자가 현월(玄月) 한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철혈방과 더불어 흑림까지 협력해준다면 그들의 그림자를 뽑아내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동시에 혈궁의 마수로부터 귀주를 구해내는 일이니, 흑림으로서도 손해 볼 일은 아니다.

이백이 철혈방주와 약조를 지키기 위해 움직일 때, 철혈방주 역시 그와의 약조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  *  *

“갑자기 보고가 끊기다니, 방주. 그자가 손을 쓴 건 아니겠지?”

혈행노조는 매일같이 전해보는 보고가 끊기자 의심이 들었다.

그가 철혈방 본방에서 멀어졌지만, 그곳의 소식에 둔감한 건 아니다.

방주도 모르게 심어둔 눈과 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혈행노조는 준의부로 보내려는 방주의 지시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자가 미친 게 아니라면 그러지 못할 텐데 말이야.”

철혈방이 귀주제일세로 불리고 있지만, 목줄을 채워두었다.

혈행노조를 포함한 철혈십걸의 삼걸이 바로 그의 목줄이다.

그리고 그 목줄을 풀려고 한다면, 제재가 가해지게 될 것이다.

그걸 모를 철혈방주가 아니다.

그렇기에 혈행노조는 의심스럽지만, 설마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철혈방은 죽었다 깨어나도 혈궁의 상대가 아니다.

혈궁은 사대혈군만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숨은 고수들이 많다.

무엇보다 무림십왕의 혈제가 바로 궁주이지 않은가.

그러니 철혈방은 절대 딴맘 먹을 수 없다.

“그래도 모르니 손을 써둬야겠지.”

명색이 혈궁을 대표해 철혈방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의심이 드는데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준의 지부는 완벽하게 자신의 수중에 있었다.

얼마든지 인력을 뺄 수 있다.

허나 조금 더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혈향(血香), 네가 다녀와야겠다.”

혈궁에서 키운 특급살수이자 혈행노조의 애첩이다.

곁을 떼어놓는 법이 없지만, 반대로 그녀만큼 믿고 맡길 만한 자가 없기도 했다.

혈행노조의 명이 떨어지자 그녀의 기척이 사라졌다.

아무리 그의 애첩이라도 본질은 혈궁의 특급살수였으니 말이다.

“그럼 혈향이 돌아올 때까지 누구 궁둥이를 두들기고 있을까?”

노조(老祖)라고 불릴 정도로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의 호색함은 여전했다.

그런 생각으로 흐뭇해하고 있을 때, 무언가가 문을 부수고 날아왔다.

와장창!

문을 부수고 날아온 건 사람이었다.

“혈향! 네가 어찌… 누구냐!”

“오래 참았다. 이제 이 땅에서 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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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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