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최후(最後)의 통첩(通牒) (1)
“끄응…….”
반후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이백의 차가운 눈빛만으로 그의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허나 그건 단순히 우연이 아닌지, 여기저기서 신음이 들려왔다.
“윽!”
“으…….”
귀인만 해도 철혈방의 대(隊)급에서 감당할 수 없는 강자다.
하물며 이백은 그런 귀인조차 견줄 수 없는 존재다.
무형지기(無形之氣)를 가볍게 흘린 것만으로 모두를 압도할 수 있었다.
“철혈방이라고 했던가…….”
“컥!”
이백이 손을 뻗자 궁기에게 한쪽 팔이 물어뜯긴 곡량의 목이 쥐어졌다.
경지에 오른 허공섭물(虛空攝物)이었다.
초절정고수라면 어느 정도 허공섭물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백의 수법은 그들의 수준을 가볍게 넘어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백의 허공섭물에는 화경고수의 전유물이라는 이기어검의 무리(武理)가 담겨 있으니 당연하다.
“경고를 했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지워버릴 수밖에…….”
“컥! 컥!”
우득!
곡량의 목이 꺾이고 말았다.
어린 제자들이 보고 있기에 잔혹한 행위를 하고 싶지 않았으나 일벌백계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반후 등을 곱게 돌려보냈기 때문인지, 결국 더 많은 자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는가.
제자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매듭을 지을 생각이었다.
“대, 대주님!!”
“젠장!!”
철혼번천대는 곡량의 죽음에 분노를 느꼈다.
허나 사파의 특성인지 목숨을 걸고, 그의 복수를 할 생각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이니까.
“야군아, 금군아…. 우리 아이들을 괴롭힌 대가가 뭔지 알려줘.”
“푸르륵!”
“캬~! 캬~!!”
이백의 말에 야군과 금군의 눈빛이 바뀌었다.
만수문의 제자들은 야수족 출신답게 짐승들과 교감을 잘했다.
게다가 야군과 금군은 문주인 이백의 영수들이니 평소 얼마나 아껴주었겠는가.
그런 아이들을 핍박하려는 자들을 혼내주라는 이백의 허락이 떨어졌는데, 눈빛이 바뀌는 건 당연했다.
퍽!
“고작 미물 따위… 컥!”
“뭐, 뭐야!”
고작 말과 작은 원숭이 따윌 겁먹을 무림인은 없다.
허나 야군과 금군은 어디 평범한 말과 원숭이인가.
야군의 뒷발질에 철혈방도들이 나가떨어졌다.
철혈방도들은 도검을 휘둘렀다.
허나 그들의 계획은 금군에 의해 무산되었다.
“이 쥐새끼 같은 원숭… 큭!”
퍼억!!
금군은 작지만 날렵하고 유연함을 무기로 그들 사이를 헤집었다.
물론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금군은 짐승조차 찢어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다.
그럼 힘이 담긴 권격은 얼마나 더 강력하겠는가.
“컥!”
“으윽!”
야군의 뒷발질과 금군의 주먹질에 철혈방도들은 여기저기 날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애초 그들은 절정급 고수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수들이다.
고작 일류 혹은 그 이하 수준의 무사들이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으… 으…….”
“쿨럭…….”
두 영수가 날뛰기 시작한 지 이다경(二茶頃:30분)도 채 되기도 전에 서 있는 자가 손에 꼽힐 정도가 되었다.
그제야 그들은 그리고 반후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될 존재를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백은 그들을 향해 나직하게 경고했다.
“그만 돌아가라. 그리고 전하라. 내 방문을 기다리라고.”
이백의 축객령에 그들은 오히려 안도했다.
최소한 살아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헐레벌떡 도망칠 때, 이백은 어딘가를 슬쩍 바라봤다.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컥!!”
“귀인, 망량의 사람이오?”
그의 손에 복면을 쓴 자의 목이 쥐어져 있었다.
복면을 썼다는 건, 정체를 숨기겠단 의도다.
그 의도가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백의 물음에 귀인은 고갤 저었다.
“망량은 복면을 쓰지 않소. 도깨비탈이라면 몰라도.”
“그럼… 적이란 뜻이군.”
애초 이백 역시 그리 느꼈기에 제압한 것이다.
복면인은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는 듯 제 목을 쥔 이백의 팔을 다리로 옭아맸다.
그 모습은 연체동물을 보는 듯했다.
다리는 팔의 세 배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복면인은 각력으로 이백의 팔을 부러트리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었다.
이백은 자신의 팔에 조여지는 힘이 점점 강해지는 걸 느꼈다.
외공고수처럼 근육이 우락부락하지 않지만, 이백의 육체가 그들보다 약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외금강신(外金剛身)을 이룬 이백이 아니던가.
아무리 각력이 강하다고 해도 그의 팔을 부러트리는 건 어렵다고 봐야 한다.
“유가밀공(瑜伽密功)?”
야수족만 해도 관절이 꺾일 수 없는 부분까지 꺾이지만, 유가밀공은 아예 뼈가 없다 느낄 정도로 유연한 몸을 만들어주는 무공이다.
중원의 무학과는 그 궤가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유가밀공은 천축무림의 무학이니 말이다.
세외의 출입이 있는 감숙성이라면 몰라도 이곳 귀주성에 유가밀공의 전승자가 있다는 건 충분히 이상한 일이다.
“컥! 컥!”
복면인도 더 이상은 무리인지 컥컥 거렸다.
푹! 푸푹! 푹!
이백의 손가락이 복면인의 혈(穴)을 눌렀다.
몸이 아무리 유연해도 혈마저 없는 건 아니다.
유연했던 복면인의 몸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백은 더 이상 그의 목을 쥐지 않았다.
“소속.”
“…….”
복면인은 묵묵부답을 고수했다.
이백은 다시 물었다.
“소속이 어찌 되는지 물었다.”
“…….”
허나 그는 여전히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입을 열 생각이 없다면 강제로 열 수밖에 없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고통을 주려고 할 때 귀인이 나섰다.
“내게 맡기는 게 어떻소?”
“하실 수 있겠소?”
도깨비탈에 의해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귀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육신을 속속들이 잘 알 뿐만 아니라 정신을 무너트리는 것 역시 능했다.
묘족은 자연, 조상, 귀신 등을 숭배했다.
남만의 백묘가 육신 쪽에 능하다면, 귀주의 흑묘는 정신 쪽에 능했다.
귀인은 복면인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버텨봐라. 버틸 수 있다면…….”
* * *
“이런 병신 새끼…….”
냉혼철장(冷魂鐵掌)은 불같이 화를 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실패했다.
그것도 이번에는 희생도 상당했다.
철혼맹위대 중 멀쩡한 자가 없을 정도이지만, 목숨을 잃은 자는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철혼번천대는 반파되고 대주인 번천쌍검(翻天雙劍) 곡량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이는 철혼당의 전력이 약해졌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컥! 컥!”
“죽어! 그냥 죽어! 이 등신아!”
냉혼철장의 무지막지한 손이 반후의 목을 꽉 쥐었다.
우득! 우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위조차 으깨버리는 냉혼철장이다.
인간의 목뼈 따위 부러트리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비록 냉혼철장보다 약하지만, 반후도 맹위도(猛威刀)라고 불리는 절정도객이다. 저항했다면 이리도 맥없이 절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설마 냉혼철장이 자신을 이리 죽일 줄 몰랐던 탓이다.
허나 그건 냉혼철장도 마찬가지였다.
“헉… 헉… 헉…. 젠장!!”
너무 흥분한 탓에 반후를 죽였지만,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깨달았다.
이미 곡량이 적의 손에 죽었다.
헌데 제 손에 또다시 절정고수를 죽였다.
철혼당의 전력이 반토막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결과에 자신이 일조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짜증이 치밀어 왔다.
“그래, 현월(玄月)이라면… 현월이라면…….”
냉혼철장은 반후만 움직였던 게 아니다.
자신의 심복인 현월 역시 움직이게 했다.
여지껏 한 번도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그다.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허나 마음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현월에게 임무를 맡기고 한 번도 이러한 마음이 든 적이 없던 만큼 냉혼철장은 당혹스러웠다.
그 불안함의 정체를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 당주님!”
“감히! 본 당주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더니, 죽고 싶나보구나!”
냉혼철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신이 누군가.
철혼당의 당주이자 철혈십걸이지 않는가.
같은 십걸이라도 이러한 무례를 범할 수 없다.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던 냉혼철장은 차라리 잘 되었다 생각했다.
알아서 화풀이 대상이 나타나 줬으니 말이다.
허나 그는 감히 자신이 화를 내는 게 제 할 말만 했다.
“스, 습격입니다!”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누가 감히 대(大) 철혈방에 습격한단 말이더냐!”
철혈방은 귀주제일세(貴州第一勢)다.
물론 실제로는 흑림이 그들의 세력을 상회하지만, 이민족의 집단인 만큼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흑림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그러다 보니 철혈방을 귀주제일로 보는 편이었다.
그런 철혈방이 습격당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저, 정말입니다! 빨리 나가보셔야 합니다!”
“…흑림, 그 잡종이더냐.”
이쯤 되니 냉혼철장도 정말 습격을 당했다는 걸 인지했다.
그의 입에서 거론된 건 바로 흑림(黑林)이었다.
비록 과소평가했지만 철혈방과 한판 붙을 만한 곳은 그들 이외에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철혼맹위대가 묘족과 더럽게 엮였다는 걸 알고 있으니 흑림을 떠올리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 그게 아닌 거 같습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아닌 거 같다는 건 뭐야!”
아닌 거 같다는 말에 냉혼철장은 살짝 맥이 빠졌다.
흑림이 아니라면 자신과 연관된 일은 아니라 판단한 탓이다.
“하, 한 명입니다! 그것도 묘족이 아닌 중원인입니다!”
“이, 이! 개 같은 새끼가 지금 나랑 장난하나!”
냉혼철장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과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철혈방은 단 한 명이 습격했다는 걸 어찌 믿겠는가.
냉혼철장은 수하를 때려죽일 기세였다.
그는 겁이 덜컥 났는지 빠르게 해명했다.
“저, 정말입니다! 철벽당이 개작살 아니, 뚫렸습니다! 미, 믿어주십시오!”
“금종철벽은 어디 가고, 날 찾아와!”
철벽당(鐵壁堂)은 철혈방의 경비를 담당하는 집단이고, 금종철벽(金鍾鐵壁)은 그런 철벽당의 당주다.
외공만으로 철혈십걸에 들어온 입지적인 인물이다.
냉혼철장과 그를 합쳐 철혈방의 창과 방패라고 부를 정도다.
그런 금종철벽이 있다면 습격자 따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 당주님께서 이미 다, 당하셨… 컥!”
“어디서 개소리를 하는 거야! 금종철벽이 당하다니!”
냉혼철장에게 멱살이 잡힌 그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숨넘어가는지 컥컥거렸다.
냉혼철장은 그를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어떤 미친놈이 저런 놈을 들인 거야!”
냉혼철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믿기지는 않지만, 설마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허나 그는 몰랐다.
자신이 불러들인 화가 철혈방을 어찌 만들었는지를…….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