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귀주 묘족(貴州 苗族) (2)
“사부님, 어떻게 할까요?”
언제 움직였는지 강우혁이 버럭 화를 내던 장한의 팔을 꺾어 제압했다.
그의 날렵한 몸놀림에 야수족 출신 소년, 소녀들은 감탄했다.
자신들보다 서너 살이나 어리고, 체격도 작았으나 그 솜씨가 대단했다.
괜히 소문주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전사의 의식을 치르지 않은 햇병아리들에 불과했지만, 체구는 타고났다.
물론 그렇기에 만수문의 제자가 될 수 있던 것이기도 하다.
전사의 의식을 치르고 야수화를 익히게 되면 야수족에서 나갈 수 없다.
야수화(野獸化)는 야수족의 비기이니 때문이다.
동료가 제 나이의 반도 안 될 거 같은 어린 소년에게 제압되자 동료로 보이는 다른 자가 당황하며 버럭 소릴 질렀다.
“이, 이 미친 애새끼… 컥!”
“아저씨, 나쁜 말하지 마세요!”
또 다른 장한 역시 제압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를 제압한 자가 가장 어린 소녀, 강우희라는 점이다.
강우혁이야 그렇다 치고, 그녀마저 이 정도일 줄 몰랐기에 다들 놀라면서 동시에 동경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자신들도 저리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말이다.
이를 눈치챈 이백이 나직하게 말했다.
“너희도 저리될 수 있다. 아니,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허나 무공을 익히기에 늦은 편이니 더 고생을 하겠지.”
“고생쯤은 얼마든지 할 각오가 되었습니다, 문주님!”
“맞습니다, 문주님!”
소년, 소녀들의 열의가 대단했다.
설표족 출신 아이들도 그렇지만, 대호족 내에서 소외되었던 아이들은 눈빛이 상당히 뜨거웠다.
그간의 서러움은 그들에게 큰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이를 봤는지, 술상을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에라이, 나가 뒈져라, 병신 새끼야! 애새끼들 하나 처리 못 해서 뭐 하는 거야! …뭐해!”
“죄송합니다, 형님!”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걸 잊었는지, 또 조장에게 형님이라고 불렀다.
허나 그도 이번만큼은 지적하지 않았다.
나머지 장한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백 일행에게 다가왔다.
이백은 나직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봐두거라. 앞으로 너희가 익힐 백수십팔식(百獸十八式)이라는 무술이다.”
“예! 문주님!”
백수십팔식(百獸十八式).
장철우에게 배운 풍운팔식을 재조립해 만든 열여덟 개의 식(式)이다.
무공이라 칭하기엔 손색이 있지만, 권각술의 기본이 모두 들어가 있어서 수련용으로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숙달만 된다면 왈패 서넛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다.
강우혁과 강우희도 백수십팔식을 배웠고, 이제 야수족 출신 제자들도 배우게 될 예정이다.
이백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강씨 남매에게 제압된 장한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무공을 어느 정도 익힌 자였다면 그 모습을 보며 똥 밟았다는 걸 깨닫겠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그 정도의 안목이 없었다.
“문주(門主)? 개나 소나 문주라고 하네!”
“잘 보거라, 백수십팔식의 여섯 번째 식이다.”
장한은 언성을 높이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름 힘 좀 쓰는지 평범한 범부라면 위협이 될지 모른다.
허나 이백은 평범한 범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주먹을 슬쩍 피해 품에 파고든 후, 북부에 권격을 꽂았다.
그 충격에 장한은 튕겨 나가듯 나가떨어졌다.
이백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여섯 번째 식의 핵심은 회격(回擊)이다. 첫 번째 식의 응용으로, 말 그대로 반격이다. 힘의 분배는 물론 상대와 나의 간격과 반응 등을 얼마나 잘 잡느냐에 따라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다. 저렇게 말이다.”
“우와!”
나가떨어진 장한은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백이 힘 조절을 해서 저 정도로 그쳤지, 내공은커녕 제대로 힘을 썼다면 내장이 파열되었을 것이다.
그도 작은 체구는 아니지만, 무식하게 근육만 큰 것은 아니다.
야수족 출신답게 체구는 곧 힘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로서는 매우 신기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아작이 난 동료를 본 또 다른 장한이 성이 났는지 품에서 날이 잘 선 칼을 뽑았다.
단도(短刀)라고 하기엔 길고, 장도(長刀)라고 하기엔 짧은 칼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이번에는 아홉 번째… 아니, 여덟 번째 식을 보여주마.”
이백은 자신을 향해 칼이 휘둘러지고 있음에도 놀란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기에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런 모습에 칼을 든 장한은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힘껏 칼을 휘둘렀다.
이백은 자신을 향한 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장이라도 이백의 손이 베일 거 같은 위험한 상황이다.
야수족 출신이라도 실전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당장이라도 이백의 손이 베일 거 같아서 가슴이 철렁했다.
허나 그래도 선배이자 소문주라고 강씨 남매는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퍽!
“어엇!”
“여덟 번째 식과 아홉 번째 식은 비슷하다. 여덟 번째 식은 이렇게 상대 무기의 면을 튕겨내 경로를 이탈시키는 것은 물론 균형을 무너트리는 게 핵심이고, 아홉 번째 식은 무기의 면을 타고 흘리듯 경로를 바꾸는 것이다.”
이백은 손등으로 장한의 칼면(刀面)을 쳐냈다.
그의 설명대로 장한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온 힘을 다해 칼을 휘두른 만큼, 이것만으로도 당연스럽게 균형을 잃은 것이다.
“단, 손에 베일 수 있기 때문에 팔식(八式)과 구식(九式) 모두 완벽히 숙달되기 전에는 흉내도 불허한다. 알겠느냐.”
“예! 문주님!”
그러는 사이, 휘청거렸던 장한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자신을 제압할 수 있음에도 균형을 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자신 따윈 언제든 제압할 수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 개… 큭!”
“다섯 번째, 오식(斬式)의 핵심은 나(拿)다. 조금 전, 소문주들이 시전한 게 바로 오식인 셈이다. 이후 배울 금나수(擒拿手)의 기초인데, 자칫 상대를 크게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어설프게 익히면 차라리 시전하지 말거라.”
이백이 칼을 휘두르려는 장한의 손목을 잡아 꺾어버렸다.
뼈나 인대를 상하지 않게 하면서 고통만 주어 가볍게 제압했다.
이백은 그의 귓가에 나직이 말했다.
“운 좋은 줄 알거라. 무공을 익혔다면 손목을 부러트렸을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이백의 말이 농이 아님을 깨닫고 등에 식은땀을 흘렸다.
손에 장애라도 생기면 이쪽 업계에서 매장되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몸이 가장 큰 자신인 곳이 바로 그쪽 업계였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조장이란 사내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 이 등신 같은 새끼들. 저것들을 믿고 언제 대주(隊主)가 되고 당주(堂主)가 되겠어?”
대주, 당주를 언급하는 걸 봐선 제법 체계가 있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껄렁껄렁 대지만, 보보가 제법 균형 잡힌 게 무공을 익힌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삼류는 벗어난 거 같았다.
“이런 썅, 이제 보니 묘족 새끼들이잖아? 흑림 소속이냐? 그럼 대(大) 철혈방의…….”
“처음 들어보는군.”
이백은 관심 없다는 듯 사내의 말을 끊어버렸다.
무시를 당하자 그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앞서 상대한 장한들과 달리 제법 형(形)을 취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권법을 익혔다는 뜻이다.
“이게 형님께 전수 받은 철혈권(鐵血拳)이다!”
제법 그럴듯한 권법이었다.
만약 고수가 펼쳤다면 상당히 위력적일 거 같았다.
허나 그는 철혈권의 진짜 위력을 끌어내기에 많이 부족해 보였다.
이백은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퍽!
“윽! 아아악!!”
“못 들었나 보군. 무공을 익혔다면 손목을 부러트렸을 거라고 말이야.”
사내는 제 주먹을 부여잡고 몸을 대굴대굴 굴렀다.
이백이 그의 주먹을 맞받아쳤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면서 더 약한 사내의 주먹이 으스러지고 말았다.
그에 비해 이백의 주먹은 멀쩡했다.
조금 전, 이백에게 칼을 휘둘렀다가 손목이 꺾였던 장한은 그 모습을 보곤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도 똑같은 꼴을 당할 뻔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백은 그들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꺼져, 만약 한 번 만 더 눈에 띄면 그땐 장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한 몇이나 때려눕히고, 한 명은 주먹까지 으스러졌는데 장난이라니.
사지 멀쩡한 장한들은 허리 숙여 몇 번이나 인사하며 물러났다.
그때 이백의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저것도 데려가야지!”
“죄, 죄송합니다!”
철혈방 조장은 수하들에게 업힌 채 도망쳤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취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객잔을 빠져나갔다.
객잔주는 안절부절못하며 음식을 내왔다.
“대, 대인,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놈들 철혈방 잡것들입니다.”
“아까부터 철혈방이니, 흑림이니 얘기하는데 이곳을 관장하는 흑도요?”
이백의 물음에 객잔주는 조심스럽게 설명해주었다.
귀양(貴陽) 주변 일대만이 아니라 귀주 전역에 영향력을 끼치는 두 개의 집단이 있다.
하나는 철혈방(鐵血幇)으로, 귀주 제일의 사파방파다.
기루, 도박장, 염왕채, 밀염 등 돈이 되는 건 모든 걸 하는 이들이다.
그에 비해 흑림(黑林)은 정파나 사파 그렇다고 흑도라고 표현하기 애매한 집단이다.
그들이 흑림이라고 불린 것은 구성원 때문이다.
묘족. 정확히는 흑묘였다.
묘족은 남만에만 거주하는 게 아니다.
귀주, 광서, 호남 등에도 그 수가 적지 않다.
특히 귀주는 남만보다 묘족의 수가 더 많다고 알려질 정도다.
그런 귀주의 묘족은 흑묘(黑苗)라 불렸다.
흑묘는 남만의 화묘, 백묘와 달리 중원 친화적이지만. 그렇다고 차별을 받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런 자신들을 지키고자 만들어진 집단이 바로 흑림이다.
“이런 말 드리기 그렇지만, 식사만 마치시면 빨리 떠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분명 복수하겠다고 동료들을 데려올 겁니다.”
“충고 고맙습니다. 허나 괜찮습니다.”
객잔주는 나름 생각해서 해준 말인데, 이백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안절부절못했다.
자칫 객잔에서 상 치를 판이다.
게다가 객잔 역시 많이 부서질 수 있다는 생각이 눈앞이 깜깜했다.
그가 알 리가 없으니 당연했다.
눈앞의 사내가 철혈방 전체가 달려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백호왕(白虎王)이라는 것을 말이다.
당연하게도 이 일은 철혈방의 귀에 들어갔다.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