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귀주 묘족(貴州 苗族) (1)
“흡흡… 하…하…….”
노승이 가부좌를 튼 채 기이하게 숨을 쉬었다.
설군과 일전을 치른 좌법왕이었다.
승기를 잡긴 했지만, 쉬운 싸움은 아니었는지 좌법왕은 그곳을 벗어난 후 운기행공부터 했다.
혈색이 도는 것을 보니 회복된 듯싶었다.
눈을 뜨는 순간, 혈광이 번쩍였다.
“앙칼진 고양이 새끼, 다음에는 가만두지 않겠어.”
불문의 노승이건만, 좌법왕에게선 자비라는 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혈뢰음사는 천축불교의 본산인 뇌음사에서 파생된 집단이다.
물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나오고 뱀이 마시면 독이 나오든 아무리 그 뿌리가 불문이라도 그 결과는 너무도 달랐다.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좌법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환영진을 펼쳐놨는데, 알아차린 자가 있다? 게다가… 독(毒)?”
운기행공 중에는 움직일 수 없기에 보통 호법을 세운다.
허나 좌법왕은 홀몸이기에 환영진으로 주변을 숨겼다.
그럼에도 지척까지 접근했다면 우연이라기보단 알고 찾아왔다는 게 더 적합하다.
게다가 미비하지만, 독이 느껴졌다.
이는 누군가 하독(下毒)한 흔적이라 생각하긴 어렵다.
환영진을 거두자 이순쯤 되는 노인이 보였다.
“끌끌… 오래 걸리셨소이다.”
“교룡(蛟龍)…….”
사천당가의 팔대금독과 비견된다는 오독문의 오독의 하나(五毒)인 칠보추혼사(七步追魂蛇).
노인은 칠보추혼사의 가문인 교룡가의 수장, 교룡(蛟龍)이었다.
오독의 일인이 직접 움직였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문주께서 전하라 하셨소.”
교룡은 작은 상자를 건넸다.
좌법왕은 상자를 열자 작은 옥병이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이를 본 좌법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어찌 두 병이지.”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세 분께서 내어주지 않으시더이다.”
작은 옥병에 든 것은 오독 중 두 가지 독이 소량씩 담겨 있었다. 너무 적다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하나는 극독이다.
작은 옥병 하나에 담긴 독으로 수천 명을 죽일 수 있고, 화경고수조차 중독시킬 수 있다.
그런 극독이 두 가지나 상자 안에 담겨 있으니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허나 좌법왕은 성이 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교룡은 긴장한 기색 하나없었다.
“약조가 틀린데… 본 법왕을 기만한 대가는 생각하지 않았나 보군.”
“좌법왕이야 말로 본문은 너무 우습게 보신 거 아니오! 화룡가를 눌러놓겠다 해놓고, 어찌 독만 바짝 올리게 하셨단 말이오! 그래놓고 오독을 모두 내놓으라니! 염치가 있는 것이오! 없는 것이오!”
교룡은 독기(毒氣)를 바짝 끌어올렸다.
그의 독기에 닿은 흙이 녹아 내렸다.
교룡의 숨과 피 그리고 기에 칠보추혼사의 독이 담겨 있기에 내공을 끌어올린 것만으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하다 해서 두려워할 좌법왕이 아니다.
“네놈을 쳐죽이고, 독왕에게 따지겠다!”
“흥! 문주께서 어찌 양보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본문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마!”
좌법왕의 혈기와 교룡의 독기가 난폭하게 휘몰아쳤다.
두 기운의 충돌만으로 주변이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어느 한 명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남만에 외인이 들쑤시는 게 고까웠던 교룡과 고작 묘족 나부랭이 따위가 주제도 모르는 게 불쾌한 좌법왕.
둘의 충돌은 예견된 일이었다.
콰쾅!!
“쿨럭… 젠장…….”
입가에 묻은 피를 닦는 교룡의 입에선 거친 욕설이 나왔다.
좌법왕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 몰랐던 교룡의 눈빛에 낭패가 어려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본 법왕에게 까불었느냐.”
“닥쳐라!”
조소 어린 좌법왕의 말에 교룡은 분노했다.
하지만 달려들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고수란 걸 인정한 탓이다.
“죽어서야 정신을 차릴 놈이군.”
좌법왕의 손이 핏빛으로 변했다.
이미 몇 번이나 당해봤기에 교룡은 두려움이 일었다.
그렇다고 굴복하기에 오독의 일인이라는 자존심은 너무도 높았다.
그 모습에 좌법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좌법왕이 손을 쓰려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쯤 하는 게 어떻겠소, 좌법왕.”
“독왕…….”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독문주 독왕이었다.
그를 본 좌법왕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긴장했다.
오독이라고 해도 다 같지 않다.
그가 오독문의 문주인 이유이기도 하다.
“교룡 장로께 심한 거 같소만?”
“장난을 친 건 귀문(貴門) 같은데?”
싸늘한 눈빛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독왕이었다.
“군사께도 그거면 된다 했으니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떻소?”
“언제 법황께 연락을…….”
독왕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도 의외였다.
언제 신궁의 군사 혈불과 연락을 주고받았단 말인가.
좌법왕은 불쾌해졌지만, 혈불이 허락했다고 하니 더 이상 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었다.
“남들의 눈이 띠어 좋을 게 없을 거 같소이다.”
“…….”
굳이 대답할 생각은 없다는 듯 독왕이 축객령을 내렸다.
좌법왕은 불쾌했는지 입을 다문 채, 물러났다.
고작 몇 마디로 저 괴물을 물리친 독왕을 보며 교룡은 다시 한번 경외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독왕은 교룡을 부축했다.
“교룡 장로, 몸은 괜찮소?”
“괜찮습니다, 문주님.”
교룡은 내상을 입긴 했지만, 깊지는 않았기에 얼마간 정양하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독왕은 더욱 확고하게 교룡의 마음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독왕은 속으로 득의했다.
‘나쁘지 않군.’
독왕과 교룡이 돌아가자, 떠난 줄 알았던 좌법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는 좌법왕의 눈빛에 불쾌감이 어려 있었다.
“여우 같은 놈…….”
독왕을 향한 좌법왕의 평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가 진즉에 나타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교룡이 위기에 빠져서야 모습을 드러내 그에게 은혜를 입혔다.
좌법왕을 통해 교룡의 기를 꺾고, 동시에 경외감까지 얻었다.
그걸 알면서도 좌법왕은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화경에도 못 오른 잡것이거늘, 우습게 볼 수 없군.”
겉보기에는 교룡만 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좌법왕도 무사한 건 아니었다.
교룡의 독에 중독되어 계속 싸우면 지지는 않겠지만, 좌법왕 본인도 멀쩡히 걸어 나가긴 어려울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독왕까지 상대한다?
아무리 좌법왕이라고 힘들다.
그렇기에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언젠가 오늘 빚을 갚아주마.”
* * *
“어서오…이힉! 사, 살려주십시오!”
손님을 맞이하려던 점소이는 기겁했다.
새하얀 표범들과 호랑이를 본 탓이다.
“지시하지 않으면 사람을 물지 않으니, 걱정 말게.”
“…….”
사내의 말에도 점소이는 두려운지 정신을 못 차렸다.
보다 못한 사내가 점소이의 뺨을 가볍게 쳤다.
찰싹!
“정신이 드는가? 훈련이 잘된 녀석들이 물라고 하지 않으면 얌전하니, 그렇게 두려워하지 말게.”
“아, 알겠습니다요.”
점소이는 여전히 겁을 먹고 있었다.
눈치로 먹고사는 점소이답게 사내가 물라고 명령하면 표범이 자신에게 달려들 거란 속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몇 번이나 거절당한 탓에 사내는 이러한 말을 한 것이다.
“형운이와 형철이는 설표들을 풀어서 짐을 지키게 하거라.”
“예, 문주님!”
소형운, 소형철.
그들은 설표족 출신의 소년들이다.
이백 일행이 대호족의 부락을 떠날 때, 소찬영이 찾아왔다.
그의 곁에는 이남이녀가 있었다.
대호족의 아이들을 거뒀다는 걸 들었는지, 설표족 출신들에게도 기회를 달라는 청이었다.
이미 예정되지 않았던 군식구 때문에 고민하던 차였기에 거절하려 했다.
헌데 타의가 아닌지 아이들의 표정을 하나같이 상기되어 있었다.
이백에 대해 들은 것이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거절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백은 그들 역시 만수문의 제자로 받아들였다.
두 소년은 수레를 끌던 설표 두 마리를 풀어주었다.
사람 손에 길들여진 설표답게 풀어주었다고 해도 도망치지 않았다.
“들어가자꾸나.”
“예, 문주님.”
이백의 말에 아이들은 공손히 뒤를 따랐다.
객잔은 마을에서 살짝 떨어진 곳이다.
마을로 향하는 여행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객잔인 듯했다.
그럼에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점소이는 아이들이 많은 걸 봤는지, 넓은 자리를 내어주었다.
“넉넉하게 준비해주고, 설표들이 먹일 고깃덩이도 준비해주게. 직접 주기 두려우면 이리 가져오게. 아이들에게 대신 맡길 테니까. 그리고 이거…….”
“가, 감사합니다.”
이백은 철전 몇 개를 쥐어주자 점소이는 언제 겁먹었냐는 듯 허릴 몇 번이나 숙이곤 신나서 돌아갔다.
아이들은 남만을 벗어난 지 열흘도 더 지났음에도 여전히 신기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른들도 평생 남만을 벗어날 일이 없는데, 아이들이라면 오죽하겠는가.
“어이~ 왕씨, 별일 없지?”
“아이고~! 어르신 오셨습니까요. 쇤네에게 별일이 있겠습니까요. 어르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입죠.”
오륙십은 될 법한 초로의 객잔주(客棧主)가 불혹도 안 될 것 같은 장한들에게 쩔쩔맸다.
이곳만의 일이 아니다.
어딜 가나 흑도나 사파인이 민초의 고혈을 빼먹는 건 매한가지다.
아니, 정파 역시 합법적으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돈을 받는다.
민초의 입장에선 무림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해악인 셈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힘이 없는 게 죄이니 말이다.
장한들은 이 근방에서 콧방귀를 쓰는지, 취객들도 그의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왕씨, 출출한데 먹을 것 좀 내오지?”
“아이고~ 쇤네가 눈치가 없었습니다요. 거하게 한 상 차려오겠습니다요.”
객잔주는 굽신굽신거리곤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 밖에 위치한 작은 객잔에 총관이나 숙수가 따로 있을 리가 없다.
대부분 주인이 직접 하거나 부인이 요리를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허나 귀양으로 오가는 길손들을 주머니 상대하는 객잔 치곤 제법 그럴듯하게 나와서 나름 손님을 잘 받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귀양 안에 있지 않은 객잔임에도 그들이 직접 돈을 걷으러 온 거 아니겠는가.
그들이 술상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스윽 살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오는 무리가 있었다.
이립쯤 되어 보이는 사내와 덜 장성한 청년들과 여인들.
“오호~ 취접루에 계집이 부족하다고 했었지?”
“예, 형님.”
“아, 새끼가 조장님이라고, 조장님! 아직도 왈패인 줄 아냐!”
“죄, 죄송합니다! 혀… 아니, 조장님!”
무리의 우두머리쯤 되어 보이는 자가 버럭 화를 내자 객잔 내가 조용해졌다.
이럴 때 괜히 눈에 띄면 줄초상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눈짓하자 욕을 먹은 장한이 어딘가를 보곤 뭘 말하려는지 깨달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한 둘이 어디론가로 향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바로 이백 일행이 있는 자리였다.
“형님이 보자신다, 따라와.”
“…….”
장한은 이백 일행. 정확히는 그 자리에 있는 소녀들에게 한 말이었다.
허나 소녀들은 눈만 꿈뻑일 뿐, 일어난 기색도 없었다.
그저 이백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점소이가 내온 식전차를 호로록 마실 뿐이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장한들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들이 미쳤… 컥!”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