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강상의 최후 (3)
쾅! 쾅! 쾅!
번쩍이고 잠시 후, 폭음이 울려 퍼졌다.
얼마나 빠른지 소리가 움직임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이미 육안으로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넘어섰다는 뜻이다.
“미친! 야수왕께서도 저 정도는 아니었… 왜?”
“어디 감히 그분을 입에 담아!”
“헙!”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대호족 전사는 입을 다물었다.
허나 다들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야수왕이라고 불리는 전대 대족장은 역대 손꼽히는 강자였다.
물론 그러한 칭호는 힘만이 아니라 위엄과 지도력 역시 함께 평가된 것이긴 하다.
헌데 그것을 떠나 강상의 움직임은 전대 대족장인 야수왕을 넘어서 있었다.
그러니 다들 간담이 써늘했다.
‘강할 줄은 알았지만… 대체 얼마나 강한 건가.’
강망 역시 놀라고 있었다.
허나 그가 놀란 부분은 강상의 강함도 강함이지만, 그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은 이백이었다.
그제야 강우혁이 야수족의 대족장을 거부하고, 그의 제자임을 고수하는 이율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야수족 시조의 핏줄을 중시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자를 우대하는 풍속이었다.
이백의 강함은 존중을 넘어 경외할 만했다.
“큭!”
치열한 격전을 치르고 있지만, 강상은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걸 모를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대한 힘.
이 힘이라면 오독문을 무너트리고, 남만을 일통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고작 한 놈을 쓰러트리지 못하고 있었다.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과 야성만 남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상은 점점 더 짐승에 가까워졌다.
강상은 포효하며 야성을 끌어올렸다.
“크앙! 크앙! 크아아앙!!!”
“매가 아직도 부족한가.”
이미 야수화… 아니, 야수 그 자체가 된 강상은 강했다.
또 한명의 흉수(凶獸)가 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허나 강해진 건 강상만이 아니다.
패황과의 일전을 통해 이백 역시 한층 성장했다.
백호왕이란 별호를 얻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이제(二帝)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강상은 상대를 잘못 만난 셈이다.
그걸 증명하듯 이백의 움직임이 변했다.
쾅! 콰쾅!
“컥!”
강상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치열한 접전이라 생각했으나 야수(野獸)가 된 강상을 이백이 압도하기 시작했다.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상의 몰골은 엉망이 되었다.
특히 검붉었던 피부에 붉은 기가 많이 옅어졌다.
강상은 마른기침을 했다.
“쿨럭… 젠장… 네놈… 대체 뭐야!”
“우혁이와 우희의 사부요.”
입가에 묻은 피를 훔치던 강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아니, 애초 그런 걸 물은 것도 아니었다.
“썅! 그게 누군데!”
“듣지 못했나 보군. 당시의 조카인데 말이오.”
이백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강상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비록 대족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여러 형제를 죽였지만, 조카들까지 죽인 건 아니었다.
그리고 조카들의 이름쯤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에 우혁, 우희라는 이름을 가진 조카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개소리, 그딴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고. 조카놈들이 너 같은 중원놈의 제자란 말은 더더욱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어디서 개소리야!”
“강영.”
“……!!”
강상의 눈이 커졌다.
결코 잊을 수 없던 이름이다.
자신만 아니었다면 대족장의 자리에 올랐을지 모를 막냇동생이니 당연했다.
그를 죽이지 못하고 놓친 게, 영 찜찜했는데 결국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날 죽이고 내 자리를 탐하겠다?”
“우혁이는 거절했소. 이미…….”
“……!!”
이백의 말에 강상의 눈은 또다시 커졌다.
거절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다르게 말하면 이미 제안을 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강상은 떨어져 있는 강망, 강재를 죽을 듯 노려봤다.
“노망도 정도껏 나야지! 야수족의 배신한 놈의 애새끼를 대족장으로 삼으려고 해!”
“노망은 당신이오. 좌법왕, 그자의 손에 놀아나 야수족을 팔아버린 주제에.”
그는 눈에 보일 정도로 동요했다.
이백이 좌법왕과의 거래를 알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탓이다.
물론 이백은 둘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신궁의 방식과 오독문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강상의 행동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 찔러 본 것에 불과했다.
헌데 이리 동요하니 대답은 들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반응은 이백에게 확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대호족 전사들에게 충격을 주기 부족함이 없었다.
“우, 우리 판 거야!”
“저 개 같은 놈이!!”
대호족 전사들은 흥분해 당장이라고 달려들 기세였다.
대족장의 권위는 적대적이고, 반발 역시 압도적인 힘으로 누르면 되기에 민심 따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강상이다.
그렇다고 반발하는 모든 전사들을 죽일 수는 없다.
“무슨 개소리야! 누가 버려!”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신에게 좋을 게 없다 생각한 강상이 다시 이백에게 달려들었다.
근접한 거리인 만큼 이백이라도 피하기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허나 이백은 피할 생각이 없었다.
맞받아치려는 순간, 이백을 향해 뻗은 팔이 꿈틀거리더니 폭발했다.
그로 인해 피가 비산하고 허연 뼈가 살짝이나마 보였다.
“큭! 크아악!!”
“음?”
비명과 함께 바들바들 떠는 강상의 모습은 누가 봐도 심상치 않았다.
이백은 그와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혈백환…인가?”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지.”
이백의 중얼거림을 들은 강상의 눈이 커졌다.
그의 반응에 뭐가 어떻게 된지 알 수 있었다.
이백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예전에 혈백환을 복용한 흑백쌍괴와 싸운 적이 있지. 선천진기를 사용해 엄청난 힘을 발휘해 좀 위험했지. 하지만 약효가 떨어진 후 절명했던 게 기억하는군. 헌데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 이런… 개… 같은… 새…끼!”
강상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나왔다.
그의 욕설이 향한 건 이백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혈백환을 준 좌법왕을 향해서였다.
그제야 강상은 자신이 끝까지 놀아났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 죽어가는 걸 느낀 만큼, 이백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강상은 분하고 원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백은 여기서 부채질을 했다.
“오독문주가 화룡가를 눌러놓기 위해 좌법왕이라는 자와 손을 잡은 게 아닌가 싶소.”
“이 개… 커억!”
강상의 가슴 쪽에서 피가 터졌다.
좌법왕만이 아니라 오독문주까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말에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흥분하니 가슴의 울화가 커지며, 또다시 혈백환의 부작용에 의해 폭발한 것이다.
이백은 그가 괴로워하며 자멸하라고 이러한 말을 한 게 아니다.
“좌법왕, 그자 어디에 있소?”
“그…놈은…….”
강상은 눈을 부릅뜬 채 숨을 거두었다.
자신이 자극한 탓에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강상이 죽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어쩌겠는가.
죽은 자를 되살릴 방도 따윈 존재하지 않으니.
허나 이백의 시선이 제법 먼 어딘가를 향했다.
‘늦었군.’
희미하게나마 느낀 시선이 사라졌다.
쫓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백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방심했군. 설마 이 거리에서 시선을 느꼈을 줄이야.”
족히 삼백 장(丈)은 더 떨어진 거리였다.
제 삼의 눈이라는 혈목(血目)을 개안한 덕분에 먼 거리에서 훔쳐보는 게 가능했다.
혈목은 혈뢰음사의 비술 중 하나였다.
“중원의 애송이라고 방심하면 안 되겠어.”
곤륜의 일도 있었고 해서 벼르고 있었으나 조금 전, 강상을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보인 이백을 보며 좌법왕도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
허나 말 그대로 인정이었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 생각하지 않았다.
혈뢰음사의 마공을 계승한 자로서 그 정도 자부심은 당연했다.
중원무림에 소림이 있다면, 천축무림에는 대뢰음사와 소뢰음사가 있다.
견원지간인 대뢰음사와 소뢰음사가 손을 잡게 만들었던 혈뢰음사다.
그들의 마공과 사술이 어찌 가볍겠는가.
“궁기는 아쉽지만, 오독… 음?”
혈불의 명은 야수족의 수호신 궁기를 군사전의 비밀병기로 삼는 것과 야차왕의 제강에 사용될 오독(五毒) 입수였다.
야수족과 달리 오독문은 만만치 않았다.
이미 혈불과 어느 정도의 선이 닿긴 하지만 무작정 오독을 입수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오독문주 독왕(毒王)과 거래를 했다.
거슬리는 화룡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조건으로 독왕가의 ‘금관오공(金冠蜈蚣)의 독’과 교룡가의 ‘칠보추혼사(七步追魂蛇)의 독’ 등 오독을 넘겨주기로 말이다.
어차피 주목적은 오독이었기에 임무는 성공한 셈이다.
“이런! 아니, 차라리 잘 된 건가!”
백광이 번쩍였다.
웬만한 고수라도 백광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고 쾌속했다.
허나 좌법왕은 혈목을 개안했다.
혈목은 먼 거리만이 아니라 빠른 물체를 포착하는 것 역시 가능했다.
백광의 정체는 바로 설군.
좌법왕의 존재를 눈치챈 설군이 움직였던 것이다.
이미 강상과의 전투로 범상치 않은 영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혈불이 원하는 궁기를 대신할 만한 영물이 제 발로 왔는데, 좌법왕으로서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불청객이 쫓아오기 전에…….”
이백과의 거리를 제법 멀지만, 너무 지체하면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좌법왕은 상대가 일개 미물이지만,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공산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좌법왕의 두 손이 거대해졌다.
거수(巨手)는 핏방울이 당장이라도 뚝뚝 떨어질 거 같은 검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혈수인(血手印)!”
대뢰음사와 소뢰음사에 의해 멸문 직전에 몰린 혈뢰음사가 천축을 도망친 후 몸을 숨긴 곳은 바로 서장이었다.
서장에는 포탈랍궁이라는 거대한 밀종이 장악하고 있었다.
단순히 종교로서만이 아니라 서장 전체를 영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살아있는 생불로 불리는 대법왕이 그런 포탈랍궁을 이끌고 있다.
그런 서장에서 다시 뿌리를 내린 혈뢰음사는 포탈랍궁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혈뢰음사의 법황이라는 직위는 물론 좌우법왕 역시 그들에 영향을 받은 셈이다.
혈수인은 바로 포탈랍궁 대표적인 절학 대수인(大手印)을 혈뢰음사의 마공에 접목해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젠 혈뢰음사의 대표 마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연히 그 위력은 가공하다.
“크아앙!!”
설군은 자신을 향해 내려치는 혈수인을 보며 포효했다.
쾅!!
핏빛의 거대한 손이 설군을 압살시키기 위해 내리찍었다.
그로 인해 바닥에 거대한 손바닥 자국(掌痕)이 생겨났다.
“호락호락하지 않단 말이지!”
일수(一手)만으로 압살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도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아예 피해낸 건 계산 밖이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설군이 반격을 시작했다.
“크, 아아앙!!!”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