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강상의 최후 (2)
고함에 수십의 전사들이 반으로 갈렸다.
그 사이에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 네놈이 어떻게… 누구냐! 감히 죄인을 풀어준 자가!”
“후후… 감히 왕의 앞에서 죄인을 운운하다니, 죽을 때가 되었군. 강망.”
뇌옥에 있어야 할 강상이 빠져나온 모습에 강망이 노기를 드러냈다.
그는 물론 임시로 대호족을 이끌고 있는 강씨 삼형제는 강상이 자력으로 뇌옥을 빠져나왔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지근맥이 끊은 이상 자력으로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상! 네놈이 아직도 우리 야수족의 대족장이라 생각하느냐!”
“대족장? 아니, 난 왕이다! 야수왕!”
힘이 실린 강상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대체 무얼 믿고 저런 헛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허나 발끈한 강재가 손도끼를 던졌다.
빠름이야 투창이나 비도보다 못하지만, 그 위력은 황소만한 멧돼지의 머리도 두쪽 내버릴 정도다.
손도끼 다루는 강재의 솜씨는 야수족 전체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무섭게 허공을 가른 손도끼는 강상의 머릴 두쪽 갤 기세였다.
퍽!
철로 만든 손도끼이건만, 형태를 잃고 부서졌다.
강상이 휘두른 주먹 때문이다.
이를 본 강씨 삼 형제는 물론 대호족 전사들은 모두 경악했다.
“……!!”
“마, 말도 안 돼!!”
경악하는 게 당연했다.
이게 가능하려면 야수화를 펼쳐야 한다.
헌데 사지근맥이 끊어진 상태로 야수화가 가능하단 말인가!
“사지의 근맥이… 끊지 않은 게냐!”
“그, 그럴 리 없소. 내 직접 끊었단 말이오. 형님.”
사지근맥을 끊기고도 야수화를 펼칠 수 있다 생각하는 것보단 자신들을 속이고, 강상의 사지근맥을 끊지 않았다 생각하는 게 더 앞뒤가 맞았다.
정작 강상의 사지근맥을 끊은 강재는 펄펄 뛰며 부정했다.
그 반응이 너무 진실되어 거짓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미치고 팔짝 뛴 강재가 강상을 향해 삿대질하며 고함을 쳤다.
“야, 이 새끼야!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컥!”
“시끄러 죽겠군. 아, 죽여달란 뜻이었나?”
조금 전에 죽인 전사의 칼을 강재에게 던졌다.
얼마나 빠르고 강한 힘이 실렸는지, 칼이 강재의 가슴을 뚫고 지나갈 때까지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재, 재야! 강재야!”
“이런 썅!”
강재는 절명하고 말았다.
너무도 어이없는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강열은 강재와 마찬가지로 죽은 듯 살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강상에게 달려들려는 그를 빠르게 붙잡은 자가 있었다.
“열! 멈춰라!”
“형님! 놓으시오! 어찌 참으란 말이오!”
강열은 자신을 붙잡은 강망의 팔을 뿌리치려 했다.
허나 강망은 호통을 쳤다.
“누가 참으라 했느냐! 어찌했는지, 저놈은 예전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싸우려면 제대로 싸워야지!”
“…형님 말씀이 맞소.”
흥분해 눈이 뒤집혔던 강열은 강망의 말에 그제야 진정이 되었다.
야수족은 냉철하지 못한 야만한 자들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히려 싸움에 있어서 그들만큼 이성과 본능이 절묘하게 운용하는 이들도 드물다.
그게 바로 야수족의 무서움 중 하나였다.
강망은 힘을 주어 말했다.
“대호의 전사들이여, 칼을 들어라!”
“킥! 뒤에 숨겠다?”
강망의 외침에 전사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쥐며,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달려들 준비를 했다.
강망은 한 걸음 나오며 나직하게 말했다.
“가자!”
“예!”
칼을 쥔 강망이 앞장서자 그 곁을 강열이 맡았다.
그러자 대호족 전사들이 뒤따랐다.
그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누구라도 움찔하게 만들만한 상황이건만, 강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소를 짓고 있었다.
선수는 강망이었다.
그의 칼이 강상의 목을 향했다.
강상은 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목을 노린 칼날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강망은 오히려 잘되었다는 마음으로 그의 손을 절단 내려 했다.
퍽!
“……!!”
“아아압!!”
절단되긴커녕 강망의 칼날이 붙잡히고 말았다.
놀란 강망의 눈이 커졌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니다.
그때를 노려 곁에 있던 강열이 창을 휘둘렀다.
그의 창은 정확히 강상의 심장을 노렸다.
야수화 수호신의 가호를 펼친 강상의 육신이 아무리 단단해도, 바위조차 관통시키는 강열의 창격에 무사할 리 없다.
퍽!
“…!!”
“병신 새끼들… 고작 이거냐.”
강상은 양손으로 각기 강망의 칼에 이어 강열의 창 역시 붙잡히고 말았다.
그들 역시 야수화 호랑이의 기상을 펼쳤기에 창칼에 실린 힘이 상당하다.
헌데 안간힘을 써도 붙들린 창칼은 꿈쩍도 하지 못했다.
뒤따르던 전사들이 그들을 구하려 했지만, 강상이 더 빨랐다.
쥔 창칼을 휘둘러 그들을 날려 버렸다.
“강망 님!”
“뭐 하느냐! 강열 님을…….”
해임된 대전사를 대신해 전사들을 이끄는 나이 많은 전사가 두 사람을 살피라고 고함을 쳤다.
하지만 두고만 볼 강상이 아니었다.
빼앗은 창칼을 원래의 주인에게 던졌다.
강재를 죽였을 때처럼 상대가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죽는다는 걸 인지했지만, 막거나 피할 여력은 없었다.
그때 그들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네게 짐을 지우지 않아 다행이구나.’
만약 강우혁을 더 몰아붙여서 강제로 대족장을 맡게 했다면, 강상이 저 괴물 같은 힘으로 강우혁마저 죽이려 할 게 불 보듯 뻔하다.
강영의 자식들이라도 살게 했으니 다행이란 생각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착!!
“물어볼 게 있소만… 진정부터 시켜야겠네.”
“자, 자네는…….”
죽음을 받아들였던 강망과 강열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나왔다.
누군가 그들에게 창칼이 닿기 전에 대신 낚아챈 덕분이다.
그는 바로 강우혁의 사부라고 소개했던 사내, 이백이었다.
* * *
“미련… 남지 않겠느냐.”
이백 일행은 남만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남만을 들쑤신 좌법왕이 걸리긴 했지만, 그 소재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마냥 남기엔 뭐 했다.
단호히 거절했지만, 이대로 강씨 남매의 백부들이 물러날 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백은 떠나기 전, 강우혁의 생각은 다시 확인했다.
“미련 같은 건 없어요. 사부님.”
“저도요!”
두 사람은 야수족의 왕족이나 마찬가지며, 특히 강우혁은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족장이 될 기회 얻었다.
하지만 제자들의 얼굴에는 미련 같은 것 없어 보였다.
“그래 이제 그만 가자구나. …떠날 때 떠나더라도 인사는 하자구나. 도망친 것처럼 몰래 돌아갈 수는 없으니.”
“예!”
남만을 떠나기로 했지만, 작별 인사도 없이 도망치듯 떠나는 건 좋지 않다 판단했다.
대족장의 자리를 거절했다고 해서, 피의 반을 거부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들의 아비의 고향이며, 선조들의 땅이었다.
언젠가 돌아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끊고 맺음을 확실히 할 생각이었다.
임시 거처를 나온 이백과 제자들은 대호족의 진영으로 향했다.
화경고수의 기감을 속일 수 없다는 듯 대호족 진영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걸 감지했다.
“심상치 않구나. 먼저 갈 테니… 조심히 오거라.”
“사, 사부님!”
제자들의 부름이 끝나기도 전에 이백이 움직였다.
제법 거리가 되었지만, 이백은 단숨에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전설의 축지술을 보는 듯싶었다.
“음? 저자가 어찌…….”
이백은 뇌옥에 갇혀 있어야 할 강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가 쥔 창칼을 집어 던지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대호족 내부의 싸움에 끼어서 좋을 게 없지만, 창칼이 향하는 곳이 제자들의 백부들임을 알았기에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착!!
“물어볼 게 있소만… 진정부터 시켜야겠네.”
“네놈… 그 고양이 새끼는 어디 있느냐!!”
이백을 알아본 강상이 발끈했다.
이백이 데려온 백호에게 처참히 당한 게 떠오른 탓이다.
찌릿! 찌릿!!
맹수와 같은 살기에 피부가 찌릿찌릿했다.
외금강신(外金剛身)에 오른 덕분에 도검은 물론 검기 정도로는 타격을 줄 수 없지만, 감각마저 사라진 게 아니다.
통증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향을 줄 정도 아니 일반인들은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섬뜩한 살기였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이런 썅!”
팟!
강상이 사라졌다.
육안이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탓이 흡사 사라졌다 인지할 정도였다.
퍽!
충돌음과 함께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다.
그제야 전사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큭!”
튕겨난 채, 주먹을 부여잡은 자는 강상이었다.
그에 비해 이백은 멀쩡해 보였다.
“이제 정신이 좀 드시오.”
“크윽… 지랄, 하지 마라!!”
이 정도로 멈추기에 그는 자존심도 야망도 너무 컸다.
게다가 아직 혈백환의 약효 때문에 얼마든지 싸울 자신이 있었다.
허나 그는 간과한 게 있었다.
약효는 두 시진까지만 지속된다는 점과 이백이 평범한 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크아아악!!!”
강상은 맹수와 다름 없는 모습으로 이백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몸놀림은 인간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빠름만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꺾일 수 없는 관절의 꺾임은 괴이하면서도 위협적이었다.
그렇게 강상은 이백은 쉴새 없이 몰아세웠다.
하지만 이백은 당황한 기색없이 피하며, 적절하게 반격했다.
퍽!
“큭!”
강상은 이백의 반격에 신음을 흘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싸움의 흐름은 일방적이었지만, 누가 봐도 우세한 건 이백이었다.
그건 강상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찬영과 싸운 경험이 도움이 되는 군.’
이백이 소찬영과의 싸움에 당황했던 건 야수족의 전투방식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다.
한번 경험해봤기 때문인지, 강상이 소찬영보다 훨씬 강했음에도 이백을 어찌할 수 없던 것이다.
“이런 썅!”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강상은 점점 짜증이 났고,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졌다.
결국 강상은 뒤로 물러났다.
그렇다고 도망친 건 아니다.
어느 정도 물러나자 검던 강상의 피부가 약간 붉은 기를 띠기 시작했고, 붉은 기가 점점 강해져갔다.
야수화 수호신의 가호에 혈백환의 약효가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단순히 피부만 검붉어진 게 아니다.
꿈틀! 꿈틀! 불끈! 불끈!
강상의 근육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힘줄 역시 뚜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변화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손가락이 갈퀴처럼 날카로워지고, 어금니가 툭 튀어나왔다.
그 모습은 흡사 진짜 맹수를 보는 거 같았다.
“크아아아앙!!!”
짐승이라도 된 마냥 강상이 울부짖었다.
그의 포효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런 강상을 보며 이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미친개는 매가 약이라고 했던가.”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