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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37화 (137/200)

137화. 또 다른 백묘(白苗)

“야수족, 그 머저리들을 결국 일을 벌였더군요.”

요염함을 물씬 풍기는 중년미부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동배의 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들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바빠 죽겠는데 부른 거야.”

“상관이 없다니? 하아… 혈접일족의 미래가 걱정되는군요.”

“뭐야! 지금 뭐라고 했어! 독거미!”

“너 멍청하다고 했다, 왜!”

그녀들은 충술사 일족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삼대 일족.

지주일족과 혈접일족의 대모(代母)들이었다.

충술사 일족은 야수족과 달리 대족장이 존재하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삼대 일족의 영도하는 분위기였다.

지주일족은 전설의 마물 인면지주(人面蜘蛛)에서 시작된 일족으로, 강력한 독을 품고 있는 독거미를 조련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조련한 독거미라 뽑아내는 실은 잠사(蠶絲) 못지않게 질기기로 유명했다.

혈접일족도 만만치 않다.

그들의 독나비는 수면독, 마비독을 시작으로 절독까지 품고 있다.

게다가 날갯짓을 통해 독을 퍼트릴 수 있기에 대량살상이 가능한 게 혈접일족의 무서움이다.

“누이들 모두 진정들 하게.”

“예, 오라버니.”

“칫!”

자존심 상하기로 유명한 그녀들이지만, 단 한 명에게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바로 흑봉일종의 수장 흑봉주였다.

세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자주 만난 고우지간(故友之間)이었다.

흑봉주는 연장자인 만큼 두 여인을 어려서부터 보살폈고, 무엇보다 잘생겼다.

그래서인지 그녀들은 지금까지도 흑봉주는 잘 따랐다.

반대로 말하면 그녀들의 말썽을 뒤처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아무리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해도, 야수족은 우리와 같은 백묘다. 접아(蝶兒).”

“네, 오라버니.”

흑봉주의 말에 혈접대모는 고갤 끄덕였다.

그 모습이 가증스러웠는지, 지주대모는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혈접대모는 모른 척할 뿐이었다.

“게다가 야수족이 무너지면 오독문의 눈은 우리 충술사 일족에 향할 것이니, 주아(蛛兒)가 이리 말하는 게다.”

“그럼 어찌하는 게 좋을까요, 오라버니.”

흑봉주는 쉬이 입을 열 수 없었다.

야수족은 승산이 있다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가 보기엔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괴물 호랑이 궁기라면 오독의 하나 정도를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 후에 나머지 오독이 힘을 합치면?

야수족은 멸족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니 흑봉주로서는 야수족을 돕자는 말을 선뜻할 수 없었다.

섣부른 판단이 흑봉일족. 나아가 충술사 일족들까지 멸족의 길로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밖에서 큰 목소리 들려왔다.

“마, 말도 안 돼!!”

“쏴! 쏘라고!!”

흑봉일족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흑봉주의 거처까지 들려왔다.

충술사 삼대 일족의 하나를 이끄는 흑봉주로서는 체면이 깎기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녀들이 흑봉주를 따른다고 해도 삼대 일족은 다른 일족이니 말이다.

“오라버니, 나가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맞습니다.”

그녀들은 말에 흑봉주는 굳은 얼굴로 밖에 나갔다.

열이 넘는 일족은 웬 청년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은 울그락푸르락했다.

“무슨 일이냐!”

“대, 대부님을 뵙습니다!”

충술사 일족은 자신들을 이끄는 존재를 대부(代父) 혹은 장로(長老)라 부른다.

흑봉주는 아직 늙었다 할 정도는 아니기에 대부로 불린 것이다.

일족들은 그를 보고 그제야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그게… 저놈이 갑자기 침범해 몰아내려 했는데…….”

그들은 창피한지 설명하는 동안 얼굴을 붉혔을 뿐만 아니라 말끝을 흐렸다.

그럼에도 흑봉주는 그들이 왜 이러는지 알아차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의 곁에 흑봉들이 날고 있었다.

거기까지만이라면 문제가 없었다.

청년을 위협해야 할 흑봉들이 오히려 청년은 호위하듯 오히려 일족의 접근을 경계했다.

흑봉들의 제어력을 빼앗긴 것이다.

“자넨 누군데, 우리 일족의 영역에 침범한 것인가. 그리고 어찌 흑봉들이 자넬 따르는가.”

“만수문의 이백이라 하오. 흑봉주께 드릴 말이 있는데, 다짜고짜 공격하니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해주셨으면 하오.”

그의 정중한 반응에 흑봉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백의 태도가 불쾌한 게 아니라 일족의 대처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한 건 잘못이지만, 무조건 공격한 건 잘못이다.

가장 큰 잘못은 강자를 알아차리지 못한 점이다.

흑봉의 제어력을 빼앗을 정도의 능력자라면 오히려 자신들이 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강자를 존중하는 흑봉주의 가치관이 많이 작용한 판단이었다.

“그런가. 내가 흑봉주일세.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면 우리 아이들부터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오해 마시오. 난 이들을 강제하는 게 아니오. 얘들아, 그만 돌아가거라.”

이백의 말에 흑봉들은 위잉위잉거리며 그와 흑봉주를 번갈아 쳐다봤다.

흑봉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다른 흑봉보다 더 큰 흑봉이 나타났다.

그제야 흑봉들이 흑봉주의 곁으로 갔다.

이백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바뀌었다.

[‘흑봉여왕’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흑봉의 어머니, 흑봉여왕.

흑봉주가 일족의 대부가 된 건, 흑봉여왕을 조련했기 때문이다.

흑봉들은 여왕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말하게.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는가.”

“이곳에서 말하오? 야수족과 관련된 일이오만?”

남만인과는 다른 외모를 가진 청년의 입에서 야수족이 언급되자 흑봉주는 움찔했다.

가볍게 할 대화가 아님을 깨달았다.

애초 그러한 일이라면 흑봉일족의 영역에 무단으로 침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 우리는 들으면 안 되나요?”

“중원 놈이 이곳에 어디라고!”

[지주여왕]

[혈접여왕]

여인들의 곁에 있는 거미와 나비는 흑봉여왕처럼 준영물급 곤충들이었다.

동시에 그들을 부리는 여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수고는 덜겠군.”

*  *  *

“남만의 일은 남만에서 해결한다. 중원 놈의 참견을 허락지 않는다!”

야수족의 세 부족이 궁지에 몰렸을 때도 관망하던 대족장 강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를 들은 화룡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희가 끌어들인 자가 아니란 뜻인가.”

“그렇다. 처음 보는 자다.”

강상은 오히려 이백을 노려봤다.

감히 왜 초를 치냐는 듯한 불쾌감이 담겨있었다.

허나 그를 무시한 채 흑봉주에게 외쳤다.

“이건 우리 야수족의 일이다! 끼어들지 마라!”

“어이없군. 도와주러 와준 자들에게 할 소린가! 그리고 우리 역시 백묘다!”

누가 봐도 밀리고 있는 상황인데, 오히려 타박하니 흑봉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그만이 아니라 지주, 혈접대모들 역시 당장이라고 달려들 기세였다.

되려 강상이 호통쳤다.

“백묘? 그럼 어찌 이제야 나섰지! 수백 년 전, 오독문과의 전쟁에선 왜 나 몰라라 했지!”

“어이없군! 너희 야수족이 남만의 전부인 것처럼 굴어놓고, 어쩌고 저째!”

백묘와 화묘 사이만 나쁜 게 아니었다.

같은 백묘라도 야수족과 충술사 사이에도 깊은 유감이 있었다.

이번 일로 유감을 줄여갔으면 했지만, 강상의 태도는 너무 완고해 오히려 충술사 일족에게 반감을 커지게 만들었다.

“이 문주(門主). 그대가 약조한 게 있으나, 저들의 태도를 고치기 전까지 도울 수 없소.”

“…존중하겠소.”

이백 역시 강상의 완고한 태도를 봤기에 흑봉주를 위시한 충술사 일족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는 강상을 향해 물었다.

“뜻대로 관여하지 않겠소. 헌데 저들은 구하지 않을 생각이오?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오?”

“닥쳐! 중원 놈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강상의 눈에서 살기가 감돌았다.

발끈하는 그의 태도에 이백은 오독문과의 전쟁을 통해 강상의 노림수가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라면 야수족의 일원들을 무모하게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몰지 않을 테니까.

허나 그 노림수의 정체까지는 알 수 없었다.

이백은 시선을 거두어 소찬영을 바라보았다.

“대족장은 그대들을 살릴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이대로 그냥 죽을 것이오?”

“참견하지…….”

“너에게 묻지 않았다.”

이백의 강력한 기운에 강상은 움찔했다.

비록 야수족의 힘이 내공과 다르다지만, 가공한 기운을 못 느끼는 게 아니었다.

이백의 뜻을 눈치챈 설표족장 소찬영이 입을 열었다.

“우리… 설표부족은, 더 이상 대호족장을 대족장으로 인정하지 않겠소.”

“감히!!”

소찬영의 선언은 커다란 파란을 일으켰다.

강상을 위시한 야수족만이 아니라 충술사 일족과 오독문의 화룡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야수족이 남만을 지배할 때만이 아니라, 오독문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이후에도 여전히 대호족의 든든한 우방이었던 설표족.

그런 설표족의 족장 소찬영이 대호족을 부정한 것이다.

“아, 아우!”

“난 설표족의 족장이오. 우리 부족을 저자의 부당한 명령 때문에 죽음으로 몰 수 없소.”

소찬영의 선언에 당황하던 설표족 전사들이었지만, 그의 말에 고갤 끄덕였다.

전사들에게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허나 명예롭지 못한 죽음은 불명예보다 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설표부족이 옆으로 물러나자, 거웅족장은 이를 악물었다.

야수족의 일원이지만, 동시에 그 역시 구웅족의 족장이었다.

이 죽음이 야수족의 영광과 상관이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거웅족도 설표족에 합류한다!”

“젠장, 우리 우융족도…….”

족장의 죽음으로 최선임이 된 우융족 대전사가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야수족에서도 손꼽히는 부족들이 대열을 이탈했다.

이 상황에 강상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거렸다.

“내가 야수왕이었다면 저들이 감히 배신하지 않았겠지.”

강상은 더욱더 자신이 선친과 같은 힘이 없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며 분개했다.

반쯤 눈이 뒤집힌 강상이 외쳤다.

“죽여! 저 배신자 새끼들을 죽여! 궁기!!”

“크…아앙!!”

강상의 지시에 궁기는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고, 포효할 뿐이었다.

세 부족의 배신에 이어 궁기마저 제 뜻대로 되지 않자, 강상은 이성이 완전히 날아갔다.

그러더니 품에서 웬 잔을 꺼냈다.

“아직, 가득 채우지 못했지만!”

잔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반절쯤 채워져 있었다.

강상은 그걸 벌컥벌컥 마셨다.

전부 다 마신 순간, 강상은 고통스러운지 몸을 움츠렸다.

“큭! 크아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런 강상을 보며, 궁기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피부가 검게 물들었다.

강상이 본능적으로 야수화 수호신의 가호를 펼친 탓이다.

갈퀴와 같은 손가락, 검고 거대한 육신. 그리고 세로로 변한 눈동자.

또 하나의 궁기가 모습을 드러낸 거 같았다.

‘알아서 자멸하겠다면…….’

화룡은 이 상황을 재미있게 지켜봤다.

알아서 힘을 깎아 먹는데, 굳이 나설 필요가 없던 탓이다.

“죽여!!”

“크아앙!!”

그제야 궁기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이탈한 세 부족을 향해 잔인한 미소를 지은 궁기가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났을 땐, 거웅족장을 물어뜯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룡에게 부상을 입은 거웅족장의 반응은 늦고 말았다.

푹!

“크아아!!”

“크아앙!!”

예상치 못한 기습을 받은 궁기가 비명을 질렀다.

그 앞에 또 다른 거대한 늑대(?)가 가로막았다.

고랑족의 늑대라 생각하기에 너무 거대했다.

“혼돈아! 혼내줘!!”

“우희야.”

궁기를 가로막은 거대한 늑대는 진체(眞體)로 돌아온 혼돈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거웅족장은 여아를 아는 듯한 소찬영에게 물었다.

“아는 아인가?”

“그 녀석의 딸이오. 강영, 그 녀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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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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