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견랑무희(犬狼巫姬) (1)
“네? 지, 지금 뭐라고 하, 하셨습니까.”
얼마나 당황했는지, 강우혁은 말을 더듬거렸다.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허나 이백은 담담히 대답했다.
“성주께서 널 제자로 삼고 싶다 하셨다.”
“서, 성주님이라면 패, 패왕성주님? 저, 정말 그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강우혁이 당황할 만했다.
패왕성주. 패황이 제자로 삼겠다니, 어느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이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외에 패왕성주가 계시더냐.”
“하, 하지만 저를 왜…….”
강우혁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정사(正邪)를 떠나 무림십왕의 수위를 차지한 거인.
사도련을 제외하고 가장 큰 사파 세력인 패왕성의 성주.
바로 패황(霸皇)이다.
그런 존재가 자신을 제자로 삼으려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널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구나. 넌 나 이백의 제자다. 누구도 탐을 낼 인재이거늘, 너 스스로 그리 말하면 이 사부가 뭐가 되느냐.”
“아… 자, 잠깐만요!”
이백의 말에 얼굴을 붉히던 강우혁은 갑자기 당황했다.
패황의 제자가 된다는 점에 너무 놀라 간과한 점이 있었다.
그걸 깨달았는지, 굳은 얼굴도 말을 이었다.
“그럼 사부님은요.”
“나? 내가 뭘 말이더냐.”
태연한 이백의 반응에 강우혁은 버럭 화를 냈다.
“제가 성주님의 제자가 되면 사부님은 어찌 되는 거냐고요! 절… 지금 버리신 건가요!”
“아, 아니죠! 사부님 아니죠!”
버려졌다고 생각한 강우혁은 무척 화가 났다.
곁에 있던 강우희는 불안한지, 목소리가 떨려왔다.
두 제자를 본 이백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그의 그런 반응에 강우혁은 더 화가 났다.
“이렇게… 이렇게 저를 버리려고! 제자 삼으신 거냐고요!”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
버럭하는 강우혁의 모습에도 이백은 담담했다.
그런 그의 반응에 강우혁은 어이가 없었다.
“오해? 대체 뭐가 오해란 말인가요!”
“성주께서 널 제자 삼으신다 했지, 내 제자가 아니란 말은 할 적이 없단다.”
이백의 말장난에 강우혁은 울컥했다.
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이 다 있단 말인가.
강우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성주께선 너의 ‘두 번째’ 사부가 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내가 너의 사부라는 점은 변하지 않지.”
이백은 일부러 ‘두 번째’라는 말은 강조했다.
그제야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깨달은 강우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강우혁은 아직 어린 소년답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백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난 그럴 줄 알았어, 사부님이 오빨 버릴 리가 없잖아?”
조금 전까지 불안해하던 게 누구냐는 듯 강우희는 오라비를 탓했다.
그녀의 그런 잔망스러움에 이백은 웃음이 나왔다.
더욱 얼굴이 붉어진 강우혁은 제 누이를 노려봤다.
강우희는 그의 눈길을 피하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네가 본격적으로 성주께 가르침을 받으면, 이 사부는 떠날 생각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강우혁은 당황했지만, 조금처럼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분명 이번 역시 오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해가 아니었다.
“네가 성주께 가르침을 받으면 못해도 십 년은 걸릴 것이다. 이 사부까지 남을 수는 없단다.”
“그, 그런…….”
패왕성에 잔류하면 세간에서 그를 패왕성의 소속. 하다못해 사파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백은 정사(正邪) 어디에도 치우쳐질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신궁의 뒤를 쫓을 예정이기에 패왕성에 남을 수 없다.
“사, 사부님 저, 저는…….”
“아, 우희야. 네 두 번째 사부도 성주께서 소개시켜…….”
아직 어린 강씨 남매를 서로 떼어내는 건 잔인하다 생각했기에 강우희도 두 번째 사부를 소개받았다.
이백의 말이 끝나기 전에 강우혁이 버럭 화를 냈다.
“싫어요!”
“음?”
“싫다고요! 사부님과 떨어지는 거, 싫다고요!”
“이 사부가 이곳에 남기가…….”
이백은 난처해졌다.
강우혁이 진천뇌도를 익힐 때까지 패왕성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사부님이 가르쳐주시면 되잖아요…. 사부님께 배워서 강해질 수 있잖아요!”
“저, 저도 싫어요! 사부님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강우혁의 말에 강우희 역시 울먹거렸다.
두 제자가 합심해 이백을 설득했다.
이백은 제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후회, 하지 않을 자신 있느냐. 성주는 패황이시다. 우내오존에 가장 가까운 분이시다.”
“후회해도… 사부님과 떨어져서 후회하는 것보다 덜 할 거 같아요.”
“저도요!”
이백은 두 팔을 벌려, 두 제자를 감싸 안았다.
팔을 통해 전해지는 제자들의 온기에 이백은 결심했다.
더 이상 이 팔을 놓지 않겠다고.
이들의 선택을 후회하게 하지 않겠다고.
이백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내 제자들아…….”
* * *
“하, 본좌가 거절당할 줄이야.”
패황은 헛웃음이 나왔다.
설마 자신이 제자를 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줄은 상상도 못 한 탓이다.
사파의 거인이지만, 제자로 삼아주겠다면 정파 출신이라도 거절할 자가 없을 거라 자부했다.
헌데 그런 자신감이 깨져버렸다.
“자네가 방해한 건가.”
“그랬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백의 여유로운 반응에 패황은 입맛을 다셨다.
강우혁의 자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탐이 나.”
“못 드립니다.”
이백은 단호하게 말했다.
패황의 가르침을 받게 하는 게 제자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허나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조금 이기적이라도 제 품 안에 둘 생각이다.
그게 제자들을 위한 최선이 아닐지라도.
“하하, 재밌어. 그 아이도 자네도 말이야. 그래도 본좌는 빚지고는 못 사네.”
“빚… 말입니까?”
패황의 뜬금없는 말에 이백은 의문이 들었다.
감을 잡지 못한 그를 보며 패황이 나직이 말했다.
“그 아이, 근골은 나쁘지 않지만, 기경팔맥(奇經八脈)을 열지 못했더군.”
“아직 뚫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이백은 끄덕였다.
독맥(督脈), 임맥(任脈), 충맥(衝脈), 대맥(帶脈), 음유맥(陰維脈), 양유맥(陽維脈), 음교맥(陰蹻脈), 양교맥(陽蹻脈)을 통틀어 기경팔맥이라 칭한다.
십이경맥과 함께 내가고수에겐 중요한 기맥들이다.
기경팔맥을 얼마나 뚫었냐에 따라 무림고수로서 미래가 바뀐다.
특히 임맥과 독맥은 따로 임독양맥(任督兩脈)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하다.
“본좌가 벌모세수(伐毛洗髓)를 해주겠네. 태을보령환의 값으로 부족하지 않겠지.”
“……!!”
이백의 눈이 커졌다.
놀랄 만했다.
벌모세수는 환골탈태까지는 아니지만, 골격이 무공을 익히기보다 적합하게 변형되고 기혈이 튼튼해지며 몸속에 쌓인 탁기와 오물까지 배출시킨다.
막대한 내력 소모 때문에 무림세가에서도 후계자급이나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대법을 강우혁에게 시행해주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태을보령환의 보상이라지만, 과하다 할 수 있다.
허나 이백보다 패황이 더 빨랐다.
“거절하지 말게.”
“허나… 감사합니다.”
거절해야 마땅하지만, 자칫 패황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이백은 결국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호의는 호의로 받아들어야지.’
* * *
“히! 히히히~!”
강우희는 혼돈과 뛰어다니며 놀았다.
물론 단순히 노는 건 아니었다.
청랑보법을 익히는 일환으로 삼았다.
즐기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듯 강우희는 점점 청랑보법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혼돈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열심히 뛰어다녔다.
강우희가 삐지면 곤란한 건 혼돈도 마찬가지라 호응해줄 수밖에 없던 것이다.
“히히히~ 잡앗… 어, 어…….”
“조심해야지.”
청랑보법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자연스러워진 정도는 아니기에 발이 꼬일 때가 한 번씩 있었다.
강우희는 자신을 잡아준 사부를 보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헤헤~ 고맙습니다, 사부님.”
“하하, 사제지간이 참 친하군요.”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갤 돌려 보니 일남일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는 불혹쯤 되어 보였고, 소녀는 강우희와 비슷해 보였다.
이백은 사내의 정체를 눈치챘다.
그가 품은 기운은 물론 외모까지 누군가를 연상케 하고 있으니 모를 수 없었다.
“소패왕(少霸王) 하후 대협이십니까.”
“대협이라 불리게 부족하지만, 소패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사내는 패황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하우패였다.
무림에선 소패왕(少霸王)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별호에 소(小)가 붙은 건, 패황이 건재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패왕이라 불릴 날이 머지 않았다고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다.
이백의 시선이 그의 곁에 있는 어린 소녀에게 향했다.
“따님입니까?”
“예, 부족하지만 제 여식입니다. 뭐 하느냐, 대협께 인사드리지 않고.”
“소녀 하후지희가 이백 대협께 인사드립니다.”
또래라도 여리여리한 강우희와 달리 하후지희는 단단한 느낌이었다.
체구가 특별히 크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명문의 핏줄답게 무재(武才)는 물론 그에 걸맞은 수련을 해온 걸 알 수 있었다.
“이백이오. …우희야.”
“강우희입니다!”
“하하! 부럽습니다, 대협. 제 여식은…….”
하후패는 밝고 귀여운 강우희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가 원하는 여식의 상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하후지희의 날카로운 눈빛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백이 끼어들었다.
“따님께서 수련을 많이 한 거 같습니다.”
“하하, 제 여식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재능만이 아니라 수련도 열심히 합니다.”
그제야 하후지희도 째려보던 눈빛이 온순하게 바뀌었다.
하후패는 눈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대충 예를 차린 거 같아 이백이 용무를 물었다.
“헌데…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아… 백호왕이라 불리는 대협께 인사를 못 드린 거 같아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백호왕(白虎王).
패황과 일전 이후 이백에게 붙은 별호다.
당시 진체(眞體)를 드러냈기에 설군의 진면목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이다.
하후패의 눈길이 이백에게서 강우희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견랑무희(犬狼巫姬)를 지희가 만나보고 싶다 해서 말입니다.”
“견랑무희… 저요?”
하후패의 말에 강우희는 눈만 꿈뻑였다.
자신에게 별호가 생긴 줄 몰랐기 때문이다.
개와 늑대(犬狼)를 닮은 혼돈을 부리는 무녀(巫姬) 같다 해서 붙여졌다.
하후지희가 강우희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견랑무희께 하후지희가 비무를 청합니다.”
“엥?”
그녀의 말에 강우희는 당황하고 말았다.
허나 가장 당황한 건 하후패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견랑무희와 친해지고 싶은 게 아니더냐?”
“저런 무시무시한 괴물을 부리는 견랑무희. 제 상대로 부족하지 않…….”
고작 여덟 살밖에 안 되었지만, 그 재능을 인정받은 하후지희였다.
패왕성의 고수들조차 어찌 못한 혼돈이 그녀에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허나 그녀의 발언은 강우희를 발끈하게 만들었다.
“괴물 아니에요! 혼돈이는 제 친구라고요!!”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