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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27화 (127/200)

127화. 반전(反轉)

천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그걸 깨달았으나 되돌릴 수가 없었다.

‘개, 개 같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천패는 흡기공으로 패황의 내공 패왕진천기를 빨아들였다.

일갑자쯤 빨아들였을 때,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패왕진천기가 역으로 패황에게 되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안간힘을 써도 되돌아가는 패왕진천기를 막을 수 없었다.

‘젠장! 아깝지만, 멈출 수밖에 없… 어? 어? 어! 어!!’

되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자, 천패는 흡기공을 중단했다. 정확히는 중단시켰지만, 여전히 패왕진천기가 패황에게 되돌아가 갔다.

그것으로 부족해 되돌아가는 내공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뭐가 어떻게 된…….’

―미몽(迷夢)은 잘 꾸셨나, 천패.

누군가의 목소리가 천패의 귓가에 들려왔다.

너무도 잘 아는 목소리였다.

패황(覇皇). 그에게 전음을 보낸 자는 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였다.

천패는 이제야 깨달았다.

패황은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자신을 시험했다는 것을.

―소용없다. 분혼마공과 흡기공으로 본좌를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가?

‘아, 알고… 있었어!’

천패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놀랍게도 패황은 그가 숨기고 있는 패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두고 봤다는 건, 무시할 힘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흡기공을 멈추었음에도 패왕진천기는 여전히 패황에게 되돌아가고 있었다.

“큭!”

내공을 운용하는 중에 입을 여는 건 위험하다.

그걸 모를 천패가 아님에도 신음을 흘렸다.

그만한 상황이란 점이다.

천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흡기공으로 빨아들였던 패왕진천기를 모조리 패왕에게 되돌아갔다.

허나 거기서 멈추지 않지 않았다.

이젠 천패의 내공까지 넘어가기 시작했다.

‘안 돼, 이대로는 안 돼!’

천패는 이를 악물고 결단을 내렸다.

패황의 아랫배로부터 떼어지지 않은 오른손 대신 왼주먹을 휘둘렀다.

천패의 주먹은 패황의 머릴 향했다.

내공 운용 중에는 작은 충격에도 기혈이 틀어질 수 있다.

이는 패황만이 아니라 천패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그만큼 천패는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퍽!

―본좌가 전음을 보낼 때, 깨닫지 못하니… 그대답지 않아.

“……!!”

천패의 주먹은 패황에게 닿지 못했다.

닿기 직전에 패황이 그의 주먹을 쳐낸 탓이다.

흡기공 때문에 움직일 수 없어야 정상이다.

천패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분혼마공을 익힌 덕분이니, 이해할 수 있지만 패황은 아니다.

그러니 천패가 경악한 것이다.

애초 패황은 흡기공이 운용되는 와중에 천패에게 전음을 보냈다.

다르게 말하면 패황도 동시에 여러 무공을 펼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평소의 천패라면 깨달았을 텐데, 조급함 때문에 냉정하지 못한 탓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이런 썅!’

천패는 발버둥 쳤지만, 패황에게 완벽하게 제압된 탓에 내공을 모조리 빨려가는 걸 두고 봐야만 했다.

버둥거리던 천패의 힘이 점점 약해지더니 얼굴에 생기가 없어졌다.

그의 얼굴이 새파래졌을 때, 패황에게 빨려가던 내공이 멈췄다.

허나 이미 천패의 단전에 내공이 텅텅 빈 상태가 되었다.

패황은 천패를 놔주며 물었다.

“왜지.”

“뭘 말하는… 쿨럭.”

마른기침과 함께 천패의 입에서 피가 나왔다.

단순히 내공만 고갈된 게 아니라 내상까지 입었다는 걸 의미했다.

패황은 그걸 무시한 채 차갑게 말했다.

“이인자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본좌를 배신하려 했는지 묻는 것이다.”

“킥! 이인자… 그래서다! 쿨럭, 쿨럭.”

패황의 스승. 일인지하 만인지상.

엄청난 지위다.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졌다.

그럼에도 천패는 만족하지 못하고 패황을 배신했다.

“이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났나.”

“넌, 모른다. 날 때부터 패왕의 자리가 약조되었던 너는!”

천패는 기력이 없음에도 패황을 향해 악을 썼다.

모든 걸 잃은 그는 더 이상 악밖에 남지 않은 탓이다.

허나 패황은 그의 악 따윈 관심도 없었다.

“모른다. 굳이 알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이런 개 같은! 컥!”

패황의 말에 천패는 발끈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끝까지 낼 수 없었다.

그의 가슴을 패황이 밟은 탓이다.

패황은 차가운 눈으로 천패를 내려봤다.

“천패,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

“크윽! 으아악!”

우직끈!

천패의 흉골이 부러지며 가슴이 주저앉고 말았다.

마음만 먹으면 흉골이 아닌 심장까지 터트릴 수 있지만, 패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간의 정(情) 때문에?

패황은 고작 정에 얽매여 흔들리는 자가 아니다.

아직 천패의 명을 거둘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냐. 분혼마공과 흡기공을 전한 게.”

“으으… 말할 거라 생각… 컥!”

패황은 천패가 분혼마공과 흡기공을 숨기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지만, 정작 그걸 전한 자.

정확히는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천패가 본색을 드러낼 상황을 만들었다.

아무리 패도(霸道)가 힘이 곧 정의라지만, 패왕성도 사람과 사람으로 구성된 곳이다.

무작정 천패를 강제로 입을 열려고 한다면 눈에 보이는 반발만이 아니라 속이 곪게 된다.

그렇기에 천패가 본색을 드러낼 상황을 만드는 귀찮은 일을 감행한 것이다.

“말하라! 배후가 누구냐!”

“쿨럭… 킥, 말해줄 거 같아?”

천패의 눈빛에서 광기가 엿보였다.

배후의 의리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패황이 원하는 걸 알려주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광기 어린 눈빛은 강압으로 입을 열게 할 수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

패황은 천패를 놔주었다.

“말하면 널 제외한 천중원(天重院)은 손대지 않지.”

“…그걸, 어찌 믿지.”

천패는 움찔했다.

실패한 이상 자신의 죽음은 당연했다.

패황에게 용서, 자비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분노는 자신으로 그칠 리 없다.

그걸 깨달은 천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본좌는 두 번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즉,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다.

결국 천패는 굴복을 선언했다.

“노부가 졌… 물러나!”

“…컥!”

굴복을 선언하던 천패라 돌발행동을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소년을 인질로 삼았다.

이백의 지시로 패황에게 태을보령환을 복용시킨 강우혁이었다.

“천패, 끝까지 추해질 생각인가.”

“닥쳐! 닥치라고!!”

천패의 눈이 반쯤 뒤집혀 있었다.

패황과 상관없는 소년이 무슨 인질로서 가치가 있냐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그는 은원이 철저한 자다.

강우혁이 그에게 환약을 복용시켰다.

이는 선의이자 호의다.

즉, 은혜를 입었다는 의미다.

그걸 아는 한 패황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천패는 그리 생각했다.

‘내, 내가 짐이 되었어!’

천패가 거칠게 잡은 탓에 강우혁은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이 짐이 된 사실에 절망했다.

혼돈과 계약을 한 누이에 비해 자신은 너무도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물러나! 안 그러면 그 핏덩이를…….”

“감히 누구의 제자를 어쩌겠다는 거지.”

천패의 협박은 이어질 수 없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이백이 그를 제압한 탓이다.

패황에 이어 이백 역시 너덜너덜해진 것과 달리 멀쩡했다.

“사, 사부님!”

“괜찮다, 괜찮아.”

강우혁은 이백의 다릴 부여잡고 울컥한 마음을 토해냈다.

이백은 그의 머릴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러던 중 패황을 향해 말했다.

“이자의 입은 후배가 열어도 되겠습니까.”

“가능, 하겠는가.”

패황의 되물음에 이백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혜안이 발동됩니다.]

“물론입니다.”

*  *  *

“신궁을 상대할 때, 본성이 한 손 거들겠네.”

패황의 선언에 이백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암류의 정체로 추정되는 미지의 세력, 신궁(神宮).

얼마나 거대한 세력인지 알 수 없다.

밝혀진 것만 해도 중원무림을 발칵 뒤집을 정도다.

정파무림의 연합체인 무림맹이 추암당을 조직해서 신궁에 대적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내심 그들만으로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있었다.

헌데 사파무림에서도 손꼽히는 세력인 패왕성이 돕겠다고 선언했으니, 이백으로서는 안도심이 들었다.

“성주님의 용단에 감사드립니다.”

“자네를 위함이 아니다. 본성을 기만한 자들을 용서치 않을 생각이니.”

패황은 선을 그었지만, 이백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 일로 패왕성의 세가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패왕성이다. 그들의 협력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천패의 입을 통해 얻은 정보는 신궁의 내부의 것만이 아니다.

패왕성 내(內) 천패의 동조 세력까지 알아냈다.

천중원을 필두로 3할이 넘는 상당한 세력이었다.

그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흘린 피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패황이 직접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진천각이라는 숨겨진 집단의 활약 덕분이다.

진천각(震天閣)은 순식간엔 패왕대와 천중원을 제압함으로써 그 위용을 알렸다.

그 외 동조세력은 엄중한 조사 후, 죽일 자와 살릴 자를 가릴 예정이었다.

이백은 마음 가볍게 돌아가려 했다.

“무림맹에는 그리 전하겠습니다. 저는 이만…….”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았네.”

패황의 말에 일어났던 이백은 자리에 앉았다.

애초 추암당이 아닌 이백을 이 자리에 부른 건, 다른 용건 때문이었다.

“자네 제자, 강우혁이라고 했던가.”

“예… 우혁이가 무슨 실례라도 했습니까?”

그의 입에서 자신의 제자가 언급되자 이백은 경계심이 들었다.

그런 그를 본 패황은 피식거렸다.

“그리 경계할 필요 없네. 자네가 허락하면 제자로 삼고 싶군.”

“…저의 제자입니다만?”

이백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제자를 달라니, 상대가 패황이라도 상당히 무례한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패황은 당당한 태도였다.

“청랑왕이 원래 도객(刀客)이었다는 걸 알고 있겠지?”

“예?”

패황의 말에 이백은 당황했다.

청랑조법으로 유명한 청랑왕이 도객이었단 말은 들어본 적이 없던 탓이다.

그의 반응에 패황은 피식거렸다.

“젊은 시절 청랑왕께선 이대(二代) 성주께 도전하신 적이 있네. 정확히는 선친께서 성주가 되시기 전이니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지. 청랑왕께선 패배하신 후 칼을 놓으셨네.”

“…….”

몰랐던 비사에 이백은 말을 잃었다.

청랑왕이 만수문 출신이라는 거짓말은 애초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삼십 년 후, 다시 도전하셨지. 놀랍게도 그땐 승패를 가를 수 없었네. 그날 청랑왕이란 별호를 얻으셨지. 그리고 그날 진천뇌도(震天雷刀)는 본성의 소유가 되었다네. 그걸 강우혁에게 돌려주겠네.”

“그러실 필요는…….”

패황은 이백의 말을 끊었다.

“자네와 달리 그 아이는 아닌 거 같더군.”

“그건…….”

강우혁이 힘들어한다는 건 이백 역시 알고 있었다. 그걸 패황까지 알 줄은 몰랐다.

이대 성주에게 패배한 진천뇌도보다 그와 동수를 이룬 청랑조법이 더 뛰어나지 않겠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청랑조법은 분명 절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천뇌도는 그보다 뛰어나다.

청랑왕의 패배는 그가 진천뇌도의 진정한 힘을 끌어내지 못한 탓이다.

반대로 청랑조법으로 이대 성주와 호각을 이룬 건, 청랑조법의 진짜 힘을 끌어낸 덕분이다.

정확히는 청랑의 힘을 말이다.

‘기반이 될 청랑(靑狼) 아니, 혼돈의 영력은 우희가 얻었으니…….’

청랑왕의 곁에 있다고 알려진 청랑의 정체는 바로 혼돈이었다.

이대 성주에게 패하고 방황하던 그는 우연히 법기인 은고아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은고아로 혼돈을 강제로 복속시킨 덕분에 강대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창안한 게 바로 청랑조법과 청랑보법이다.

청랑왕의 절학만으로는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는 건 요원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완전히 달라는 게 아니니, 잘 생각해 보게. 뭐가 그 아이를 위한 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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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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