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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26화 (126/200)

126화. 찬탈(簒奪)

“사, 사부님!”

거대한 폭발이 이백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두 눈을 본 강우희는 기겁했다.

패왕진천하(覇王震天下).

진천패왕권의 오의라 할 수 있는 절초 중에 절초다.

그 위력은 가공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려줄 정도였다.

이백을 집어삼킨 폭발이 사그라지자 그 자리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아, 안 돼!”

“아무도! 움직이지 마라!”

거대한 구덩이 안에는 작아진 설군과 이백, 그리고 패황이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우희가 달려가려 했지만,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패황의 왼팔이라는 사자도패였다.

현재 패황의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

비록 상대가 연약한 소녀이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탓에 접근을 막은 것이다.

애초 사자도패의 고함은 강우희가 아닌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추암당은 물론 패왕성까지 포함해서.

패왕성까지 포함했다는 건, 보이지 않은 갈등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의미기도 했다.

“사부님, 사부님에게 갈 거예요!”

“아무도 움직이지 말라 해라!”

막무가내로 달려가려는 강우희를 보곤 사자도패는 도파(刀把)를 쥐었다.

단순히 경고 수준의 위협이 아니었다.

경고를 무시하는 순간, 칼은 그녈 벨 기세였다.

예외를 두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사자도패는 단호했다.

허나 쓰러진 사부를 본 강우희는 다른 걸 생각할 수 없었다.

오로지 쓰러진 사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혼돈! 길을 열어!”

“크아앙!!”

강우희의 명이 떨어지는 순간, 그녀의 품에 있던 강아지가 거대한 흉수(凶獸)가 되어버렸다.

그 위세는 누구라도 움찔하게 만들 정도였다.

영력의 상당 부분을 강우희에게 넘겨주었다고, 흉수로서 혼돈의 존재가 무력해진 건 아니다.

그걸 증명하던 혼돈이 앞발이 사자도패를 향했다.

퍽!

“큭!”

“괴, 괴물!”

사자도패는 칼을 들어서 혼돈의 앞발을 막아냈다. 허나 그 충격마저 해소하지는 못했는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 위용에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괜히 흉수가 아니라는 혼돈의 모습은 흉폭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는 사이, 야군이 강씨 남매를 태운 채 사라졌다.

경공 고수도 비웃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야군답게 구덩이에 당도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사, 사부님!”

“진정한 우희야! 사부님은 무사하실 거야!”

강우혁은 누이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 역시 이백이 걱정되긴 마찬가지지만, 강우희가 과도하게 흥분하고 있기에 그럴 겨를도 없었다.

평소 밝은 그녀였기에 깨닫지 못했을 뿐, 강우희는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대신이라 할 수 없지만, 오라비를 제외하고 이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부의 존재는 강우희에게 생각 이상으로 컸던 것이다.

“사부님이… 사부님이…….”

“사부님은 강하셔, 그러니 진정해.”

강우혁은 최악을 염두했다.

이백이 돌이킬 수 없다면.

그로 인해 누이가 입을 마음의 상처가 너무도 걱정되었다.

그러는 사이 혼돈이 패왕성 고수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크아앙!!”

“젠장! 대체 이런 괴물이 다 있어!”

전성기의 혼돈이 아닌 만큼 홀로 초절정고수를 여럿 상대하긴 어렵다.

다만 그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 덕분에 혼돈이 홀로 그들을 견제할 수 있었다.

그때 균형을 깨는 자가 있었다.

“괴물이든 뭐든 두고만 볼 것인가!”

강렬한 기운이 혼돈에게 쇄도했다.

천중신권의 중후한 권강이었다.

흉수 혼돈도 무시할 수 없는지 몸을 틀어서 피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 자루의 창이 혼돈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퍽!!

예상치 못한 고통에 혼돈이 비명을 질렀다.

“크앙!”

“노부가 발을 묶을 테니, 성주께 가 보시오!”

용마창패의 창격은 절묘했다. 하지만 혼돈을 일격에 쓰러트리지는 못했다.

혼돈의 시선에 용마창패에게 쏠린 순간, 천패가 움직였다.

이 모든 게 찰나에 벌어진 일이다.

사자도패가 그 뒤를 따르려 했지만, 혼돈을 견제 중인 용마창패의 창이 오히려 방해가 되어 그가 빠져나갈 기회를 막아버렸다.

“젠장! 주군!”

이 상황에서 가장 난감한 이들은 바로 추암당이었다.

이백이 걱정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입장이었다.

정사(正邪)의 관계이지만, 원한을 맺은 건 아니다.

패황이 쓰러진 지금 오해를 빚일 수 있으니 조심하려는 게 당연하다.

제갈현호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  *  *

“사, 사부님, 괜찮으세요.”

강우희는 몰골이 엉망이 된 이백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지만 최악은 면했는지, 의식과 함께 숨도 쉬고 있었다.

“너흴 걱정시켰구나. 미안, 쿨럭…….”

“사, 사부님!”

최악은 면했지만, 최선도 아니었다.

이백의 부상이 심하다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강우희는 떠오른 게 있는지 이백의 품을 뒤졌다.

“이, 있다!”

“아…! 사부님께 먹여드려!”

이백의 품에서 꺼낸 건 자금홍호로였다. 법기답게 그 와중에도 무사했다.

뚜껑을 열자 진한 약향이 풍기며 환단 몇 개가 보였다.

곤륜파에서 받은 태을보령환이었다.

그간 몇 개를 사용한 탓에 얼마 남지 않았다.

그중 하나를 꺼내 이백의 입에 넣었다.

“고맙구나, …패황께도 하나, 먹여드려라.”

“하, 하지만…….”

사부를 이 꼴로 만든 사람에게 약을 주다니.

강우희는 패황이 미웠다.

그런 강우희를 대신해 강우혁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부님.”

“오, 오빠!”

오라비의 대답에 강우희는 당황했다.

그는 사부를 이리 만든 자가 아무렇지 않은가 싶어 화가 날 정도였다.

강우혁은 그런 누이에게 나직이 말했다.

“사부님의 명을 거역하려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강우혁이라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지만, 사부의 명이었다.

그러한 명을 내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가 본 패황은 마냥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강우혁은 자금홍호로에서 꺼낸 태을보령환을 쥔 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쓰러진 패황에게 다가갔다.

이백과 달리 그는 의식이 없었다.

“이거… 사부님이… 드리라고…….”

“…….”

패황에게 아무런 대답이 없자 강우혁은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강우혁은 고민 끝에 그의 입에 태을보령환을 넣었다.

그러기 무섭게 누군가의 일갈(一喝)이 강우혁의 귓가를 때렸다.

“감히 성주께 무얼 먹이는 거냐!”

“사, 사, 사부님께서…….”

용마창패가 만든 틈을 타고 빠져나온 천패였다.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해도 고작 열 살에 불과한 강우혁이다. 천패의 호통에 당황하는 게 당연하다.

천패는 분노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성주께서 잘못되면 너흴 가만두지 않겠다!!”

“히끅! 히끅!”

놀란 강우혁은 그대로 주저앉은 채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그나마 천패가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 정도로 그쳤지, 아니었다면 강우혁은 숨도 쉬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침착한 척해도 그는 고작 열 살짜리 소년에 불과하니까.

천패는 공포에 질린 강우혁을 무시한 채, 패황의 곁으로 갔다.

패황의 몰골은 이백 못지않았다.

“명하셨다고 해도 물러나는 게 아닌데…….”

의식을 잃은 패황의 모습에 천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악(巨嶽)과 같은 패황이다.

그런 그가 이리 쓰러진 건, 천패에게도 충격이었다.

슬퍼하는 천패의 손에 패황의 아랫배로 향했다.

그때 천패의 눈빛이 바뀌었다.

“죽으면 사라질 내공, 이 사부가 대신 잘 사용해주마.”

천패의 장심(掌心)을 통해 패도적인 기운이 빨려 들어갔다.

그것을 느낀 천패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패왕진천기(覇王震天氣).

패황의 내공이 천패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고 있었다.

패왕성은 사파이지만, 반인륜적인 무공의 연성은 금지되어 있었다.

금지된 무공 중 하나가 흡기공(吸氣功)이다.

타인의 내공을 탈취하는 방식도 문제지만, 그렇게 쌓은 내공은 막대한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열의 일곱은 이기(異氣)의 충돌로 주화입마를 빠졌고, 열의 둘도 내공 운용에 장애를 겪었다.

마지막 열의 하나는 즉사했다.

어느 한 명 끝이 좋지 않은 흡기공을 금지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흡기공을 패왕성의 이인자인 천패가 익히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분혼마공(分魂魔功)을 익힌 게 신의 한 수였어.’

마음을 나누는 심공을 분심공(分心功)이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분심공은 무당의 삼대신공의 하나인 양의심공이다.

마음을 나눈다면 동시에 많은 무공을 익힐 수 있고, 펼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한때 많은 무림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정신분열을 일으켜 광마(狂魔)로 만든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대부분 사장되었다.

양의심공이 신공(神功)인 이유는 익히기 어렵지만, 정신분열이 일어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양의심공 안에 정신분열을 막는 장치는 여럿 포함되었다. 그러한 탓에 무당의 삼대신공 중에서도 가장 익히기 어렵다는 평을 받는 것이다.

‘패황의 내공이라면… 패황의 내공이라면!’

천패는 자각하지 못하지만, 그의 눈빛에 광기가 엿보였다.

양의심공을 신공이라 부르고, 분혼마공이 마공인 이유다.

대신 기존의 내공과 패황에게서 탈취한 내공.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기운을 동시에 제어하는 게 가능하다.

이기의 충돌로 인한 주화입마 대신 정신분열로 인한 광마가 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아니, 천패는 자신이 분혼마공에 의해 광마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일지 모른다.

과거 무림을 뒤흔들었던 분혼마신(分魂魔神)이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분혼마신은 광마(狂魔)가 되지 않았다.

무림공적이었던 그를, 수많은 무림고수의 희생으로 죽일 수 있었다.

‘내가 진정한 패황이다!’

천패는 너무도 달콤한 꿈을 꾸었다.

자신이야말로 진짜 패황이라고.

천패. 천하일패(天下一覇)에서 비롯된 별호다.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였던 청해무림이지만, 반대로 강자가 많았다.

구황의 사문인 천중원(天重院)은 청해무림을 발판으로 진정한 천하일패가 되려 했다.

그 꿈을 시도하기도 전에 무산되고 말았다.

바로 초대 패왕이다.

그의 패력은 당시 천중원주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결국 천중원주는 계획을 바꾸었다.

초대 패왕을 통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그의 밑으로 들어갔다.

천중원주의 굴복으로 청해무림의 복속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패왕성이라는 거대집단이 탄생할 수 있었다.

‘난 아버님과 달라, 난 다르다고!’

스스로 왕좌에 오르는 걸 포기하고 조왕자(造王者)의 길을 택한 전대 천중원주.

그런 아비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온 천패 구황이기에 더욱더 왕좌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그것을 참으며 이대와 삼대의 성주를 보좌했다.

남들은 그를 패황의 스승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부러워했지만, 정작 구황에게 공허할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았다.

‘나야말로 천하의 패… 음?’

패황의 패왕진천기에 취해 있던 천패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패왕진천기의 흡수되는 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천하의 패황이다. 고작 이 정도의 내공밖에 없다?

‘미, 미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패왕진천기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다시 패황의 몸속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흡기공을 극한으로 운용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엄청난 속도로 되돌아가 갔다.

―미몽(迷夢)은 잘 꾸셨소, 천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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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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