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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21화 (121/200)

121화. 또 다른 단서(端緖)

“꼬리를 잘랐단… 말이구려.”

무림맹주 검제(劍帝)는 얼굴이 굳어졌다.

어렵고 어렵게 추암당이 만들어졌다.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으니, 그의 심기가 편하긴 어려웠다.

검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악 장로께선 임무가 실패하길 바라는 거 같소?”

발끈한 검제를 보며 산동악가의 장로 묵운창(墨雲槍)은 움찔했다.

검제는 무림십왕이자 무림맹주이나 맹의 수뇌부를 권위로 누르는 편이 아니다.

그렇기에 감히 그는 비아냥거린 것인데, 평소와 다른 반응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며 체면이 구겨지니 태연한 척했다.

“그럴 리 있겠습니다, 맹주님. 그저 암류를 쫓는 중대한 임무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만 다룬다는 게…….”

“임무의 중대성 때문이외다. 그리고 귀가에선 변절자가 발견되지 않았소?”

검제의 말에 묵운창은 움찔했다.

가주의 친형인 묵뢰도(墨雷刀)의 시체와 함께 변절의 증거까지 발견되었다.

산동악가는 이를 은폐하려 했지만, 무림맹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날 이후 산동악가는 무림맹에 삐딱한 태도를 보였다.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무당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변절자.”

“그건…….”

검제는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 무당칠자의 일성도장이 암류에 협력한 게 밝혀졌다.

이를 속죄하고자 추암당에 가장 협조하고 있었다.

묵운창은 이를 지적했다.

검제로서는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없었다. 자칫 무당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량수불…….”

“공사(公事)에 있어 정대했으면 좋겠다는 게, 무리한 건의입니까.”

묵운창의 이죽거림에 검제는 주먹을 꽉 주었다.

이죽거리는 말투는 불쾌하지만, 발언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었기에 그로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 비각을 이끄는 비영(秘影)이 끼어들었다.

“추암당의 임무 수행 능력을 의심하시는 거라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요, 비각주.”

비영의 말에 묵운창은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비영은 그의 반응 따위 가볍게 무시했다.

묵운창이 아닌 산동악가주라고 해서 두려워할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곤륜의 협조하에 입수된 정보를 확보했다 합니다. 정보 중에는 암류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신궁(神宮)이라고 합니다.”

“신궁? 그러한 집단이 있소?”

비영의 말에 다들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각파의 장로급으로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신궁이란 명명(命名)은 처음 들어보았다.

소란스러워졌지만, 비영은 자신의 말을 이었다.

“생소하신 게 당연합니다. 그러니 암류 아니겠습니까.”

“그, 그렇소.”

“대체 신궁이란 곳이 어떤 세력이오?”

다행히 비영은 사람의 주목을 이끄는 힘이 있는지, 소란스러웠던 장로들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비영은 밝혀진 부분만 설명했다.

“자세한 건 곤륜으로 간 당원들이 복귀해야 할 수 있겠지만, 순찰령의 수장 총순찰이 흑제의 후예라는 것 이외에. 군사전의 수장 군사가 혈불이라고 불린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혈불(血佛)? 혈불이라고 했소?”

장로들은 또다시 어리둥절했다.

암류의 수뇌 중 한 명인 총순찰의 정체가 십절흑제라는 게 알려졌다.

들어본 적이 없는 별호에 무림맹이 당혹스러워할 때, 그가 사도련의 전대 련주 흑제(黑帝)의 무공을 이었다는 게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헌데 또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 언급되었다.

암류 신궁의 수뇌라면 평범한 자가 아니라는 건 모두 예상할 수 있었다.

“혈뢰음사(血雷音寺)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건 또 뭐요?”

혈불에 이어 비영의 입에서 전해진 혈뢰음사.

장로들은 또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혹, 대뢰음사와 연관이 있습니까?”

“공지대사께선 짐작되시는 게 있으신가 보군요. 맞습니다. 대뢰음사. 정확히는 천축 뇌음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천축무림의 전설 뇌음사(雷音寺).

천축무림의 전설답게 뇌음사는 방대한 무학과 가르침 그리고 승려를 보유했다.

아무리 승려들이라고 해도 많은 사람이 모이며,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법.

결국 뇌음사는 대뢰음사(大雷音寺)와 소뢰음사(小雷音寺)로 나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이 뇌음사의 진정한 후신이라며 서로 으르렁거렸다.

허나 수백, 수천 년 넘게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게 되었다.

“그럼 혈뢰음사는 무엇이오?”

“뇌음사는 천축무림의 전설이자 지주였습니다. 수많은 무공과 불경만 존재한 게 아니지요. 천축무림 내에 존재한 사술이나 대법, 마공 등을 회수하고 봉인시켰습니다. 궁금증을 이겨내지 못한 채 손을 댄 자가 바로 초대 혈불이며, 혈뢰음사의 주인입니다.”

비록 멀기에 와닿지 않으나 천축무림의 강대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소림에 무학을 정립시킨 달마대사가 바로 천축 출신이니 어찌 모르겠는가.

그런 대단한 세력을 아무도 몰랐다는 게 의아했다.

“헌데 어찌 그런 집단이 알려지지 않았소?”

“서로 으르렁거리는 대뢰음사와 소뢰음사가 손을 잡은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혈뢰음사를 멸문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비영의 설명에 장로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멸문 시켰다 했소? 조금 전에 신궁의 군사(軍師)가 혈불이라 하지 않았소?”

“아무리 악(惡)을 멸절시킨다고 해도 다시 살아나는 게 악이지 않습니까. 멸문된 줄 알았던 혈뢰음사의 잔당이 은밀하게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혈법당주의 금제를 억누르며 간신히 얻어낸 정보 중 하나였다.

제갈현호는 곤륜파의 도움으로 보낸 전서응을 통해 비각에 서신을 보냈다.

서신의 한계로 극히 일부만 먼저 전달할 수밖에 없었기에 제한적인 정보만 전해질 수 있었다.

“그렇군. 그 외에 알아낸 정보는 뭐가 있나 비각주.”

“자세한 건 당원들이 복귀해야 조사에 착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제법 큰 걸 얻었다.

비록 추암당의 공적이라 할 수 없지만, 그걸 지적할 간 큰 자는 없었다.

신궁이란 거대한 암류를 앞둔 지금, 탁상공론만 할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자가 없다 할 수 없었다.

‘젠장, 이러다가 엿되는 거 아니야? 병신처럼 주둥이를 놀리면 어떻게!’

미묘한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긴 어렵다. 허나 일부러 상황을 추이하며 관찰하는 자에겐 아니었다.

비영은 그런 변화를 알아차렸다.

‘역시… 네놈이었군. 숨어 있는 쥐새끼가…….’

*  *  *

“임(臨), 병(兵), 투(鬪), 개(皆), 진(陣), 열(列), 전(前), 행(行)!”

강우희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박자(抱朴子)의 육갑비축(六甲秘祝)이 이어지자 귀여운 토끼가 멈칫했다.

“태상노군(太上老君)! 급급여율령봉칙(急急如律令奉敕)!”

그 순간 토끼와 강우희 사이에 보여지지 않는 유대가 이어졌다.

강우희는 본능적으로 백수조련술을 성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를 느낀 그녀는 깡충깡충 뛰면 좋아했다.

“와~! 성공했다! 또 성공했어!”

“오래 묶어두지 말고 풀어줘. 함께 할 수 없으니까.”

백수조련술을 성공한 강우희를 향해 오라비인 강우혁이 찬물을 끼얹었다.

강우희가 토끼를 상대로 백수조련술을 펼친 건, 애완(愛玩)을 위함이 아니다.

백수조련술의 성취를 높이기 위한 수련일 뿐이다.

토끼를 권속으로 삼아 평생 키울 게 아니라면 자신에게 더 의존하기 전에 풀어주는 게 현명하다.

“칫! 알고 있다고. 행(行), 전(前), 열(列)…….”

육갑비축을 역으로 읊으며 토끼에게 걸어둔 백수조련술을 통해 맺은 유대를 끊었다.

이백과 달리 강우희는 육갑비축을 통해 백수조련술을 펼쳤다.

육갑비축은 신선술의 일종으로, 도력(道力)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다.

강우희는 혼돈의 영력을 흡수한 덕분에 도력이 부족하지 않다. 그럼에도 백수조련술을 펼치기 위해 육갑비축을 읊는 건, 혼돈을 권속으로 삼을 때의 감각을 떠올리기 위함이다.

일종의 집중의 의미로서.

무공을 수련할 때, 초식명을 외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이제 마록(馬鹿)을 조련해봐야겠다!”

“조심해, 마록은 가볍게 볼 짐승이 아니니…….”

평소 말이 없는 과묵한 강우혁이지만, 누이와 연관된 일이라면 아줌마가 되는 경향이 있다.

강우희는 자신감이 붙어서인지, 오라비의 잔소리를 마냥 듣고만 있지 않았다.

“잔소리는! 혼돈이 있는데, 뭔 걱정이야?”

“…….”

강우희의 말에 혼돈은 고갤 돌렸다.

혼돈은 그녀의 말을 습관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강우희의 안위는 최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은고아의 권능 때문이었다.

강우희로선 최고의 호위를 얻은 셈이다.

‘하아… 우희를 걱정할 때가 아니지.’

누이는 이미 몇 걸음 앞으로 먼저 나아갔다.

그에 비해 자신은 제자리에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강우혁은 손은 갈퀴처럼 오므렸다.

“청랑아(靑狼牙)!”

허공을 가르는 강우혁의 손은 매서웠다.

청랑조법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초식이다.

사실 청랑아만 완벽해도 다른 초식이 필요 없다.

청랑조법의 다른 초식은 청랑아의 변형이자 위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일 뿐이니까.

“완벽하게 익혀야 해.”

청랑조법의 청랑아는 백수십팔식과는 격이 달랐다.

그걸 알기에 강우혁은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허나 청랑조법은 전대 십왕인 청랑왕의 절학이다.

강우혁의 재능을 무시하지 않으나 몇 번 연습한 것만으로 능숙해지긴 어렵다.

그의 자세를 교정해줄 이백은 아쉽게도 이 자리에 없었다.

후욱~! 후욱!

“흐음… 이게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였나?”

뭔가 부족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족함을 스스로 깨우치기에 강우혁의 공부는 너무도 얕다.

어설프기 그지없는 강우혁의 청랑조법을 보다 못했는지, 푸른 기가 도는 어두운 강아지가 다가왔다.

“음? 혼돈…이구나. 왜?”

혼돈의 진체(眞體)를 본 적이 있는 강우혁은 움찔했다.

다행히 은고아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을 해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침착해질 수 있었다.

그때 혼돈이 허공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서걱~!

허공만 베었을 뿐인데, 무언가 베인 듯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강우혁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런 그를 한심하게 바라본 혼돈이 다시 한번 발톱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조금 전보다는 느리고 섬뜩함도 약했다.

“아, 알려주는 거야? 어떻게 하는 건지?”

혼돈은 콧방귀를 뀌더니 강우희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본 강우혁은 양손으로 뺨을 때렸다.

짝~!

“혼돈이 이렇게 했나?”

후웅~!

혼돈과 비교하기에 너무 어설픈 움직임이었다. 허나 그래도 조금 전보다는 나았다.

그걸 강우혁 본인도 느꼈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렇게? 아니, 이렇게였나?”

여전히 어설프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게 감을 잡은 듯싶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이백이었다.

“내가 나설 것도 없네.”

제자들을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백의 표정이 바뀌었다.

조금 전의 일이 떠오른 탓이다.

“슬슬 떠날 때가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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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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